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은 사실인데 왜 우리가 이를 증명해야 하나요?’
美 베테랑 기자와 80세 老학자의 前生 추적 동행기(8) -前生 대상자의 이름으로 改名하기도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서방세계 사람들은, ‘환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왜 이를 연구하기 위해 돈을 쓰느냐’고 말하는 반면, 동양 사람들은, ‘환생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왜 이를 연구하기 위해 돈을 쓰느냐’고 말한다”

스티븐슨 박사 일행은 그가 1971년에 만났던 한 가족을 다시 한 번 찾아가보기로 했다. 카타르라는 이름의 가족은 레바논에서도 가장 시골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에 사는 가난한 농부 집안이었다. 카타르는 잣을 재배해 팔고 있었다. 카타르에게는 자녀가 6명이 있는데 이들 중 아들 두 명이 모두 전생을 기억한다고 주장했었다. 스티븐슨 박사는 당시 6세였던 큰아들 탈리의 사례에 관심을 가졌었다고 한다. 탈리는 그가 태어나기 6주 전에 살해당한 사이드 아불히슨이라는 남성의 환생이라고 주장했다.


사이드는 1965년 6월 22일 오전 6시, 집 앞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 알고 지내던 사람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총알은 왼쪽 볼을 지나 오른쪽 볼을 관통했다고 한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11시간 뒤 숨졌다. 살해범은 망상 증세를 보이고 있는 사람으로 확인돼 감옥이 아닌 정신병원에 수감됐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가 탈리의 사례에 특히 관심을 가진 이유 중 하나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전생 대상자의 상처 위치와 같은 곳에 흉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탈리는 말을 조금 늦게 시작했고 세 살이 돼서야 제대로 말을 했다고 한다. 탈리의 부모에 따르면, 아이는 말을 하기 시작한 얼마 뒤부터 “탈리라고 부르지 말라, 내 이름은 사이드 아불히슨이다”라고 했다.


탈리는 나이가 들수록 전생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떠올려냈다. 그는 6세였을 때 스티븐슨 박사를 만나, “사람들이 나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이송했다”며 “아내가 옆자리에 있었고 치아 하나가 입에서 빠져나왔다. 혀가 잘렸고 옷이 피로 다 젖어 있었다”고 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아이의 오른쪽 볼에 색소가 침착된 것 같은 흉터를 확인했다. 왼쪽 볼에서는 오른쪽 볼보다 옅은 색소 침착이 확인됐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흉터 사진을 찍은 뒤 사이드의 부검 보고서와 비교를 해봤다. 확인 결과 사이드의 총상 위치와 탈리의 흉터 사이에는 약간의 위치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탈리의 상처들이 사이드의 총상 위치보다 더 머리 뒤쪽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티븐슨 박사는 아이들의 경우 이런 상처의 크기나 위치가 몸이 커져가며 바뀌기 때문에 작은 수준의 위치 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탈리가 또래 아이들보다 말이 늦은 이유 중의 하나가 또 하나의 장애 때문이 아닐까 추측했다. 즉, 사이드는 입 주변에 총상을 입고 혀가 크게 훼손됐는데 이에 따른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슈로더 기자는 스티븐슨 박사의 과거 기록을 보며 또 하나 흥미로운 내용을 찾아냈다고 했다. 스티븐슨의 마지막 질문은 탈리가 갖고 있는 사이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고 한다. 당시 탈리는 사이드의 몸이었을 때의 마지막 기억은 병원 침대에서 떨어지는 장면이었다고 했다. 병원 기록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병원 기록에는, “기관 절개 완료, 오후 5시 호흡 곤란, 심정지, 사망”이라고만 적혀 있었다고 한다.


