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을 잃은 아버지, “(죽은) 아이들이 쌍둥이로 환생했다”
前生을 기억한다는 아이들(18) - “지금의 아버지가 살해당한 나를 현생으로 데려왔다”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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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전생을 기억한다는 태국과 영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하겠다.


봉쿡 프롬신이라는 남자아이는 1962년 2월 12일 태국 나칸사완 지역의 돈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파몬 프롬신은 마을 학교 교장이었고 어느 정도의 교육은 받았지만 생활형편은 그리 좋지 않았다.


봉쿡은 말을 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전생 이야기를 꺼냈는데 자신이 살던 돈카로부터 9km 떨어진 후아타논이라는 곳에서 왔다고 했다. 자신의 과거 이름은 참랏이었다며 부모의 이름도 떠올려냈다. 과거 칼과 자전거와 같은 물건을 갖고 있었고 가족은 소 두 마리를 키웠다고 했다.


그는 참랏이라는 인물이 두 남성에 의해 살해를 당했다고 했다. 그가 살던 후아타논 지역에서 마을 행사가 열렸는데 인근에서 수차례 칼에 찔려 숨졌다는 것이었다. 이 두 남성이 손목시계와 목걸이를 훔쳐갔다고도 했다. 이 사례의 놀라운 점 중 하나는 두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한 것이었다.


봉쿡은 참랏이 살해된 장소 인근에서 7년간을 머물렀다고 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육체 없이 영혼으로 머물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날 현생의 아버지가 그를 찾아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봉쿡의 아버지는, 부인이 봉쿡을 임신한 얼마 뒤 후아타논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열리는 한 회의에 참석했었고 비가 내리는 날이었었다고 했다.

 

봉쿡의 어머니 사와이 프롬신은 봉쿡을 임신하기 얼마 전 후아타논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죽순(竹筍)을 구하기 위해서였는데 정확히 임신 얼마 전에 일어난 일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봉쿡의 아버지 파몬은 후아타논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을 몇 명 알고 있었다. 이언 스티븐슨 버지니아대학교 정신과 의사는 이들 부모를 인터뷰했는데, 이들은 당시까지만 해도 18세의 나이에 살해당한 참랏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후아타논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소식이 이들 가족이 살던 돈카 지역으로도 알려졌을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살인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기 때문에 일일이 기억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참랏이 숨진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은 봉쿡이 이야기를 꺼낸 10년 전의 일이었다.

 

봉쿡의 이야기는 참랏의 가족에게도 알려졌다. 봉쿡이 약 두 살 반쯤 됐을 때였는데 참랏의 가족이 봉쿡이 사는 돈카로 방문했다. 이후 봉쿡은 부모와 함께 참랏이 살던 후아타논에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봉쿡이 말한 모든 내용들이 사실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내 직접 조사에 나섰다고 했다. 참랏에 대한 부검 결과서가 없어 정확한 살해 방식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두 명의 살인자 중 한 명이 도주했고 다른 한 명은 체포돼 재판을 받은 것을 확인했다. 재판을 받은 피의자는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당시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관들을 만나봤다고 했다. 이들은 봉쿡이 주장하는 말이 당시 살인사건 때 일어난 일과 일치한다고 했다. 봉쿡은 살인자들의 이름도 말했었는데 이 역시도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봉쿡의 사례는 1965년 3월 태국의 여러 신문에 보도됐다. 나콘사와 지역 국립병원에서 근무하던 스티븐슨 박사의 동료 소폰 낙파이라즈 박사가 우선 조사에 나섰고 스티븐슨 박사는 1966년부터 이에 참여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1980년까지 이들 가족에 대한 조사를 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에 따르면 봉쿡은 전생을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특이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봉쿡은 한창 전생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더러운 행동을 많이 했다고 한다. 손을 제대로 씻지 않았고 부모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도 하더란 것이다. 또한 부모가 평소 먹지 않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며 떼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참랏의 가족은 라오스인이었다고 한다. 태국 사람들은 라오스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청결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스티븐슨 박사는 설명했다. 또한 봉쿡이 말하는 이상한 단어들은 라오스어였던 것으로도 확인됐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 사례가 강력한 ‘제노글로시(xenoglossy)’의 사례, 즉 배운 적 없는 외국어를 할 줄 아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봉쿡의 다른 가족이 라오스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데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를 배운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했다. 또한 돈카 지역에는 라오스어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봉쿡은 찰진 밥을 비롯해 그의 가족이 평소 먹지 않는 음식을 좋아하기도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런 식습관 역시 라오스계인 참랏의 가족과 더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봉쿡은 살해를 당한 참랏의 복수를 꼭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하기도 했다. 작은 막대기를 들고 가상의 적을 때리는 훈련을 혼자 하곤 했다고 한다. 그는 막대기를 휘두르며 살인자들의 이름을 외치기도 했다.


