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부츠의 장로들의 고백 “‘가짜 평등’ 사회주의 이탈은 進化!”
반공자유-교양영어 (49): kibbu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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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사회주의 이상향 키부츠의 장로들이 뒤늦게 배운 것


박해를 피해서 러시아를 탈출한 12명의 유대인들이 1912년에 창설한 Degania는 이스라엘 최초의 키부츠이다. Degania 사람들은 말라리아와 가축도둑과 발작하는 懷疑(회의)와 싸우며 돌 자갈로 뒤덮인 황무지를 오렌지나무로 푸르게 만들었다. 황무지에서 장미를 피게 한 것이다. 키부츠는 1948년 새 나라를 건설한 이스라엘인들의 自我像(자아상)이었다. 정직한 노동과 우애로 이루어진 키부츠 사람들은 새로운 종류의 이스라엘인인 것처럼 보였다. 오랜 세월 동안 키부츠 사람들은 국민적 영웅이었다. 6일 전쟁 중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Moshe Dayan은 Degania에서 태어 났었고 많은 軍 지도자와 입법자들도 키부츠 출신이었다. 키부츠는 사회주의자들의 꿈이었다. 다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Degania는 시온주의자들의 목가적 이상향이었고 장밋빛처럼 아름다운 시절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오늘 날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겨우 1.7%만 키부츠에 살고 있다. 키부츠를 고향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키부츠는 관광객들을 위해 전시중인 망가진 농기구처럼 녹이 슨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다. 오늘날 키부츠의 젊은 사람들은 키부츠의 공동사회보다는 개인주의를 갈망한다. 그들은 개인의 자유가 없는 키부츠를 혐오한다. 그리고 다 같이 일하고 모든 재산을 공유로 하는 키부츠의 사회주의는 인간의 본성에 적합하지 않았다. Degania의 관리인은 키부츠 사람들은 “처음부터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그것은 가짜 평등이었다”고 말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악착같이 일하였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게으름을 피웠다. 그래서 키부츠는 자본주의적 자유기업과는 경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회주의보다는 자유기업을 높이 평가하기 시작하였을 때 Degania는 뒤로 처지게 되었다.


결국 Degania 키부츠는 사회주의 이상을 포기하고 재산 사유제도를 채택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키부츠의 회원은 개인적으로 집을 가질 수 있고 개인이 일한 양에 따라 봉급을 받게 될 것이다. 키부츠의 장로들은 레모네이드 매점을 운영하는 아이라면 누구라도 가르칠 수 있는 자본주의 교훈 즉 개인은 집단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뒤늦게 배운 것이다. 사회주의 이상향은 꿈이지 현실이 될 수 없는 것이다.

 



49. kibbutz

-Nearly 100 years after its establishment, Israel's oldest kibbutz has voted to shed its socialist principles.


49-1-392

When Israel's oldest kibbutz, Degania, announced that it was giving up its socialist ideals and going private-members could own homes and earn salaries based on how hard they worked―few other than the kibbutzniks themselves were happy. For many Israelis, Degania was a symbol of rosier days, a Zionist idyll of honest work and camaraderie. But for those who called it home, the kibbutz had become an anachronism as rusty as the battered farm tools on display for tourists. Today, the younger generation of kibbutzniks pines for individualism. Tamara Gal-Sarai gazes out over the kibbutz lawn until her eyes settle on the blue-white shimmer of the Sea of Galilee. "The Israeli press blames us for killing their utopia," she says. "It was as if we'd destroyed a national treasure."


That treasure was Israel's self-image. After independence in 1948, the kibbutzniks were seen as the new breed of Israeli. They discarded Europe's deathly pallor and became bronzed, idealistic pioneers. Degania, which had been founded in 1910 by 12 Jews escaping Russian prosecution, was the ideal. Its members were beset by malaria, cattle thieves and bouts of self-doubt. Yet they greened the stony hills with citrus groves. At night in the communal dining hall they argued passionately over the grand themes of the late 20th century: the individual vs. the group, capitalism vs. socialism, religion. (It wasn't until last year that the kibbutzniks of Degania, ardent Zionists, voted to build a synagogue.)


Only 1.7% of Israelis live on kibbutzim, but their influence pervades life and culture. For years, kibbutzniks were the nation's heroes. Moshe Dayan, Defense Minister during the Six-Day War, was born in Degania, and many military leaders and legislators also emerged from the kibbutzim. The kibbutz was a socialist dream. But Degania's manager, Tzali Koperstein, says, "From the start, it was never equal. It was a fake equality." Some toiled hard in Degania's diamond-cutting tool factory and in the fields; others slacked off. And as Israeli society began to value creativity and free enterprise over socialism, Degania lagged behind.


