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大家 소크라테스
반공자유-교양영어 (48): Socr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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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Socrates: 질문의 大家

 

Socrates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의 황금시대에 살았었다. 그는 청년이었을 때 오늘날 “Socrates 이전 철학자들”이라고 불리는 당대 철학자들의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당대 철학의 공리공론적인 경향에 반기를 들고 우리의 행동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식을 탐구하였다.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것은 우리의 삶과 우리의 행동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느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 선인가? 무엇이 옳은 것인가? 무엇이 정의인가?”이며 우리가 그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의 양태에 심오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Socrates는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어떤 사람도 해답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Delphi의 신탁이 그가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선언하였을 때, 그는 이것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그만이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때는 인간 세상사에 관해서 확실한 근거에 바탕을 둔 지식 같은 그런 지식 또한 없었다. 그래서 Socrates는 도덕과 정치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아테네를 돌아다녔다. 그의 토론은 재미있어서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토론의 절차는 항상 동일하였다. 그는 우리의 삶에 근본적인 어떤 개념을 선택하여 “우정은 무엇입니까?,” 혹은 “용기는 무엇입니까?,” 혹은 “종교적 신앙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곤 하였다. 그는 해답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일련의 탐구적인 질문을 하여 스스로 해답을 점검하게 하였다. 예를 들어서, 만약 그 사람이 용기는 본질적으로 인내하는 능력이라고 주장한다면 Socrates는 “그렇다면 완고한 언행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것입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완고한 사람들은 특별한 끈덕짐(인내력)을 보여 줄 수 있다. 그것이 용기인가? 그것이 심지어 칭찬받을 만한가? 그래서 상대방은 그의 해답을 취소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해답을 수정하도록 이끌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질문을 받은 사람이 “용기”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실제로는 몰랐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Socrates적 질문은 유명하게 되었다. 그것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무지를 노출시켰다. 그리고 그것은 구경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철학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들로 하여금 그 문제에 관한 토론을 시작하게 하였다. 비록 Socrates 자신은 어떠한 최종적인 해답도 제시하지 않았지만 해답 자체는 규명되고 질문을 받아야하고 그래서 “최종적(해답)”은 신뢰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의 질문의 목적이었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해답의 어려움을 깊이 생각하도록 하였다. 확답과 확신을 경계하는 Socrates의 문답법은 그를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 만들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라고 가르치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권력과 권위를 가진 개인들의 무지를 폭로하고 있었다. 그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또한 많은 미움을 받는 매우 논쟁적인 인물이 되었다. 결국 당국은 젊은 사람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그를 체포하고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의 재판과 죽음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사상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영감을 많이 주는 비극 중의 하나이다.


Socrates의 문답법은 질의응답의 과정을 통해서 진리를 찾아가는 방법인 변증법을 철학의 중심부에 확립하였다. 그의 방법은 계속 존속해 왔고 특히 敎授法(교수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문답법이 모든 종류의 가르침에 동등하게 적절한 것은 아니다―예를 들어서 그것은 수학 같은 순수 지식을 전달하는 데는 똑같이 적절하지는 않다―그러나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재점검하도록 하는 방법으로서는 그것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 훌륭하다. 사람들이 Socrates의 문답법을 제대로 배우고 실행하였더라면 인류 역사상 종교나 사상이나 이념의 광신자들이 일으키는 신념의 전쟁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비극적 참화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6·25 남침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을 파괴하고 있는 광신적 좌파정권도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48. Socrates

-The masterly interrogator


48-1-386

Socrates was the first great Greek philosopher to be Athenian by birth, and he lived in what has been called that city's golden age. He was born around 470 BC and died in 399 BC, leaving behind him a wife and three children. As a young man, he studied the then-fashionable philosophies of what are now called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which in their different ways were trying to understand the natural world around us. Two things above all impressed him about them, both of which he thought were to their disadvantage.


