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브 몽땅’으로 불린 중저음(中低音)의 미남 가수…1960년 美 이민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47)검은 장갑(손석우 작사·작곡, 손시향 노래, 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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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소개로 만났든 사랑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남녀가 서로 만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른다. 특히 손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가슴만 설레는 연애 초기에는 좀더 깊은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많다. 그러나 대체로 여자들은 집에서 들어오기를 기대하는 귀가 시간이 있으므로 남자의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굿바이 하며 돌아서거나, 조금 더 진전되면 안녕하며 손을 내민다. 그렇게 갑자기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지만 남자의 마음 속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다. 아마도 그렇게 돌아서서 집으로 가는 여자의 마음에도 그런 아쉬운 심정은 남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연애하는 남녀의 미묘한 심리를 잘 표현한 손시향의 <검은 장갑>은 1958년 1월 KBS 악단장인 손석우가 KBS 신년 특집방송을 끝내고 방송국 전속가수들과 남산 KBS 맞은편 <산길다방>에서 환담을 나누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신년이 시작되는 첫날 창 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대중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그는 쓰레기 더미조차 미술의 소재가 되듯이 유행가의 가사는 아무 것이나 다 될 수 있다고 동석한 가수들에게 설파하였다. 그런 얘기에 너무 열을 올리다 그는 급기야 마침 옆에 있는 가수 김성옥이 낀 검은 장갑을 보고, 이것도 노래의 소재가 된다고 얘기하기에 이르렀다.
  
  대중가요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집에 돌아오자 그는 검은 장갑을 노래로 만들 수 있다고 지나치게 오버해서 얘기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책하며, 후회하였다. 그러다가 이왕 여러 사람들 앞에 장담한 것인데 검은 장갑을 소재로 노래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막상 오선지(五線紙)에 <검은 장갑>이라고 크게 써놓았지만 가사와 곡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아내 최재덕이 끓인 차를 가져와서 피아노 위에 놓으면서 작사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예상 외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어머! 당신. 우리 연애하던 시절을 노래로 만들려고 하는군요. 검은 장갑이라고 쓰인 걸 보니. 그렇죠?” 곧 이어서 그녀는 “그 겨울날 눈이 많이 내렸지요. 눈이 오는 날이면 꼭 나를 불러내고, 늦게까지 함께 있기를 바라고, 집 앞까지 바래다 줄 때도 헤어지기 싫어서 검을 장갑을 낀 내 손을 꼭 잡고서는 놓아주지를 않았죠.”(정두수, 노래 따라 삼천리,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2013년, p.160).
  
  이 얘기를 듣자마자 그동안 막혀있던 봇물이 터지듯 그는 <검은 장갑>을 일사천리로 작사하고, 작곡하였다. 중저음의 매혹적이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져 한때 ‘한국의 이브 몽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미남 가수 손시향이 이런 분위기를 잘 살린 노래를 불러 크게 히트하였다.
  
  본명이 손용호인 가수 손시향은 1938년 대구 출신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였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였으며, 그는 서울대 농대 재학 시절 KBS 노래경연대회에서 입상하면서 가수로 데뷔하였다. 1958년 작곡가 손석우를 만나 <검은 장갑>, <이별의 종착역>, <거리를 떠나>, <사랑이여 안녕>, <사랑의 자장가> 등을 부르며 그는 1950년대 말 최고의 인기가수로 활약하였다. 미남으로 소문난 그는 이런 가수로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 <비 오는 날의 오후>, <심야의 블루스>에 출연하였다. 그는 1960년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이민을 가서 현지에서 Lee Sohn이라는 이름으로 6개 국어로 된 앨범을 발표하는 등 가수 활동을 하였다.
  
  그의 경북고 동기인 신성일은 대학 입학을 위해 3수(三修) 중에 충무로를 걸어가다 그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일이 바쁜 손시향은 “오랜만이야” 하고 어깨를 툭 치면서 그냥 지나갔다. “인기 가수가 되어 손시향이 저렇게 으스대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오만한 태도에 신성일은 굉장히 섭섭하였다. 그러면서 신성일은 “너는 노래를 잘 불러서 가수가 되어 출세했구나. 그래 나는 노래를 못하니까 다른 걸로 성공하겠다”고 결심하여 마침내 한국을 빛낸 명배우로서 자리매김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이 노래를 만든 손석우는 1920년 전남 장흥 출신으로 목포상고를 졸업하였다. 그는 1948년 김해송의 KPK 악극단에 입단하여 활동하다 6.25 전쟁 중에는 미군 클럽에서 일하였다. 작사와 작곡의 1인 시대를 개막하며 KBS 악단장을 지낸 그는 1950년대 송민도와 안다성이 불러 히트한 라디오 방송극 주제가 1호인 <청실홍실>을 작곡하였고, 1960년대 초 동남아와 일본에서 인기를 끈 <노란 샤쓰의 사나이>로 요즘 인기를 끄는 K팝의 원형을 만든 분이다.
  
  그는 <꿈 속의 사랑>, <물새 우는 강 언덕>, <청춘고백>, <청춘 목장>, <눈이 내리는데>, <꿈은 사라지고>, <나는 가야지>, <나 하나의 사랑>, <이별의 종착역>, <십오야 밝은 달>, <노란 샤쓰의 사나이>,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내 사랑 쥬리안>, <우리 마을> 등 여러 히트 곡을 작곡하였다.
  
  <검은 장갑>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바이 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바이 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 2021-05-05, 03:0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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