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끄소! 모조리 쥑이며 내려옴더!”
1982년 4월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사건 (5)

吳効鎭(월간조선)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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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4월26일 저녁부터 27일 새벽까지 한밤 새에 경북 의령군 궁류면의 한적하던 4개 부락에서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벌어졌다. 현직 우범곤(禹範坤) 순경의 잔인한 극한난동으로 남녀노소 56명이 살해당하고 34명이 불의의 총알과 수류탄의 세례를 받고 다쳤으며 우범곤 자신은 수류탄으로 자폭, 방안에 있던 3명의 주민을 강제 동반자살했다. 월간조선은 이 끔찍한 현장에 현역 작가를 긴급 특파해 사건 내막과 경위를 샅샅이 추적, 심층취재했다.

불 켜진 집만 찾는 불나비였다


왼쪽으로 불이 켜진 집이 보인다. 이 마을에 단 한 집 사는 타성 ⑪이춘수(李春洙, 50) 씨네 집이다. 마당으로 씩 들어가 사람을 찾는다.

“주인 없소?”

이 씨는 부인, 딸 상남(相南, 10) 양 이렇게 셋이서 단란하게 TV를 보고 있다가, 주인을 찾는 소리에 방문을 연다. 우범곤은 흥분한 듯 이 씨의 가슴과 복부에 4발의 총탄을 퍼붓는다. 이 씨는 그 자리서 즉사한다. 그는 방안에서 놀라 어쩔 줄을 모르는 이 씨의 부인과 딸에게도 총을 쏜다. 그러나 그들은 다행히 부상으로 그친다. 마침 민방위 교육 관계로 부산에서 집에 온 이 씨 아들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다른 곳에서 술을 마셨기 때문에 화를 면한다.

우범곤은 이 씨 일가족에게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안겨 주고, 그 집을 나와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왼쪽 길가에 집배원 전종석 씨의 집이 나온다. 그 집 방안에선, 자기들이 고아가 된 줄을 까맣게 모르는 순자(15), 일도(10), 이규(8) 삼남매가 불을 끄고 잠을 잔다.

바로 그 아랫집은 전종석 씨의 형 전종택(田鍾宅, 40) 씨의 집이다. 전종택 씨는 집에서 자다가 총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나가지 말라는 부인을 뿌리치고 가만히 밖으로 나왔다. 조심조심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가까운 거리에서 범인이 총을 갖고 철벅거리며 내려오는 게 보였다. 그는 돌아섰다. 쫓아오는 구두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는 걸음아 나 살려라 내뛰었다. 그는 자기 집 앞을 지나 담을 타고 돌았다. 집 뒤 대나무밭에 가서 숨었다. 범인은 쫓아오다가 집앞에서 포기했다. 그의 아내는 대문 앞에서 “철컥”하고 장전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 너는 살아라. 넌 재수가 좋은 놈이다.<

부부가 살해당한 전종석 씨의 형님 종택 씨까지 죽었더라면 곤히 잠자는 삼남매의 앞길이 더욱 난감할 뻔했다.

우범곤은 매곡부락을 뒤로 하고 시장통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거기서부터 운계리 시장통까지 가자면 500m는 걸어가야 한다. 왼쪽 복숭아밭엔 꽃망울과 새잎이 봄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이제 열한 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자작일촌해서 살던 전 씨 마을을 쑥밭으로 만들어놨다. 그래도 그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


<다 죽여야 한다. 나를 욕한 놈들, 나를 아는 놈들은 다 죽여야 한다. 내일 아침엔 나를 욕하는 놈들이 하나도 없겠지.>


<목적이 없이 산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또 목적이 있더라도 그것이 낮은 것이라면 역시 위태롭다. 왜냐하면 목적이 희미하거나 있어도 낮은 것은 죄악에 가까이 서 있기 때문이다. (워너메커) -낙서 모음->


이 명언의 구절처럼 그의 인생의 목적은 높은 것이었다. 뭔가 큰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맹숭맹숭한 현실 세계에서 그렇게 큰일을 하기는 불가능했다.

가슴은 혼자서만 뜨거웠지, 아무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냉소적이었다. 궁류 사람들도 자기를 멀리하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언젠가 삼거리 간이주점 ‘해당화’에서 맥주 한 병을 마시면서 이런 불평을 털어놨다.


銃으로 해결하는 찌는 소외감


<담배 한 갑 사주는 사람 없고, 높은 사람만 사람인가 쫄병은 사람 취급도 안한다. 지서에 전화를 걸고서도 사람들이 지서장하고 차석만 찾고, 내가 전화를 받으면 수고하라는 말 한마디 없이 전화를 끊는다.>


그는 지서의 동료들과도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서장과 차석 역시 그를 좋게 보지 않는다. 시키는 일도 잘 않고, 술만 먹으면 행패를 부리는 그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마을 청년들과 어울려 놀고 싶어한다. 주먹대장 시절의 얘기, 서울에서 근무할 때의 얘기, 해병대 얘기, 자신의 사격솜씨, 운동솜씨, 이런 걸 좀 보태서 자랑한다. 그리고 술을 먹고 싶으면 언제라도 지서에 찾아오라고 술을 받아주마고 한다.

총! 총을 잡음으로써 모든 복잡한 문제가 한꺼번에 풀린다. 그렇게 아득하고 어렵게 보이던 일들이 총으로 간단하게 해결된다. 죽이고 죽으면 무엇이 남는가? 살려고 아우성을 치고, 도망가고 펄펄 뛰는 인간들이 가증스럽다. 

