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실제 모델'만 두 명인 국민 애창곡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38)소양강 처녀(반야월 작사, 이호 작곡, 김태희 노래, 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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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가 노래시를 만들려고 하면 그 노래를 만드는 데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건을 모티브로 하거나, 아니면 순전히 작가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으로 창작한다. 대체로 작사가들이 살아오면서 직·간접적으로 겪은 경험들이 상상력과 합쳐져서 대중들을 감동시키는 가사로 재탄생하게 된다.
  
  <소양강 처녀>의 작사와 관련하여 작사가 반야월 선생에게 모티브를 제공한 인물에 대해 이런저런 설이 무성하다. 우선 이 노래를 작사한 반야월 선생은 1990년 KBS TV ‘전국노래자랑’과의 인터뷰에서 1969년 당시 가수 지망생인 윤기순이 실제 모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2000년 KBS TV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춘천여고 3학년 박경희(1950년생)가 대중가요 <소양강 처녀>의 실제 모델이라고 소개하였다. 이렇게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반야월 선생 자신은 생전 다른 인터뷰에서 “<소양강 처녀>는 특정인물의 얘기를 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노래의 배경이 된 소양강에 노래비를 세운 춘천시청에서는 두 사람을 다 <소양강 처녀>의 실제 모델로 보고 있다.
  
  우선 반야월 선생이 한때 <소양강 처녀>의 실제모델이라고 했던 윤기순에 대해 알아보자. 1953년 강원도 춘천의 소양강 근처에서 2남 5녀의 맏딸로 태어난 그녀는 그 시절 가난한 집안의 딸들이 그러하듯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그녀는 처음 전화교환원이 되어 돈을 벌고자 이를 양성하는 통신학원에 등록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전화교환원 월급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고는 한 달 만에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 후 그녀는 가수가 되면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도 할 수 있고, 돈도 좀 벌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김종환 작곡가의 사무실로 무조건 찾아갔다. 그는 박시춘, 반야월이 주축이 된 ‘한국가요반세기동지회’ 사무실에 그녀를 소개하였다. 그 사무실에서 ‘소양강 처녀’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녀는 일을 하면서 이따금 그곳의 선생님으로부터 노래도 배웠다. 자신의 딸이 이렇게 공짜로 가요수업을 받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 그녀의 아버지는 민물 매운탕이라도 대접하겠다는 생각으로 1968년 6월 어느 날 반야월, 고명기, 류노완, 월견초 등 10여 명을 춘천으로 초대하였다. 6·25 전쟁 때 한쪽 다리를 다친 윤기순의 아버지는 그 당시 소양강 상류에서 민물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소양강에 도착한 반야월 선생 일행은 갈대숲이 우거진 중도(中島)로 나룻배를 타고 천렵을 하러 갔다가 비바람을 만나 돛단배가 흔들리는 통에 제법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반야월 선생은 이때 얻은 가요시상(詩想)을 <춘천 처녀>라는 제목 아래 정리하였으나 나중 어감이 더 좋은 <소양강 처녀>로 바꾸어 그 당시 오아시스 레코드사 문예부 상담역으로 있던 작곡가 이호가 곡을 붙였다. <님과 함께>를 부른 남진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인데도 1970년 신인가수 김태희가 이 노래를 불러 10만 장의 레코드를 팔 정도로 크게 히트하였고, 그녀는 TBC 가요 신인상을 받았다.
  
  이 노래는 한서경이 1990년대 초에 김태희와 다른 창법으로 불러 또 다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노래는 1992년 노래방 인기순위 1위가 될 정도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한편 이 노래의 주인공 윤기순은 1970년 음반을 발표했으나 대중의 반응은 별로였다. 그래서 혼인도 하지 않고 밤무대 가수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이 와중에 불행하게도 그녀는 노래를 너무 많이 불러 성대(聲帶) 결절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고, 밤무대 활동 등으로 조금씩 돈을 벌어 아버지에게 젖소를 사드렸지만 우유파동으로 목장이 망하는 등 큰 시련을 겼었다. 1995년 춘천시는 소양2교 근처에 <소양강 처녀> 노래비를 세우면서 경찰청의 협조를 얻어 노래의 주인공 윤기순이 광주에서 윤미라라는 이름으로 밤무대 가수로 일하고 있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 후 그녀는 일본에 가서 밤무대 가수로 활약하다가 2006년에 춘천으로 돌아와 춘천시 사북면 지암리 집다리골에서 ‘풍전가든’이라는 민박을 겸한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소양강 처녀>의 또 다른 모델로 일려진 춘천여고 3학년 박경희는 1950년생으로 춘천시 소양1교 근처에서 호수여관과 선박업을 하는 부모님과 살고 있었다. 작사가 반야월 선생은 이 여관에 한 달 정도 있으면서 작사를 했다고 한다. 그는 가끔 소양강 상류에 있는 고산이라는 작은 섬에 가곤 했는데, 박경희는 그럴 때 두어 차례 동행했다고 한다. 그가 일을 끝내고 여관을 떠날 때 “네 사연을 노랫말로 썼으니 나중 레코드가 만들어지면 춘천에 와서 전해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김태희는 1951년 생으로 본명은 박영옥이며, 작곡가 박시춘의 먼 친척이 된다고 한다. 1981년 결혼과 함께 가요계를 은퇴하였으나 이혼 후 가수 활동을 재개하였다. <등대섬 처녀>, <비>, <너무도 짧은 행복>, <사랑하다 싫어지면> 등을 불렀다.
  
  <소양강 처녀>를 작사한 이호는 1931년 서울 출생이며, 본명은 이신형이다. 그는 KBS 전속가수로 활동하다 1965년 작곡가로 변신하여, <사랑은 이제 그만>, <잊을 수가 있을까>, <소양강 처녀> 등을 작곡하였다.
  
  <소양강 처녀>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
  떠나고 안 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달 뜨는 소양강에 조각배 띄워
  사랑의 소야곡을 불러주던 님이시여
  풋가슴 언저리에 아롱진 눈물
  얼룩져 번져나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 2021-04-18, 04:4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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