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펑펑 내리는 임진각 망향제(望鄕祭)에서 탄생한 실향민 애창곡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61)고향무정(김운하 작사, 서영은 작곡, 오기택 노래, 1966년)

김장실(前 국회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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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말까지 한국의 보통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고향의 사방 백리를 거의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합일합방으로 나라가 망하자 많은 한국인들은 독립운동을 하거나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해방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돌아왔지만 일본이나 만주 등에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귀환동포 중에도 고향으로 가지 않고 아예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6·25 전쟁이 터지자 전란을 피하기 위해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북한에 고향을 둔 분들 중에 남한으로 온 분들은 한 많은 휴전선 때문에 고향으로 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찾아 도시로 갔다. 더구나 60년대 중반 이후 극심하게 닥쳤던 한발(旱魃), 홍수 등으로 굶주림에 시달린 많은 남부지방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다. 폭풍이 몰아치듯 격동의 세월을 지낸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이렇게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사는 것이 일상사가 되었다.
  
  함북 웅기에서 태어난 작사가 김운하(본명 김득봉)는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한 이후 고향에서 친구 김승철의 아버지 김민규(전 숭실전문대 교수)가 하는 정어리공장의 감독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어업을 하던 김 교수는 두만강 하류에서 고깃배를 같이 타면서 조선을 식민지배하고 있는 일본이 곧 패망하고, 이를 대신하여 소련이 한반도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할 것임을 예언하였다. 그의 예측대로 1945년 8월 북한에 진입한 소련군은 약탈, 강간, 체포, 처형, 유배 등의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특히, 웅기 부근에 있는 경흥·아오지 탄광에는 강제로 끌려온 북한 사람들로 넘쳐났다.
  
  미소(美蘇) 양국의 합의로 38도선이 그어지자 김운하 교수는 자신의 아들 김승철과 아들의 절친인 김운하에게 월남을 권유하였다. 이에 따라 그들은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월남에 성공하였고, 남한에 정착한 김운하는 작사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1966년 설날 눈이 펑펑 내리는 임진각에서 많은 이북5도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망향제(望鄕祭)가 열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운하 작사가는 그에게 월남을 권유했던 친구 아버지 김민규 교수를 다시 생각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담은 <고향무정>을 작사하였고, 작곡가 서영은은 이 가사의 뜻을 제대로 살린 곡을 오기택이 불렀다.
  
  1966년 3월 신세기레코드사에서 오기택, 서영춘, 최숙자 등 6명의 남녀 가수가 각각 2곡씩 총 12곡을 수록한 음반을 발매하였다. 신세기레코드사는 오기택이 부른 <고향무정>의 히트 가능성을 낮게 보고, B면에 배치하였다. 처음에는 대중의 반응이 별로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그가 부른 <고향무정>이 방송국 청취자 프로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되자 회사 측은 서둘러서 구수한 목소리로 고향의 정(情)을 잘 표현한 오기택의 <고향무정>을 A면에 올려서 다시 내어놓았다. 이미 인기를 타기 시작한 이 노래는 오기택이 불러 히트를 했던 <영등포의 밤>을 능가하였다. 오기택에 의하면 라디오를 틀면 나올 정도로 몹시 자주 방송되는 것은 물론이고, 전파사나 레코드 가게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이 노래가 나왔다고 한다.
  
  산업화가 본격 시작된 이후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 노래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이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분단 때문에 다시는 갈 수 없는 고향을 생각하며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한마디로 <고향무정>은 실향민의 애창곡이 되었다. 이 노래의 인기에 힘입어 1968년 박종호 감독이 연출하고, 당대 인기배우인 문희와 인기가수 남진이 주연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 노래로 인기를 구가하던 오기택은 영화배우 신영균이 운영하던 서울 명동 신스볼링장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방송에 나가는 것을 등한시하였다. 그러던 차에 MBC <정오의 노래>라는 프로에서 그의 <고향무정>을 튼 다음 ‘오기택이 노름에 미쳐 워커힐 카지노에 산다’고 말하였다. 분개한 오기택은 담당 PD 정모씨를 멱살잡이를 하는 등 난리를 피워 서울의 모든 방송국에서 그의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는 잠시 가수 활동을 중단하였다.
  
  작사가 김운하는 함북 웅기 출신으로 일본 명치대 문학부를 졸업하였다. <항구의 청춘시>, <물새야 왜 우느냐>, <임이라 부르리까> 등 인기곡을 작사하였다.
  
  작곡가 서영은은 1926년 전북 임실 태생으로 동생 서영춘, 서영수, 서영환이 코미디언 및 배우인 연예인 집안 출신이다. 1943년 연악원(硏樂院)에서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했으며, 해방 후 무궁화 악극단에서 연주자 등으로 활동하다 악극의 노래와 춤의 배경음악을 작곡하였다. 부산 피난시절에는 백조가극단 단장, 경찰악극대 색소폰 주자로 있다 ‘서영은과 그 악단’을 조직하였다. 1963년 동아방송국 전속 악장(樂長)이 된 그는 <고향무정>, <뜨거운 안녕>. <충청도 아줌마>, <이별의 풀렛폼>, <노신사> 등 대중가요와 <부모>, <산유화> 등 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
  
  가수 오기택은 1943년 전남 해남 출신으로 성동공고를 졸업하였다. 그는 1963년 <영등포의 밤>으로 데뷔를 한 이후 <우중의 여인>, <등대지기>, <마도로스 박>, <충청도 아줌마>, <아빠의 청춘>, <고향무정> 등을 불러 히트시켰다. 2012년 영등포타임스퀘어 문화광장에 그의 노래 <영등포의 밤> 노래비가 세워졌다.
  
  <고향무정>
  
  구름도 울고넘는 울고넘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 있네
  
  새들도 집을 찾는 집을 찾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바다에는 배만 떠있고 어부들 노래소리
  멎은 지 오래일세
  
  
  
  
  
  
[ 2021-05-22, 05:3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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