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교회·종이교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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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이학년 겨울이었다. 안암동의 가난한 산동네 판자 집에 살던 같은 또래의 친구가 있었다. 아직 어렸던 그 친구는 미국에서 온 여자친구의 편지와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그 아이와 결혼해서 장차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 그 친구가 반장을 할 때 그 여자아이는 부반장이었다고 했다. 그 무렵 나는 불량학생이었다. 혼자 담배도 배우기 시작했고 싸움도 하고 다녔다. 공부는 아예 손을 놓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를 더러운 구정물이 흐르는 안암천변 교회 앞에서 만났다.
  
  “내가 예배를 보고 나올 테니까 그동안 밖에서 기다려.”
  친구가 그렇게 말하고는 교회의 낮은 담장 사이에 있는 청녹색 페인트 칠이 되어 있는 교회의 작은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교회에 들어가 있는 동안 나는 멀뚱하게 교회 밖의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다. 아담한 벽돌 건물의 교회 창문에서 따뜻해 보이는 불빛이 새어 나왔다. 따뜻한 정이 오가는 천국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까닭모르게 나는 그들 사이에 낄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나와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었다.
  
  먼 훗날 어른이 된 후 그 친구에게 그날 왜 나를 교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않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 친구는 나를 데리고 함께 예배를 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내가 응하지 않았다고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친구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너는 안 믿을 사람 같아 보여서 아예 얘기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십대 말에 믿지 않던 하나님에게 고시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정말 간절하게 기도한 적이 있었다. 합격만 시켜 주시면 교회에 나가겠다고 마음 속으로 하나님에게 약속했다.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 같았다. 그해 고시에 합격이 됐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우연히 웅장한 붉은 벽돌 건물인 천주교회 앞으로 먼저 가게 됐다. 나의 관념 속에는 천주교회와 개신교회의 구별이 없었다. 교회 문에 체인이 둘둘 감겨져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그 다음은 여의도에 있다는 대형교회로 갔었다. 강단 위에 있는 남자가 “감기 귀신은 물러가라” 하고 고함치며 허공에 있는 누구와 대판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통성기도를 한다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울부짖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미친 사람들 같았다.
  
  그렇게 하다가 조용한 교회 하나를 발견했다. 그 교회의 제일 뒷좌석에 스며들 듯이 들어가 예배를 보기 시작했다. 삶의 진리에 도가 통한 듯한 목사의 명설교를 이십 년 정도 들었다. 교회 안에 진입을 했는데도 나는 중학시절처럼 그들과 나는 다른 것 같은 이질감이 들었다. 나는 그들과 어울릴 자격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배가 끝나면 문 앞에 서서 배웅을 하는 노(老)목사와 이십 년 동안 악수 한 번 하지 않았다. 내가 교만해서가 아니라 악수할 자격도 없는 것 같은 위축감이 항상 내면에 있었다. 교회 안에서 신도들끼리 패가 나뉘어 싸움이 벌어진 것 같았다. 세상의 질시와 싸움이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반복이 되고 있었다. 나는 교회를 조용히 나왔다.
  
  나는 다른 교회로 갔다. 이번에는 소모임에도 가입하고 신도들과 적극적으로 교제를 했다. 교회의 화장실 청소도 자청하고 예배 후 밥을 먹은 신도들이 두고 간 그릇들의 설거지도 했다. 참여하는 데서 오는 기쁨도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노인이 됐다. 인간사회의 일부인 교회에서도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노인들은 조용히 한 구석에 물러나 앉아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사회생활에서 은퇴라는 것이 있듯이 교회에서도 머릿수만 채워 주기보다는 적당히 사라져 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교회 건물 안에만 그 분은 살고 계시지 않았다. 성경은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성령으로 있다고 하면서 우리 인간의 몸 자체가 성전이라고 했다. 마음교회인 것이다. 벌처럼 둥지에 모여 와글거리는 성향도 있고 나비처럼 혼자 날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성향도 있다. 늙은 나는 혼자 골방에 앉아 매일 성경을 읽는다. 하얀 종이 위에 검게 인쇄된 그 책 한 권이 나의 교회라는 생각이다.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께 올리는 감사기도가 나의 헌금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마음교회 종이교회도 괜찮지 않을까.
  
[ 2021-05-07, 19: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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