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소멸했다 인간 몸으로 귀환할 수 있다는 남성
[연재] 28. “나로 생활하던 아이는 죽었던 것 같고 나의 과거 모습이던 빛과 같은 생명체가 죽은 아기의 몸을 차지했는데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웠다”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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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는 55세의 남성이며 가족으로는 부인과 자녀 셋이 있다. 카를로스는 예술적으로 재능이 뛰어났는데 그림도 그리고 시(詩)와 연극, 소설 등을 써왔다. 그는 순수미술 교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카를로스는 1992년 7월 존 맥 하버드 의대 정신과 과장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썼다. 카를로스는 제임스 워드 박사라는 정신 심리학자와 여러 차례의 최면 치료를 진행했다. 최면 시간은 약 17시간에 달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UFO 납치 경험을 떠올려 냈다. 맥 박사는 총 6시간에 걸쳐 두 번의 최면 치료를 진행하게 된다. 카를로스의 특이한 점은 그가 ‘납치’라는 표현이 아니라 ‘조우(遭遇, encounter)’라는 표현을 더 선호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맥 박사의 책 ‘납치’는 최면 치료 과정에서 최면 대상자가 떠올린 내용을 바탕으로 맥 박사가 서술하는 형식이다. 다만 이번 사례의 경우는 맥 박사와 카를로스가 서로 잘못 이해한 부분은 해설을 붙이고 애매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덧칠을 하는 방식으로 서술됐다.


카를로스의 사례를 소개하기에 앞서 내가 그의 이야기를 정리한 형태를 알려주고자 한다. 카를로스의 사례는 제임스 워드 박사와의 최면 치료에서 떠올린 방대한 UFO 및 외계인 관련 기억이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나열돼 있다. 이에 따라 나는 혼선을 피하기 위해 카를로스와 맥 박사가 두 차례의 최면 치료에서 나눈 이야기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카를로스는 펜실베이니아 서부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그의 가족은 가톨릭 가족으로 신앙이 깊었다. 카를로스의 아버지는 그가 16세 때 숨졌다. 그의 아버지는 철로(鐵路)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였는데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목숨을 잃었다. 담배를 오랫동안 피운 것이 하나의 원인인 것으로 지목됐다. 카를로스는 아버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충격이 컸던 이유 중 하나는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검시관의 영안실에 가 아버지의 시체를 직접 봐야 했던 것이다. 이는 신원을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카를로스는 “영안실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며 “아버지가 테이블 위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울부짖고 다가가 키스까지 하는 것을 본 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어버렸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미술과 관련된 학문을 오랫동안 공부했다. 서너 개의 학위를 땄는데 미술 및 조각 관련 석사 학위, 미술 치료 관련 석사 학위, 그리고 비교예술학 박사 학위를 땄다. 카를로스는 박사 학위를 이수했을 때인 26세 때 수학 교사인 여성과 결혼했다.


카를로스는 어려서부터 알레르기 등의 호흡기 질환을 앓았다. 그는 한 살 때 폐렴을 앓았고 간호사 중 한 명은 그의 부모에게 그가 임상적으로는 이미 숨진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놀란 부모는 병원으로 달려갔고 맥박은 아주 느리게 뛰고 있었다. 카를로스는 워드 박사와의 최면 치료 과정에서 “나로 생활하던 아이는 죽었던 것 같고 나의 과거 모습이던 빛과 같은 생명체가 죽은 아기의 몸을 차지했는데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몸을 갖는 것은 좋아하지만 여기(지구)에 오는 것은 싫었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몸이라는 것에는 문제가 많다”며 “모든 일들에 반응을 해야 한다”고 했다. “커가는 것도 힘들고 나이가 드는 것도 힘들다”며 “몸을 갖고 있음에 따라 겪는 일들은 진정 평화롭지 않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최면 치료 과정에서 몸 안에 어떻게 들어가게 됐는지를 떠올려냈다. 그는 “몸 안으로 미끄러져 가는 것 같았는데 양말과 신발을 신는 것과 비슷했다”며 “고통스러웠고 이런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고 했다.


맥 박사는 그렇게 싫었다면 왜 이 아이의 몸에 들어갔느냐고 물었다. 그는 “교사와 예술가로서의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인간이 지구라는 정원을 파괴하는 등의 행위가 걱정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후 카를로스는 어려서부터 UFO와 같은 괴물체를 하늘에서 봤다는 기억, 빛을 타고 내려오는 천사와 같은 생명체를 봤다는 기억, 직접 하늘을 날아 생명체들과 함께 날고 우주선에 들어갔다는 내용들을 이야기했다. 이때부터 카를로스는 무언가 인간의 몸이 소멸돼 다시 빛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맥 박사는 몸을 갖고 있는 생명체에서 빛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카를로스는 “우주의 에너지 속에서 에너지와 빛이 움직인다”며 “그런 동시에 이런 것들이 (존재하는) 공간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물에서 수영을 하는 것과 비슷한데 형체와 거리, 그리고 빛이 보이지만 본인의 몸을 볼 수는 없다”며 “그럼에도 몸은 물 안에 있는 것이다. 몸이라는 것을 뛰어넘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UFO 납치 경험 중 심신적(心身的)으로 불편한 일들이 많았지만 가장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자신의 자식들이 비슷한 일들을 겪는다는 점이라고 했다. 자식들이 어렸을 때 이들을 지켜주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 몸은 마비됐고 내 품 안에 있는 아이들을 이들이 데려갔다”며 딸이 어렸을 때 우주선 안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봤다고도 했다. 그는 “내 딸이 이런 저런 기기(器機)를 자꾸 만지려고 하는데 제발 멈추기를 바랐다”며 “그녀가 뭘 잘못 만질까봐 두려웠다”고 했다.


