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한국에 비치는 희망의 曙光(서광)
반공자유-교양영어(43): The Hole in Democracy's Heart

朴承用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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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자유한국에 비치는 희망의 曙光(서광)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神聖(신성)한 것이라고는 거의 없다. 전지전능한 神의 권위를 가지고 모든 사람의 의식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사상은 없다. 그래서 현대는 모든 권위가 조롱당할 수도 있는 시대이다. 그런데도 唯一神(유일신)의 기독교도 부러워할 만한 신성불가침의 사상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사상이다. 그 어떤 누구도 어떤 정치성향이든 투표를 통한 다수지배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도전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민주주의에 神과 같은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신성한 민주주의도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인간은 지상낙원 에덴에 살게 하여도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고 쫓겨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악마 같은 인간들에 의해 악용당할 수도 있다. 악마들이 민주주의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기만하고 민주적 수단에 의하여 합법적인 통치자로 등장하여 국민을 재앙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20세기 3대 살인마 중의 하나인 히틀러를 우러러 모신 독일 국민들이 좋은 예가 된다. 


아돌프 히틀러는 흔히 독일국민과는 관계없는 별개의 돌연변이적 괴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불행히도 히틀러는 민주주의의 不在(부재)의 산물이 아니고 민주주의적 절차 그 자체의 산물이다. 히틀러는 자유선거에서 이전의 어떤 독일인보다도 더 많은 표를 얻어서 집권하였다. 히틀러의 메시지에 열광했던 독일인들이 특별히 사악하거나 탐욕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민주적 절차가 필요로 하는 꼬치꼬치 따지는 것과 綿密(면밀)한 吟味(음미)를 할 수 없었고 할 뜻도 없었다. 그들은 나치스의 선전선동에 넘어가 합리적 판단능력을 상실한 것이었다. 인간은 이렇게 불완전한 존재이다. 독일인들도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나치스와 공범자가 된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도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 대놓고 국가에 반역하는 자들에게 통치권을 자진해서 가져다 바치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악령들이 대놓고 거짓말하고 대놓고 사기를 치고 대놓고 적과 내통하며 대놓고 국가를 파괴하고 있어도 방관하거나 심지어 지지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히틀러의 독일인들처럼 악마와 공범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나라가 망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냉철하다는 독일인들조차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간 前例(전례)를 보면 이것이 杞憂(기우)만은 아닌 것 같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지난 70년간 쌓아 올린 자유민주주의 문명이 어두움의 세력을 쫓아내는 빛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3월 서울-부산시장 선거에서 그 문명의 빛줄기를 보았었다.



43. The Hole in Democracy's Heart by Brian Walden

-He is the model of villainy, but Hitler came to power through the ballot box

(Brian Walden is a television journalist and former member of Britain's House of Commons.)


43-1-330

Today in the Western world, little is sacred. Law, authority, religion and honor are daily mocked. Yet one idea has attained a sanctity that Christianity might envy. That idea is democracy. Whatever else may be challenged, no one from any quarter of the political spectrum ever questions the idea of majority rule through the ballot box. All sides accord it magical powers.


Democracy, we are told, brings not merely political responsibility and maturity but happiness and prosperity. See it bring joy to those who once labored under communism. Pity the victims of African dictatorships, whose societies would resemble our own could they enjoy its benefits. Bewail the absence of democracy in both Yugoslavia and Iraq. If these countries could cast off the dictator's yoke they would become as fair and decent, as just and reasonable, as NATO's members.


To shatter this dewy-eyed view of the benefits democracy must bring, we need look no farther than the greatest disaster that humanity has managed to contrive, Germany's Third Reich. Adolf Hitler is usually presented as a great dictator, a monster as separate from the German people as we like to believe Sadam is from the Iraqis and Milosevic from the Serbs. Unfortunately, Hitler was a product not of the absence of democracy but of the democratic process itself.



 43. 민주주의 가슴에 뚫린 구멍

-히틀러는 악의 전형이었지만 선거에 의해서 집권하였다.


