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을 도와준 경찰의 우왕좌왕
1982년 4월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사건 (9)

吳効鎭(월간조선)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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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서장과 次席은 釜谷온천으로


그동안 경찰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 문제의 해답을 위해 우선 그날 오후 4시 궁류 지서 앞으로 시간과 장소를 되돌려 놓아 본다.

 

오후 4시, 궁류지서 앞.

지서장 허창순(許唱淳) 경사, 차석 김진우(金鎭宇) 경장, 동네 유지 장한수, 신태현 씨 그리고 평촌부락 뒤 댐 공사장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부산 소재 미성건설 현장 감독 김성남 씨, 이렇게 5명을 태운 승용차 한 대와 택시 한 대가 지서를 떠나 봉수재 쪽으로 달려간다. 의령과는 반대 방향으로 아직 도로가 개통되지 않아 버스도 다니지 않는 길이다. 그들은 공사감독 김성남 씨가 스폰서가 돼서 거기서 40km 떨어진 부곡온천으로 가고 있다. 아마 누가 그때 경찰관들에게 “왜 근무시간에 온천엘 가느냐”고 말했더라면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면서 주제넘다고 큰 책망을 받았을 것이다.

 

 밤 10시, 토곡리 마을회관 안.

우 순경이 지서 앞과 우체국에서 사람을 쏴 숨지게 한 뒤 매곡부락으로 가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은 회관에서 반상회를 끝내고 환타를 섞은 소주를 마시며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군청 민방위 과장이 내놓고 간 5천원으로 소주 한 되와 환타를 사다 섞어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이출수(李出洙, 51) 씨 부인 김정화(金貞華, 47)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달려와 “지서 쪽에 난리가 났다”며 “빨리 나오라”는 시늉을 한다. 소주를 마시던 이출수 씨는 큰길을 피해 전화가 있는 토곡리 이장 신태영(申泰榮, 47) 씨 집으로 달려가서 자석식 전화를 돌린다.

 

지옥도와 같은 사건이 터지기 직전 이장 신 씨는 서울에서 걸려온 개인적인 전화를 받았다. 바로 그 시간에(10시51분부터 56분까지) 교환양 두 명이 다 피살된 교환대의 코드를 뽑을 수가 없었다. 통화가 끝난 코드가 그대로 꽂혀 있었다.

달려온 이출수 씨는 전화를 열 번쯤 돌린다. 그러자 수화기에서는 “의령 교화입니다”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 씨는 “경찰서를 바꿔달라”고 해서 의령 경찰서 상황실에 사건을 신고한다. 밤 10시34분. 사건이 일어난 지 거의 한 시간이 다 돼서였다.

 

그날 오후 저녁 때 의령군 민방위과장 신우환(辛宇煥, 44) 씨는 반상회 지도차 궁류에 와 있었다. 그는, 반상회에 참석하고 나서 궁류면 사무소로 갔다가 갑자기 총소리를 들었다. 곧 민방위차를 타고 거기서 3km 떨어진 이웃 송산(松山) 우체국에 가서 의령군 내무과장에게 전화러 사건 발생을 알린다. 의령군청 자료에 따르면 辛 과장이 박균제 내무과장에게 사건을 알린 것이 10시2분, 박 과장이 의령경찰서 정보과 주 형사에게 이 사실을 신고한 것이 10시 5분, 이어 군수에게 보고한 것으로 돼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이출수 씨의 신고보다 29분이 빠르다. 그러나 이 군청자료는 의령경찰서 상황실 일지에는 기록돼 있지 않았다. 신문에 보도된 대로 이 사건이 기록된 상황일지의 용지가 3장 뜯긴 것이 발견됐다. 그러나 합동조사반은 찢긴 종이를 대조해봤지만 시간 조작의 혐의는 찾을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먼저 죽을 것부터 겁내는 출동 경찰


밤 11시, 부산.

최재윤(崔在潤) 의령 경찰서장은 다음 날인 27일 오전 10시에 열릴 경찰서장회의에 참석차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 자택에 가 있다가 의령 경찰서 상황실로부터 사건 보고를 받는다. 최 서장은 택시를 전세내어 사건 현장으로 달린다.

합동조사반이 발표한 최 서장의 피의사실에는 ‘26일 6시 소속 차상급자인 경남도경국장의 승인 없이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명백히 쓰여있다. 궁류지서장의 피의사실도 그렇다.

 

밤 11시, 봉수재.

밤 10시 50분쯤 우범곤이 운계리 시장통에서 난리를 꾸밀 때, 시장통에 사는 유영환(23) 씨와 김진철(19) 군이 뒷길로 빠져나와 오토바이를 타고 이웃 면(面) 봉수(鳳樹)지서(궁류지서 북동쪽 약 4km)로 신고를 하러 가다가 봉수재 고개에서, 온천장에서 쇼 관람과 목욕을 마치고 택시로 돌아오던 지서장 일행을 만난다. 지서장은 “그럴 리가 있느냐”면서 현장으로 가지 않고 그냥 지서로 돌아가자고 한다. 그들은 그냥 돌아온다. 합동조사반 조사에 따르면 허 경사는 지서에 돌아와서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못하고 죽음이 두려워 범행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숨어다닌 것으로 돼있다.

 

밤 11시 40분, 궁류지서.

그때, 의령경찰서 신현기(申鉉基) 경무과장이 시내에 근무하던 전경대원 9명을 이끌고 현장에 도착해(밤 11시 40분) 상황파악에 나선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당시 의령서 상황실장 문진만(文鎭萬) 씨는 12시에 현장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경무과장으로부터 받았으며, 21명의 대원을 이끌고 앰뷸런스를 타고 출동한 김영석(金永錫) 보안과장으로부터는 다시 40분 후인 12시 40분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와는 달리 다른 경찰조사는 먼저 출동한 申 과장이 선발진압부대를 이끌고 현장까지 인솔하는 과정에서 최소한 40분 이상 지체했고, 일사불란한 지휘를 하지 못해 오히려 늦게 출발한 김영석 과장의 후속지원부대보다도 늦게 현지에 도착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여튼 이들 경찰 병력이 지서에 도착한 뒤에야 허창순 지서장이 모습을 나타냈는데 그는 “내가 여기 있었더라면 아마 제일 먼저 죽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해서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12시 10분에 궁류지서 안승섭 순경이 ‘현재 사망 4명’이라고 본서에 보고할 정도였다. 범인 우범곤은 그 시간에 적어도 30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았었다.

상황파악을 정확히 못했더라도 경찰이 할 일은 많았다.

가장 손쉬운 방법으론 사이렌을 울릴 수도 있고, 전화를 복구해서 주민을 소개 대피시킬 수도 있었다. 또한 주민 말처럼 ‘보통 때는 때 없이 불어제껴서 시끄럽게 하던’ 그 동네마다 설치된 마이크를 통해 주민들을 대피시킬 수도 있었다. 그리고 우선 예비군 동원도 생각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왕좌왕하면서 다리 밑에서 매복이나 하고 지서 근처 도로를 차단한 뒤 겁에 질려 왔다갔다 하는 주민들 검문이나 하고 있었다.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경찰의 우왕좌왕은 우범곤이 사상 최대의 범행을 수행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계속)

 

[ 2021-10-27, 12: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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