The first was that they were at odds with one another. They were a welter of conflicting theories. And there seemed to be no satisfactory way of deciding between them. They propounded exciting ideas about the world ,but without much apparent regard for critical method; so it was impossible to tell which of them, if any, was true. But his second objection was that it would make little practical difference, even if we could discover which of them were true. What effect did it have on our actual lives to know how far the sun was from the earth, or whether it was the size of the Peloponnese or bigger than the whole world? Our behavior could in no way be affected by such knowledge. What we needed to know was how to conduct our lives and ourselves. For us, the urgent questions were more like: What is good? What is right? What is just? If we knew the answers to those questions it would have a profound effect on the way we lived.



48. Socrates

-질문의 大家(대가)


Socrates는 Athens 출신의 첫 위대한 철학자였고 그 도시의 황금시대라고 불리어 온 시대에 살았었다. 그는 470 BC 경에 태어나서 399 BC에 아내와 세 자녀를 남기고 별세하였다. 청년이었을 때 그는 각각 다른 방법으로 우리 주변의 자연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던, 오늘 날 “Socrates 이전 철학자들”이라고 불리는, 당시 유행하던 철학자들의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들에 관한 두 개의 사실(things)이 그에게 인상을 주었는데 그 두 사실은 그것들에게 (이전 철학자들의 사상) 불리한 것이었다.


첫 번째 사실은 그 사상들은 서로 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상호 갈등하는 학설의 뒤엉킴(welter)이었다. 그 학설들 사이를 결판 지어줄 어떤 만족스러운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학설들은 세상에 관한 흥미진진한 아이디어를 제시하였지만 비판적 방법에 대한 명백한 배려가 없었다; 그들 중에 어느 것이 옳은지, 옳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반대는 설혹 우리가 그들 중의 어느 것이 옳다는 것을 발견한다고 할지라도 실질적인 차이는 없으리라는 것이다. 태양이 지구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으며 혹은 그것이 Peloponnese의 크기인지 아니면 전 세계보다 더 큰지를 아는 것이 우리의 실제 생활에 무슨 영향을 가져올 수 있겠는가? 우리의 행동은 그러한 지식에 의해서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것은 우리의 삶과 우리의 처신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느냐이다. 우리에게 더 시급한 문제는 아래와 같은 것이었다: 무엇이 선인가? 무엇이 옳은 것인가? 무엇이 정의인가? 우리가 그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의 양태에 심오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48-2-387

Socrates did not think he knew the answers to these questions. But he saw that no one else knew them either. When the oracle at Delphi declared him to be the wisest of men, he thought this could mean only that he alone knew that he did not know anything. There was no such at that time as securely based knowledge about the world of human affairs either.


So he went around Athens raising the basic questions of morality and politics with anyone who would listen to him. Such was the interest of the discussions he raised―and he was obviously a charismatic personality as well―that people gathered round him wherever he went, especially the eager young. His procedure was always the same. He would take some concept that was fundamental to our lives and ask, "What is friendship?," or "What is courage?," or "What is religious piety?" He would challenge a person who thought he knew the answer, and then subject that answer to examination by asking the person a series of searching questions about it. For instance, if the person claimed that courage was essentially the capacity to endure, Socrates might say, "But what about obstinacy, then? Obstinate people can show extraordinary persistence, and therefore endurance. Is that courage? Is it even admirable? And so the other person would be driven to retract his answer, or at least qualify it. Under interrogation it always emerged that the original answer was defective. This showed that although that interlocutor―and what is more the bystanders―had thought they knew what, let us say, "courage" was, actually they did not.