1971년 당시 사이드의 부인은 스티븐슨 박사와의 인터뷰에서 사이드가 침대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병원 관계자로부터 사이드가 침대에서 떨어졌고 의료진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산소 부족으로 사망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슈로더는 병원 입장에서는 이를 단순히 ‘호흡 곤란’이라고 칭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사이드의 부인은 탈리라는 아이가 사이드의 환생일 것이라는 사실은 믿지 않았다고 했다. 사이드에게는 몸이 불편한 딸이 있었고 항상 이 아이를 걱정해왔는데 탈리가 이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이드와 탈리의 가족은 약 5km 떨어진 지역에 살았다. 다만, 탈리의 부모는 스티븐슨 박사에게, 아이가 전생의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사이드가 살던 마을에 아이를 데리고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전생의 이야기를 꺼낸 다음에도 아이를 사이드가 살던 마을에 데려가는 것을 꺼렸다고 했다. 아이가 전생의 삶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아이가 그 마을에 간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할까 봐 걱정했다고 했다.


그러다 한 번은 사이드의 집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사이드의 집에는 사이드의 딸 와파를 비롯한 여러 소녀들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때 누군가가 탈리에게, “네 딸을 알아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탈리는 와파에게 다가가더니 “와파, 왜 나를 보러 오지 않는 거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번 출장을 준비하기 전 환생 사례들을 엮은 책을 또 하나 냈는데, 탈리의 사례가 소개돼 있었다고 한다. 그는 탈리를 30여년 만에 다시 찾아, 그가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상처는 어떻게 됐는지 등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한다. 또한 이번에는 탈리의 남동생인 마지드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려고 했다. 마지드는 전생에 우물을 파는 일을 했었는데 작업 중 위에서 돌이 쏟아져내려와 숨졌었다고 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마지드의 사례를 책에 짧게만 소개했었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추가하고 싶어 했다.


스티븐슨 박사 일행은 카타르의 집을 찾아갔으나 이들은 별로 반기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통역사인 마지드가 탈리와 한동안 이야기를 한 뒤 스티븐슨 박사에게 돌아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설명해줬다. 탈리는 어렸을 때 스티븐슨 박사를 만났던 기억이 난다고 하면서 어렸을 때 그로부터 스위스제 휴대용 칼을 선물로 받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가 책을 선물해주겠다고 했으나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탈리는 계속해서 말을 하는데 아랍어를 할 줄 모르는 슈로더 기자의 귀에도 ‘뉴저지’라는 단어가 들렸다고 한다.


마지드에 따르면, 탈리는 자신의 이름이 더 이상 탈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전생 대상자의 이름인 사이드로 개명했다고 말했으며 스티븐슨 박사 일행에게 협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미국인들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레바논 내전 당시 미국 군함 뉴저지호의 공격을 받아 숨진 형제가 있다고도 했다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탈리가 협조적이지 않은 것을 파악하고서는 그의 남동생인 마지드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마지드는 처음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드루즈파 교인이다”라며 “우리는 환생에 대해 알고 있고 이를 믿고 있는데 왜 우리가 이를 증명해야 하느냐”고 묻더란 것이었다.

 

탈리는 옆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며 계속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한다. 통역사는 탈리의 남동생인 마지드가 하고 있는 일을 전해 듣고는 이를 스티븐슨 박사 일행에게 설명해줬다. 현재 마지드는 고용 알선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스리랑카 출신의 가정부를 레바논으로 데려와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또한 보험 외판원으로도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통역사에게, 그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마지드는 “싫으면 안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퉁명스럽게 받아쳤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들이 협조적이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 그는 탈리의 남동생 마지드에게 전생에 대한 기억이 아직 남아있느냐고 물었다. 마지드는 “조금 남아있다”면서도 “전쟁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잊어버리게 됐다”고 했다.


옆에 있던 아이들의 아버지가 끼어들더니 마지드는 20세쯤 됐을 무렵부터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통역사에게 마지드의 건강은 어떤지 물어보라고 했다. 마지드는 전쟁 중에 뉴저지호에서 날아온 폭탄으로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손목 쪽에 있는 상처를 보여주더니, 한 달 반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고 했다.


마지드는 그가 전생에 살았던 크파사르완이라는 지역에 사는 여성과 약혼을 했다고 말했다. 전생의 가족들을 주기적으로 만나다 어느 순간 왕래가 끊겼는데 약혼한 2년 전부터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약혼녀가 전생 가족의 먼 친척 중 한 명이라는 것이었다.