카를로스의 UFO 납치 경험 중 가장 고차원적인 일은 스코틀랜드 그리스도교의 중심으로 불리는 아이오나섬 지역에서 발생했다. 1970년 11월, 한 영국 성공회 교도 신부가 30대의 카를로스를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로 초청했다. 이 신부가 여러 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미술 전시회에 초청한 것이었다. 한 주 뒤 이 신부는 아이오나를 방문할 계획인데 카를로스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카를로스는 이전까지만 해도 아이오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수도원이 많은 지역 정도라고만 알고 있었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아이오나로 떠나기 얼마 전 한 중년의 여성을 만났다. 그는 영국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인물로 아이오나 등 스코틀랜드의 전설과 관련된 여러 책을 쓴 사람이었다. 이 작가는 카를로스에게 아이오나섬에 가게 되면 ‘바다표범들의 만(灣)’을 방문해 찬송가를 불러보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바이킹의 공격으로 숨진 성직자들의 영혼이 들어가 있는 바다표범들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카를로스는 실제로 이 해변가로 가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마음으로 그레고리오 성가(聖歌)를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불렀다고 했다. 그러자 바다표범 한 마리가 해안가 인근으로 오더니 걸어가는 그레고리를 약 1km 따라왔다고 한다.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는데도 계속 따라왔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매우 아름다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1990년 4월 약 20년 만에 다시 아이오나를 방문했다. 이 섬은 595년경 성(聖)콜룸바가 세운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쓴 찬송가와 시(詩)를 연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카를로스는 처음에는 이틀만 아이오나에 머물려 했으나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 10일간 이곳에서 지내게 됐다.


카를로스는 첫째 날 그의 머리 속 의식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20년 전에 왔을 때 가보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냥 이 방향으로 향하면 동굴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이날 조류(潮流)는 거셌고 쉽게 동굴을 찾지는 못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동굴이 있다고) 그냥 상상한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동굴 탐험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는 하루 이틀 뒤 이 지역을 다시 방문했는데 이날 조류는 잔잔했다. 카를로스는 바위 옆 절벽 쪽을 걷다가 동굴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가 머리 속으로 상상하던 동굴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머리 속에서 그렸던 장면을 보게 돼 기뻤다고 했다.


부활절 주일(主日)인 4월 15일 일요일. 아이오나에 온 지 사나흘 된 카를로스는 성콜룸바만(灣) 쪽으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바다표범 지역으로부터 걸어서 약 서너 시간 떨어진 곳이었다. 자녀들에게 선물할 초록색 조약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카를로스는 정오쯤부터 걷기 시작했다.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이 지역에 도착,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되돌아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카를로스는 섬에서 가장 높은 지역 같은 곳에 올라가 절벽을 향해 소변을 봤다고 했다. 그런 뒤 다시 걸으려고 하니 갑자기 어지러워지고 제대로 걷는 게 어려워졌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모든 게 새로워보였고 아이오나섬에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잘 모르게 됐다고 했다. 무언가 길이 보여 걷기 시작했는데 가고자 하는 방향 반대인 것을 알아챘다고 했다. 밑으로 내려가려 했는데 다시 올라가려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세 시간 정도가 흐른 것 같다고 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콜룸바만을 방문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어렵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게 됐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돌아가는 길에 물 위에 있는 구름으로부터 내려오는 기다란 복숭아색 불빛을 봤다고 했다. 그는 어떠한 기적이 일어나는 하나의 장면 같았다고 했다. 이 불빛이 물에 닿자 복숭아색의 엷은 안개가 둥글게 퍼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 둥근 안개 안과 밖에서 수천 개의 불빛이 튀기 시작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이러한 장면을 ‘빛의 폭포’, ‘빛의 터널’ 등으로 묘사했다.


카를로스는 자신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최대한 불빛을 많이 담을 수 있게 사진을 찍었다. 맥 박사는 이런 사진을 직접 확인했다고 했다. 작은 불빛 모양의 막대기를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이 사진을 그의 대학 물리학과 동료들에게 보여줬다고 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태양에 반사된 빛이라고 생각했지만 불빛의 모양, 활처럼 휜 모양, 빛이 쏘아진 곳에서 발생하는 ‘스파크’ 현상을 본 뒤 태양과 관계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카를로스는 당시의 시간을 고려하면 태양이 조금 더 북서쪽에 위치했어야 한다고도 했다. 카를로스는 사진 관련 수업도 가르치며 이는 태양이 아닌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빛의 폭포’라는 것이다. 그의 대학교에서 활동하는 보다 경험이 많은 물리학자 두 명이 이 사진을 분석해보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은 성콜룸바도 이런 불빛을 본 적이 있었다며 흥분했었다고 한다.