Socrates는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어떤 사람도 해답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Delphi의 신탁이 그가 사람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선언하였을 때, 그는 이것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그만이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때는 인간 세상사에 관해서 확실한 근거에 바탕을 둔 지식 같은 그런 지식 또한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에게 귀를 기울이는 뜻이 있는 사람은 누구하고도 도덕과 정치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함께 제기하면서 Athens를 돌아다녔다. 그가 제기한 토론의 재미가 하도 많아서― 그리고 그는 또한 분명히 카리스마적인 인물이었다―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특히 열성적인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그의 절차(토론진행)는 항상 동일하였다. 그는 우리의 삶에 근본적인 어떤 개념을 택하여 “우정은 무엇입니까?”, 혹은 “용기는 무엇입니까?”, 혹은 “종교적 신앙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곤 하였다. 그는 해답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도전을 하고 그러고 나서 그 해답(it)에 관한 일련의 탐구적인 질문을 그 사람에게 함에 의해서 해답을 점검하게 하였다(subject: 복종시키다, 겪게 하다). 예를 들어서, 만약 그 사람이 용기는 본질적으로 인내하는 능력이라고 주장한다면 Socrates는 “그렇다면 완고한 언행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것입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완고한 사람들은 특별한 끈덕짐(persistence: 고집, 지속성, 인내력)을, 그래서 인내력을 보여 줄 수 있다. 그것이 용기인가? 그것이 심지어 칭찬받을 만한가? 그리고 그래서 상대방은 그의 해답을 취소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 해답을 수정(qualify: 자격을 주다, 제한하다, 완화하다, 수정하다)하도록 이끌어지게 될 것이다. 질문을 받는 상태에서는 원래의 해답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 항상 드러났다(emerge: 나타나다, 판명되다). 이것은 그 대화자와 ―더욱이 구경꾼들은―말하자면 “용기”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몰랐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48-3-388

This Socoratic questioning became famous. And it killed two birds with one stone. It exposed the ignorance of people who thought they knew―but who in fact, as the Delphic oracle had told Socrates, knew no more than he did. And it aroused in the bystanders an interest in a fundamental philosophical question, and got them launched on a discussion of it. Although Socrates seldom came up with any final answers himself (and in any case it would have been part of his method to insist that any such answer itself be probed and questioned, and therefore could not be relied on to be "final"), he stimulated an excited interest in the problems he raised, and made people appreciate more fully than they had before the difficulties involved in trying to solve them.


What lies behind the words?

When Socrates asked a question like "What is justice?" he was not asking for a merely verbal definition. The fact that we apply the word "just" to all sorts of different people, decisions, laws, and sets of arrangements meant, he believed, that there was something common to them, a common property called "justice" which they all shared; and it was the character of this common property that he was trying to uncover. In other words, he believed that something exists called "justice," and that its existence is real, although not material, perhaps some sort of essence, and that he was trying to discover the nature of this abstract reality. This view of his was to be developed in the work of his disciple Plato into a belief in abstract Ideas as the perfect and permanent forms of all the entities and impermanent world of our daily lives.


Socrates적 질문은 유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돌 하나로 두 마리 새를 죽였다[一石二鳥(일석이조)]. 그것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사실은 Delphi의 신탁이 Socrates에게 말했던 것처럼 Socrates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지를 노출시켰다. 그리고 그것은 방관자들 마음속에 철학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들로 하여금 그 문제에 관한 토론을 시작하게(launch: 배를 진수시키다, 일을 착수하다)하였다. 비록 Socrates 자신은 어떠한 최종적인 해답도 제시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그러한 해답자체는 규명되고 질문을 받아야하고 그래서 “최종적(해답)”은 신뢰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의 방법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는 그가 제기하는 문제에 흥미진진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stimulate: 자극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를 풀려고 시도할 때에 포함되는 어려움을 이전보다도 더 충분히 생각하도록[appreciate: 음미하다] 하였다.


단어의 裏面(이면)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가?

Socrates가 “정의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할 때는 단지 언어상의 정의를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justice"라는 단어를 모든 종류의 다양한(different) 사람들, 결정, 법률, 그리고 협정의 집합에 적용한다는 사실은 그것들에게는 어떤 공통적인 것, 그들이 모두 공유하는 "justice"(정의)라고 일컫는 공통적인 특질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는 믿었다; 그리고 그가 폭로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이 공통적인 특질의 성격이었다. 달리 말해서 그는 “정의”라고 불리는 어떤 것이 존재하며, 그것의 존재는 사실이고 비록 물질적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어떤 종류의 본질(essence)이라고 믿었으며, 그리고 그는 이 추상적 實在(실재)의 본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의 이런 관점은 그의 제자 Plato(플라톤)의 연구(work)에서 모든 완벽하고 영원한 형태의 실체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영원한 세계로서의 추상적인 이데아에 대한 믿음으로 발전하였다.



