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도 대답 없는 흘러간 사랑’이던 이난영과의 사연 담긴 노래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67)추억의 소야곡(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남인수 노래, 1955년)

김장실(前 국회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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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가 나온 1955년이면 6·25 전쟁이 끝난 지 2년이 되지 않는 시점이었다. 3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수백만 명이 죽거나 다치면서 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원치 않는 이별을 하였다. 이런 이별을 당한 사람들은 발등에 떨어진 급박한 생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써 그 상처를 외면하려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사람과의 아름다운 인연이 생각이 나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특히 달빛이 교교(皎皎)히 빛나는 밤이면 옛사랑과 나누었던 갖가지 사연들을 반추하며, 그 이별을 통렬히 슬퍼하며 지내고 있었다.
  
  한산도 작사가는 이처럼 가슴 아픈 시대상황을 고려하여 이 노래를 작사하였다. 이 가사를 받은 작곡가 백영호는 인기 가수 남인수를 염두에 두고 작곡을 하였다. 작곡이 완료되자 백영호는 직접 악보를 가지고 폐결핵이 악화되어 경남 진주에서 요양 중이던 남인수에게 갔다. 한번 게임을 시작하면 1000점을 넘길 정도로 프로급 당구 실력을 가진 남인수는 그때 마침 그의 고향인 경남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어느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고 있었다. 백영호 작곡가가 넘긴 악보를 보고는 ‘마음에 든다’는 표시로 빙긋 웃으며 신인 작곡가 백영호의 노래를 부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병인 폐병으로 인해 몸이 몹시 좋지 않는 가운데 남인수는 <추억의 소야곡>을 빅토리음반사에서 <남인수 독집음반>이라는 타이틀로 취입하였다. 이 노래가 나온 후 남인수의 공연이 있을 때마다 앙코르를 요청하는 등 대중들은 엄청 환호하였다. 1960년 미도파 음반사에서 <남인수 걸작집(제3집)>을 재발매하려 할 때 이미 남인수는 몸이 좋지 않아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미도파음반사는 그와 목소리가 비슷한 이청봉을 대신 기용하여 이 노래를 다시 녹음하였다. 그 이후에도 이 노래에 대한 대중들의 호의적 반응이 계속되자 배호, 이미자, 김연자 등 후배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하였다.
  
  <추억의 소야곡>이라는 남인수의 노래는 가수 이난영과 깊은 사연이 담겨져 있다. 1934년 16세의 나이로 목포가요제에 참여했던 남인수는 당시 18세인 이난영을 운명적으로 만나 연정(戀情)을 느꼈다. 그러나 1936년 가수 이난영은 작곡가 김해송과 결혼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일단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없었다. 그러나 6·25 전쟁 중 남편 김해송이 납북되는 바람에 이난영은 큰 고생을 하고 있었다. 가수 이난영과 관련된 이런저런 소식을 직·간접적으로 들어 알고 있던 남인수는 1958년 그의 조강지처(糟糠之妻)인 김은하와 이혼하면서, 이난영과 동거를 하며 그녀의 병간호를 받았다. 그녀의 헌신적인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병은 더욱 깊어지면서 1962년 44세의 나이로 그는 이난영의 무릎을 베고 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특이하게도 가수 남인수는 <추억의 소야곡> 말고도 <애수의 소야곡>, <눈물의 소야곡> 등 소야곡(小夜曲)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노래를 세 곡이나 불렀다. 소야곡은 원래 어두운 밤 사랑하는 여인의 집 창가에서 부르는 노래로 일명 ‘야상곡(夜想曲)’이라고 한다. 이런 소야곡을 한 가수가 이렇게 여러 번이나 부른 것도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 운명의 소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남인수는 본명이 최창수로 강씨 집안에 개가(改嫁)한 어머니를 따라가서 강문수라고 개명하였다. 연예계에 들어온 이후 작사가 강사랑은 강문수라는 이름 대신에 남인수라는 예명을 지어주었다. 그는 1936년 시에론레코드사에서 <눈물의 해협>으로 데뷔하였다. 1938년 <애수의 소야곡>이 공전(空前)의 히트를 하면서 가요계 정상에 섰다. 인기가수 남인수의 소속사인 오케레코드사는 몸이 아파 그가 공연을 못할 경우에 대비하여 모창가수를 따로 선발하여 대기시키고 있었다, 그는 <이별의 부산정거장>, <청춘고백>, <무너진 사랑탑> 등 1000여 곡을 불렀다.
  
  젊을 때 만주와 몽골 등에 유랑했던 작곡가 백영호는 ‘서민적 서정’이 깔린 노래를 만들어 한국인의 가슴을 적셨다. 그는 <동백아가씨>, <해운대 엘레지>, <동숙의 노래>, <추풍령>, <황포돛대>, <아씨>, <여로> 등 수 많은 인기곡을 작곡하였다.
  
  작사가 한산도는 작곡가 백영호와 콤비를 <동백아가씨>, <추억의 소야곡>, <해운대 엘레지> 등 히트곡을 양산하였다. 그는 진송남이 불러 히트하였던 <덕수궁 돌담길>, <바보처럼 울었다> 등 인기곡을 작곡한 바 있다.
  
  <추억의 소야곡>
  
  다시 한 번 그 얼굴이 보고 싶어라
  몸부림치며 울며 떠난 사람아
  저 달이 밝혀 주는 이 창가에서
  이 밤도 너를 찾는 이 밤도
  너를 찾는 노래 부른다.
  
  바람결에 너의 소식 전해 들으며
  행복을 비는 마음 애달프구나
  불러도 대답 없는 흘러간 사랑
  차라리 잊으리라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 슬프다.
  
  
[ 2021-06-06, 02:2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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