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무대를 다녀오다!
아직도 울려 퍼지는 영국군의 취침 점호 나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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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브뤼셀에서 자동차로 북서쪽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이프르를 다녀왔다. 해양대학 출신으로 선장을 지낸 뒤 벨기에에 정착, 사업가로 성공하신 安載國 선생이 운전과 안내를 해주셨다. 이프르는, 1차 세계대전의 유명한 激戰場이다. 1914, 1915, 1917년 세 차례 대회전에서 영국 독일군 등 연인원 1000만 명의 병력이 투입되어 이 평야지대에서 대살륙전이 벌어졌다. 쌍방 50만 명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영국, 뉴질랜드, 캐나다, 남아공 등 영연방 군대와 독일군이 대결했고 프랑스군도 가담했다. 영국군은 전통적으로 전사자 시신을 현지에서 매장하고 묘지를 만들어 관리한다.
  
  이프르는 플랑더르의 다른 도시, 브뤼흐 겐트 안트워프처럼 중세 때부터 모직공업이 발달, 돈을 많이 번 도시이다. 이들 도시엔 중심 광장에 길트라고 불리는 직공협회 건물이나 클로스 홀(섬유회관)이라 불리는 회관이 자리잡는다. 유럽의 다른 도시엔 성당이 중심인데 상공업이 발달한 플랑드르에선 성당이 뒷전으로 밀린다.
  
  타인 콧(Tyne Cot)이라는 영연방군 묘지엔 약12000명이 묻혔는데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시신이 약8000기나 된다. 묘지 벽에는 3만 명이 넘는 전사자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세계최대의 영연방 묘지다. 하얀 묘지 비석과 빨간 장미들이 파아란 하늘과 절묘한 대조를 이뤄 공동묘지의 분위기는 비장하다기보다는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이런 묘지들이 이프르 주변에 수십 곳이다. 시신의 주인공을 모른다는 것은 포탄 등으로 너무 많이 손상되어 식별이 어려웠다는 뜻이겠다. 그래서 십자가만 새기고 아래엔 'KNOWN UNTO GOD'이란 글을 남겼다. 이를 "하나님은 아신다"로 번역해야 할 것 같다.
  
  이프르 전장은 전형적인 프랑드르 풍경이다. 목장, 밀밭, 감자밭, 옥수수밭 등이 물결치는 지평선을 이루고 노랑, 파랑색이 이 캔버스를 물들인다. 1914~1918년엔 젊은이들의 붉은 피빛으로 얼룩진 곳이다. 이프르 시내 중심에 있는 전쟁기념관에 들렀다. 크로스 홀 안에 만든 것인데 참신한 전시방법으로 전쟁의 핵심을 전하고 있었다. 1차 대전 때 쓰였던 무기와 병사들의 의복 편지 사진이 어우러져 살아 있는 전장을 거니는 기분이 들었다.
  
  1차 대전 때 죽은 군인들의 3분의 2는 포탄에 의하여 죽었다고 한다. 나머지는 기관총, 소총, 대검, 독가스에 의하여 희생되었다. 1915년의 이프르 회전에서 독일군이 처음으로 독가스를 사용했다.
  
  이프르 전장은 이야기꺼리가 많다. 이곳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이다. 1914년 12월 이곳에서 대치하던 영국군과 독일군 사이에 크리스마스 휴전이 이뤄져 두 진영 군인들이 선물을 교환하고 캐롤을 부르고 축구까지 했다고 한다. 이프르 시내엔 매닌 게이트라 불리는 성문이 있는데 이곳에선 매일 저녁 8시 'The Last Post' 행사가 있다.
  
  The Last Post는 18세기부터 영국군의 전통으로서 저녁 8시에 부는 취침 나팔 연주를 뜻한다. 이프르 시민들이 The Last Post 협회를 조직, 벨기에 땅에서 죽은 영국군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8년부터(2차 대전중 독일에 점령되었던 기간을 제외하고) 매일 저녁 8시 매닌 게이트 앞에서 취침 나팔 연주를 한다. 수천 명의 시민 여행객들이 모이는 행사이다. 한 시간 계속되는 추모행사 끝 무렵엔 주최자들과 시민들이 로렌스 빈연(Laurence Binyon) 의 시(For the Fallen)를 암송한다. 이 시는 1914년 9월 영국 신문에 실렸다.
  
  They shall grow not old, as we that are left grow old:
  Age shall not weary them, not the years condemn.
  At the going down the sun, and in the morning,
  we will remember them.
  
  그들은 남겨진 우리처럼 늙어가지 않으리: 시대가 그들을 지치게 하지 않고, 세월도 그들을 저주하지 못하리. 해가 질 때나 아침이 올 때나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리!
  
