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형배가 소환한 유시민·윤호중의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
한동훈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에서 긁어 부스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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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9일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 측이 과거 검찰이 과잉수사를 했다며 공세를 펴자 “과거에 민주화운동을 하다 민간인을 고문하는 일이 있었다고 해서 민주화 전체를 폄훼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최근 민주당 탈당 논란이 있었던 민형배 무소속 의원은 “검찰이 구속돼 있는 피의자들을 한 40번, 50번 불러 놓고 실제 조서는 조사는 너댓 번밖에 안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며 “대표적으로 2004년 고 노무현 대통령 검찰수사 과정을 심하게 함부로 한 거다. 사과하실 생각 없냐?”고 물었다.


한 후보자는 “제가 관여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라고 답했고, 민 의원은 “조국 수사 때도 함부로 심하게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죽음으로 끝났고 그래서 다들 검찰의 정치적 살인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잖냐. 조국 장관은 온 국민이 다 알다시피 70회가 넘는 압수수색을 했다 과잉수사, 검찰이 함부로 한 거 아닌가?”라고 거듭 물었다.


한 후보자는 “저는 어려운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과잉수사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사건의 당사자가 어떤 음모론을 펴면서 수사팀을 공격하고, 여론을 동원해서 수사팀을 공격하고 뻔한 상황에 대해서 거부할 경우에 집중적인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민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든 조국 전 장관 일가족에 대한 도륙이든 하여튼 사과할 의사가 없다는 말씀이냐? 그리고 온당했다는 거냐?”고 공세를 이어갔다.


한 후보자는 “제가 노무현 대통령 사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에 민주화 운동을 하던 경우에도 민간인을 고문하던 분도 계셨다. 그렇지만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민주화 전체를 폄훼하지 않는다. 과거에 저희가 관여하지 않았던 특정한 사안을 들어서 어떤 기관 자체를 폄훼하고 그 기능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하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민 의원은 “방금 민주화운동을 하던 분들도 민간인을 고문했다고 그러셨냐? 그거 자료로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한 후보자는 “저는 그렇게 알고 있는 사례가 있다. 자료 제출 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연루되어 실형을 살았던 '서울대 학생들의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을 언급한 것으로 보여진다. 

 

윤호중 민주당 비대위원장의 ‘어두운 과거’

 

"가해자들이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해서 따라갔다. 나를 프락치라고 몰아세웠다. 계속 아니라고 하니까 교련복으로 갈아입히고 눈을 가렸다. 그때부터 폭행이 시작됐다. 돌아가면서 몇 시간 씩 나를 폭행했다. 가해자들은 우발적인 사건이었다고 하는데 나를 감금한 장소 창문을 미리 신문지로 다 가려놨더라. 물이 담긴 세면대에 머리를 쳐 박거나, 바닥에 눕히고 주전자로 얼굴에 물을 붓는 등 물고문도 했다. 이 과정에서 치아가 부러지고 전치 8주 부상을 입었다. 고문에 못 이겨 내 군대시절 상관이 시켜서 왔다고 아무렇게나 말했다. 고문 도중 실신해 2일 만에 풀려났다. 이틀간 식사도 못했다. 풀려나기 직전에야 빵을 주더라. 당연히 먹지도 못했다. 병원에서도 한동안 혼자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유시민 전 장관이 민주화운동 경력으로 선전하는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 피해자 전기동 씨의 증언이다. 피해자 전 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피해자들은 아직도 고통 받고 있는데 반성을 모르는 사람이다. 당시 사건은 민주화운동과는 전혀 관련 없는 민간인 고문 사건"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무고한 시민을 감금하고 폭행해 프락치였다는 자백을 받아 내려 한 행위가 민주화운동이면 얻어 맞은 우리는 反민주세력입니까. 도무지 반성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민주화운동', '프락치 사건' 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것은 우리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들과 싸울 것입니다."  


피해자는 전 씨를 포함한 4명으로 각각 22시간에서 최장 6일 간 감금된 상태로 고문 당했으며, 피해자들 중 한 명은 사건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 


유 씨가 자신은 사건을 '주도하지도, 때리지도,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물이 담긴 세면대에 머리를 쳐 박거나" "바닥에 눕히고 주전자로 얼굴에 물을 붓고" "돌아가면서 몇 시간 씩 폭행"을 자행해 옥살이한 공범 중 하나가 윤호중 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다. 윤 위원장은 자신의 폭언, 폭행에 대해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으며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 홍보물에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란 표현을 썼다가 전 씨에게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전 씨는 "당시 윤 후보가 나를 직접 폭행했으며 이로 인해 징역형을 선고받고도 정권의 조작사건이라고 선거전에 활용하고 있다"며 "이는 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이고 피해자인 내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고소건은 검찰이 기소하지 않아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다. 


