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宜寧) 궁류면(宮柳面)의 생지옥(生地獄)을 찾아
작가 현지특파 심층취재/ 1982년 4월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사건 (1)

吳効鎭(월간조선)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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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4월26일 저녁부터 27일 새벽까지 한밤 새에 경북 의령군 궁류면의 한적하던 4개 부락에서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벌어졌다. 현직 우범곤(禹範坤) 순경의 잔인한 극한난동으로 남녀노소 56명이 살해당하고 34명이 불의의 총알과 수류탄의 세례를 받고 다쳤으며 우범곤 자신은 수류탄으로 자폭, 방안에 있던 3명의 주민을 강제 동반자살했다. 월간조선은 이 끔찍한 현장에 현역 작가를 긴급 특파해 사건 내막과 경위를 샅샅이 추적, 심층취재했다.

그날 잔뜩 찌푸린 궁류면의 하늘


1982년 4월26일. 경남 의령군 궁류면의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선들선들 봄바람이 불었는데, 어제는 하루 아침에 여름이 된 듯 날이 찌더니, 오늘은 구름까지 잔뜩 찍어눌러 후텁지근하기 짝이 없다. 끈끈하고 답답한 날씨였다.

의령에서 버스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재를 넘어 산비탈 밭비탈로 난 꼬불꼬불한 자갈길을 한 시간쯤 달려가면, 맑디맑은 유곡천(柳谷川) 건너 미루나무 늘어선 길가에 궁류면이 나타난다. 원래 험한 길이라서 27km밖에 안 되는 거리인데도 버스는 서둘지를 못한다.

그리고 버스도 이곳에 와서 더는 못 가고, 지서 앞 종점에 와서 다시 돌아나가야 한다.

“빈촌잉기라, 젊은이들은 다 나가고, 늙은이들이나 예서 죽자카고 있능기라.”

벌서 봄볕에 얼굴이 검게 그을고, 그 가운데 희고 깊은 주름이 가득 담긴, 순박한 한 촌로의 말이다.

 

신라 때는 이곳을 토곡(土谷)이라 불렀다. 지금도 그 지명이 토곡리로 남아 있다. 1914년까진 이곳 평촌(坪村)·벽계(碧溪)·운계리(雲溪里)는 합천군 궁소면(宮所面)에 속해 있었고, 토곡·다현(多峴)·계현(桂峴)·압곡리(鴨谷里)는 일유곡면(一柳谷面)에 속해 있었다.

유곡면이 일유곡과 이유곡 두 개의 면으로 나뉘어진 데에는 전해 내려오는 얘기가 있다. 구한말 벼 천석을 하는 천석꾼이 이곳에 살았다. 그의 손자 사위 등 친척이 서울과 진주에서 떠르르한 사람들이었으므로, 그 세력을 업고 그는 지방에서 대단한 세도를 부렸다. 별명이 ‘벼락’이어서 벼락이라고 하면 이 일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면장이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자, 아예 면을 두 개로 나눠, 자기 집이 있는 쪽을 일유곡면(一柳谷面)이라 하고 그곳의 면장이 돼버렸다.

 

한일합방이 되고 1914년 토지조사와 함께 행정구역을 조정할 때 궁소면의 일부와 일유곡면이 합쳐지게 됐는데 이때 궁소면의 宮자와 일유곡면의 柳자를 따서 宮柳面이 됐다.

궁소면과 유곡면의 원래 발음 때문인지 어떤 사람은 이곳을 ‘궁유’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발음법칙에 맞게 ‘궁류’라고 했다. 또 관청이나 가계의 간판에도 ‘궁유’와 ‘궁류’가 섞여 씌어 있다.

 

“해방되고 나서 호열자로 한번 쓸었고, …얼매 전엔 저 위 저수지가 터져서 또 한번 싹 쓸었고….”

촌로는 더듬더듬 말을 하다가 말끝을 맺지 못했다.

기록에 따르면 38년 전 콜레라로 24명이 죽었고, 1968년엔 토곡 저수지가 터져 14명이 죽은 것으로 돼있다.

