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냐 너도 살려주마. 재수가 좋구나.’
1982년 4월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사건 (7)

吳効鎭(월간조선)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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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도우러 나오다 사살된 부인


궁류약방 건너편에 있는 (19)진일임(陳日任, 48) 여인 집 안방에 있던 사람들이 이 총소리를 듣는다. 방 안엔 陳 씨와 며느리, 그리고 손녀 둘이 함께 있었다. 

며느리가 총소리를 듣고 말한다.

“무슨 일이 났나 봅니더. 피해야겠심더.”

시어머니 진 씨는 점잖게 며느리의 말을 받는다.

“아이다. 가만 있그라. 내 나가 보고오꾸마.”

시어머니는 문을 가만히 열고 밖에 나가 두리번거린다. 우범곤은 田 군을 해치고 걸어 올라가다 사람이 희끗희끗 움직이는 걸 본다. 그는 귀찮은 듯 다시 내려와 며느리와 손녀를 보호하려는 시어머니한테 정중한 밤 인사를 한다.

“탕, 탕!”

두 발의 총성과 함께 진 씨는 그 자리서 쓰러진다. 탄환 두 발이 배를 뚫고 지나간 것이다.

<안녕희 주무시소.>

진 씨는 총을 맞고 오래도록 소리를 지른다.

“아이고 사람살려, 아이고 사람 살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총을 맞는 걸 보고 그만 기절해버려 이튿날 아침까지 깨어나지 못한다.

“사람 살리라”는 소리는 애절하게 잦아드는데, 아무도 나와 보는 사람이 없다. 그도 그럴밖에. 나왔다간 틀림없이 죽고 말 테니까.

그런데도 죽음을 무릅쓰고 나오는 여자가 있다. 당직 근무를 하던 면직원 손태열(孫泰烈) 씨의 부인 (20)김월순(金月順, 28)였다. 살려 달라는 소리는 애절한데 아무도 나와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문을 열고 나서다가 기어이 총을 맞는다. 한 방은 가슴, 한 방은 머리를 관통한다. 우범곤은 쓸데없이 총알을 허비하지 않는다. 치명적인 곳을 정확하게 맞힌다.

김월순 씨 동생은 누나가 총을 맞는 걸 보고도 섣불리 나가지를 못한다. 한참 있다가 잠잠해진 뒤에 나가 보니 이미 절명한 뒤였다.

여기까지 우범곤은 한창 바빴다. 그는 등 뒤로 여기저기서 사람 살리라는 신음소리를 들으며 시장 위쪽으로 올라간다. 이때 시장 끝머리에 사는 전효순(田孝順, 33) 여인이 우범곤을 목격한다.

전효순 씨는 유리가 철썩철썩 깨지는 소리가 자꾸 나서 밖에 나가보니 불이 다 꺼져 있었다. 전 씨는 감나무 밑 돌단 틈으로 밖을 살폈다. 마을회관에 불이 켜져 있는 데다 시장의 외등 하나가 켜져 있어 저 아래쪽이 어슴프레하게 보였다. 먼저 방위병으로 보이는 청년 둘이 다급하게 자기 집 앞을 지나 위쪽으로 달려갔다.

다음에 우 순경이 나타났다. 그는 양쪽 어깨에 총을 메고 신외도(申外道, 52) 씨 집을 그냥 지나쳐서 저벅저벅 소리를 내며 역시 위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위쪽에서 총소리가 여러 발 들려왔다.

우범곤은 시장 끝에 와서 평촌리 쪽으로 가지 않고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돈다. 거기엔 아까 우체국에서 숨지게 한 교환원 박경숙 양의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숙이네는 이곳에서 6대를 살아온 집안으로 꽤 살만한 집이다. 둘째 아들인 경숙이 아버지가 집을 지키고 있는데, 그 형제들이 서울에서 번듯번듯하게 살고 있다.

<다 죽이자, 모두 죽여 버리자.>


불빛 따라 운계리로 잠입


우범곤은 이 운계리에서 처음으로 살해할 목표를 정하고 그 집을 찾아간다. 시장통에서부터 지금까지 총을 맞은 사람들은 오히려 우연히 걸린 재수 없는 사람들이다. 길가에서 불을 켜놓고 있거나 얼씬거리던 사람들이 총을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와는 달리 그는 지금 경숙이네 집을 찾아간다.

<그래, 다 죽여 버리자>

사랑채엔 불이 환히 켜져 있다. 그는 그 불빛을 힐끗 보고 지나친다.

<기다려라. 조금만 기다려라.>

그는 사랑채로 들어가는 쪽문을 지나쳐 큰대문으로 다가간다. 큰대문은 안채와 사랑채의 중간에 있고 대문을 열면 안마당이 나온다. 

안방에선 경숙 양의 부모가 불을 끄고 잠을 잔다. 그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경숙 양의 어머니 (21)최정녀(崔貞女, 40) 씨는 대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누가 왔나 보다고 생각하며 방에서 나왔다. 여기만 해도 시장통하고는 좀 외져서 총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우범곤은 대문 밖에서 총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여는 최 씨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최 씨가 풀썩 대문 앞에서 쓰러진다. 방안에 있던 주인 (22)박인길(朴仁吉, 42) 씨가 뛰쳐나오면서 괭이를 들고 달려든다.

