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을 아끼자. 아직도 죽일 놈들이 많으니까’
1982년 4월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사건 (8)

吳効鎭(월간조선)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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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실루엣으로 火藥의 연기


김 군은 총구가 자기한테 오는 걸 보고 놀라서 달아난다. 우범곤은 달아나는 김 군을 쫓아가 또 한 방을 날린다. 탄환은 정확하게 김 군의 목을 뚫는다. 김 군은 총을 맞고도 10여 미터를 뛰어가서 시장 가건물 가운데로 난 시멘트 길바닥에 쓰러져 숨을 거둔다. 새로 맞춘 교련복을 입은 채.

이를 지켜본 신 씨 부인 (27)손원점(孫元點, 51) 씨가 세상모르게 순진하게도 우순경을 책망한다.

“그게 무슨 짓이고!”

“무슨 짓 좋아하네.”

우범곤은 다시 가게로 들어와 손 씨의 가슴을 향해 총알을 날린다. 손 씨가 그 자리에서 푹 쓰러진다. 

방 안에 있던 남편 신의도 씨는 우범곤의 갑작스런 태도의 돌변에 놀라 반사적으로 후다닥 일어나 불을 끄려고 한다. 그러자 우범곤은 방문을 열고 방 안에다 총을 쏜다. 신 씨는 이때 총알 세 방을 맞았다. 한 발은 왼쪽 정강이를 꿰뚫었고 나머지 두 발은 귀와 가슴을 스쳤다. 그는 총을 맞고서도 얼른 마루로 나와, 웃방으로 해서 밖으로 뛴다. 방 안에선 신 씨의 어린 두 딸 (28)창순(昌順, 13) 양과 (29)수정(守貞, 10) 양이 자다 말고 총소리에 놀라 깨어나선 어쩔 줄을 모른다. 우범곤은 이 아이들에게도 총구를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총알은 두 어린 것들의 겨드랑이께를 각각 관통해 어린 생명을 뺏는다.

 전효순 씨는 자기집 돌담 뒤에서 앞집 처녀와 함께 우범곤이 신 씨 집에서 총질을 하고 나오는 걸 목도한다. 그가 가게문을 나올 때 장터 마당의 외등 불빛에 역광으로 비친 화약 연기가 비정하도록 아름다운 실루엣으로 밤하늘에 퍼진다. 저벅저벅 우범곤이 그들 앞을 지나간 뒤에 상긋한 화약 냄새가 그들의 콧속으로 스며든다.

신외도 씨는 그길로 집을 빠져나와 실봉산 밑 구판장 앞에 가서 애끓는 소리를 질렀다.

“동네 사람들아, 우리 집사람 총 맞아 다 죽었다. 전화 연락 좀 해도라. 우 순경 요놈의 새끼가 우리 식구 다 쏴 죽였다.”

신 씨의 애끓는 소리는 되풀이해서 외쳐진다. 동네 사람들은 다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선뜻 그한테 달려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깜깜한 방안에서 자석식 전화만 열심히 돌린 한 주민은 말했다.

“나갈 수 없능기라. 비는 슬슬 내리지, 불은 못 켜고, 그 깜깜한 밤에 어디서 들이댈 줄 알고, 무섭아 우찌 나가노.”

우범곤은 시장 골목을 빠져나와 불이 환히 켜진 마을회관과 운계 정미소를 지나친다.


살인자가 가는 봉황교엔 맑은 물이


평촌리 쪽에서 흘러내리는 유곡천이 쏴아 하고 물소리를 낸다. 그는 내 위에 걸린 봉황교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평촌으로 가는 길이다. 길로 꺾어 돌았는데 왼쪽 유동숙(柳東淑) 씨 집 건너채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게 보인다. 그는 텃밭 사이로 난 길로 들어서서 불빛을 따라간다.

텃밭에는 상치, 과, 시금치가 무르녹은 봄을 만나 무서운 생명력으로 당을 치받으며 자라나고 있다. 

우범곤은 유동숙 씨 집 건ㄴ채에 가서 점잖게 말한다.

“주인 없소?”

방에서 TV연속극 ‘새아씨’를 보던 부인 (30)설순점(薛淳點, 49) 씨가 주인을 찾는 소리에 문을 풀썩 열고 나온다.

“탕!”

설 씨를 쓰러뜨린 우는 방으로 간다. 딸 (31)유순자(柳順子, 20) 양이 놀라 엉겁결에 방에서 벌떡 일어난다.

“탕!” 

순자 양은 문턱에서 마루로 쓰러진다. 순자 양의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솟구쳐 마루를 타고 부뚜막으로 흐른다.

우범곤은 조그만 감정의 동요도 없이 겁에 질린 작은 딸 성희(11) 양에게 총구를 들이댄다.

“탕!”

