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권순일(權純一)을 위한 조지훈의 지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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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조론(志操論)
  
  지조(志操)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명리(名利)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와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 있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 곤고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안심하고 그를 믿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생각하는 자이기 때문에 배신하는 변절자를 개탄하고 연민하며, 그와 같은 변절의 위기의 직전에 있는 인사들에게 경성(警醒)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는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後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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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관 권순일(權純一)의 이름 한자를 보고 불현듯 언젠가 감명깊게 읽었던 조지훈의 명문 지조론(志操論) 이 생각났습니다. 글이 너무 아름답고 고귀하여 첫문단 만큼은 외웠고 오래도록 뇌리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권순일은 한때 유혹에 넘어가 불의와 타협하여 천추에 오점을 남겼는데, 스스로 이겨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시 돌이키지 않으면 영원히 죽고, 다시 돌이키면 영원히 사는 법입니다. 예수를 판 유다는 돌이키지 않아 영원히 망했고, 충신의 아내와 간음하고 죄를 은폐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 다윗 왕(王)은 한번 돌이킴으로써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그 대법관 직을 팔아서까지 무죄를 받도록 해주었는데, 이제와서 그 자가 대법관 권순일을 오히려 국민 5적으로 선포하였으니 권순일의 심경은 도대체 어떨찌 한편 가련하게 여겨집니다. 사람의 이름은 놀라운 것입니다. 권순일은 이름 그대로 순일한 정신을 회복하여 다시 사는 길을 찾게 되길 염원해 봅니다.
  
  필자는 꽃다운 나이 강원도 철원 휴전선을 지키며 군복무 중에 전투복 호주머니 쏙 들어가는 작은 사이즈의 성경과 채근담(삼중당 문고판)을 항상 지니고 다녔습니다. 틈틈이 읽은 채근담 중에, “천하를 뒤덮는 공도 교만할 긍(矜) 자를 당하지 못하고, 세상을 뒤덮는 죄과도 돌이킬 회(悔) 자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 “도리를 지켜 살면 만고에 의롭고, 도리를 저버리면 만고에 처량하다” 라는 내용이 기억납니다.
  
  
[ 2021-10-08, 12:2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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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idn     2021-10-09 오후 12:36
중요한 때에
멋지고 용감한 법관들이 행동한다면
대한민국은 곧바로 선진국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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