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聖歌) 스타일 가사 '끝도 시작도 없이~'에 인기 폭발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48)사랑의 미로(지명길 작사, 김희갑 작곡, 최진희 노래, 1984년)

김장실(前 국회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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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노래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시대정신을 담은 작사와 대중들의 감성을 이끄는 작곡, 그리고 이런 정서를 살리는 가수의 노래라는 3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그래서 뛰어난 작사가와 작곡가가 가사와 곡을 잘 만들어도 부르는 가수와 시절인연이 맞지 않으면 히트하지 못한다.
  
  우리 대중가요계에서 히트제조기로 알려진 김희갑 작곡가가 마음먹고 작사까지 하여 자신의 처남 태원에게 주어 취입시킨 <너의 사랑>이라는 노래도 어찌된 셈인지 대중들의 반응이 시원찮았다. 그러자 김희갑이 이끌었던 ‘한울타리’라는 밴드의 보컬로 있던 최진희가 그에게 그 노래를 자신이 부르고 싶다고 얘기하였다. 최진희의 이런 요청을 받고 김희갑 작곡가는 이 노래의 제목과 가사를 바꾸기로 하였다. 그는 지명길 작사가에게 노래시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 노래의 작사를 부탁받을 당시 지명길 작사가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선정이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에 귀의하였다. 그의 딸 선정이는 친구를 따라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 성격이 활달해지고, 학교 성적도 올라갔다. 또한 교회 다녀온 이후 선정이가 불러준 성가(聖歌)가 은혜로운 감성을 불러일으키며 가슴에 크게 와 닿았다. 이런저런 일로 그는 기독교 신앙에 큰 경외심을 가지고 사랑에 대한 영적(靈的)인 감화를 받으면서 참사랑의 의미를 몸소 느끼고 있었다.
  
  사실 그 이전까지 그는 주로 인생사의 비련을 주조로 한 애절한 감상조의 가사를 주로 작사했지만 기독교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신앙의 의미를 되새기는 가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그는 작곡가 김희갑을 만나면서 멜로디가 주는 정겨움에 점점 빠져들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는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에 대한 인간의 숭고한 의지를 다지는 가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노래 제목을 <사랑의 미로>라고 붙였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노래를 가수 최진희가 불렀는데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985년 12월18일 KBS <가요 톱 10>라는 프로그램에서 <사랑의 미로>는 연속 5주 1위가 되어 골든컵을 받았다. 이어서 최진희는 1985년 연말 KBS 10대 가수상을 받았다. 좋은 노랫말과 멜로디, 그리고 뛰어난 가창이 합을 이루어 만들어진 이 노래는 모두 20만 장의 레코드를 판매하며, 최진희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노래가 인기를 얻자 1986년 김시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동명(同名)의 멜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더구나 이 노래는 남북한 모두 인기를 얻는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2000년 북한 동향을 늘 체크하는 국정원의 발표에 따르면 이 노래는 북한에서도 크게 유행하여 북한의 관련부서가 발간한 <외국 민요집>에 수록되어 있으며, <우리 수령님 모습>이라는 개사곡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특히,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일이 이 노래를 제일 좋아했다고 하며, 이런 이유로 1991년 방한(訪韓)한 북한 총리 연형묵이 가수 최진희를 만나고 싶어 했다고 한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최진희는 1957년 전북 익산 출신으로 전주 영생고를 졸업하였다. 그녀는 친구 오디션을 따라 갔다가 합격하여 여성 보컬그룹 <양떼들>, 그룹사운드 <조커스>의 멤버로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나이트 클럽에서 팝송을 불렀다고 한다. 1983년 김희갑악단의 객원싱어가 되어 베이스 주자인 허영래와 듀엣으로 당시 인기 탤런트 노주현과 정윤희가 주연한 <그대는 나의 인생>을 불러 방송횟수 1위를 차지하였다. 이 노래가 인기를 끌자 부랴부랴 음반을 제작하면서 <한울타리> 그룹을 만들었다고 한다. 1984년 솔로로 전향하면서 <사랑의 미로>를 발표하면서 인기를 끈 그녀는 <우리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재회>, <꼬마인형>, <천상재회>, <여정>, <아니면 어떡하니> 등을 발표하였다.
  
  작사가 지명길은 1943년생으로 1960년대 신세기레코드사 전속작사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사랑의 미로>, <어린 시절>, <춤을 추어요>, <축제의 노래>, <파란 나라>, <사랑의 굴레>, <한 송이 꿈> 등을 작사하였다.
  
  작곡가 김희갑은 1936년 평양 태생으로 월남 이후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미8군 무대에서 기타를 연주하면서 가요계에 본격 진출하였다. 그 이후 남진 등 인기가수 노래의 연주와 편곡작업을 하다 정식 작곡가로 전향하였다. 그는 <그 겨울의 찻집>, <킬로만자로의 표범>, <향수>, <서울 서울 서울>, <그대는 나의 인생>, <진정 난 몰랐네>, <우리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바닷가의 추억>, <봄비>, <눈동자>, <지금도 마로니에는>, <그 사람은 이름은 잊었지만>, <립스틱 짙게 바르고> 등 수많은 인기곡을 작곡하였다.
  
  <사랑의 미로>
  그토록 다짐을 하건만 사랑은 할 수 없어요
  사랑으로 눈먼 가슴은 진실 하나에 울지요
  그대 작은 가슴에 심어준 사랑이여
  상처를 주지 마오 영원히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사랑의 미로여
  
  흐르는 눈물은 있어도 가슴은 젖어 내리고
  두려움에 떨리는 것은 사랑의 기쁨인가요
  그대 작은 가슴에 심어준 사랑이여
  상처를 주지 마오 영원히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사랑의 미로여
  
  때로는 쓰라린 이별도 쓸쓸히 맞이하면서
  그리움만 태우는 것이 사랑의 진실인가요
  그대 작은 가슴에 심어준 사랑이여
  상처를 주지 마오 영원히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사랑의 미로여
  
  
  
  
  
[ 2021-05-06, 00: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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