오늘날 서방세계에서는 神聖(신성)한 것은 거의 없다. 법과 권위와 종교와 명예심은 매일 조롱받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상만큼은 기독교도 부러워할 신성함을 가지고 있다. 그 사상은 민주주의이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정치적 사상의 어떠한 영역에 속한 사람도 투표를 통한 다수결 지배의 사상에 의문을 품지는 않는다. 모든 정파들은 민주주의에다 마법의 힘을 부여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책임과 성숙은 물론 행복과 번영을 보장한다고 우리는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고난을 당하던 사람들에게 민주주의가 가져다주는 기쁨을 보라. 아프리카 독재정권의 희생자들을 불쌍히 생각하라. 아프리카 사회가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릴 수만 있다면 우리 서구사회와 비슷하게 될 것이다. 유고슬라비아와 이라크에 민주주의가 없음을 슬퍼하라. 이 두 나라가 독재자의 멍에를 벗어날 수 있다면 그들도 나토의 나라들처럼 공정하고 우아하고 정의롭고 합리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반드시 가져다준다는 혜택에 대한 이 멋진 생각을 박살내기 위해서는 인류가 저지른 최대의 재앙인 독일의 제3제국보다 더 멀리 갈 필요는 없다. 이라크의 독재자 Sadam이 이라크 국민과 관계가 없고 세르비아의 독재자 Milosevic가 세르비아 국민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믿기를 원하는 것처럼 극악무도한 인간인 독재자 히틀러를 일반적으로 독일국민과 분리해서 별종의 인간인 것처럼 말한다. 불행히도 히틀러는 민주주의 부재의 산물이 아니고 민주적 정치의 실행 자체의 산물이다.



43-2-331

Hitler polled more votes in a free election than any German before him. People who are aware of his popularity often assume that he managed to sell his program of aggression and genocide because of unique circumstances. Germany's national humiliation after the loss of World War Ⅰ and the economic depression of the 1930s get most of the blame. Yet the truth is more alarming, and far more damaging to the idea that democracy is the solution to all of humanity's problems.


For Hitler, like many of today's leaders, democratic politics was simply a means of securing power. He had tried a putsch in 1923, but it had been a complete failure. Unlike most of today's leaders, however, he had a very clear idea of what he wanted to do with power when he got it, and he made no secret of his grim ambitions. Mein Kampf was first published in 1925. Hitler found, however, that in spite of the supposedly vulnerable condition of the national psyche, the promise of a final solution to the Jewish problem and more Lebensraum for the German people was not the vote-winner he might have expected.


So what was a would-be monster to do? Hitler believed he understood "the secret heart" of the German people and used this understanding to turn a people otherwise unsympathetic to his objectives to ardent supporters. What were the hidden yearnings to which he was able to appeal? Not the desire for a world war that would bring them untold suffering or a campaign of genocide that would blacken their name forever. Instead, Hitler appealed to an apparently harmless longing that is as strong today in many quarters as it was then. 


히틀러는 자유로운 선거에서 이전의 어떤 독일인보다도 더 많은 표를 얻었다. 히틀러의 대중적 인기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그의 침략과 인종학살 정책이 독특한 환경 때문에 국민에게 잘 먹혀 들어갔다고 종종 推定(추정)한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이 받은 국가적 모욕과 1930년대의 경제불황이 대부분의 욕을 얻어먹고 있다. 그러나 그 진실(침략과 인종학살 정책을 취하게 된 원인)은 더 놀라운 것이고 민주주의는 인류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사상에 훨씬 더 손상을 주는 것이다.


히틀러에게는, 오늘날의 많은 지도자들처럼, 민주주의는 권력확보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1923년에 그는 폭동을 일으켰지만 그것은 완전한 실패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부분의 지도자와는 달리 그는 집권하였을 때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는 그의 잔인한 야망을 비밀로 하지도 않았다. 히틀러의 저서 Mein Kampf(나의 투쟁)는 1925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선전선동에 취약하다고 추정되는 국민의 정신상태에도 불구하고 유태인 문제와 독일의 영토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선동적 약속이 그가 예상하였던 승리요인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극악무도한 인간이 될 그가 할 일은 무엇이겠는가? 히틀러는 독일인들의 “마음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는 이 비밀에 대한 지식을 이용하여 다른 상황이었다면 그의 목표에 공감하지 않을 국민을 열렬한 지지자로 변모시켰다. 그가 국민의 마음에 호소할 수 있었던 그 숨겨진 열망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국민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초래하였던 세계전쟁에 대한 욕망도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더럽히게 될 인종학살운동에 대한 욕망도 아니었다. 대신에 히틀러는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의 많은 지역에도 통하는 국민의 무해한 열망에 호소하였다.


