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외삼촌의 환생이라는 핀란드 아이
前生을 기억한다는 아이들(19) - “저기서 개에 물렸어요…깁스를 했을 때네요”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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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헬란더라는 남자아이는 1976년 4월 15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두 살이 됐을 무렵부터 자신의 전생의 삶을 떠올려내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어머니의 남동생인 페르티(Pertti) 하이키오였다. 사무엘은 이후로도 계속 삼촌 페르티가 하던 행동을 하고는 했다고 한다.


버지니아대학교의 이언 스티븐슨 박사는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이 사건을 조사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사무엘의 어머니와, 외할머니, 즉 그의 전생 대상이라는 페르티의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페르티 하이키오는 1957년 6월 8일 헬싱키에서 태어났다. 18세가 되던 해인 1975년 6월 10일 당뇨병 증세로 사망했다. 심각한 증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 누구도 그가 심한 당뇨병을 앓고 있는지 몰랐다고 한다.


페르티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넬리 라거크비스트이다. 아넬리는 페르티의 친부(親父)와 이혼한 뒤 재혼해 새로운 성(姓)을 갖게 됐다. 페르티의 누나의 이름은 마르자 헬란더이다. 즉, 사무엘의 어머니가 되는 인물이다. 아넬리와 마르자는 페르티가 죽고 나서 한동안 슬픔에서 깨어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마르자는 사무엘을 임신한 지 약 10주차가 됐을 때 꿈을 꿨다고 했다. 그런데 꿈에서 죽은 남동생 페르티가 나왔다고 한다. 당시 마르자는 낙태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페르티가 꿈에서 “그 아이를 지켜줘”라고 하더란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사무엘은 한 살 반쯤 됐을 무렵, 이름을 말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름을 물어볼 때마다 사무엘은 ‘펠티(Pelti)’라고 했다. 아이는 ‘R’ 발음을 잘 못했는데 그래서 ‘페르티’라고 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사무엘에게 그의 이름은 ‘페르티’나 ‘펠티’가 아니라 ‘사무엘’이라고 계속 가르쳤다. 하지만 그는 여섯 살이 될 때까지도 계속 자신의 이름이 ‘펠티’라고 하고 다녔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에서도 나왔듯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 중 일부는 자신의 전생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대답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사무엘은 ‘펠티’를 고집하기는 했지만 ‘사무엘’로 불려도 대꾸는 했다고 한다.


사무엘이 전생에 있었던 일 중 기억해낸 것은 별로 없다고 한다. 대부분 사진 속 인물이나 실제 인물을 보고 알아차리는 것 정도였다고 한다.

 

사무엘은 삼촌 페르티가 10세 이전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기억이 떠오르는 것으로 보였다. 페르티가 조금 더 컸을 때의 사진을 보고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무엘은 페르티의 사진 한 장을 보고서는 “저기서 개에 물렸던 일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페르티는 세 살 때 개에 물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무엘은 한 번도 개에 물린 적이 없고 삼촌 페르티가 개에 물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사무엘이 본 페르티의 사진 어디에서도 개에 물렸다는 것을 연상시키는 장면은 없었다고 한다.


사무엘은 어린 페르티가 보행기를 타고 있는 사진을 보고서도 반응을 했다. 그는 이 사진 속 주인공이 본인이라며 “병원에 갔었고, 두 다리에 깁스를 했다”고 말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헬싱키에서 이 사건을 조사할 때 직접 사무엘이 반응을 했다고 하는 사진을 봤다고 했다. 페르티가 보행기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다리가 불편해서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사진 어디에도 그가 깁스를 하고 있는 모습은 담기지 않았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네 살쯤 됐던 페르티가 이 사진을 찍기 얼마 전 사고를 겪어 두 다리가 골절돼 깁스를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사무엘이 이 사진을 보고 ‘깁스를 했다’고 떠올렸을 때의 나이는, 페르티가 사고를 겪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세 살 반에서 네 살쯤 됐을 때였다고 했다.


