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와 괴물은 다르다!
종말론적 재앙을 초래하는 奇人(기인) 이야기-반공자유-교양영어(44):eccentric과 weir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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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Che Guevara
  
  -A Modern Saint and Sinner
  -Why the Che myth is bad for left
  -The Economist October 13th-19th 2007
  
  * 해설:奇人 이야기: eccentric과 weirdo
  
  eccentric과 weirdo는 奇人(기인)으로 번역되지만 의미는 매우 상이하다. eccentric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하는 무해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weirdo는 사회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인물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eccentric은 자신의 기이한 생각이나 행동에 몰입되어 세상일에는 吾不關焉(오불관언)의 태도를 보이는 기인들이다. weirdo는 자신의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이며 기괴한 생각이나 사상을 타인에게 광적으로 강요하는 기인들이다.
  
  미국에 나이가 지긋한 어떤 부호가 있었다. 그는 빈곤한 가정 출신이었지만 텍사스에서 석유 채굴사업으로 거부가 되었었다. 그는 자선단체에 거금을 희사하고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난민구호에도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 선한 부자였다. 그런데도 그는 기이하게도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다윈의 진화론에 심취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자신은 원숭이의 자손이니까 원숭이처럼 사는 것이 참다운 삶이며 행복한 삶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 소유의 공원에 있는 巨木(거목) 위에 거처를 마련하고 원숭이처럼 나무 위에서 먹고 자면서 생활을 했다. 아무도 그를 나무에서 내려오게 할 수 없었고 그도 나무 위에서 살 것을 누구에게도 권하지도 않았다. 이런 기이한 사람을 eccentric이라고 한다.
  
  미국의 짐 존스(Jim Jones)는 광신적 공산주의자였지만 좌절감에 빠져있었다. 자유진영과 공산진영간의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50년대의 미국에서 공산주의는 잘 먹혀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에 침투하여 전도사가 되었다. 1954년에 인민사원(People's Temple)이라는 교회공동체를 창설하였다. 존스의 인민사원은 창의적이고 조직적인 전도활동을 통해 교세를 넓혀 나갔으며 전성기에는 L.A 시장이나 부통령 같은 저명인사들도 존스와 친분을 맺기도 하였다.
  
  존스는 예수는 사회주의 혁명가이며 예수의 사랑은 사회주의를 의미한다고 설교하였다. 그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어 가지는” 평등사회의 건설이 교회의 목적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본주의는 敵(적)그리스도의 제도라고 했다. 그는 성경을 백인들이 유색인종을 탄압하는데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라며 배척했다. 그는 전쟁으로 인류는 곧 멸망하게 될 것이지만 그를 따르는 選民(선민)들은 사회주의 에덴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세월이 가면서 이탈자들이 생기고 인민사원의 비리와 이념적 편향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관계당국의 조사가 시작되자 그는 1974년에 남미의 가이아나(Guyana)로 가서 존스타운(Jonestown)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신도들에게 자본주의의 사악함으로부터 해방된 '사회주의 천국'을 약속하면서 존스타운으로의 이주를 권장했다. 1978년까지 '천국'의 인구는 900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1978년 11월17일 인민사원의 비리를 조사 중이던 레오 라이언(Reo Ryan) 하원의원이 존스타운을 방문했다. 이때 다수의 신도들이 의원과 함께 귀국하기를 원하였다. 이들이 라이언 의원 일행과 함께 지역 공항에 도착하였을 때 인민사원 경비요원들이 총격을 가하여 라이언 의원을 포함하여 3명의 기자와 1명의 이탈 신도가 죽음을 당했다. 그날 저녁 교주 존스는 신도들에게 청산가리를 넣은 음료수를 마실 것을 명령했다. 존스는 부모들에게 아이들도 마시게 하라고 지시했다. 명령에 불응하는 신도는 사살했다. 이렇게 해서 어린이 276명을 포함하여 918명이 자살하거나 살해되었다. 존스는 전형적인 weirdo이다.
  