궁류, 재난으로밖에 이름을 알릴 수 없었던 궁류. 그 하늘에 천지도 소리 내어 울고야 말 재난을 예시라도 하듯, 그날은 검고 낮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꼭두리가 사는 담양 田씨의 마을


의령에서 버스를 타고 와서 유곡천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간이 주점 ‘해당화’가 수줍게 나타나고 왼쪽으로 시장통이 길게 뻗어 있다. 이곳 삼거리를 지나 산모랭이를 굽이 돌아가지고 면사무소와 지서가 있는 토곡리 석정부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 산밑에 30여 호의 농가들이 그림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남쪽 햇볕에 졸고 있는 게 보인다. 이 마을이 압곡리(鴨谷里) 매곡(梅谷) 부락이다. 근처에 있는 돌무덤이 꼭 오리처럼 생겼대서 압곡리란 이름이 붙었다. 마을 한 가운덴 길게 길이 나 있고 그 길 아래위에 집들이 포도송이처럼 붙어 있다. 이곳이 담양 田씨가 20여대 4백여 년간을 살아온 마을로, 단 한 집을 빼놓곤 모두 田씨 집안이다. 그러니까 아래 윗집이 서로 형님 아우네 집이고 5촌 당숙네 집인 셈이다.

 

마을 중간께쯤 꼭두리네 집이 있다. 동네에선 전말순(田末順, 25)을 꼭두리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꼭두리네 집은 동네 한길에 연해 대문을 내고 길 위쪽으로 붙어 있다. 대문 입구 흙과 돌로 쌓은 담 한쪽이 무너져 퇴락한 느낌을 주지만 너른 마당 끝에 높직하고 번듯하게 서 있는 안채를 보면 제법 규모를 갖추었던 집임을 알 수 있다.

마루도 두툼한 나무로 튼튼하게 놓았고, 쓴 재목들이 번듯번듯한데 대청 위 벽엔 ‘여재실(如在室)’이라고 굵직굵직 한 획으로 써붙인 종이가 퇴색한 채 붙어 있어, 매화골이란 동네 이름과 함께 그윽한 분위기마저 감돌게 한다.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마주 보이고, 오른쪽엔 친척인 전경자(田慶子, 34) 씨가 사는 건너채가 있고, 바로 안채 쪽으로 잇대어 붙은 닭장엔 꼭두리와 우(禹) 순경을 맺어 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그 문제의 닭의 친구들이 한가롭게 모이를 쪼고 있다.

그 앞엔 그날의 발단을 생생하게 목격했으면서도 총 한 발 맞지 않은 누런 강아지가 귀를 늘어뜨린 채 매여 있다. 건넌 채 맞은편 그러니까 대문으로 들어서면서 왼편엔 헛간채가 있는데, 거기엔 꼭두리네가 우 순경한테 사준 오토바이가 놓여 있고, 그 옆에 간이 상수도가 있는 우물이 있는데 바로 본채 부엌 앞이다.


참사는 정오부터 카운트다운


4월26일 정오. 짜증나게 후텁지근한 가운데, 경악과 분노와 전율로 세계를 진동시킬 끔찍한 사건을 위한 카운트다운이 매곡 부락 꼭두리네 집에서 시작됐다. 궁류 지서 순경 우범곤(禹範坤, 27)은 낮 12시쯤 동거중인 꼭두리네 집으로 지서에서 돌아와 점심을 먹고 그날 밤근무에 대비하기 위해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전말순은 수돗가에 앉아 우범곤과 자기의 팬티 등 내복을 빨고 있다. 남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동거생활을 한다고 수군거리기도 하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하지만, 생각하면 꿈처럼 달콤해야 할 신혼생활. 그런데 왜 이렇게 즐겁지가 않을까. 날씨 탓일까. 우 순경이 자꾸 무섭고 정이 붙지 않는다.

꼭두리는 수첩 속에 끼워져 있는 쪽지에 낙서처럼 이렇게 써놓고 있다.


<정말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면 왜 그러나. 세월은 정말 빠른 것 같다. 내 나이 이제 26세. 여자로서 아니 처녀로서는 꽤 많은 나이인 것 같다. 어쩌지. 한 해 한 해가 지나고. 정말 나는 요즘 왜 이럴까. 정말 싫어 싫어. 왜 이럴까.>


우 순경은 꼭두리에게 툭하면 “죽여벼리겠다”며 퍼르르 화를 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색시집에 얹혀사는 데 대한 심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듯도 했다. 전말순의 고민은 다른 낙서에 이렇게 나타나 있다.