48-4-389

The very nature of what Socrates did made him a disruptive and subversive influence. He was teaching people to question everything, and he was exposing the ignorance of individuals in power and authority. He became a highly controversial figure, much loved but also much hated. At one of the city's public festivals he was caricatured in the theatre in front of the whole population of Athens by the comic dramatist Aristophanes, in a play called The Clouds (423 BC). In the end, the authorities arrested him on charges of corrupting the young, and condemned to die by poison. The detailed story of his trial and death is one of the most inspiring tragedies in the history of human thought.


What has made Socrates in some ways the best known of all philosophers is that it was he who began the relentless questioning of our basic concepts that has been characteristic of philosophy ever since. He used to say that he had no positive teachings to offer, only questions to ask. But this was disingenuous. From certain lines of questioning to which he continually reverts, it becomes clear that there are certain cherished beliefs that underlie much of what he says.


Socrates가 하는 일의 바로 그 특성이 그를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 만들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라고 가르치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권력과 권위를 가진 개인들의 무지를 폭로하고 있었다. 그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또한 많은 미움을 받는 매우 논쟁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는 그 도시의 공공축제 중의 한 축제에서, Athens의 전체 시민들 앞에서, 희극 극작가 Aristophanes의 The Clouds라는 극의 무대에서 풍자되었다. 결국 당국은 젊은 사람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그를 체포하였고 독에 의해서 죽이라는 선고를 하였다. 그의 재판과 죽음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인간의 사상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영감을 많이 주는 비극 중의 하나이다. Socrates를 어떤 면에서 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후 철학의 특징이 된 우리가 가진 기본 개념에 대한 무자비한 심문을 시작한 사람이 그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제공할 긍정적인 가름침은 없고 오직 물어볼 질문뿐이라고 늘 말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솔직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가 끊임없이 되돌아가는 질문의 경향(lines)으로부터 판단해보면, 그가 말하는 것의 많은 부분의 기저를 이루는, 그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어떤 신념들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 진다.



48-5-390

One is that to a man who preserves his integrity no real, long-term harm can ever come. The uncertainties of this world are such that it can happen to anybody that he is stripped of all his possessions and thrown into prison unjustly, or crippled by accident or disease; but these are chance happenings in a fleeting existence that is going to end soon anyway. Provided your soul remains untouched, your misfortunes will be comparatively trivial. Real personal catastrophe consists in corruption of the soul. That is why it does a person far, far less harm to suffer injustice than to commit it. We should pity the perpetrator of injustice, not the victim of injustice.


This belief of Socrates made him a hero to the Stoics, who hundreds of years later turned him into a sort of secular patron saint. Another basic belief of Socrates was that if you really do in the fullest sense understand that it is wrong to do something, then you do not do it. Conversely, if you do do it, this shows that you have not properly grasped, deep down, that it is wrong. This view has the consequence that virtue becomes a matter of knowledge. This conviction on Socrates' part provided a great deal of the drive behind his tireless pursuit of questions like "What is justice?": he believed that if only we knew the answer to that question we would be bound to behave justly. In such cases, the pursuit of knowledge and an aspiration to virtue are one and the same thing.


그 신념들 중의 하나는 성실성(integrity)을 보존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실제적이고 장기적인 해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불확실성은 너무나 심하여 그는 가진 것을 모두 박탈당하고 부당하게 감옥에 던져지거나 혹은 사고나 질병에 의하여 불구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여하튼 곧 끝나게 되는 잠깐동안(fleeting)의 인생(existence: 생존, 생활)에서 일어나는 우연의 사건들이다. 만약(provided=if) 당신의 영혼이 다치지 않고 존속한다면 당신의 불운은 비교적 하찮은 것이다. 개인의 진짜 재앙은 영혼의 부패에 있다. 그것이 한 사람이 불의를 당하는 것이 그것을 행하는 것보다 해가 훨씬 더 적은 이유이다. 우리는 불의의 희생자가 아니라 불의를 범하는 자를 동정해야 한다.


