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소위 '김 의 묘' 옆에 묻힌 황규만 장군
'죽어서도 김 소위 곁에 있고 싶다'는 유언대로 자녀들은 장군묘역 대신 비좁은 '김 의 묘'에 아버지를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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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허할 때마다 찾는 아버님 묘역.
  내게는 안식처이자, 도피처고
  오아시스 같은 생명의 장소다.
  동생과 며느리가 현충일에 놓고 간 꽃이
  여전히 싱싱한 모습을 바라보다
  빙둘러 나오는데 같은 묘역,
  이름없는 김 소위 묘가 달라보였다.
  
  이름도 없이 '김 의 묘'로 되어있고
  묘비 뒤에는 조선일보의
  오래된 기사가 희미하게 박혀있고
  묘비 앞 묘석에는 그 주인의 이름이
  김수영이라고 되어 있어
  늘 궁금증이 풀리지 않던 묘지였다.
  
  이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묘비는 여전히 '김 의 묘'라고
  되어있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던
  그 묘한 묘에 다른 묘비가
  또 들어서 두 개가 있는 것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더 놀라웠다.
  황규만 장군의 묘.
  장군의 묘가 1평이 채 되지 않는
  '김 의 묘'와 나란히 같이 있는 것.
  
  이상하고 괴이해 찾아봤더니...
  6·25 때 황 장군의 부대가 치열했던
  안강전투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김수영 소위가 이끌던 부대가
  지원을 나와 위기에서는 벗어났는데
  미처 통성명도 못 했던 김 소위는
  그만 그 전투에서 전사했단다.
  
  당시에 같은 소위였던 황 장군은
  어느 소나무 밑에 김 소위를 묻어주고
  그 소나무에 표식을 단단히 해놓고
  다시 전장으로 나갔다가 정전 후
  그 소나무를 찾아
  김 소위의 유해를 수습해
  국립현충원에 안장해주었다는 것.
  그러나 통성명도 못 했기에
  이름도 없이 '김 의 묘'가 됐다.
  
  
  그 후 황 장군의 집요한 노력으로
  김수영 소위는 이름을 찾았고
  유족도 찾았으나 여전히 묘비는
  김의 묘.
  황규만 장군은 유언처럼 늘
  '죽어서도 김 소위 곁에 있고싶다'
  고 했고 자녀들은 장군묘역 대신
  비좁은 '김의 묘'에 아버지를 모셨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22/2020062200095.html
  
  전쟁 중에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전우를 잊지않고 끝까지 챙기고
  보살피다가 끝내 그의 곁에 묻힌
  예비역 육군 준장 황규만 장군.
  그리고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준
  황규만 장군의 유족들에게
  깊은 경외심이 들어 조신하게
  큰 절 네 번 올리고 돌아왔다.
  김수영 소위에게 두 번.
  황규만 장군님께 두 번.
  
  이 이야기를 오늘 이근 대위와의
  회의를 마치고 차동길 장군님과
  정수한 장군님께 해드렸더니
  황규만 장군님은 정보처장 출신에
  유명한 전서도 번역하신 분이란다.
  그런데 내가 머리가 나빠
  황 장군이 번역출간하셨다는
  유명한 전서 이름을 그만 까먹었다.
  선조들은 이렇게 훌륭하신데
  후손인 나는 이렇게 칠칠맞다. ㅠ가 됐다.
  
  
[ 2021-06-17, 04: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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