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되려 월남(越南)한 손인호, 본업은 가수 아닌 영화 녹음기사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43)해운대 엘레지(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손인호 노래, 1955년)

김장실(前 국회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엘레지는 원래 ‘죽은 이에 대한 애도의 시(詩)’를 말하였으나, 18세기부터 비탄의 감정을 표현하는 슬픈 노래를 의미한다. 일제 식민지, 6·25 전쟁, 대중적 빈곤, 근대화 등 수많은 격변을 겪으면서 한국인들은 쌓인 한이 많아서인지 이런 구슬픈 노래들이 한국 대중가요의 주조를 이룬다. 그 중에서 손인호의 <해운대 엘레지>, 이미자의 <황혼의 엘레지> 등 한국 대중가요에서 엘레지라는 이름을 달고 히트한 노래들이 제법 있다.
  
  특히, 여객선과 상선, 그리고 고기 잡는 어선들이 무시로 드나드는 부산은 이런 엘레지의 산실(産室)이 되었다. 이는 우리 대중가요가 탄생한 일제 시기에 그들이 주도한 전쟁의 소도구로 이용된 징용, 징병, 위안부 등의 이름으로 많은 한국인들이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연락선은 떠난다>, <울며 헤진 부산항> 등이 만들어져서 식민지 조선인들의 비참한 심정을 어루만졌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자 많은 한국인들이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부산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때 만들어진 노래가 이인권의 <귀국선>이다.
  
  더구나 6·25 전쟁 때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1000일 간 대한민국 임시수도였던 부산으로 피난하였다. 그 시절 부산을 배경으로 하여 <봄날은 간다>, <이별의 부산 정거장>, <경상도 아가씨> 등이 나왔다. 그러다가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한 부산 해운대는 1950년대와 1960년대 한국의 젊은이들이 즐겨가는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높았다. 또한 1960년대 이후 부산은 많은 이농민들이 기회를 찾아 정착했던 곳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조총련계 동포들이 모국방문을 하려 이처럼 이별이 잦은 부산항을 거쳐서 고향을 갔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하였다.
  
  부산 출신의 백영호 작곡가는 해운대에서 연인과의 서러운 이별을 회상하는 한산도의 가사를 손인호의 음색(音色)에 맞추어 작정하고 만들었다. 이에 화답하듯 가수 손인호도 이 노래를 열심히 연습하여 노래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노래는 크게 히트하였고, 가수 손인호가 가장 아끼는 노래 중의 하나이다.
  
  1927년 평북 창성 출신인 손인호는 본명이 손효찬이다. 해방 후 신의주로 이사를 간 그는 관서콩쿠르에서 ‘집 없는 천사’를 불러 1등을 하였다. 그런데 심사위원장이 그에게 가수가 되려면 이남(以南)을 가라고 권유하여 그는 격렬한 이념대결로 국토가 분단의 길목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1946년에 서울로 왔다. 김해송이 이끄는 KPK 악단 가수 모집에서 1등을 한 그는 KPK 악극단에서 활동을 하다, 그 후 윤부길이 이끄는 부길부길쇼단에서 가수로 활동하였다.
  
  6·25 전쟁 당시 군(軍) 연예대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공보처 녹음실에 입사하여 ‘대한뉴스’ 녹음을 담당하며 영화녹음기사로 활동하였다. 그는 40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 해병>, <로맨스 빠빠> <빨간 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 등 3500여 편 영화를 녹음하였다. 이는 같은 기간 제작된 영화의 80%에 해당되며, 이런 공로로 그는 각종 영화제 녹음상을 8차례나 수상하였다. 한편 그의 처남 이경순도 유명한 영화 녹음기사이다.
  
  이렇게 녹음에 전념하다 보니 그에게 가수라는 직업은 부업이었다. 영화녹음 작업 중 짬짬이 노래를 취입하였는데, 방송이나 무대에는 서지 않아 ‘얼굴 없는 가수’로 알려졌다. 이는 밀려드는 녹음작업으로 바쁘기도 했지만, 그의 아내가 남편 손인호의 가수 활동을 좋아하지 않아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노래 솜씨를 알아본 박시춘이 <나는 울었네>를 주어 가요계에 데뷔를 시켰다. 목소리가 아름답고, 섬세한 창법을 구사하는 그는 <함경도 사나이>, <울어라 기타줄아>, <하룻밤 풋사랑>, <한많은 대동강>, <비내리는 호남선> 등 히트곡을 양산하였다. 2000년에 해운대 해수욕장에 1절과 3절 가사를 적은 ‘해운대 엘레지’ 노래비가 세워졌다.
  
  이 노래를 만든 한산도와 백영호는 정두수와 박춘석과 함께 1960년대와 1970년대를 대표하는 콤비 작사·작곡가이다. 그들은 <여자의 일생>, <옥이 엄마>, <추억의 소야곡>, <빙점>, <애수> 등 한국대중가요 사상 빛나는 인기곡들을 합작하여 만들었다.
  
  
  <해운대 엘레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던 너와 내가 아니냐
  세월이 가고 너도 또 가고 나만 혼자 외로히
  그때 그 시절 그리운 시절 못잊어 내가 운다
  
  백사장에서 동백섬에서 속삭이던 그 말이
  오고 또 가는 바닷물 타고 들려오네 지금도
  이제는 다시 두번 또 다시 만날 길이 없다면
  못난 이별을 던져버리자 저 바다 멀리멀리
  
[ 2021-05-01, 08: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