  영국의 자유주의 철학자 J.S. Mill은 어떤 사회의 기행의 양은 그 사회가 함유하고 있는 천재와 정신력과 도덕적 용기의 양과 비례해 왔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정치, 경제, 과학, 예술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관습과 여론의 독재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며 개성이 풍부한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다시 말해서 극도의 개인주의자인 eccentric이 많은 사회가, 더 많은 창조적 파괴를 가져오고 그 결과 발전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weirdo는 파멸적 재앙을 가져오는 사람들이다. 특히 이념적 weirdo가 권력을 장악하고 극도의 전체주의적 집단주의를 지향할 때는 종말론적 재앙을 초래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전형적인 weirdo들로서 지난 100여년 동안 1억 이상의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44-1-333
  
  The bearded face-eyes staring defiantly to infinity, the long wavy hair beneath the beret stirred by the Caribbean breeze-has become one of the world's most familiar images. Alberto Korda's photograph of Ernesto "Che" Guevara may be waved aloft by anti-globalisation protesters but it has spawned a global brand. It has adorned cigarettes, ice cream and a bikini, and is tattooed on the bodies of footballers.
  
  What explains the extraordinary appeal of Guevara, an Argentine who 40 years ago this week was captured and shot in Bolivia? Partly the consistency with which he followed his own injunction that "the duty of the revolutionary is to make the revolution". A frail asthmatic, he took up arms with Fidel Castro's guerrillas in Cuba's Sierra Maestra. After their victory, Guevara would fight again in the Congo as well as Bolivia. He fought dictators who were backed by the United States in the name of anti-communism when the cold war was at its hottest, and when Guevara's cry to create "two, three. . . many Vietnams" resonated on university campuses across the world. His renewed popularity in recent years owes much to a revival of anti-Americanism.
  
  But it is semiotics, more than politics, that leads teenagers ignorant of the Sierra Maesta to sport Che T-shirts. Korda's photograph established Guevara as a universal symbol of romantic rebellion. It helps, too, that he died young, at 39: as a member of the Cuban gerontocracy he would hardly have become the James Dean of world politics. A second picture, that of the bedraggled guerrilla's corpse, staring wide-eyed at the camera, provides another clue. It resembles Andrea Mantegna's portrait of the dead Christ. It fixes Guevara a modern saint, the man who risked his life twice in countries that were not his own before giving it in a third, and whose invocation of the "new man", driven by moral rather than material incentives, smacked of St Ignatius Loyola more than Marx.
  
  44. Che Guevara
  
  -현대의 성자이고 죄인
  -체 게바라 신화가 좌익에게 나쁜 이유
  
  그 수염이 있는 얼굴은―영원을 향해 반항하듯이 응시하는 눈길, 카리브 바다 산들바람에 휘날리는 베레모 밑의 물결 같은 머리털― 세계에서 가장 친숙한 이미지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세계화를 반대하는 시위자들에 의해 드높이 휘날리는 Ernesto 'Che' Guevara 의 사진(Alberto Korda가 촬영)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체 게바라의 사진은 담배와 아이스크림과 비키니 수영복을 장식하고 있고 축구선수의 몸에도 文身(문신)으로 그려져 있다.
  
  40년 전 이번 주에 볼리비아에서 사살된 아르헨티나人인 게바라의 특별한 매력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의 매력의 일부는 “혁명가의 의무는 혁명을 만드는 것”이라는 자신의 말을 일관성 있게 따랐다는 것이다. 몸이 허약한 천식환자였지만 그는 쿠바의 Sierra Maestra지역에서 Fidel Castro의 게릴라들과 함께 무기를 들고 봉기하였다. 쿠바에서 승리한 후에 게바라는 볼리비아뿐 아니라 아프리카 콩고에서도 싸웠다. 냉전이 최고조에 달하였을 때 그리고 “두 개의 베트남, 셋의 베트남…많은 베트남”을 만들자는 (그래서 베트남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는 미국을 골탕먹이자는) 그의 외침이 전 세계의 대학교 교정에서 울려 퍼지고 있을 때 미국이 反共(반공)의 이름으로 지원하는 독재자들과 싸웠다. 최근에 다시 살아난 게바라의 인기는 반미주의의 부활과 많은 연관이 있다.
  
