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에서 추락해 강에 빠져 죽었다”는 소녀
前生을 기억하는 아이들(46) - 28개의 주장 중 검증된 17개 이야기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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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랄드손 박사는 1982년 6월 16일 스리랑카 남서부의 작은 마을인 엘피티야에서 태어난 투시타 실바라는 소녀의 사례를 조사했다. 투시타의 가족은 1988년 스리랑카 최대 도시인 콜롬보로부터 약 30km 떨어진 파나두라로 이사했다. 이 무렵 동네 주민들은 투시타가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런 이야기가 외부로 퍼지게 됐다. 이런 이야기를 접한 하랄드손 박사는 1990년 11월 투시타와 그의 가족을 직접 인터뷰했다.


투시타는 두 살 반쯤 됐을 때부터 전생의 이야기를 했는데 과거 스리랑카 중남부에 위치한 아쿠레사에 살았었다고 했다. 임시로 설치된 좁은 다리를 건너다 강에 떨어져 익사했다고 했다. 임시로 설치됐던 다리는 그가 살던 집에서 가까웠다고 했다. 사고 당시 남편이 있었고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고 했다.


투시타는 아버지의 이름이 지딘 나나야카라였다며 지금의 가족이 사는 것처럼 가난한 집이 아니라 훨씬 더 좋은 집에서 살았었다고 했다. 전생의 어머니는 재봉틀을 갖고 있었고 본인은 노란색 자전거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했다. 당시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고도 했다. 그는 사고 당시 남편도 강에 뛰어들어 본인을 구하려고 하다 그 역시도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고 했다. 그는 남편이 우체부였으며 개인 자동차가 있었다고 했다. 집 앞에는 큰 출입구가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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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서 강에 빠져 죽게 됐다는 투시타. 출처: 《나는 빛을 봤고 이곳으로 오게 됐다(I Saw A Light And Came Here)》


투시타의 어머니는 아이가 다리와 물에 대한 공포심이 있었다고 했다. 아이가 과거에 더 많은 사람과 지형의 이름을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하랄드손 박사와의 인터뷰 당시에는 이를 잊어버렸다고 했다고 한다. 투시타도 하랄드손 박사를 만났을 무렵에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잃게 된 것으로 보였다.


투시타의 가족은 아이가 전생에 살았다고 한 아쿠레사와는 어떤 연관도 없다고 했다. 우카레사는 투시타가 태어난 엘피티야에서 약 50km 떨어진 곳이었고 그가 현재 살고 있는 파나두라에서는 130km 이상 떨어져 있었다.


투시타가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무렵 그의 남자형제 한 명은 아쿠레사로 가게 될 일이 생겼었다고 한다. 그는 투시타가 하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해보고자 동네를 수소문했지만 일치하는 인물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는 투시타가 거짓말을 했다며 크게 혼냈다고 한다.


하랄드손 박사의 동료 한 명은 1990년 여름 인구 2만 명이 거주하는 아쿠레사를 방문했다. 그는 투시타가 말한 ‘나나야카라’라는 성씨를 가진 가족에 시집을 온 여성 한 명이 임시 다리를 건너다 추락해 익사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하랄드손 박사는 1990년 11월 직접 아쿠레사를 찾아 당시 익사했다고 하는 여성 찬다르 나나야카라의 가족을 찾아냈다. 사고가 발생한 다리는 이 여성이 시집을 간 집으로부터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하랄드손 박사는 익사한 여성 찬드라의 시누이 두 명과 남편, 그리고 이 가족과 친하게 지낸 한 명을 인터뷰했다.


확인 결과 찬드라는 1973년 27세의 나이로 숨졌다. 남편과 함께 임시 다리를 건너다 강에 빠졌다. 남편도 곧장 강으로 뛰어들어 부인을 살리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그 역시도 목숨을 잃을 뻔했다. 찬드라의 시체는 사고 현장에서 꽤 떨어진 강물에서 3일 뒤 발견됐다. 찬드라는 당시 임신 7개월이었다.


하랄드손 박사는 당시 찬드라의 시체를 확인한 검시관의 보고서를 입수했다. 보고서 역시 사고가 1973년 12월에 발생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임시 다리에서 떨어졌고 물을 들이키게 돼 숨이 멎었다”고 적혀 있었다. 이 다리에서 추락한 사람은 여러 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목숨을 잃은 사람은 찬드라가 유일했다고 한다.


하랄드손 박사는 이런 정보를 취합한 뒤, 투시타라는 아이가 말한 것과 같이 아쿠레사의 한 임시 다리에서 숨진 임신한 여성이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했다. 물론 투시타의 주장과는 틀린 이야기도 있었다. 시아버지의 이름은 그가 말한 ‘지딘(Jeedin) 나나야카라’가 아니라 ‘에드윈(Edwin) 나나야카라’였다. 투시타는 ‘지딘’이 아버지의 이름이었다고 했으나 사실은 시아버지의 이름이었다. 하랄드손 박사는 스리랑카의 경우 시집을 간 여성은 시아버지를 그냥 아버지라고 부르는 경우가 잦다고 했다.


또한 투시타의 말처럼 찬드라가 결혼한 집에는 자동차와 자전거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스리랑카에 자가용이 있는 사람은 드물었었다. 찬드라가 살던 집은 투시타가 살던 집보다 더 컸고 대나무로 만들어진 출입구가 있었다고 한다.


투시타가 말한 이야기 중 사실과 다른 이야기는 더 있었다. 그는 과거 노란색 자전거를 갖고 있었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검정색 자전거였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 것 같다고 했으나 그가 아닌 그의 사촌형제 한 명과 친구 한 명이 간호사로 근무했었다. 찬드라의 남편 역시 우체부가 아니라 버스운전사였다. 다만, 남편의 형이 우체부였다고 한다. 투시타는 과거 딸 한 명을 키우는 여자형제가 있었다고 했으나 그런 여자형제는 없었다. 시누이 중 한 명이 딸을 키웠었다고 한다.


하랄드손 박사는 투시타가 말한 다른 이야기들, 즉 그가 과거에 브래지어를 착용했다거나, 어머니가 치마를 입었다는 이야기들은 너무 일반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검증을 하거나 신빙성을 확인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결론적으로는 투시타가 말한 총 28가지의 이야기 중 17개는 검증이 됐고 7개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4개는 검증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하랄드손 박사는 투시타를 아쿠레사로 데리고 가 전생의 대상자로 보이는 가족과의 대면을 통해 추가 검증을 해보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투시타의 남자형제의 반발로 이는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투시타의 사례는 검증 중간에 멈췄기 때문에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은 사례라고 할 것이다. 이 사례보다 검증이 조금 더 제대로 이뤄진 스리랑카의 사례를 한 차례 더 소개하고자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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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3, 23: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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