그는 이 집에서 단 3발의 탄환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총알을 아끼자. 아직도 죽일 놈들이 많으니까.>

그는 다시 텃밭으로 난 길을 빠져나와 평촌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이 집 주인 유동숙 씨는 시장 골목에서 난리를 당한 유동순, 유동근 씨의 형이다. 그는 이런 끔찍한 앙화를 당하기 전에 건너채에서 아내, 딸 둘과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마감뉴스와 날씨를 함께 봤다. 그는 장터에서 잡화상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가게 방으로 가 잠을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앞에서 총소리가 났다. 간첩인가 했다. 그는 겁이 나서 나가지도 못하고 문 창살 사이로 밖을 내다봤다.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나고 “내 죽는다” “사람 살려” 하는 신음과 아우성이 들렸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지옥같았다. 총소리가 멎자 그는 밖으로 나갔다. 작은집(유동근)에서 총소리가 난 것 같아 가서 보니 제수씨(이경연)와 조카딸(유점순)이 총을 맞고 대문 앞에 엎어져 있었다. 그는 동생 유동근 씨와 함께 총 맞은 제수와 조카딸을 4.5톤 트럭에 싣고 다리께까지 갔다.

 거기에는 또 바로 밑 동생(유동순)이 총 맞은 제 아내(박갑조)를 안고 몸부림을 치며 울고 있었다.


주인 잃은 염소가 슬피 울다


총 맞은 사람들을 차에 실어 보내고 있는데 조카 유현대 씨가 “큰집에도 다 죽었심더”했다. 그 말을 듣고 허둥지둥 집으로 와서 보니 아내는 마당에, 딸은 문앞 마루에 죽어 넘어져 있었다. 작은딸 성희가 없어져서 어디가 죽었나 하고 왔다갔다 하는데, 그제서야 귀가 먼 노모가 방에서 나왔다. 노모 강점순(姜點順, 74) 할머니는 귀가 먼 덕에 목숨을 부지한 것이다.

작은딸 성희 양은 방안에서 총을 맞고, 언니를 부르며 울고 있었다. 이웃집 서진구 씨가 총소리가 끝난 다음에 와서 성희 양을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는 임시로 응급처치를 한 뒤 성희 양을 다리께까지 업고 가 병원으로 보냈다. 성희양 은 간신히 살아났다.

이로써 유동숙 씨 3형제는 세 집 모두 재앙에 휘말렸다. 큰형 유동숙 씨는 아내와 딸을 잃었고, 둘째 유동순 씨는 아내를 그리고 막내 유동근 씨 역시 아내와 딸을 잃었다.

우범곤은 유동숙 씨네 집 앞에 쌓아 놓은 블로크 더미를 지난다. 다시 쏴아 하고 들려오는 시냇물 소리. 왼쪽 보리밭엔 보리 이삭이 예쁘게 괘었고 길가 뽕나무엔 아른아른한 연초록의 새잎이 돋았다. 거기서 3백 미터쯤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길가에 외딴집이 있다. 평촌 이발소 주인 곽기달(郭基達, 43) 씨 집이다. 여기는 행정구역으론 평촌리지만 본동네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그 집 방안에선 곽씨 내외와 애들 셋이 함께 있었다. 우범곤은 불이 켜진 길가 집을 거침없이 씩 들어가서 문을 열고 총을 쏜다. 바로 집 뒤로 흐르는 시냇물의 쏴아 하는 소리가 어두운 밤하늘로 요란히 퍼지는 카빈 총소리를 삼켜버린다. 이 집에서 (32)郭基達 씨는 아들 (33)주일(周一, 14) 군을 끌어안고 함께 숨졌고 부인 박순득(朴順得, 41) 씨는 오른쪽 귀밑과 턱밑에 관통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는 중상을 당했으며, 딸 도희(都姬, 12) 양은 오른쪽 어깨에, 작은아들 정일(10) 군은 오른쪽 턱에 총상을 입었다.

도희 양은 자다가 날벼락을 맞고 깨어 방바닥이 피로 흥건한 걸 알았다. 도희 양은 우선 피를 닦아야 되겠다고 걸레질을 하다가 다시 정신을 잃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이튿날 아침에야 병원으로 실려갈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짐승들은 총 한 방 맞지 않고 살아남아, 암소 한 마리와 염소 5마리가 아침이 되자 밥을 달라는 울음으로 죽은 주인을 찾았다.

우범곤은 곽 씨네 집에서 일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나와 씩 웃는다.

<냉정하자, 들뜨지 말자>

 

 

화가 났을 때는 열까지를 세어라.


약한 의지력 이것이 큰 장애물(障碍物)이다.


冷眼觀人(냉정한 눈으로 남을 보고)

冷耳聽語(냉정한 귀로 말을 듣고)

冷心思理(냉정한 마음으로 이치를 생각하라)


-이상 세 구절 낙서 모음에서-

 

 

(계속)

 

[ 2021-10-26, 16: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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