<직업의식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꼭두리는 빨래를 하면서 애가 탄다. 나이는 자꾸 먹어 가고, 동네 사람은 손가락질을 해쌓고, 빨리 결혼식을 올리자고 하면 화부터 내며 손찌검을 하고, 정도 없고…. 떳떳하게 결혼을 해서 아기자기하게 사는 사이라면, 그것도 2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혼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의 팬티를 빨아준다는 건 참으로 즐거울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꼭두리는 지금 하나도 즐겁지 않고 애간장만 녹는다.

꼭두리는 팬티를 빨아가지고 비가 올 것 같아서 밖에 널지 않고 방안으로 가지고 갔다. 빨래를 방안에 가서 아랫목 쪽 천장 가까이 벽에 쳐진 빨래줄에 널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문과 마주 보이는 쪽에 낡은 호마이카 장롱이 있다. 오른쪽엔 화장대가 놓여 있는데 그 위엔 올망졸망한 화장품 샘플들이 하나 가득 놓여 있고, 들어서는 문 위 벽엔 밀레의 ‘만종’ 복사판이 붙어 있다. 화장대 옆엔 경찰고시·일본어 교본·월간 산(山)·세계산악 명저 시리즈 비극의 낭가 파르밧·빙벽(氷壁) 같은 책들이 가지런히 쌓여있다.

 

꼭두리 전말순은 빨래를 널고 낮잠을 자는 우 순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 옆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꼭두리는 신혼처럼 깨가 쏟아지게 살고 싶었다. 장롱도 화장대도 새것으로 사다 놓고 살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무능하고 괴팍한 남자한테 붙들려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노릇이었다. 생각하면 방안에 누워 있는 이 남자가 원수 같기만 했다.


禹 순경 가슴에 앉은 파리 한 마리


그때 어디서 날아 들어왔을까, 파리 한 마리가 우 순경의 가슴께에 앉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파리를 보면 무의식중에 손이 올라간다. 꼭두리도 무의식중에 손을 들어 파리를 잡으려고 우순경의 가슴을 찰싹 때린다. 그런데 우 순경이 밉다 보니 좀 세게 때렸나 보다. 잠을 청하던 그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다.

“왜 그카노?”그는 고만한 일에도 화를 버럭 내며 그 빨갛고 무서운 눈을 부라린다. 꼭두리도 그까짓 일에 퍼르르하는 그를 보고 맺혔던 가슴이 와락 터져 “그런 걸 가지고 화를 내느냐”고 쏘아붙인다. 꼭두리는 내친김에 속에 있는 말들을 쏟아 놓는다.

 

“나를 왜 이렇게 만들어 놨느냐?”

“당신이 술만 먹으면 다 죽여버린다고 난리를 꾸미니까 동네 사람들도 다 당신을 욕한다.”

“결혼 비용도 마련하지 못하는 당신은 자격이 없다.”

“공무원인 당신이 결혼식도 않고 동거생활을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한다.”

 

우범곤도 여자가 자기의 아픈 곳을 쑤셔놓자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어떤 놈이 그따위 소릴 했느냐, 다 죽여 버리겠다.”

파리 한 마리 때문에 벌어진 싸움은 처음엔 티격태격했으나, 나중엔 언성이 높아져서, 마침 사흘 전에 부산에서 와 있던 우의 동생 범호 씨(23)가 건넌방에 있다가 나와 뜯어 말렸다.

 

오후 4시.

우범곤은 집을 뛰쳐 나간다. 그는 지서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서까지의 거리는 500m 정도로 걸어서 5분 이내. 길 양쪽의 보리며, 조그만 꽃들을 예쁘게 피운 무 장다리가 보일리 없다.

그 역시 가슴이 답답하다. 지금 당장은 돈이 없어 혼인신고만 하고 가을에 식을 올리기로 하고 같이 사는데, 무슨 문제가 그렇게 많고, 말들이 또 그렇게 많은가? 

돈이란? 명예란? 출세란? 이런 게 도대체 다 뭔가?

그는 한때 돈과 명예를 멀리하고, 뭔가를 보여주려고 자신을 타이르며 스스로 채찍질을 한 적이 있었다.


<돈이란?

생각지 말고 돌과 같이 여겨라.

여자도 술도

쓰레기같이 생각하고

오직 힘닿는 한

노력하라.

지금 이 순간 자네는 뭘 하는가.

뭘 위해 노력하고 일하는가.

10대에 배우고 20대에 시작하고

30대에 모으고 40대에 정리하고

50대에 노력하고 60대에 쉬어라.

-우범곤의 낙서 앨범에서->

 

 

(계속)

 

[ 2021-09-17, 16:1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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