스티븐슨 박사는 마지드에게, “(전생과 현생 중) 어떤 삶을 더 선호하느냐”고 물었다. 마지드는 “나한테는 다 똑같다”며 “인생은 힘들다”고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그의 형 탈리는, “우리가 제3세계(후진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지 뭐”라고 불평했다.


탈리는 이후 스티븐슨 박사의 통역사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례가 스티븐슨 박사의 책에 소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미 그의 이야기가 소개된 책이 나왔다고 답했다. 탈리는 통역사를 통해, “이미 책에 실린 것이라면 보상을 원한다. 돈이 됐건, 일자리가 됐건 보상을 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슈로더 기자는 집안 분위기가 계속 안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탈리의 아버지는 아들을 다그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탈리 역시 지지 않고 대들고 있었다고 한다. 슈로더 기자는 스티븐슨 박사에게 귓속말로, “최대한 빨리 이곳을 도망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탈리는 그가 현재 택시를 몰고 있다며 스티븐슨 박사의 조력자 중 한 명인 아이슬란드의 하랄드손 박사가 레바논에 연구차 방문하면 그의 기사로 근무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스티븐슨은 하랄드손이 레바논에 다시 돌아올 계획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그에게 물어는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탈리는 미심쩍은 눈치였으나 통역사가 건넨 노트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고서는 밖으로 나가버렸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 일행 역시 집을 나서는데 마을 주민 여러 명이 구경을 하러 와있었다고 한다. 그중 어린 소녀를 데리고 온 한 여성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고 한다. 통역사에 따르면 딸아이의 문제 때문에 의학적 소견을 묻고 싶다는 것이었다. 스티븐슨 박사는 당연히 전생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듯, 전생 대상자를 확인한 사례냐고 되물었다. 슈로더는 아이가 뭔가 몸이 불편해 보이는데 그냥 단순한 의학 소견을 묻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통역사에 따르면 이 아이는 전생을 기억하고 있었다. 전생 대상자인 여성은 남편이 쏜 총을 목에 맞고 병원으로 이송된 뒤 12일 만에 숨졌다고 한다. 몸이 마비가 된 채로 12일간을 지냈었다는 것이었다. 이 여성의 남편은 3년형을 살고 현재는 풀려났다고 한다.


소녀는 어머니의 다리에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슈로더 기자는 미소를 짓는 아이의 얼굴이 무언가 비대칭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어머니가 딸을 제대로 서게끔 겨드랑이를 잡고 일으켜 세우자 아이의 다리는 그냥 공중에서 대롱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아이가 걸을 수 있느냐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이 여성은 걷지 못한다며 팔로 기어 다니면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 여성은 학교에도 가본 적이 없다며 여러 치료소 등을 방문했으나 병을 고칠 수 없었다고 했다. 의사는 너무 비싸서 만나보지 못했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아이에게는 치료가 필요하다며 혼자 힘으로는 계속 걷지 못할 수는 있겠지만 상황이 개선돼 학교도 다닐 수 있게 될 수 있다고 했다. 통역사는 이 아이가 전생 대상자에 빙의된 듯한 모습으로 말을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 스티븐슨 박사에게 전했다. 이 여성은 아이에게 계속 말을 하도록 유도했다. 이름이 뭐냐고도 묻고, 박수를 치며 아이가 말을 하도록 유도했다. 그런데 아이는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인지 그냥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고 한다.


슈로더 기자는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스티븐슨 박사에게, “그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스티븐슨은 “소녀의 어머니에게 직접 돈을 전달해주는 게 좋겠지만 가족 간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며 “카타르 가족에게 대신 전달하는 방안을 고려해보자”고 말했다고 한다.

 

슈로더 기자는 다음날 아침이 돼서도 계속 탈리와 마지드가 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았다고 했다. ‘드루즈파 교인인 우리가 왜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 환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줘야만 하느냐’는 이야기였다. 스티븐슨 박사는 “그게 역설적인 상황이다”라고 했다. “서방세계 사람들은, ‘환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왜 이를 연구하기 위해 돈을 쓰느냐’고 말하는 반면, 동양 사람들은, ‘환생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왜 이를 연구하기 위해 돈을 쓰느냐’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계속)

[ 2022-05-27, 03: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