사무엘은 집에 항상 걸려 있는 사진을 보고서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앨범에 있는 사진을 넘겨보면서 페르티가 나오는 사진이 있으면 “내 사진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사무엘은 페르티의 아버지인 펜티 하이키오의 사진을 보게 됐다. 이 사진을 보고서는 “나의 아버지다”라고 하더란 것이다. 숨진 페르티의 어머니 아넬리는 펜티와 이혼을 했다. 아넬리의 새 남편은 첫째 남편을 질투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펜티의 사진은 안 보이는 곳에 넣어뒀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사무엘이 “나의 아버지다”라고 하니 당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는 것이다.


사무엘은 페르티가 갖고 있던 물건들이 무엇인지도 특정했다. 기타와 벨벳 재킷, 그리고 오래된 시계 등을 보고서는 페르티 것이라고 했다. 이 손목시계는 바늘이 없어져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서랍에 보관돼 있었다고 한다. 사무엘은 이를 보자마자 자신의 것이라며 갖고 싶다고 가져갔다고 한다. 그는 이 시계를 베개 밑에 두고 같이 잠을 자기도 했고 침대 밑 서랍에 숨겨두기도 했다고 한다.


사무엘은 페르티가 정확히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죽고난 뒤에 일어난 일로 보이는 두 가지 이야기를 했다. 시체를 담는 관(棺)이 많이 있는 장소로 옮겨졌고 이들 중 일부는 열려있었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가 조사해본 결과 사무엘은 한 번도 영안실에 가본 적이 없었다. 사무엘은 또한 페르티의 어머니가 엄청나게 울었다고 말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런 이야기를 소개한 뒤, 물론 사무엘이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사전에 들었거나 이런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무엘의 가족은 하루는 아이를 데리고 페르티가 묻힌 무덤을 간 적이 있었다. 사무엘은 무덤을 지그시 쳐다보더니, “내 무덤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사무엘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아이가 페르티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도 증언했다. 페르티는 어렸을 때 목욕을 할 때 물을 먹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무서워했지만 물에 대한 공포가 바로 생기지는 않았었다고 한다. 그러다 15세쯤 됐을 때 부둣가에서 발을 헛디뎌 바다에 빠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거의 익사 직전에서 구출됐는데 이후로는 물을 무서워해 수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무엘도 물을 극도로 무서워했다. 목욕을 하는 것을 특히나 싫어했다고 한다. 아이의 할머니는 목욕을 시키는 것이 “악몽과 같았다”고 했다.


사무엘은 말을 하기 시작한 뒤부터 부모를 이름으로 불렀다. 엄마, 아빠가 아닌 이들의 이름 펜티, 마르자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 그는 외할머니인 아넬리는 ‘엄마’라고 불렀다고 한다. 사무엘은 이런 호칭에 있어 확고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친모(親母)인 마르자에게 한 번은, “당신은 내 엄마가 아니다”라고 하기도 했다. 
 
사무엘은 할머니 아넬리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고 한다. 아넬리의 품에 안겨 모유(母乳)를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이 무렵 사무엘은 벌써 젖을 뗐을 때지만 페르티는 젖을 늦게 뗐다고 한다. 사무엘은 다섯 살이 되고 나서야 할머니 아넬리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게 됐다고 한다.


페르티는 크리스마스파티로 사람들이 모이면 한 명씩 돌아가며 볼에 뽀뽀를 하곤 했다고 한다.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그만 유독 이런 행동을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무엘이 두 살 반이던 1978년 크리스마스파티에서 페르티와 똑같은 행동을 하더란 것이다.


사무엘은 페르티와 비슷한 신체적 특징도 보였다. 두 명 모두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서있는 것을 좋아했고 손 하나를 엉덩이 쪽에 갖다 대곤 했다고 한다. 걸을 때는 두 손을 뒷짐을 지고 걷기도 했는데 다른 가족 중 이런 습관이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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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2, 01: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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