파리 한 마리가 일으킨 사건은, 전대미문의 사건을 장식하기 위해 자꾸만 퍼져간다.


<모든 것은 사소한 일에서 출발한다. 한 알의 조그만 씨앗이 하늘을 찌르는 쿤 나무가 되는 걸 보라. 행복도 불행도 성공도 실패도 다 그 시초는 조그만 일에 배태하고 있다.(에머슨) -낙서 모음->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에 그는 말려들고 있다. 아니, 그는 말려들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는 자기가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침착하게, 냉엄하게, 그리고 실수 없이!

그는 입만 뻥끗하면 순경 봉급이 적다고 불평을 해왔다. 그러나 그가 감명깊게 읽고 옮겨논 구절은 이렇다.


<보수가 많고 적은 것을 너무 가타지 말라! 비록 현재 보수가 적고 대우는 빈약하더라도, 그 일을 통하여 출세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수의 다소가 출세를 좌우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수입이 많은 확고한 자리에 오른다는 것도 하나의 성공이긴 하지만, 그러나 하루 아침에 그런 자리는 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박한 대우를 참고 견디는 동안, 한 달 두 달 그 자리에 가까이 가게 되는 것이다. (버틀런트 러셀) -낙서 모음->


그러나 그 자리는 한 달 두 달이 아니라 몇 년을 가도 결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가 알았음이 분명하다. 아니 그 자리는 없으며 허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했음이 틀림없다.

밤 10시 50분.


“불 끄소! 모조리 쥑이며 내려옴더!”


운계리 시장통으로 들어가는 어귀에 삼거리가 있다. 거기서 조그만 가게를 하는 최장수(51) 아주머니는 방에 불을 켜놓고 손자들이랑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무슨 고함소리와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최 씨는 창문을 열고 내다봤다. 방위병 두 명이 뛰어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불 끄소! 모조리 쥑이며 내려옴더!” 

이 말을 듣고 최 씨는 앞집에다 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앞집 양조장엔 딸 결혼 잔치를 한다고 불을 환하게 켜놓고 친척 20여 명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최 씨의 고함소리를 듣고 이집 사람들은 불을 모두 끄고 최 씨와 함께 바로 뒷산으로 도망가서 숨었다. 최 씨는 손주들을 안고 덤불 속에 숨었는데 날이 샐 때까지 그러고 있었다. 날이 새서 보니 자기들이 숨어있는 곳이 가시밭이었다. 방위병들의 덕으로 여기서 20여 명은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우범곤은 불이 꺼진 껌껌한 삼거리 가게방들 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 시장통으로 접어든다. 시멘트 바닥이라서 저벅저벅 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이곳은 1일과 6일 장이 서는 곳이다. 그날도 26일이라서 장이 섰다. 유곡면·궁류면·봉수면 이렇게 세 면 주민들이 이곳에 장을 보러 온다. 시장거리 가운데로 길게 콘크리트길이 뻗어 있고 양쪽엔 양철지붕에 기둥만이 있는 가건물이 두 줄로 기다랗게 서있다. 또 그 가건물들 옆에 가게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그러니까 관청이 있는 토곡리보다 이곳이 더 번화하고 가게도 많다. 그날밤 주민들은 장을 파하고 시장거리 끝에 있는 마을회관에서 반상회를 마친 다음 집으로 돌아가서 TV들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난리가 들이닥친 것이다.

시장통 입구에 있는 ⑫전용길(田溶吉, 37) 씨는 용출 씨의 동생이다. 장미색으로 칠한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보이고, 바로 그 안채 곁엔 술을 파는 가게가 있다. 전용길 씨는 그 가게에 딸린 방에서 꼬마 두 명하고 자고 있었다. 불을 켜놓은 채였다. 허겁지겁 들어와서 손을 잡고 빨리 도망가자는 것이었다. 수류탄이 터진 뒤 보리밭으로 도망가 숨어 있던 전용출 씨는, 죽은 사람은 죽었지만 산 사람이나 살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리나케 논틀로 밭틀로 해서 동생네 집에 달려갔던 것이다.

그래서 둘이 손을 잡고 도망을 가는데 갑자기 동생 전용길 씨의 걸음이 딱 멎었다. 불을 켜놓은 방안에 꼬마들이 자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던 것이다. 동생은 그길로 가게로 뛰어갔다. 기다리고 있었던 듯 어둠속에서 나타난 총부리가 운계리의 정적을 산산히 깨뜨린다.

“탕! 탕! 탕!”

막 가게에 들어선 정용길 씨는 가게 유리문 앞에서 총을 맞는다. 한 발은 허리를, 두 발은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아이고마, 아이고마!” 

두 번 기다란 신음소리가 음산한 밤공기를 타고 퍼져나간다. 한번 혼줄이 빠진 전용출 씨는 여기서도 기겁을 하고 자지러져서 얼빠진 사람이 돼 보리밭으로 가서 엎드린다. 그는 동생을 또 잃었다.

우범곤은 시체를 밟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서 방문을 열고 자는 아이들에게 총을 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도 그의 관심은 바로 앞에 있는 미장원에 불이 환히 커져 있고, 여러 사람이 모여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 오는 곳으로 쏠렸던 것이다.



(계속)

 

[ 2021-09-29, 15: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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