다른 여러 사례와 마찬가지로 봉쿡 역시 자신은 성인(成人)이지만 원하지 않게 아이의 몸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태국의 아이들은 일반 칫솔을 가지고 양치를 하지 않는데 봉쿡은 칫솔로 양치를 했다고 한다. 하루는 이발소에서 면도를 해달라고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고 조금 더 성숙한 여성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부모는 이를 불안하게 생각했다. 하루는 한 여성이 봉쿡의 집에 머물게 됐는데 봉쿡이 자꾸 치근덕거리는 바람에 기존 일정보다 먼저 떠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봉쿡은 어떤 날에는 갑자기 또 승려가 되고 싶다고 했다. 승려 옷을 사달라고 하더니 승려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확인 결과 이 역시도 참랏의 인생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참랏은 죽기 얼마 전 지인에게 불교에 관심이 있다며 승려가 되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스티븐슨 박사는 태국의 경우 승려가 됐다가 얼마 후 이를 그만두고 다시 여성과 결혼을 하는 등 평범한 삶을 사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봉쿡은 나이가 들며 전생에 대한 기억을 조금씩 잊어갔다. 스티븐슨 박사는 그가 열 살쯤 됐을 무렵엔 거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그의 특이한 행동도 기억이 사라짐에 따라 없어졌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봉쿡을 1980년에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했다. 18세가 된 봉쿡은 평범한 학생으로 살아갔다고 한다. 과거의 기억이나 특이한 행동은 사라졌지만 찰진 밥을 좋아하는 그의 식습관은 여전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생 연구가인 주르겐 케일 박사는 이 사례를 1995년에 다시 한 번 조사했다고 한다. 봉쿡의 아버지와 참랏의 부모 모두가 이미 숨진 뒤라 검증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이 남지 않은 때였다. 케일 박사는 봉쿡의 어머니와 참랏의 남자형제 등을 만나 이야기를 검증했는데 30년 전 스티븐슨 박사가 확인한 이야기와 일치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케일 박사는 33세가 된 봉쿡을 인터뷰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년제 대학교 과정을 수료, 체육학 학위를 받았다. 25세 때 결혼해 여섯 살 된 딸이 있다고 했다. 그는 지방정부 공무원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봉쿡은 케일 박사와 만난 자리에서, 어렸을 때는 참랏의 삶의 한 60%를 기억했으나 성인이 된 현시점에서는 2%정도밖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2%의 기억조차도 명상 등을 통해 정신을 안정시켜야 떠오르게 된다고 했다.


지금 소개하는 사례는 영국에서 발생했는데, 자녀를 잃은 아버지가 이들이 환생할 것이라고 믿었고, 이후 태어난 쌍둥이가 이미 세상을 떠난 자녀의 환생이라고 믿은 사례다.


일란성 쌍둥이인 질리언과 제니퍼는 1958년 10월 4일 영국 잉글랜드 북동부에 있는 노섬벌랜드 카운티의 헥스햄에서 태어났다. 이들 소녀는 두 살부터 네 살 사이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숨진 언니 조안나와 재클린의 삶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들이 태어난 약 1년 전인 1957년 5월 5일, 길을 걷던 조안나와 재클린은 자동차 사고로 함께 숨졌다. 당시 조안나의 나이 11세, 재클린의 나이는 6세였다.


