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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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었다!
  (2005년 2월3일)
  
  나는 1945년10월24일에 일본 사이다마縣에서 났다. 그 이듬해 초에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일본에 대한 기억은 없다. 생전의 아버지로부터 "부산항에 내리는 순간 아차 내가 잘못 선택했구나"하고 후회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7년만에 밟은 조국의 무질서와 사람들의 거짓말과 귀국선 선창가로 몰려든 잡상인들의 아귀다툼을 보는 순간 절망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 뒤 18년이 지난 1963년에 우리 집안은 파라과이로 이민을 가기 위한 수속을 밟은 적이 있다. 가족이 사진관으로 가서 여권용 사진을 찍고 돌아온 날 나는 소풍 전야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파라과이가 南美에 있다는 것만 알 뿐이었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조국을 떠난다는 기대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다행히 이민 수속이 잘 되지 않아 나는 지금도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1970년대초의 어느 날 나는 신문기사를 읽다가 이상한 대목을 발견했다. 현대 조선소에서 20만t 유조선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2만t의 誤記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은 부산의 산복도로 위 고지대에 있었으므로 부산항을 내려다보다가 큰 배가 들어오면 저것은 몇t짜리일까 하고 궁금해 하곤 했었다. 그때는 남해호라는 1만t짜리 배가 한국에서는 가장 컸었다. 국민학교 사회 교과서에 세계의 큰 여객선들 순서가 적혀 있었다. 1등은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호로서 8만5000t인데 뭐 한국이 20만t짜리 배를 만든다고?
  다시 그 12년 뒤 나는 쿠웨이트에서 울산항까지 한 달에 걸쳐 동해2호라는 23만t 유조선을 타고 왔다. 쿠웨이트에서 만난 이 나라의 한 정부요인은 이런 농담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낙타를 탔다. 나는 자가용을 탄다. 내 아들은 아마도 자가용 비행기를 탈 것이다. 그러나 내 손자는 다시 낙타를 타야 할지 모른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月刊朝鮮이 '한국인의 성적표'라는 신년호 부록을 냈다. 해방둥이인 朱基萬(당시 현대건설 영종도 공항 건설소장)씨가 쓴 글의 제목이 "우리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였다. 이 책을 편집하다가 가슴이 찡했던 통계가 있었다. 연간 1인당 꽃소비량 랭킹에서 한국이 15위였다. 아시아 국가로서는 일본만이 한국보다 앞섰다. 다른 나라는 모두 歐美 선진국이었다.
  굶주림과 전란과 민중봉기와 쿠데타의 나라에서 우리도 이제 꽃을 들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긴 것이다. 정말 쓰레키통에서 장미꽃이 핀 것이다. 며칠 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세계 111개국의 삶의 질을 조사한 보고서를 냈다. 1등은 아일랜드, 영국은 29위, 한국이 30등이었다. 아시아에선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만이 한국보다 앞이었다.
  나와 같은 해방둥이들은 자랄 때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8.15 광복절 특집 때는 신문의 단골손님이었다. 무럭무럭 자라는 해방둥이들의 어깨에 조국의 운명이 걸렸다고 격려해주던 선배들이야말로 우리 민족사의 가장 위대한 세대였다.
  
  그분들은 건국-호국-근대화-민주화의 4단계를 60년만에 해치우고 자유통일을 넘어서 조국 선진화로 나아가는 국민국가 건설의 道程을 열었다. 이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우리 선배세대에게는 감사를, 우리 자신들의 성취에 대해서는 自祝을 해도 될 것 같다.
  
[ 2021-05-01, 17: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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