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소탕전으로 사라지는 탈북자
1993년부터 약 100회 北中국경을 취재한 이시마루 지로 기자의 르포/북한 탈출…그 발생과 현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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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시에서 1997년에 탈북한 일가족. 2002년 몽골 탈출시 아들 철훈 군이 중국 국경경비대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헤이룽장성의 한촌에 숨어지내던 2001년 1월 이시마루 지로 촬영
탈북의 시대는 거의 끝났다. 지난 몇 년의 상황을 보면서 그렇게 강하게 느끼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영향만이, 그 이유는 아니다. 후술하겠지만, 김정은 정권이 소탕전이라고 불리는 '탈북 제로' 지령을 내리고 중국과의 국경 경비 강화에 더해 전례 없는 국내 통제 강화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수의 정점은 2009년의 2914명이었다. 김정은이 집권한 2012년부터 대폭 줄어들기는 했지만, 2019년까지는 1000명대가 이어졌다. 그것이 2020년은 229명, 21년은 63명으로 정점의 2%까지 떨어졌고 22년 1~3월은 11명에 불과했다. (통일부 통계, 이하 동일) 게다가 지난 몇 년간 한국 입국한 탈북자는 중국에서 오래 체류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새롭게 북한을 탈출한 경우는 드물다.
  
  "3년 전에 무리해서라도 한국으로 도망칠 걸 그랬다. 이제 불가능하다."
  올해 3월, 북한 북부에 사는 취재 파트너 여성은 나에게 이렇게 한탄했다.
  
  ◆ 90년대 사회혼란으로 발생한 탈북자
  탈북자의 정의를 '6·25 전쟁 휴전 후 북한의 통치를 이탈해 국외에서 정주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대부분은 1995년 이후 발생했다. 경제가 한창 악화 일로를 걷던 1994년 7월에 '살아있는 신' 김일성이 사망한다. 이를 계기로 정권의 통치 기능 마비가 시작되고, 사회는 공황 양상을 보인다. 마침내 식량배급제도가 와해되어 대기근이 발생했다. 여러 설이 있지만, 필자는 2000년까지 2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본다. 굶주림에서 벗어나려고, 그리고 장래의 전망을 그릴 수 없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중국으로 도망쳤다. 이것이 오늘에 이르는 탈북자 문제의 시작이다.
  
  필자가 처음 북중국경 취재를 떠난 건 1993년 7월. 이후 오늘날까지 약 100회, 현지 취재를 거듭해 왔다. 가장 최근은 2019년 9월이다. 북한에서 중국으로의 월경은 1997~98년 최대치에 이르렀다. 나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많은 조선족 농촌을 정점 관측하고 있었는데, 인구 1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에 하룻밤에도 수십 명의 북한 사람이 넘어오는 놀라움이었다. 2000년경까지 중국에 월경한 사람 수는 연인원 100만~200만 명에 달하지 않았을까 나는 보고 있다(몇 번이나 왕래를 반복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북한으로 돌아갔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돈과 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북한에서의 생활을 포기한 소수가 난민이 되어 중국에 머물렀고(10% 정도로 보고 있다), 이윽고 그 대부분이 안착할 땅을 찾아 한국을 목표로 했다.
  
  ◆ 지원단체가 개척한 탈북 루트
  1998년까지 한국에 들어간 탈북자 수의 총계는 947명에 불과했지만, 그 후 급증해 올해 3월까지의 누계는 3만 3826명이다. 중국으로의 월경 최대치와 한국 입국 최대치에는 10년의 시차가 있다. 중국에 몰려든 북한 사람들은 비합법 신분이었기에 한국으로 갈 방법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고비사막을 걸어서 몽골 영내로 들어가 한국 당국의 보호를 받는 루트가 지원단체에 의해 개척됐지만, 몇 년 만에 중국 당국에 의해 없어졌다. 선양과 베이징의 외국공관에 뛰어들어 한국행을 요구하는, 과격한 행동을 취하는 지원단체가 나타났다. 2002년 5월 선양 일본총영사관에 5명이 뛰어든, 이른바 '김한미 양 가족 사건' 외에도 일본인 학교에도 잇따라 뛰어들었다.
  
  이 루트도 중국 당국이 외국공관 주변을 요새화해 무너졌다. 그 후 구멍이 열린 것이 동남아시아 루트다. 윈난성의 쿤밍에서 라오스와 미얀마, 베트남을 거쳐 태국을 목표로 한다. 현재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루트다.
  
  1990년대의 북중국경은 허점투성이였다. 국경경비대에 몇백 중국 위안 정도의 뇌물을 주면 중국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동정하며 보호해주는 중국 조선족 커뮤니티도 있었다 (한국과 일본, 중국 내 대도시로 이주가 진행돼 현재는 소멸).
  
  특히 여성들은 조선족 농촌 남성에게 '시집가는' 형태로 안전한 거처를 얻을 수 있었다. 북한을 벗어난 사람들이 잠복할 수 있는 '인민의 바다'가 존재한 것이다.
  
  하지만, 대량의 월경자 발생을 중대 사태로 파악한 북한 당국은 국내 이동통제와 국경 경비를 엄격히 했다. 중국도 월경자에 의한 강도, 살인, 마약밀수, 인신매매가 발생함에 따라 경비를 강화했다. 2005년경부터 월경자는 눈에 띄게 줄었다.
  
  ◆ 불러들이는 형태의 탈북 급증
  한편, 먼저 한국에 입국한 사람들이 돈을 사용해 가족을 탈출시키는 사례가 급증한다. 북한을 떠난 뒤 중국 국내 브로커가 쿤밍까지 안내하고, 라오스 등을 거쳐 방콕에 가는 것을 또 다른 브로커가 청부 맡는다. 중국으로의 월경이 어려워졌는데도 한국에 입국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은 이렇게 '불러들이는' 형태의 탈북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다른 탈북 경로도 언급해 둔다. 전체의 1~2% 정도라고 생각되지만, 어선으로 북한에서 직접 한국으로 들어가는 경우 외에, 제3국에 합법적으로 재류 중에 통제를 벗어나 망명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 등에 파견된 노동자, 무역회사원, 외교관 등이다. 군인이 군사경계선을 넘어 직접 한국으로 도망치는 사건도 있었다. 2017년 11월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근무 병사가 총격을 받으면서도 도망에 성공한 사례가 기억에 새롭지만,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김정은 시대에 들어선 2012년 이후에만 9건 발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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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마루 지로(石丸次郎)
  아시아프레스 오사카사무소 대표, 저널리스트. 1962년 오사카 출신. 북한 취재는 국내 3회, 북중 국경지대는 1993년 이후 약 100회. 지금까지 약 1000명의 북한 사람들을 취재. 북한 국내에 취재 네트워크를 구축. 주요 작품으로 《북한난민》(고단샤), 《북한으로 돌아간 준》(NHK하이비전 특집) 등.
  
  
[ 2022-07-30, 09: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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