사진을 찍은 뒤 불빛이 카를로스 쪽으로 왔고 그는 땅으로 주저앉았다고 했다. 물 위에 있던 불빛과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똑같이 복숭아색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어두워졌을 때였다고 한다. 불빛은 사라졌고 태양도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어둠 속을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 카를로스는 이상하게도 이 당시의 기억을 모두 잊고 지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여행에서 찍은 사진 필름을 4개월 후에 현상을 했는데 이상한 불빛을 봤다는 것을 그제야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맥 박사는 카를로스가 최면 과정에서 보다 자세한 기억을 떠올려냈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소변을 본 뒤 의식 세계에 무언가 변화가 발생했고 레이저 빛이 나오는 터널을 지나 하늘에 있는 우주선 밑으로 올라갔다고 했다. 우주선에서 ‘작고 다정한 생명체’ 한 명을 만났는데 길 안내를 해줬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여러 형태의 외계인 생명체를 봤다고 했다. 길 안내를 해줬던 생명체와 같이 키가 작고 불빛을 내는 생명체가 있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이들의 얼굴은 하얗고 둥그랬으며 머리카락은 없었다. 대머리 같았다”고 했다. 그는 “이들의 눈은 밝았고 파란 형광색 같았다”고 했다. 맥 박사는 대다수의 납치 경험자들은 외계인들의 눈을 검정색으로 묘사했는데 카를로스는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고 부연(敷衍)했다. 카를로스가 이를 나중에 읽고 덧붙인 것 같은데 그는 이들의 눈 색깔은 계속해 바뀐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이들의 눈이 매우 컸는데 고글을 낀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이들은 특히 어두울 때 고글을 끼고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맨살을 내가 착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헬멧이나 고글을 끼고 있는 모습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맥 박사는 눈을 더 묘사해보라고 했다. 카를로스는 “눈알이 투명한데 사람들이 이를 어두울 때 보면 검정색으로 보인다”며 “홍채는 크고 둥근데 고양이 눈 같다”고 했다. 홍채가 갈색과 빨간색인데 좁아들었다 벌어졌다 초점이 계속 바뀌었다고 했다.


맥 박사는 카를로스의 묘사 중 다른 납치 경험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상당수가 중성(中性) 같았다는 것이다. 물론 카를로스는 이 모든 프로그램을 통제하는 인물로 보이는 여성 같은 생명체가 있다고는 했다. 카를로스는 그녀는 회색이고 그녀 주변에는 색이 바뀌는 옅은 안개 같은 게 보인다고 했다. 장미색, 핑크색, 오렌지색이 계속 반짝였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이 여성이 말랐고 다른 생명체들과 비슷하지만 키가 조금 더 컸다고 했다. 다른 생명체들과 비슷한 눈을 가졌고 눈과 입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우주선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천장은 휘어있었고 이 사이를 지나가는 길이 있었다고 했다. 한 방은 ‘원형홀’이라고 불렸는데 매우 컸다고 했다. 옆쪽에는 창문 혹은 스크린 같은 것이 보였다고 했다. 이 창문들은 금속과 크리스탈, 유리, 거울 등이 다 섞인 것 같았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발코니가 하나 있고 난간이 세워져 있었다고 했다. 가장 아래쪽에는 노란색 책상들이 있었는데 각종 기기와 조종 패널이 설치돼 있었다고 했다. 작은 생명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아이오나섬 등에서 겪은 UFO 납치 현상 때 신체적으로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공포와 어지러움 증세도 있었다고 했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커다란 로봇 같이 생긴 생명체였다고 했다. 파충류나 곤충 같은 얼굴을 갖고 있었고 몸도 곤충처럼 움직였다고 했다. “다른 작은 생명체들이나 키가 큰 생명체를 마주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이들은 사랑스러웠다”면서도 “이 못 생긴 애들은 무서웠다”고 했다. 이 파충류 같은 생명체들을 부른 것은 여성 생명체였다고 했다. 무언가 임무를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카를로스는 “그녀는 의사이자 철학자, 정신상담의(醫) 같은 존재였다”며 “이는 수술과 비슷한데 단순한 신체적인 검사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 과정은 신경을 엄청나게 아프게 한다”며 “무언가를 자르거나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는 아프지 않다”고 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를 가장 두렵게 만든다”고 했다. 그는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느낌은 있지만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라며 “이 로봇 같이 생긴 애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너무 흉측하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이 로봇들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다고 계속 소리쳤다.


맥 박사는 이 로봇에 대한 공포심이 카를로스를 어지럽게 만들었다며 최면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했다. 최면에서 깨어 나온 카를로스는 또 한 번의 최면을 통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떠올려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맥 박사와의 2차 치료가 또 한 차례 진행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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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2, 05:2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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