“탕!”

박 씨를 향한 제1발은 손을 관통한다.

“탕!”

제2발은 박 씨의 머리를 정확하게 꿰뚫는다. 사랑채에서 불을 켜놓고 공부를 하던 아이들이 총소리에 놀라 어쩔 줄을 모른다. 제일 어린 (23)현숙(鉉淑, 8) 양이 앞마당 쪽으로 난 문을 연다. 우범곤은 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문 앞에 다가가 현숙 양을 쏜다. 그걸 보고 (24)미해(美海, 14) 양이 기겁을 하고 바깥쪽 문을 열고 튀어 나간다. 우범곤은 재빨리 담과 사랑채 사이에 난 작은 통로로 빠져나가 문을 열고 뛰쳐나온 미해 양에게 사격을 가해 쓰러트린다. 방안에서 잠을 자던 (25)재?(在?, 12) 군이 놀라 엉거주춤 일어나 앉는데, 가슴과 머리를 쏴 그 자리서 쓰러지게 한다.

<다 죽였구나! 그래 다 죽였어.>

허탈한 한숨이 우범곤의 잇사이로 조용히 빠져나온다.

정말 우범곤은 고향에 있는 박인길 씨 일가족 6명 모두의 생명을 몰살했다. 단지 혼자 남은 둘째 딸 진숙(眞淑, 18) 양은 부산에서 여공으로 취직해 있다가, 이 참변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말 한 마디 못하고 기절했다.

우범곤은 박인길 씨 집 뒤편에 있는 이장 장장수 씨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장은 미장원에 있다가 뛰쳐나와, 닭장 속에서 목숨을 건졌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방안에선 그의 아내와 아이들만 자고 있었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이런 소리가 들렸다.

“아줌마, 문 좀 여소. 잠깐이면 됩니다.”

잠깐이면,

그러나 이장 부인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오냐 너도 살려주마. 재수가 좋구나.>

그는 번거로운 것이 싫다. 잠시 후 발길을 돌린다. 그는 갔던 길을 다시 돌아나와 세 갈래 길에서 잠시 망설인다.

<평촌으로 그냥 갈까? 아냐 목이 말라>


“사이다나 한 병 주이소”


그는 갈증을 느끼고 다시 시장통으로 꺾어 든다. 

전효순 씨는 그때 앞집 처녀를 깨워 가지고 와서 함께 담밑에 서 있었다. 우범곤은 아까처럼 철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시장통으로 내려간다. 그는 신외도 씨 집 근처에 가서 옆골목으로 들어가 뭐라고 중얼거린다.

그때 그는 불을 끄고 자는 신외도 씨 집 옆 창문을 두드렸다. 방안에서 신 씨의 부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고?”

그는 천연스럽게 대답한다.

“내 우 순경임더.”

“우 순경이 우짠일여?”

“소란해서 나왔심더. 간첩 들왔심더. 사이다 한 병 주이소.”

신 씨 부인 손원점 여인은 아무 생각 없이 방에 불을 켜고 가게로 나가 문을 연다. 우범곤도 옆쪽 창문에서 가게 쪽으로 돌아온다. 손 씨는 사이다가 없어 콜라를 한 병 따가지고 컵에 따라 준다. 

이때 신외도 씨네 집 바로 아랫집 웃방에선 방신석(方神錫) 아주머니의 아들 (26)김규동(金柱東, 18·의령종고2)이 잠을 자다 일어나 밖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김 군은 얼마 전 학교에서 1등을 해서 장학금 9만 5340원을 타가지고 와서 어머니한테 이랬다.

“배가 고파 찬물을 먹고 설사를 해가며 공부를 했는데, 어무이예 1등을 하니 배 아픈 게 간 곳이 없네.”

 김 군은 교복도 교런복도 남의 것을 얻어 입었다. 그러자니까 늘 해진 옷만 입고 다녔다. 특히 천이 튼튼하지 못한 교련복은 이제 너무 해져 입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1만5000원을 주고, 큰맘 먹고 교련복을 하나 맞췄다. 그것도 3학년 때까지 입겠다고 풍족하게 맞추었다. 그날 그 옷을 찾아가지고 와서 입어보며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어무이예, 나도 새 옷을 입었네.”

아침 7시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가 저녁 7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자니, 몸이 너무 피곤해서 공부를 많이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의령읍 학교 근처에 4만 원짜리 하숙집을 구해 놓고, 내일 그 하숙에 들어가려고 짐을 싸놓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이런 난리가 일어난 것이다. 김 군은 윗집 신의도 씨 가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가만히 문을 열고 나갔다. 살금살금 다가가 보니, 우 순경이 거기 있지 않은가. 그는 우 순경에게로 뛸 듯이 달려들었다. 

“우 순경이네!”

우범곤은 그때 신의도 씨의 부인이 따라준 콜라를 반 컵쯤 마시고 있었다. 우범곤은 반가워 달려드는 아이에게 총구를 겨눈다.

“뭘 봐 임마.”



(계속)

[ 2021-10-08, 11:4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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