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부는 담담하게, 후반부는 절규하듯 “남자답게 말하리라 안녕이라고”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71)뜨거운 안녕(백영진 작사, 서영은 작곡, 쟈니리 노래, 1966년)

김장실(前 국회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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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는 것이 인생의 철리(哲理)이다. 희로애락의 감성을 가진 우리들은 그런 인생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나, 막상 우리들의 삶에 충격적인 이별이 닥쳤을 경우에 몸과 마음으로 이를 흔쾌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서로 사랑하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여인을 돌려보내는 남자의 경우 얼마나 쓰라리겠는가. 어쩔 도리가 없이 다가온 이별을 체념 섞인 한(恨)으로 받아들인 그는 사나이의 마지막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울음이 나도 속으로 삼키며 떠나가는 그녀를 향해 ‘안녕’이라고 뜨겁게 이별인사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더운 초여름 날 작곡가 서영은은 이런 이별의 정조(情調)가 깔린 백영진의 가사에다 누구나 애창하는 명곡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는 서울시 종로구 체부동에 있는 그의 집 2층 방에서 이리저리 궁리를 하며 이 노래의 이미지에 맞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매일 “뜨거운 안녕”이라는 소리를 질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러 날 계속해서 이렇게 큰 소리를 내자 인근 주민들은 그가 작곡을 하며 내는 소음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파출소에 진정(陣情)하였다. 마침내 경찰이 작곡가 서영은을 찾아가 그가 내지르는 소리가 ‘소음’이라는 주민신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습을 삼가 달라고 요청하였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작곡가 서영은은 하는 수 없이 찜통 무더위에 방문을 닫고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이 노래를 완성하였다.
  
  가수 쟈니 리는 서영은이 이런 특별한 산고(産苦)를 겪으며 만든 <뜨거운 안녕>을 전반부는 담담하게 가다, 후반부는 절규하듯이 불러 듣는 이의 가슴을 후벼 팔 정도로 울림이 큰 노래로 만들었다. 이 노래는 1966년 <쟈니 리 가요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실렸는데 무려 35만 장의 음반이 팔릴 정도로 크게 히트하였다. 특히, 이 노래가 유행할 때쯤 인천에서 어떤 사랑하는 사람 둘이 어떤 유서도 남기지 않은 채 종이에 <뜨거운 안녕>을 적어 놓고 자살하는 사건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이 노래는 이렇게 초(超)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이렇게 이 노래가 인기를 끌자 쟈니 리는 아리랑 잡지의 독수리상 등 각종 주간지 가요상과 동아방송 가요상 등을 받으며 가요계의 정상(頂上)에 섰다. <뜨거운 안녕>이 히트하자 1967년 김시현 감독이 신영균, 남정임, 독고성, 트위스트 김 등 당대의 인기배우들을 캐스팅하여 동명(同名)의 영화로 만들었다. 그러나 2만 6000명의 관객이 들어 많이 인기를 끌지는 못하였다.
  
  정원, 트위스트 김과 한께 1960년대 극장쇼의 일인자인 가수 쟈니 리는 1938년 만주 길림성에서 출생하여, 외가가 있는 평남 진남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6・25 전쟁 중인 1950년 말 그는 혼자 부산으로 와 광안리에 있는 피난민 수용소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그는 미국인을 만나 쟈니라는 이름을 받고 양아버지를 따라 1952년 미국으로 갔다가 적응을 하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천부적인 노래 솜씨를 가진 그는 그의 나이 20세 즈음 쇼 극단에서 그 당시 공연하는 가수들의 일반적 복장인 양복 대신에 미국풍을 상징하는 청바지를 입고 가수로 활동하였다. 그는 ‘준수한 외모, 호소력 짙은 가창력, 세련된 무대 매너’로 피카다리・단성사 등에서 공연을 할 때에는 가진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젊은 여성들의 격정적 호응을 이끌어 낼 정도로 매우 인기가 높았다. 1966년부터 음반을 취입하여 <뜨거운 안녕>, <내일은 해가 뜬다> 등을 발표하였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그는 <청춘대학>, <즐거운 청춘> 등 영화에도 출연하였다.
  
  그는 1974년대 중반 다시 미국으로 갔다가 한국을 오가며 1990년대부터 음반을 냈으나 빛을 보지 못하고, 2006년부터 아예 한국에 정착하였다. 정식으로 주례를 세운 결혼을 다섯 번이나 할 정도로 그는 가정적으로 불운하였다.
  
  1926년 태어난 작사가 백영진은 본명이 백승찬이다. 그는 한국 코미디 프로그램 대본의 선구자로 1970년대 MBC의 간판 프로인 <웃으면 복이 와요>의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작곡가 서영은은 1927년 전북 임실 출신으로 코미디언으로 유명한 서영춘의 형이다. 그는 <고향무정>, <충청도 아줌마> 등을 작곡하였다.
  
  <뜨거운 안녕>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별들이 다정히 손을 잡는 밤
  기어이 가신다면 헤어집시다
  
  아프게 마음 새긴 그 말 한 마디
  보내고 밤마다 울음이 나도
  남자답게 말하리라 안녕이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비둘기 나란히 구구대는데
  기어이 떠난다면 보내 드리리
  
  너무나 깊이 맺힌 그날 밤 입술
  긴긴 날 그리워 몸부림쳐도
  남자답게 말하리라 안녕이라고
  
  
  
  
[ 2021-06-10, 03: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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