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카메론의 전생 추적…핵심 기억의 불일치(不一致)
前生을 기억한다는 아이들 (7) - 여러 번의 전생을 기억하는 사례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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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론의 가족과 터커 박사 등은 카메론이 전생에 살았다고 주장한 바라섬을 방문한 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로버트슨이라는 이름의 가족이 살았다는 집을 특정할 수 있었고 이는 카메론이 설명한 것과 일치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카메론의 전생이 검증된 것은 아니었다.


계속 취재에 나선 것은 방송국이었다. 방송국은 족보학자 한 명을 찾아 로버트슨의 가족을 추적했다. 이 족보학자는 글래스고에 살던 로버트슨이라는 가족을 찾아냈다. 이들 가족은 약 20년 전 바라에 집을 한 채 보유하고 있었다. 가족 중 질리언이라는 여성을 찾을 수 있었고 그는 어렸을 때 바라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었다고 했다.


카메론과 어머니 노마는 질리언을 찾아갔다. 질리언은 바라에서 가족끼리 여름휴가를 보냈었다며 카메론이 말한 것과 같은 색의 강아지를 키웠었다고 했다. 그러나 카메론이 자신의 아버지 이름이라고 한 셰인 로버트슨이라는 이름의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제임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명 있기는 했지만 둘 다 교통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고 했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차에 치여 숨진 사람은 없었다고도 했다. 또한 카메론은 자신이 어렸을 때 죽었다고 했는데 어렸을 때 숨진 아이도 없다고 했다.


카메론의 기억이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어머니 노마는 아이가 바라를 방문한 뒤 치유가 된 것 같다며 기뻐했다. 이전보다 훨씬 침착해졌다고 한다. 카메론은 그의 가족이 바라에 없어서 슬프다고 하더니, 그래도 살던 곳에 가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터커 박사는 노마는 기뻐했지만 자신은 찝찝했다고 했다. 그는 회의론자들은 이 사례를 보며 아이가 바라가 나오는 TV를 보고 가상의 삶을 지어낸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했다. 터커 박사는 그러나 이들이 감정적인 요소를 무시하고 있다며 카메론이 그냥 이런 이야기를 다 지어낼 이유가 없다고 변호했다.


그는 아이들이 가상의 시나리오를 실제 일어난 일로 받아들이는 것을 조사하는 체크리스트가 있다고 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거나, 이중 자아(自我)를 갖고 있다거나 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라고 한다. 어린 아이일수록 점수가 높게 나오며 12점 이상을 받으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진단한다고 했다. 그런데 카메론은 1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터커 박사는 전생을 기억하는 다른 아이들 역시 평균적으로 점수가 일반인보다 낮게 측정된다고 했다.


영국 방송국에서 카메론의 다큐멘터리를 내보낸 뒤 많은 사람들이 터커 박사에게 연락을 해 ‘셰인’이라는 이름에 대한 의견을 보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등에서 쓰인 게일어(語)에서 션(Sean)은 ‘나이가 많은’이라는 뜻이라는 이야기를 알려주기도 했다. 바라섬 인근에 살았던 한 영국 여성은 그의 가족이 아버지를 ‘션’으로 불렀다며 실제 이름은 전혀 달랐다고 했다. 터커 박사는 션이 셰인과 발음이 얼마나 비슷할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꽤나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터커 박사는 다만, 로버트슨이라는 성(姓)을 가진 가족의 이야기와 카메론의 이야기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셰인이라는 이름을 두고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이번 사례에서 찾아낸 유일한 로버트슨이라는 가족은 카메론이 말한 전생과 어느 정도는 일치했지만 교통사고 등 핵심 기억이 사실과 달랐다. 터커 박사는 이 이름을 가진 가족을 더 찾지 않고 조사를 너무 빨리 끝낸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또한 카메론이 셰인 로버트슨이라는 이름을 꺼낸 것은 그가 전생의 이야기를 하고 난 얼마 후였는데 잘못된 이름을 기억 속에 새긴 것일 수 있다고 했다.

 

터커 박사는 또 하나의 가설(假說)을 내놨다. 카메론이 두 차례의 전생의 기억을 혼동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라에 대한 기억은 로버트슨 가족으로 살 때의 전생, 아버지의 교통사고는 다른 전생에서 일어난 것일 수 있다고 했다. 터커 박사는 드물기는 하지만 여러 차례의 전생을 기억한다는 아이들의 사례가 있다고 했다.


그런 사례 중 하나는 작고한 이언 스티븐슨 박사가 연구한 사례인데 인도에 살던 스완라타 미시라라는 소녀의 이야기다.