Socrates의 신념은 그를 Stoics(스토아 철학자들)에게 영웅으로 만들었으며, 그들은 수백 년 뒤에 그를 그들의 수호 성자로 변형시켰다. Socrates의 또 하나의 기본적 신념은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그렇다면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거꾸로, 만약 당신이 그것을 행한다면 이런 행동은 당신이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견해는 도덕이 지식의 문제가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Socrates 쪽에서의 이런 신념은 “정의는 무엇이냐?” 같은 질문을 지칠 줄 모르게 추구할 수 있는 많은 동력(drive)을 제공하였다: 우리가 그 질문에 대한 해답만 알게 된다면 우리는 반드시 (be bound to) 정의롭게 행동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런 경우에는 지식의 추구와 도덕에 대한 열망은 동일한 것이다.



48-6-391

Be true to yourself

It is doubtful whether any philosopher has had more influence than Socrates. He was the first to teach the priority of personal integrity in terms of a person's duty to himself, and not to the gods, or the law, or any other authorities. This has had incalcurable influence down to the ages. Not only was he willing to die at the hands of the law rather than give up saying what he believed to be right, he actually chose to do so, when he could have escaped had he wished. It is a priority that has been reasserted by some of the greatest minds since―minds not necessarily under his influence. Jesus said: what will a man gain by winning the whole world, at the cost of true self?" And Shakespeare said: This above all: to thine own self be true."


In addition to this, Socrates did more than any other individual to establish the principle that everything must be open to question―there can be no cut and dried answers, because answers, like everything else, are themselves open to question. Following on from this, he established at the centre of philosophy a method known a dialectic, the method of seeking truth by a process of question and answer. It has remained there ever since, and is used particularly as a teaching method―which is after all what Socrates himself used it for. It is not equally appropriate for all forms of teaching―it is not, for example, a good way of imparting pure information―but as a way of getting people to re-examine what they think they already know, it is incomparable. To be most effective it calls for a sympathetic personal relationship between teacher and pupil, one in which the teacher truly understands the pupil's difficulties and prompts him step by step in the right direction. This is often called “Socratic method.”


너 자신에게 진실하라

어떠한 철학자도 Socrates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는 한 인간의, 神들이나 법률이나 혹은 다른 어떤 권위에 대한 것이 아니고, 자신에 대한 의무의 입장에서 인간적 성실(integrity)을 우선으로 할 것을 가르친 최초의 철학자였다. 이것은 시대로 내려가면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끼쳤다. 그는 그가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법의 손에 죽을 뜻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가 원한다면 도망할 수 있었는데도 그는 실제로 법의 손에 죽는 것을 선택하였다. 그것은 그 이후 위대한 정신들(사람들)―반드시 그의 영향 하에 있었던 정신들은 아니지만―에 의해 반복해서 주장된 우선이었다. Jesus는 말하였다: 사람이 진실된 자아를 내주고 온 세상을 획득함에 의해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Shakespeare는 말하였다: “모든 것보다 이것이 먼저다: 너 자신에게 진실하라.”


여기에 더해서, Socrates는 모든 것은 질문에 개방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다른 어떤 개인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하였다―해답은 그 자체가 질문에 개방되기 때문에 삭제나 내용이 빠진 해답이 있을 수 없다. 이것으로부터 계속해서 그는 질의응답의 과정에 의해서 진리를 찾아가는 방법인 변증법으로 알려진 방법을 철학의 중심부에 확립하였다. 그것은 그 이후 그곳에 계속 존속해 왔고 특히 敎授法(교수법)으로 사용되고 있다―그것은 결국 Socrates 자신이 가르치기 위해 사용하였던 방법이다. 그것은 모든 종류의 가르침에 동등하게 적절한 것은 아니다―예를 들어서 그것은 순수 지식(information: 정보, 지식)을 전하는(impart: 나누어 주다, 전하다) 데는 똑같이 적절하지는 않다―그러나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재점검하도록 하는 방법으로서는 그것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 가장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그 방법은 교사와 학생 사이에 개인적인 공감 관계를 요구하며 이런 관계에서는 교사는 생도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생도가 한걸음씩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한다. 이것은 종종 Socrates식 방법이라고 불려진다.

 

출처 : Bryan Magee(1998), The Story of Philosophy
[ 2021-06-02, 12: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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