  1914년 12월 이프르 전선에선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대치하던 영국군과 독일군이 일시 휴전, 서로 시신을 수습하고 선물을 교환하고, 축구까지 했다는 전설 아닌 실화가 전해진다. 이프르 근처엔 축구장이 되었던 밀밭이 남아 있다. '크리스마스 트루스'라고 불린다.
  
  1918년 가을 히틀러 하사가 이프르 전선에서 부상했는데 영국군 병사가 그를 조준했다가 다친 것을 확인한 후 보내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히틀러가 1938년 뮌헨 회담 때 만난 영국수상 챔버레인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는데 물론 사실로 확정되지는 않는다. 확실한 것은 1918년 10월14일 이프르에서 히틀러가 영국군의 독가스 공격을 받아 실명(失明) 되어 후송되었다는 사실이다. 후방 병원에서 히틀러는 유대인과 공산주의를 조국의 반역집단으로 증오하게 되었고 눈을 다시 뜨면 이들을 말살하겠다는 작심을 한다는 점이다.
  
  벨기에 사람들이 유독 영국군의 희생을 기리는 이유가 있다. 1830년, 벨기에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후, 국제적 공인을 받은 것은 영국이 주선한 1839년의 런던 회담에서였다.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프러시아 등 열강이 벨기에를 영세중립국으로 존중하기로 약속한다. 1914년 8월 독일군은 슐리펜 계획에 따라 벨기에를 통과, 프랑스를 치는 작전에 돌입한다. 벨기에가 결사항전을 선택하자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 그 결과로 전쟁은 세계대전으로 확대되고, 영국군은 약90만 명이 전사했다. 2차 대전 전사자의 두 배이다.
  
  '서부戰線 이상 없다'는 소설은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1928년에 쓴 베스트셀러이다. 독일어판의 제목은 Im Westen Nichts Neues, 즉 '서부戰線에 특이 동향 없다'이다. 이를 1930년에 영어판으로 번역한 아서 웨슬리 휜이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라고 제목을 붙였다. 멋진 意譯(의역)인 셈이다.
  
   레마르크는 1차 대전 때 18세 징병 군인으로 이프르 근방서 부상, 히틀러처럼 병원에서 종전을 맞았다. 그는 이 소설에서 교사의 권유에 이끌려 自願(자원)입대한 파울 보이머 등 소년들이 戰場(전장)에서 경험하는 이야기들을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이어간다. 1차 대전의 서부 전선(독일군 기준)은 英佛 연합군(나중에 美軍이 참전)과 독일군이 참혹한 참호전을 펼친 곳이다. 나중엔 독가스까지 등장하고, 1916년 솜느 전투에선 첫날 死傷者(사상자)가 쌍방 10만에 육박하였다. 대평원의 밀집대형 전투여서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으로 여겨진다.
  
   소년병의 눈에 비친 의미 없는 살육, 戰友愛(전우애), 휴가를 갔을 때 만난 고향사람들의 어이없는 질문들. 그리하여 전쟁에 대한 幻想(환상)에서 깨어나는 과정이 그려진다. 보이머가 크게 실망하는 것은 고향 親知(친지)들이 전쟁을 마치 잡지 읽듯이 이야기하는 데서이다. 그는 학생들을 독려하는 얘기를 해달라는 교수 앞에서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개죽음이라고 말한다(이런 대목 등으로 해서 이 소설은 나치 때 판매금지되고 레마르크는 스위스에서 살아야 했다).
  
   戰線(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과 후방에서 편하게 있으면서 훈수를 두는 사람들 사이의 메울 수 없는 實感(실감)의 간극. 이는 한국의 6·25 체험 세대와 비체험 세대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1918년 10월 독일군이 항복하기 한 달 전 보이머는 날개 짓을 하는 나비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다가 저격을 당하여 죽는다. 그의 얼굴은 평온하다. 그날 부대는 상부에 '서부戰線 특이동향 없음'이라고 보고한다. 큰 전쟁에서 한 사병의 죽음 따위는 '특이동향'에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전쟁의 비정함을 절묘하게 표현한 이 제목은 여러 용도로 쓰이고 있다. 후속 '개선문' 도 국제적인 베스트셀러였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反戰(반전)문학으로 알려져 있는데, 작가는 이념적으로 경도된 사람이 아니었다.
  
   공동묘지로 덮인 이프르를 다녀오면서 전쟁을 가장 많이 겪은 유럽 군사문화의 핵심이, 결국은 죽은 이들을 추모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태어날 사람들의 안녕을 도모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죽은 사람과 살고 있는 사람과 태어날 사람들을 이어주는 정치철학을 보수주의라 한다.
  
[ 2022-06-18, 06:1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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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학산     2022-06-21 오전 10:59
조갑제 선생의 유럽 기행문이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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