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저 노래를 제가 부르면 안되겠습니까?”…“안 될 것이 뭐 있나”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54)바보처럼 울었다(한산도 작사·작곡, 진송남 노래, 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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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했다. 어쩌면 긴 고난과 짧은 기쁨이 교직(交直)하는 우리 인간들의 삶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정말 옳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불교 경전인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 보면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육신을 가진 존재가 겪는 보편적인 고통이다. 여기에다 네 가지 정신적인 고통이 또 따른다. 즉,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애별리고, 愛別離苦)와 미워하는 사람과의 만나는 고통(원증회고, 怨憎會苦)은 엄청나게 크다. 이와 함께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구불득고, 求不得苦)에다 치성한 오음의 활동 그 자체가 괴로움(오음성고, 五陰成苦)의 원천이 된다. 이른바 위에서 예시했던 여덟 가지 고통이 인간의 괴로움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그런 여러 가지 고통 중에서 1967년 가수 진송남이 불러 히트했던 <바보처럼 울었다>는 바로 우리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애별리고의 전형적인 노래이다.
  
  가수 진송남은 1943년 일본에서 태어나 세 살 때부터 부산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중학교 다닐 때 극장 쇼를 보러 갔다가 당시 인기가수인 최갑석의 <마도로스 순정>을 듣고 자신의 손목에 ‘가수’라는 문신을 새길 정도로 그 직업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1962년 부산 MBC 전속가수로 가요계에 입문하였다. 1963년 부산 MBC를 방문한 백영호 작곡가가 그에게 “서울로 가자”고 권유하여 상경(上京)하였다. 1965년 그는 <유랑 항구>, <사나이 엘레지>를 발표하였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라는 영화 주제가를 불러 히트시켰다. 그는 1966년 정두수 작사, 한산도 작곡의 <덕수궁 돌담길>을 발표하여 인기 가수로 부상(浮上)하였으며, 이 노래로 인해 덕수궁 돌담길이 청춘남녀의 데이트 코스로 떠올랐다.
  
  1967년 어느 날 아침 그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작사가이자 작곡가인 한산도 집에 갔는데, 한산도는 가수 이미자에게 주려고 밤새 작곡을 했다며 그에게 악보를 보여주었다. 이를 본 순간 ‘그렇게 그렇게’로 시작하는 가사와 이를 뒷받침하는 곡이 너무 마음에 들어 온 종일 한산도의 집에 있으면서 그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 곡을 달라고 어떻게 얘기를 하나 하고 궁리를 하였다. 저녁이 되자 그는 용기를 내어 “형님, 저 노래를 제가 부르면 안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한산도는 “안 될 것이 뭐 있나” 하면서 그에게 곡을 주었다. 마침내 이 곡을 진송남이 구성지게 불러 대중들의 인기를 많이 얻었다.
  
  그러다가 진송남은 해병대 연예대에 근무하면서 군 입대할 때 약속대로 군복을 입은 상태에서 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방송에 출연하였다. 그러나 군 당국은 당초의 약속과는 반대로 그를 군무이탈과 영리행위를 하여 복무규정을 어겼다며, 이를 언론에 발표하였다. 이와 함께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가슴 아프게>를 부른 남진과 <가을의 연인>을 노래한 태원 및 박일남 등을 벌칙을 받는 대신 강제로 월남에 파병하였다. 갑자기 월남으로 가는 배에 오른 그들은 같이 가는 동료 군인들을 위해 부산 제3부두에 정박한 파병선(派兵船) 위에서 위문공연을 했다고 한다.
  
  그는 군 제대 후 <오! 님아>, <옛동산>, <고향처녀>, <시오리 솔밭길> 등을 불러 인기를 얻었다. 또한 그는 1990년 부인 한인식과 함께 듀엣으로 <나란히 걸읍시다>라는 곡을 발표하였다.
  
  <바보처럼 울었다>를 작사·작곡한 한산도는 1931년생으로 본명이 한철웅이다. 그는 한종명이란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하며 <하와이안 코리안송>, <천리여정> 등을 발표하였으나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후 작곡가 백영호와 콤비를 이루어 <추억의 소야곡>, <해운대 엘레지>, <동백아가씨>, <동숙의 노래> 등 한국가요에서 아주 빛나는 히트곡을 작사하여 그의 이름을 크게 알렸다. 또한 <덕수궁 돌담길>, <바보처럼 울었다>, <아카시아 필 무렵>, <다대포 처녀> 등을 작곡하여 음악에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이며 한국 대중가요를 풍성하게 하였다.
  
  <바보처럼 울었다>
  
  그렇게 그렇게 사랑을 하면서도
  어이해 어이해 말 한마디 못한 채
  바보처럼 바보처럼 그 님을 잃어버리고
  고까짓것 해보건만 아무래도 못 잊어
  아무래도 못 잊어서 바보처럼 울었다
  목을 놓아 울었다
  
  차라리 차라리 생각을 말자 해도
  너무나 너무나 사랑했던 까닭에
  바보처럼 바보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해
  수소문을 해보건만 찾을 길이 막연해
  찾을 길이 막연해서 바보처럼 울었다
  소리치며 울었다
  
  
  
[ 2021-05-13, 05:0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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