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치마’를 소재로 한 사모곡(思母曲)…詩人 100명 선정 애창곡 1위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60)봄날은 간다(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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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손로원은 6·25 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용두산공원 근처에 살고 있었다. 그는 광복동 초원다방, 자갈치 시장 등에서 한복남 등 가요계 인사와 교류하며 전쟁의 고통을 견디어 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가라고 칭해질 만큼 미술에 소질이 있던 그는 부산시 영도구 태종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한 프랑스 장교가 이 광경을 보고 자신의 어머님 사진을 보여주며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하였다. 며칠 후에 프랑스 군 막사에서 손로원이 그린 그림을 본 그 장교는 많은 돈을 주려 했으나 그는 완강히 거절하였다. 마침내 그는 초상화의 사례비로 제조된 지 100년이 넘는 루이13세라는 고급술을 받아왔다. 술을 좋아하던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당시 보통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이런 고급술을 가지고 있음을 자랑하였다.
  
  한편 방랑벽이 있는 그는 일찍 돌아간 아버지 대신에 홀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의 임종(臨終)을 보지 못한 것을 늘 아쉬워했다고 한다. 살아 있을 때 그를 만나면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장가 갈 때 자신이 열아홉 살 시집 올 때 입었던 연분홍 치마와 흰 저고리를 장롱 속에서 꺼내어 입겠다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연 때문에 그는 이 옷을 입고 수줍게 웃고 있는 젊은 날 어머님의 사진을 벽에 걸어두고 몹시 아꼈다고 한다.
  
  1952년 가을 예기치 못한 화재로 그가 살던 집은 물론 연분홍 치마를 입은 어머니 사진과 값비싼 루이 13세 술 등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들이 한꺼번에 다 소실(燒失)되었다. 이런 일을 계기로 그는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작사하였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한 불효자가 부르는 일종의 사모곡이다.
  
  산제비, 성황당, 앙가슴, 연분홍 치마 등 토속적인 용어들이 능숙하게 구사된 손로원의 아름다운 가사를 작곡가 박시춘은 유장(悠長)한 선율로 빚어내었다. 이 곡을 가수 백설희는 체념하는 듯 담담하게 불러 전쟁과 대중적 빈곤 등 인생의 가시밭길을 걸으며 한 많은 삶을 살아가는 한국의 대중들을 감동시켰다. 1953년 유니버설레코드사에서 발매된 이 음반은 크게 히트하였다.
  
  2004년 시(詩) 전문 문예계간지 <시인세계>가 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애창곡을 조사하였는데 <봄날은 간다>가 거의 모든 연령층에서 1등을 하였다. 또한 사라진 청춘과 삶에 대한 수많은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이 노래의 제목에 심취한 시인들은 ‘봄날은 간다’라는 제목의 시를 20명이 넘게 지었다. 특히 시집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창작과 비평사)를 발간하여 미당 문학상과 김달진 문학상을 받은 문인수 시인은 ‘노인들을 위한 봄날’을 노래하고 싶어 손로원이 지은 기존 가사 3절을 잇는 4절을 지어 <봄날은 간다>와 관련된 화제를 또 다시 불러 일으켰다.
  
  문인수 시인이 지은 <봄날은 간다> 4절
  
  밤 깊은 시간엔 창을 열고 하염없더라
  오늘도 저 혼자 기운 달아
  기러기 앞서가는 만리 꿈길에
  너를 만나 기뻐 웃고 너를 잃고 슬피 울던
  등 굽은 그 적막에 봄날은 간다
  
  나온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이 노래를 아직도 한국인들은 좋아하고 있다. 그러기에 백설희가 부른 원곡 외에도 조용필, 한영애, 장사익 등 많은 후배가수들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였다. 2001년 가수 김윤아는 같은 제목이나 가사와 곡조가 다른 노래를 발표하여 인기를 끌었다.
  
  이 노래를 지은 작사가 손로원은 해방 이후 한국 대중가요계를 대표하는 작사가이다. 그는 <귀국선>, <백마강>, <비 내리는 호남선>, <한강>, <물레방아 도는 내력>, <고향의 그림자>, <경상도 아가씨> 등 3000여 곡을 작사하였다. 이 중에서 <인도의 향불>, <홍콩 아가씨>, <페르샤 왕자>, <샌프란시스코> 등 해방 이후 물밀 듯이 들어오는 서양문물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반영하는 이국풍의 노래를 작사하였다.
  
  작곡가 박시춘은 경남 밀양 출신으로 일제 시기와 해방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대중음악 작곡가이다. <애수의 소야곡>, <울어라 기타줄아>, <신라의 달밤>,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등 3000여 곡을 작곡하였다.
  
  가수 백설희는 1927년 서울 출신으로 본명이 김희숙이다. 그녀는 <봄날은 간다>,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샌프란시스코>, <물새 우는 강 언덕>, <가는 봄 오는 봄>, <딸 칠형제> 등을 불러 인기를 얻었다. 그녀는 배우 황해와 결혼하였으며, 가수 전영록이 그들의 아들이다.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꽃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딸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 2021-05-20, 04: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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