스완라타는 세 살쯤 됐을 때 가족과 함께 인도 중부 카트니 지역을 여행하다 처음으로 전생 이야기를 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였다고 한다. 이때 아이는 트럭 운전사에게 “우리집 쪽으로 가는 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후 함께 여행을 하던 사람들끼리 차(茶)를 마시고 있었는데 스완라타는 근처에 있는 우리집으로 가면 훨씬 더 좋은 차를 마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전생 이름이 비야였고 가족의 성은 파탁이었다고 했다. 살던 집에는 방이 네 개가 있었고 문은 검정색이었다고 했다. 문 앞에는 창살 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다고 했다. 집 근처에 용광로 같은 게 있었고 기찻길이 보였다고 했다. 기찻길 뒤로는 여자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었다고 했다.


스완라타의 가족은 여러 차례 이사를 하며 살았지만 카트니 지역 반경 160km 이내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스완라타는 10세가 됐을 때 카트니에서 온 사람 한 명을 만났고 그를 전생에서 본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례를 전해들은 조사단은 추적에 나섰고 비야라는 인물의 삶이 스완라타가 말한 삶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비야 파탁은 스완라타가 태어나기 9년 전에 사망했다고 한다.


스완라타는 비야 파탁의 가족과 그가 결혼한 상대의 가족들과 만났다. 조사단은 이들의 정체를 숨긴 채 만남을 주선했는데 스완라타는 이들을 알아봤다고 한다. 스완라타는 이후 비야가 살던 집을 방문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더니 그가 살 때와 달라진 것들을 하나둘씩 말하기도 했다. 스완라타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비야의 형제들과 자식들을 만났고 이들로부터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고 한다.


스완라타는 다섯 살쯤 됐을 무렵부터 춤과 노래를 동시에 하며 놀았다고 한다. 부모는 이런 춤을 본 적이 없었고 노래 가사가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스완라타는 이 노래 역시 또 다른 전생에서 배운 것이라며 비야가 죽고 나서 지금의 삶을 살기 전에 잠깐 살았던 삶이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은 방글라데시인 실헷이라는 지역에 살던 캄레시라는 소녀였다고 했다. 스완라타가 부른 노래는 그가 사용하는 힌디어가 아니었다.


이언 스티븐슨 박사의 동료인 팔 교수는 스완라타가 부르는 노래를 여러 차례 들어봤다. 들어본 결과 실헷에서 사용되는 벵골어로 판단됐다. 팔 교수는 녹취를 풀기 위해 계속해서 스완라타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 인도의 시인(詩人)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詩인 것이 확인됐다(注:그는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팔 교수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설립한 연구소를 찾아가 아이가 부르는 노래가 나오는 공연을 봤다. 팔 교수는 스완라타가 부른 노래와 일치했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가 부른 노래의 가사가 원곡과 비슷하긴 하지만 조금 차이가 있었다고 했다. 스완라타는 전생에서 마두라는 이름의 친구로부터 이 노래를 배웠다고 했다고 한다. 조사팀은 스완라타가 잘못된 버전을 배운 것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스완라타가 자신의 전생 이름이었다고 하는 캄레시나, 친구라고 한 마두와 같은 이름은 벵골어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이름이라고 한다. 스완라타는 벵골어를 실제로 하지는 못했고 춤과 노래를 함께 하지 않는 이상 노래만을 따로 떠올려내지는 못했다. 연구팀은 벵골인이 아닌 가정에 살던 아이가 벵골어를 쓰는 친구로부터 노래를 배운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언 스티븐슨 박사는 스완라타가 지금 생에서 이 노래를 배웠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판단을 내렸다. 스티븐슨 박사는 스완라타와 40년 가까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 연락은 스완라타가 그의 아들의 결혼식에 스티븐슨 박사를 초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짐 터커 박사는 이런 사례를 소개하며 카메론의 사례도 기억이 뒤섞인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전생이라는 것의 기억은 시간대별로 남아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이언 스티븐슨 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러 차례의 전생을 경험했다고 하는 아이들의 경우 첫 번째 삶부터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두 번째 전생에 대한 기억은 첫 번째보다 흐릿하며 구체적인 내용을 많이 떠올려내지 못한다고 했다. 이언 스티븐슨 박사는 이런 사례들을 많이 연구했는데 네 건의 흥미로운 사례가 있었다. 전생의 가족을 찾아보니 전생을 기억한다는 죽은 대상자 역시 살아있을 때 자신이 전생을 기억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다른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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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9, 01: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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