현인이 중국 감옥에서 작곡…봄비 내리는 충무로에서 떠오른 시상(詩想)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35)서울 야곡(유호 작사, 현동주 작곡, 현인 노래, 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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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戰時) 총동원령을 선포하고 식민지 조선인의 생명과 재산을 수탈하고 있던 일제 강점기 말기에 현인은 징병을 피해 중국 상해로 갔다. 그곳에서 활발한 음악활동을 하다 일본 관헌에게 체포된 그는 살기 위해 일본군 위문공연을 억지로 다녀야 했다.
  
  해방이 되자 그는 고국에 오기 위해 중국 천진에서 귀국 수속 중 일본군에 협조했다는 죄목으로 중국 팔로군 소속 천진경비대에 체포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북경육군비밀형무소에 갇혀 강냉이 주먹밥과 소금국을 먹으며 감옥 안에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갇혀 있는 형무소의 창살 너머 하늘을 가르며 길게 흐르는 흰 구름 한 점을 보고 조국에의 향수를 느끼며 떠오르는 악상(樂想)을 정리하였다.
  
  마침내 서울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경복고 1년 후배인 작사가 유호에게 이 곡을 들려주며 작사를 부탁하였다. 그 당시 유호는 경향신문 문화부장 겸 작곡가 박시춘이 설립한 럭키레코드 문예부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1948년 어느 봄날 저녁 경향신문에서 퇴근한 그는 자신이 문예부장으로 있는 럭키레코드사에서 가수 현인을 만나기 위해 충무로 밤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 내린 봄비로 날씨는 쌀쌀하여 무의식적으로 레인코트 깃을 올리면서 엉거주춤 걸어가는데 충무로 상가 쇼윈도에는 주르륵 넘쳐흐르는 빗물이 네온 불빛을 받아 꽃잎처럼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순간적으로 가수 현인이 작사해 달라며 자신에게 넘긴 곡이 귓가를 맴돌면서 가요 시상(詩想)이 떠올라 빠르게 메모를 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이 노래를 가수 현인이 불렀는데 엄청나게 히트하였다. <서울 야곡>은 트로트가 대세인 그 당시에 보기 드문 탱고 리듬의 곡으로 유려한 편곡이 돋보이는 노래이다. 더구나 종로(보신각), 충무로, 명동이 외면적으로 화려하나, 내면적으로 쓸쓸하고 우울한 도시의 정서를 잘 표현한 완성도가 아주 높은 서정시로 그가 몹시 아끼는 가요시이다. 더구나 쇼윈도 그라스, 네온, 마로니에, 배가본드 등 외래어를 적절히 사용하여 서울거리를 실제보다 더 서양적인 느낌이 들도록 하는 데 성공하였다.
  
  시간이 흘러가도 이 노래에 대한 대중의 열기가 식지 않아 1970년대 후반 가수 전영이 리메이크를 하여 또다시 크게 히트하였다. 1977년 동양방송(TBC)은 오현경과 유지인을 주연으로 하고, 이은하가 부른 <무교동 이야기>라는 주제가가 흐르는 같은 제목의 TV 드라마를 방영하여, 인기를 끌었다.
  
  이 노래를 작곡하고 부른 현인은 1919년 부산 출신으로 본명은 현동주이다. 그는 경복고와 일본 우에노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였다. 정통 클래식을 하는 대신 대중가요를 부른 그는 트로트와 서양식 대중가요를 다 잘 소화한 가수이다. 그는 <신라의 달밤>, <굳세어라 금순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불러 ‘해방 전 남인수, 해방 후 현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었다.
  
  작사가 유호는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제헌헌법을 만드는데 공이 큰 헌법학자이자 정치인으로 유명한 유진오 박사의 사촌동생이다. 경복고와 일본제국미술학교에 수학한 그는 방송작가이자 언론인, 그리고 대중가요 작사가이다. 그는 <서울 야곡>, <이별의 부산 정거장>, <신라의 달밤> 등 많은 히트곡을 작사하여, 보통사람들의 한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한국의 대중가요를 풍성하게 하였다.
  
  <서울야곡>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 그라스에 눈물이 흘렀다
  이슬처럼 꺼진 꿈 속에는 잊지 못할 그대 눈동자
  샛별 같이 십자성 같이 가슴에 어린다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에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
  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 네거리에 버린 담배는
  내 마음 같이 그대 마음 같이 꺼지지 않더라
  
  
  
[ 2021-04-12, 04:3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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