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특유의 꺾기와 간드러진 창법(唱法)…타향 헤매는 사람들의 서러움 담다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42)머나먼 고향(박정웅 작사, 작곡, 나훈아 노래,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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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5·16 군사쿠데타 이후 노동집약적 수출산업화를 중심으로 한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한국 사회는 모든 면에서 급변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농촌의 유휴인력들이 기회를 찾아 대거 도시로 오면서 이른바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이 급격하게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한국 역사상 유례없는 계층이동을 경험하였다.
  
  그 당시 농촌의 젊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변화가 꿈틀거리는 도시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들은 도시에서 그들 인생 전체를 걸고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일하였다. 성실하고, 재주 있으며, 행운이 따르는 일부의 사람들은 사회적 변화의 물결을 타고 돈도 많이 벌고, 높은 관직에 오르며, 고명(高名)한 학자가 되는 등 빛나는 사회적 성취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배운 것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농촌 출신 이주자들이 맨몸 하나로 우리 사회가 제공하는 기회의 사다리를 잡기도 힘들고, 설혹 그것을 운 좋게 잡았더라도 실수 없이 한 계단씩 타고 올라가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도시로 온 사람들 중에는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하고 빈민가의 낡은 판잣집에서 직업을 전전하면서 겨우 허기를 면할 정도로 어렵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 식모, 여공, 버스차장 등 몹시 낮은 임금에 힘든 일을 하다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주변의 유혹에 넘어가 술집에 취업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경우 농촌 출신의 어느 집 딸이 유흥업소에 다닌다는 소문은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마침내 고향에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렇게 도시에 와서 평소 바라던 꿈을 조금도 이루지 못하고 타락하게 되면 부끄러운 생각도 들고, 고향 사람들을 볼 면목도 없어 설이나 추석 등 한민족 대이동 시기에도 고향을 가지 못한다. 또한 다음에 좀더 성공해서 고향을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명절 때 라디오를 듣거나 TV를 시청하며 도시의 지하 골방이나 다락방에 머물거나, 명절 때에도 문을 여는 술집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고향조차 가지 못하는 못난 신세를 한탄하게 된다.
  
  이럴 때 그들은 어릴 적 농촌에서의 삶은 가난하고 고생스러웠지만 부모형제와 동네사람들과 따뜻한 정을 주고받았던 추억을 아름답게 반추(反芻)할 것이다. 반면 신산(辛酸)스러운 객지의 삶은 바다가 고향인 물고기가 모래사장에 튕겨 올라온 것과 같이 정말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1970년대 초 타향살이의 서러움, 정처 없이 타향을 헤매는 사람들의 푸념을 담은 대중가요가 많이 나왔다. 다시 말해 격렬한 경쟁이 간단없이 진행되는 도시에 살면서 고향의 정을 차츰 잃어가는 ‘정신적 집시’들의 쓸쓸한 마음을 담은 노래들이 이 시기에 나왔다. 남상규의 <고향의 강>, 나훈아의 <너와 나의 고향>, <머나먼 고향>,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는 물론 김상진의 <고향이 좋아>와 <고향 아줌마>,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 등이 그 시절에 나온 대표적인 고향 노래들이다.
  
  작곡가 박정웅은 1968년 나이 25세 때 그의 고향인 경남 밀양을 떠나 서울에 있는 친구 쪽방에서 자취를 하며 어렵게 지내고 있었다. 그해 10월 초 그는 별로 이룬 것이 없어 고향 갈 면목도 없고, 고향 갈 차비도 없어서 홀로 자취집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기분이 몹시 처량했다고 한다. 한편 추석 때 다들 고향에 가서 집집마다 시끌벅적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물리적으로 고향을 갈 수 없지만 ‘마음만큼은 고향으로 달려가는’ 기분을 기타를 퉁겨가며 즉석에서 곡을 완성하였다.
  
  가수 조영남이 부르고 싶어 했던 이 노래는 1969년 가수 유지성이 불렀으나 히트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노래의 임자는 따로 있었는지 1971년 나훈아가 다시 불러 크게 히트하였다. 아마도 나훈아 특유의 꺾기와 간드러진 창법이 낯선 타향에서 외롭게 명절을 보내야 했던 많은 농촌 출신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린 것 같다.
  
  <머나먼 고향>을 작곡한 박정웅은 1943년 경남 밀영 출신으로 밀양실업고를 졸업하였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요를 작곡하는 등 곡을 만드는데 천재적인 소질을 보였다. <사랑의 역사>, <찻집의 고독>, <모정의 세월>, <추억의 그림자>, <날 잊지 마오>, <산비둘기>, <님 찾아 가는 길> 등 1000여 곡을 작곡한 바 있다.
  
  <머나먼 고향>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
  천리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발길
  한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갑니다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
  천리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발길
  한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갑니다
  
  
[ 2021-04-29, 02: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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