 

49. 키부츠

-설립 거의 100년 후에 Israel의 가장 오래된 키부츠는 사회주의적 원칙을 버리기로 표결하였다


이스라엘의 가장 오래된 키부츠인 Degania가 사회주의 이상을 포기하고 私有制度(사유제도)를―키부츠의 회원은 개인적으로 집을 가질 수 있고 개인이 일한 양에 따라 봉급을 받는 것―채택할 것이라고 발표하였을 때 키부츠 사람들만을 제외하고는 기뻐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Degania는 정직한 노동과 우애로 이루어진 시온주의자들의 목가적 이상향이었고 장밋빛처럼 아름다운 시절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키부츠를 고향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키부츠는 관광객들을 위해 전시중인 망가진 농기구처럼 녹이 슨 시대착오적인 것이었다. 오늘날 키부츠의 젊은 사람들은 개인주의를 갈망한다. Tamara Gal-Sarai 는 그녀의 눈길이 키부츠의 잔디밭을 넘어 청백빛의 갈릴리 바다에 머물 때까지 응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언론은 그들의 이상향을 우리가 죽인다며 우리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치 나라의 보물을 파괴한 것 같았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 보물은 이스라엘의 자아상이었다. 1948년 독립 후에 kibbutzniks는 새로운 종류의 이스라엘 사람들인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유럽의 죽음 같은 창백함을 버리고 구릿빛(단단한)의 이상주의적 개척자가 되었다. 박해를 피해서 러시아를 탈출한 12명의 유대인이 1912년에 창설한 Degania는 이스라엘의 이상이었다. Degania 사람들은 말라리아와 가축도둑과 발작하는 懷疑(회의)에 휩싸였었다. 그러나 그들은 돌자갈로 뒤덮인 구릉지를 오렌지나무로 푸르게 만들었다. 밤이 되면 그들은 농장의 공동식당에 모여 20세기 후반의 거대한 주제였던 개인 대 집단,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종교에 관해서 열정적으로 토론하였다. (열렬한 시온주의자들인 Degania의 kibbutzniks가 유대교회당을 짓기로 표결한 것은 바로 작년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겨우 1.7%만 키부츠에 살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널리 침투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kibbutzniks는 국민적 영웅이었다. 6일 전쟁 중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Moshe Dayan은 Degania에서 태어 났었고 많은 軍(군) 지도자와 입법자들도 키부츠 출신이었다. 키부츠는 사회주의자들의 꿈이었다. 그러나 Degania의 관리자인 Tzali Koperstein은 “처음부터 결코 평등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가짜 평등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다이아몬드 절삭공구 공장과 밭에서 악착같이 일하였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게으름을 피웠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창조성과 사회주의보다는 자유기업을 높이 평가하기 시작하였을 때 Degania는 뒤로 처지게 되었다.



49-2-393

Once, everyone earned the same wage, did the jobs they were assigned, and kibbutz elders held the purse strings. Now, says Degania's manager, "We are still protecting the weak, but everyone has the responsibility of earning their own living." Some naive kibbutzniks, he says, need to be taught how to open a bank account and use an ATM card. Elders learned a lesson in capitalism that any kid with a lemonade stand could have taught them: the individual works harder for himself than for the collective. Factory output has jumped.


The kibbutz experiment failed for other reasons. Israeli youth felt stifled and left. "Kibbutz life is peaceful and rich," says Koperstein. "But it came at a high price. You gave up individual needs. The idea of having someone telling you what to think, what to study, what work to do-it's like having four walls closing you in." In some kibbutzim (not Degania), children were separated from parents and raised in collective dormitories. Says Gal-Sarai: "Kibbutzniks from the other places are bringing good business to Tel Aviv's shrinks." Koperstein, who was not raised at Degania, recalls the time when, at age 7, he woke from a nightmare in the dorm and ran home through the darkness to be comforted by his parents. "At 3 a.m., the wardens came knocking on the door to bring me back. I couldn't raise my kids that way," he says.


Degania's elders don't consider the departure from socialism a failure. "Many Israelis see us as yet another broken symbol," says the kibbutz manager. "But we don't feel that. For us, it's an evolution. We had to change."


한때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임금을 받았고 할당받은 일을 하였고 키부츠의 장로들이 돈의 관리를 하였다. 지금은 “우리는 아직도 약자를 보호하고 있지만 이곳의 모든 사람은 자신이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라고 Degania의 관리자는 말한다. 몇몇의 순진한 kibbutzniks는 은행계좌 개설하는 것과 ATM카드 사용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키부츠의 장로들은 레모네이드 매점을 운영하는 아이라면 누구라도 가르칠 수 있는 자본주의 교훈 즉 개인은 집단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배웠다. 공장의 생산량이 껑충 뛰었다.


키부츠의 실험은 또 다른 이유로도 실패하였다.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키부츠를 떠났다. “키부츠의 삶은 평화롭고 풍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높은 대가를 지불하고 얻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의 욕구는 포기하였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지시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그것은 사방에 있는 벽이 당신을 조여 오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라고 Koperstein는 말한다. 어떤 키부츠(Degania는 아님)에서는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격리되어 공동기숙사에서 양육되었다. “다른 키부츠 출신의 kibbutzniks이 이스라엘을 위축시키고 있습니다”라고 Gal-Sarai는 말한다. Koperstein(Degania에서 성장하지 않음)은 7세 때에 기숙사에서 밤에 악몽에서 깨어나 부모의 위로를 받기 위하여 어두움 속에서 집으로 달려갔던 때를 회상한다. “새벽 3시에 사감이 나를 데려가기 위하여 찾아와서 우리 집 방문을 노크하였습니다. 나는 내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 키울 수는 없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Degania의 장로들은 사회주의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실패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를 또 하나의 망가진 상징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그것(사회주의로부터 이탈)은 하나의 진화입니다. 우리는 변해야 하였습니다”라고 Degania의 관리자는 말하였다.


 

출처 : TIME, May 7 2007
[ 2021-06-09, 10: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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