  Sierra Maesta의 게릴라 봉기를 모르는 10대들을 체 게바라 티셔츠를 뽐내며 즐기도록 유인하는 것은 정치보다는 그의 극적인 생애 때문이다. Korda가 찍은 게바라의 사진은 게바라를 낭만적 반항의 보편적인 상징으로 만들었다. 게바라가 39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것도 그의 낭만적 반항아 이미지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서 쿠바의 늙은 정치인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면 그는 세계의 정치무대에서 젊어서 요절한 영화배우 제임스 딘같은 우상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빗물에 젖은 채 카메라를 향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며 죽어 누워있는 그의 두 번째 사진은 그의 인기에 대한 두 번째의 이유를 제공한다. 그 사진은 Andrea Mantegna가 그린 죽은 그리스도의 초상화를 닮았다. 그 사진은 게바라를 세 번째 나라에서 목숨을 바치기 전에 자신의 나라도 아닌 두 개의 나라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으로 부각시켜 현대의 성자로 자리잡게 하였고 물질적이 아닌 도덕적인 동기로 살아가는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부르짖는 그에게서 우리는 Marx보다는 St Ignatius Loyola의 모습을 보게 된다.
  
  44-2-334
  
  In Cuba, he is the patron saint: at school, every child must repeat each morning, "We will be like Che." His supposed relics are the object of official veneration. In 1997, when Cuba was reeling from the collapse of its Soviet ally, Mr Castro organised the excavation of Guevara's skeleton in Bolivia and its reburial in a mausoleum in Cuba. Except that in the tradition of medieval saints, it probably isn't his body at all, according to research by Bertrand de la Grange, a French journalist.
  
  A fighter against freedom and democracy
  
  The wider the cult spreads, the further it strays from the man. Rather than a Christian romantic, Guevara was ruthless and dogmatic Marxist, who stood not for liberation but for a new tyranny. In the Sierra Maestra, he shot those suspected of treachery; in victory, Mr Castro placed him in charge of the firing squads that executed "counter-revolutionaries"; as minister of industries, Guevara advocated expropriation down to the last farm and shop. His exhortation to guerrilla warfare, irrespective of political circumstance, lured thousands of idealistic Latin Americans to their deaths, helped to create brutal dictatorships and delayed the achievement of democracy.
  
  Sadly, Guevara's example is invoked not just by teenagers but by some Latin American governments. In Venezuela, Hugo Chavez wants to create the guevarista "new man", just when Cuba is having second thoughts. As Jorge Castaneda, one of Guevara's biographers, notes, Che's lingering influence has retarded the emergence of a modern, democratic left in parts of Latin America. Sadly, most of those who buy the T-shirts neither know nor care.
  
  게바라는 쿠바의 수호 성자이다. 학교에서 모든 아이들은 “우리는 게바라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는 구호를 아침마다 반복 제창한다. 그의 유품은 공식적 숭배의 대상이다. 1997년 쿠바가 동맹국 소련의 멸망으로 휘청거리고 있을 때도 Castro대통령은 볼리비아에 묻혀 있는 게바라의 유골을 발굴하여 쿠바에 있는 靈廟(영묘)로 이장하였다. 프랑스 기자 Bertrand de la Grange의 조사에 의하면 중세 유럽의 성자의 매장처럼 이장된 그 유골은 게바라의 것이 전혀 아닐지도 모르지만.
  
  자유와 민주주의에 반대하였던 투사
  
  어떤 사람에 대한 종교적 숭배가 확산될수록 그 숭배 받는 인물은 그 사람의 본래의 모습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되는 법이다. 게바라는 기독교적 낭만주의자보다는 무자비하고 독단적인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자유가 아닌 새로운 독재를 위해서 싸웠다. Sierra Maestra에서 그는 배신자로 의심되는 대원들을 사살하였다. 공산혁명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Castro는 게바라를 반혁명분자를 처형하는 총살대를 지휘하도록 하였다. 산업부 장관이 되었을 때 게바라는 모든 농장과 모든 가게까지도 몰수하는 것을 옹호하였다. 그가 독려한 게릴라 전투는 해당 국가의 정치적 상황과는 전혀 관계없이 라틴아메리카의 수많은 이상주의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으며 잔인한 독재정부의 수립을 도와주었고 민주주의의 성취를 지연시켰다.
  
  애석하게도 게바라의 典型(전형)은 10대 청소년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일부 정부까지도 그를 본받도록 부추기고 있다. Venezuela의 Hugo Chavez 대통령은 쿠바가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데도 게바라의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기를 원한다. 게바라의 전기작가인 Jorge Castaneda가 말하듯이 게바라의 사라지지 않는 영향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현대적이고 민주적인 좌파(사회민주주의)의 출현이 지연되어 왔다. 슬프게도 게바라 티셔츠를 구입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를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 2021-05-05, 09: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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