1984년 9월17~27일 사이에 임신현(林信鉉), 손형구(孫瀅九), 정용범(鄭龍範), 전기동(全基東) 등 4명의 젊은이들이 서울대 학생회 간부들에게 감금된 채 ‘프락치’라는 자백을 강요받으며 폭행당했다. 이 폭행 사건으로 25명이 넘는 서울대 학생회 간부들이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 가운데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대표였던 유시민(柳時敏, 경제학과 3년)을 비롯, 윤호중(尹昊重·철학과 4년), 백태웅(白泰雄, 공법학과 4년), 이정우(李政祐, 공법학과 4년), 오재영(吳在瑛, 인류학과 4년), 조원봉(趙元鳳, 국사학과 4년)의 6명이 폭행 주동자로 지목되어 징역 10월에서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폭행을 행사한 서울대 학생회 간부들은 검찰 진술에서 “프락치라는 자백을 강요받으면, 이를 이용해 기관에 항의하거나 학생 데모에 한층 더 불을 지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피해자들은 재수생이거나 고시 준비생으로 서울대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학생회 간부들에게 체포되어 교내 곳곳에 감금된 채 폭행당했다.


가해자들이 전직 장관, 현직 국회의원, 변호사, 교수 등으로 승승장구하는 와중 네 명의 피해자들은 어떻게 되었나? 이상흔 기자가 2006년 2월호 월간조선 기사에서 이들의 삶을 추적했다. 발췌 요약해 전재한다. 

 



삶이 뒤죽박죽된 4명의 청년


7급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었던 전용범 씨는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으로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기 시작, 현재까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정 씨에 대해 전기동 씨는 "때린 놈이야 신체와 정신이 안 다쳤으니, 마음껏 공부하고 돈을 벌 수 있지만, 나와 용범 씨는 그 사건 이후 몸과 정신이 완전히 망가져서 결혼도 못 하고, 정용범 씨는 정신이 이상해졌고…. 그 사람들의 행위는 인간 존엄성을 파괴한 것입니다"라고 개탄했다.


정용범 씨는 1978년 형이 軍에서 죽자 그 충격으로 신경쇠약에 걸려 한 달 반 정도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후 정 씨는 1년 가량 집에서 요양을 했기 때문에 폭행을 당할 때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정 씨의 어머니 전영재(79)씨는 "우리 용범이가 너무 억울하게 당했다"며 "폭행당한 후 정신이 이상해져 결혼도 못 했는데 내가 죽으면 누가 돌봐줄지 그것이 제일 걱정"이라고 말했다.


"애가 맞고 집에 왔을 때 온몸이 시퍼렇게 돼 있었어요. 두들겨 맞기 전에는 공무원 시험 공부도 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했거든요. 얻어맞은 후부터는 애가 헛소리를 하고 완전히 병신이 되었지요. 후유증으로 몇 년 동안 밤에 제대로 못 자고 약을 입에 달고 살았아요.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정 씨는 폭행당하는 과정에서 앞니 하나가 절반 정도 부러졌다. 정 씨 어머니는 "그때 맞아서 부러진 이 치료를 잘못해서 그 후에 계속 고생을 했다"며 "몇 년 전 2500만 원을 들여 이를 전부 새로 심어야 했다"고 말했다. 1994년 사망한 鄭씨 아버지는 살아생전 "장가도 못 간 놈이 병이나 도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며 늘 아들 걱정을 했다고 한다.


대인기피증 심해져 대학 진학 포기한 임신현 씨


나머지 폭행 피해자들도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기동 씨는 1984년 서울大 학생회 간부학생들에 의해 주도된 감금, 폭행 사건 당시 실신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는 폭행 가해자들이 이 사건을 '민주화운동' 혹은 '서울大 프락치 사건'이라고 주장할 때마다 이에 맞서 법정 투쟁을 해왔다. 전 씨는 폭행 후유증으로 고시공부를 접어야만 했다. 全 씨는 폭행당한 후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몸이 아파 책상에 앉아 있지를 못하고 자주 바닥에 드러누워야 했다. 全 씨는 뒤늦게나마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고, 현재 관악구청 보건소에 근무하고 있다.


임신현 씨는 폭행을 당한 후 대인기피증이 심해졌고, 이로 인해 대학 진학 꿈을 접었다. 임 씨는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이었죠. 이놈이 들어와서 한 시간 패고, 저놈이 들어와서 한 시간 패고…. 자기들도 내가 프락치가 아니란 것을 알았을 겁니다. 민간인을 다짜고짜 패 놓았으니 문제가 될까봐 어떻게든 프락치라는 기록을 남겨 놓으려고 자백을 강요한 것 같아요."

 

그는 절에 가면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입시 공부를 포기하고 절에서 알게 된 사람을 통해 丹靑(단청) 기술을 배웠다. 단청 일은 겨울철에는 일감이 없어서 생활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그때 일은 잊고 살지만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이 납니다. 그 사람(유시민)을 보기 싫어 TV를 안 본 지 오래됐습니다. 거짓말을 좀 했다고 가두어 두고 폭행을 하는 것들이 인간입니까. 정신병자들이죠. 그런 사람을 공직에 임용하는 나라가 한심스러워요. 내가 사는 곳이 하필이면 柳時敏의 지역구인데 여유만 좀 있다면 이사 가고 싶습니다."

 

 손형구 씨는 현재 해외에 머무르고 있어 연락이 닿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에 의하면, 사업에 여러 차례 실패한 후 외국에 나가 연락을 끊고 지낸다고 한다. 손 씨 어머니는 "다 지난 이야기를 뭣 하러 묻느냐. 그 이야기만 나오면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 2022-05-10, 15: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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