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발 0시 50분>으로도 불린 곡(曲)…조용필 리메이크가 최고 인기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49)대전 블루스(최치수 작사, 김부해 작곡, 안정해 노래, 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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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블루스>가 나온 1956년 즈음에는 6·25 전쟁으로 황폐화된 나라의 전후(戰後) 복구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잃고, 죽거나 다친 극한적 상황을 경험한 뒤라 삶의 무상함에 빠진 일부 사람들은 찰나적 쾌락에 탐닉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이런 문화적 환경 속에서 맘보, 블루스 등 서구에서 온 춤바람이 크게 불어, 1954년 이를 소재로 서울신문에서 연재한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이 인기를 끌었고, 곧 이어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또한 해군 대위를 사칭하고 카바레를 돌면서 수많은 여인들을 농락한 박인수 사건이 터져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 당시 직장 등을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차츰 많아지자 가요계는 항구와 역 등에서의 이별을 주요 소재로 하여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손인호의 <비 내리는 호남선>, 윤일로의 <항구의 사랑> 등이 나와 인기를 끌었다.
  
  1950년대에는 저녁에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0시 50분에 대전역에 도착하는 열차가 있었다. 이 역에 10분 간 정차하면 대전역 구내에서 파는 가락국수를 먹기 위해 내린 탑승객들과 이곳에서 새롭게 타려는 사람들로 대전역 구내는 상당히 북적거렸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가운데 열차 승무원 최치수는 대합실 청소를 끝내고 눈을 들어 밖을 보다 플랫폼에서 애절하게 서로 바라보던 청춘남녀를 우연히 보았다. 조금 있다 목포행 기차가 대전역으로 들어오자 남자는 그 열차에 탔고, 눈물을 흘리며 그 남자를 배웅하던 여인은 비를 맞으며 오랫동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처럼 남녀 간의 가슴 찡한 기차역에서의 이별 장면을 보고 진한 감동을 받은 최치수는 14년간의 열차 승무원 생활을 청산하고, 가요계에 입문하여 이 광경을 바탕으로 작사를 하였다. 당초 이 노래의 제목은 열차의 출발시간에서 따와 <대전발 영시 오십분>으로 하였다. 그런 후에 최치수는 유명한 작사가 손로원을 만나 이 노래의 작사가 제대로 되었는지를 검토해달라고 부탁하여 그로부터 합격 판정을 받았다. 완성된 가사를 본 작곡가 김부해는 노래 제목을 <대전 블루스>로 고쳐서 3시간 만에 대전역에서의 이별의 정한(情恨)을 나타내는 블루스 리듬의 곡을 완성하였다.
  
  1959년 신세기레코드사에서는 이런 블루스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문이 난 안정애에게 곡을 주어 취입하였다. 이 노래는 발매 3일 만에 주문이 쇄도하며, 야간작업을 하는 등 창사(創社) 이래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이렇게 레코드가 많이 팔리자 회사에서 작사가, 작곡가, 가수에게 특별보너스를 지급하였다.
  
  이 노래를 소재로 하여 1963년 이종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최무룡, 엄앵란, 신성일 등 당대 인기 배우들이 열연한 영화 <대전발 0시 50분>이 개봉되었다. 이 영화의 주제가는 역시 안정애가 불렀다. 1999년 우송대에서 한국 철도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대전역 광장에 <대전 블루스> 노래비가 세워졌는데, 작사가와 작곡가의 이름은 들어 있는데 이 노래를 부른 가수의 이름은 빠져있어 다들 그 이유가 궁금해 하였다. 이 노래비는 2016년 4월에 철거되었다.
  
  한편 심수봉, 김부자, 문주란, 조미미, 나훈아, 조용필 등 많은 후배가수들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였다. 그런데 1980년대 비감(悲感) 어린 이별장면을 목소리로 재현한 조용필의 노래가 가장 크게 히트하였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안정애는 1936년 경남 하동 출신이다. 그녀는 <대전 블루스>, <밤비의 블루스>, <순정의 블루스>, <도라지 블루스>, <황혼의 블루스>, <베니스의 애가>, <길은 멀어도>, <짝사랑>, <춤바람 차차차>, <그대의 탱고> 등을 불렀다.
  
  작사가 최치수는 경남 울산 출생으로 열차승무원으로 14년을 근무하였다. 그 후 가요계로 전신하여 신신레코드 영업부장, 아세아레코드 대표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생일 없는 소년>, <대전 부루스>, <용두산 엘레지> 등 히트곡을 작사하였다.
  
  김부해 작곡가는 1918년 서울 태생이다. 1940년대 연주자로 데뷔하였고, 해방 후 악극 무대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대전 블루스>, <항구의 사랑>, <댄서의 순정> 등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만들었다.
  
  <대전 블루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기적소리 슬피우는 눈물의 풀래트홈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발 영시 오십분
  영원히 변치말자 맹세했건만
  눈물로 헤어지는 쓰린 심정
  아~ 보슬비에 젖어가는 목포행 완행열차
  
  
[ 2021-05-08, 04: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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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의메아리     2021-05-08 오후 12:34
김장실 전의원님 흘러간노래와 노래를 지금 이 암울한시기에 가요이야기 올려도 너무올는거아니오 구굴에서도 엄청 올리든데 그 무슨 꿍꿍이가 잇는게이니요 이 암울한시기에 이 현실에서 하루속히 탈출을 시도해야되는데 트롯트 노래이야기는 87세를 살아가는 이사람도 즐겨 듣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이 암울한 세태에 트롯트 노애만 심취해서 되겠는가 국회의원까지 하신분이 겨우 트롯트 노래이야기 밖에 할이야기가 그리도 없웁니가 현실과 앞날의 국가이야기도 해주세요 머지않은 훗날 당신도 욕먹는일 피할수없을꺼요 요지음에는 트롯트도 모자라 한켠에선 흉칙한 성애이야기도 내보네데요 김의원님 자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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