 

43-3-332

Then as now, many people felt unsettled by the uncertainties of a world in which ancient structures of authority had collapsed and no one any longer had a settled place. What Hitler offered them was an inclusive folk community that would find a position for every one of them. This was the message that combined with economic anxiety to pile up the votes the Nazis needed. Hitler told Germans they did not need listen to the endless arguments of the democratic parties, which he knew they found baffling and irritating. Instead they could look forward to consensus based on the decisions made by a leader they could trust.


It was a flimsy message, potentially raising many awkward questions. But Hitler had grasped a truth about democratic politics that is even more enthusiastically embraced now than it was then. He believed style mattered more than substance and made sure that his message was superbly marketed. Before the age of television politics was an outdoor affair, so Hitler enveloped his message in spectacle-red, white and black flags, eagle banners, bands blaring martial music, heart-warming speeches and the chanting of simple slogans. The excitement of it all was enough to quell doubts. The Germans who felt for it were not vicious or rapacious. They were simply unwilling or unable to exercise the scrutiny required by the democratic process. Today, as discussion of public affairs grows ever more cursory and infantile, the absence of such scrutiny is even more striking than it was in the 1930s. It may not have given us another Hitler yet, but it could. It is not a passing aberration in the working of democracy: it is the hole in its heart. And it is a hole we must find out how to plug, if democracy is ever to fulfill the hopes we so eagerly pin on it.


그때도 지금처럼 以前(이전)의 권위구조가 붕괴하여 그 누구도 더 이상 마음의 定處(정처)를 찾을 수 없는 불확실성의 세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은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히틀러가 사람들에게 제공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안정된 자리를 제공하여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주민공동체였다. 이것이 불안한 경제와 결합하여 나치스에게 표를 몰아준 메시지였다. 히틀러는 독일인들에게 민주적 정당의 끊임없는 논쟁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고 말하였다. 그는 독일인들이 그러한 논쟁은 사람을 좌절시키고 짜증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들은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의 결정에 바탕을 둔 일치된 總意(총의)를 고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많은 의문을 제기하는 꼴사납고 빈약한 메시지였다. 그러나 히틀러는 민주정치에 관한 하나의 진실을 파악하고 있었는데 그 진실은 그때보다도 지금 더욱더 열렬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본질보다는 표현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고 그래서 메시지의 마케팅을 뛰어나게 잘하도록 하였다. TV 시대 이전에는 정치는 옥외 행사 위주였다. 그래서 히틀러는 그의 메시지를 赤(적), 黑(흑), 白(백)의 깃발과 독수리 紋章(문장)의 旗(기), 군악을 우렁차게 연주하는 밴드와 가슴을 뜨겁게 하는 연설과 단순한 구호의 절규 등으로 웅장하게 포장하였다. 이 모든 것이 주는 흥분은 의혹을 진압하기에 충분하였다. 이런 흥분을 추구하는 독일인들이 사악하거나 탐욕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민주적 과정에서 요구되는 정책에 대한 정밀점검을 할 뜻도 없었고 할 수도 없었다. 오늘날 公務(공무)의 토론이 점점 더 피상적이 되고 유치해지고 있어서 현재의 이런 정밀점검의 부재는 1930년대보다 훨씬 더 놀라운 것이다. 이런 상황이 또 하나의 히틀러를 나타나게 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밀점검의 부재는 민주주의 운행에 있어서 常軌(상궤)의 일탈이 아니고 민주주의의 심장에 있는 구멍(허점)이다. 민주주의에 기대하고 있는 우리의 열렬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반드시 틀어막아야 할 것은 그 구멍이다.


출처 : TIME, May. 31, 1999 by Brian Walden
[ 2021-04-27, 10: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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