아버지 존 폴락과 어머니 플로렌스 폴락은 두 아이를 사고로 잃고 상심에 빠졌다고 한다. 아버지 존은 아이들이 꼭 환생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플로렌스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플로렌스가 임신을 했을 때 존은 숨진 두 자녀가 환생하는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고 한다. 의사는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했으나 존은 임신 초기부터 두 자녀가 쌍둥이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쌍둥이가 태어나자 존은 자신의 주장이 입증됐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 같은 일들이 계속해 일어났다. 쌍둥이 중 동생인 제니퍼는 숨진 두 자녀 중 동생인 재클린이 갖고 있던 흉터의 위치와 같은 곳에 모반(母斑)을 갖고 태어났다. 재클린은 엎어져서 이마를 꿰맨 적이 있었는데 쌍둥이 동생인 제니퍼의 이마에 모반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재클린이 왼쪽 허리에 갖고 태어난 모반이 재클린의 모반 위치와 일치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쌍둥이 형제가 숨진 언니들이 가지고 놀던 것들을 특정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숨진 언니들이 가지고 놀던 것들이라고 말했다는 것인데 부모는 아이들에게 이들에 앞서 두 자녀가 있었는데 모두 숨졌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쌍둥이가 한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이들 가족은 원래 살던 헥스햄 지역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처음으로 헥스햄으로 돌아온 것은 아이들이 네 살이 됐을 때였다고 했다. 당시 쌍둥이들은 전에 다니던 학교와 그네가 있던 공원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쌍둥이 질리언과 제니퍼는 숨진 언니들의 성격을 닮기도 했다고 한다. 제니퍼는 쌍둥이 언니 질리언에게 의지를 많이 했는데 숨진 6세 소녀 재클린도 11세 언니 조안나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쌍둥이 언니 질리언은 연필을 잡을 때 손가락과 엄지를 사용해 제대로 잡았지만 동생 제니퍼는 주먹을 쥔 채로 연필을 잡았다고 한다. 6세 소녀 재클린도 숨질 당시까지 연필을 그렇게 잡았었다고 한다.


이언 스티븐슨 박사는 이 사례를 1964년부터 연구했고 1985년까지 이들 가족과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그는 “환생에 대한 (아버지) 존 폴락의 집념이 이런 사례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을 힘들 게 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쌍둥이 아이들에게 한 번도 숨진 자녀들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는 부모의 말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티븐슨 박사에 따르면 아버지 존은 이런 회의적 주장은 일리가 있다면서도, 환생에 대한 마음을 열고 접근했기 때문에 숨진 두 자녀와 쌍둥이 사이의 비슷한 점과 다른 행동들을 특정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환생에 관심이 없었다면, “다른 대부분의 서방세계 부모들처럼 이런 이야기들을 무시하거나 웃어 넘겨버리고 말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스티븐슨 박사는 1978년 쌍둥이와 다른 가족들에 대한 혈액형 검사를 했다고 한다. 일란성인지, 이란성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일란성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쌍둥이 동생 제니퍼가 갖고 태어난 모반은 선천적인 것으로 봐야하며 이는 유전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일란성이라면 쌍둥이 언니 질리언도 비슷한 모반을 갖고 태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스티븐슨 과정은 임신 과정에서 제니퍼에게만 이런 모반이 생겼을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이런 가설이 성립한다고 하더라도 (숨진) 재클린의 몸에 있던 상처와 비슷한 위치에 비슷한 크기로 생겼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질리언과 제니퍼는 평범한 여성으로 자랐다고 한다. 아동기의 끝 무렵부터는 전생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게 됐다고 한다. 이들은 성인이 돼 스티븐슨을 만나서는, 자신들이 기억했다고 하는 전생이 신빙성이 없을 수도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들이 말한 것은 이 무렵이 돼서는 전생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환생을 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증거도 제시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그러나 이들이 어린이었을 때 부모가 이들을 관찰해 확인한 증거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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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1, 02: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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