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월19일의 세 문장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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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19일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북한군이 승승장구, 대전을 공격하고 있던 때, 임시수도 대구에서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게 영문 편지를 직접 썼다. 한국전의 대의(大義)와 전략을 천명한 천하명문이다.
  
   <본인은 한국전선에서 미군의 전사상자(戰死傷者)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보고 받을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이곳 한국 땅에서 죽고 다친 미국 병사들의 모든 부모, 처자(妻子), 형제 자매들에게 부족하나마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미국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받아 약자(弱者)를 지켜주려고 이 땅에 와서 잔인한 침략자들을 상대로 해방(liberty)과 자유(freedom)가 지구 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생명을 내걸고 싸우고 피흘린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 각하, 위대한 귀국(貴國)의 병사들은 미국인으로서 살다가 죽었습니다만, 세계시민으로서 그들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공산파쇼 집단(Comminazis)에 의하여 자유국가의 독립이 유린되는 것을 방치한다는 것은 모든 나라들, 심지어는 미국 자신까지도 공격받는 길을 터주는 길이 됨을 알고 나라 사랑의 한계를 초월하면서까지 목숨을 바쳤던 것입니다.>
  
   이승만의 편지를 받은 트루먼 대통령은 답장이라고 하듯이 미국 시간으로 1950년 7월19일 라디오 텔레비전 연설을 했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고, 수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든 미국인들에게도 중요합니다. 공산군의 공격은 국제공산주의 운동이 독립국가를 정복하기 위하여 군사적 침략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침략행위는 모든 자유국가의 안전에 심각한 위험이 됩니다. 이는 사람들이 자유와 평화 속에서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하는 자유국가의 노력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입니다. 정면으로 그런 도발을 하였으므로 우리도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This challenge has been presented squarely. We must meet it squarely).>
  
  
  
   3월9일 투표장에 가기 전에 이 편지를 읽어볼 것을 권함!
  
  
  
   공산군의 승리가 확실해보이던 7월19일 이날 미국의 유명한 기자가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이 글을 찾아낸 필자는 40대가 3월9일 투표장에 가기 전에 읽어볼 것을 권하는 마음으로 소개하기로 했다. 필자 드류 피어슨(1897-1969)은 20세기 미국 언론을 대표하는 칼럼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32년부터 1969년까지 워싱턴 메리고라운드(Merry-Go-Round·회전목마)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고 계약한 수백 개 신문에 실렸다. 고급 정보로 대통령과 관계 및 정계의 비리를 폭로하는 데 앞장섰다. 아래 칼럼이 게재된 날은 1950년 7월 19일인데, 작성 날짜는 7월17일이다.
  
  
  
  <워싱턴
  
  1950년 7월 17일
  
  
  
  사랑하는 아들아, 축축하고 비가 내리는 자정, 잠자리에 들 수가 없구나. 서재 타자기 앞에 앉아 있는데 고양이들이 잠옷을 입은 내 다리 위로 기어 올라오려 하고 있단다. 나를 깨어 있게 하는 것은 비가 아니라 세상이 직면한 몇 가지 문제들, 그리고 너와 같은 많은 다른 소년들이 곧 한국이라는 낯설고 머나먼 전선(前線)으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란다. 그래서 나는 곧 18번째 생일을 맞는 너와 그 나이대의 많은 남자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가고 삶을 계획하는 데 있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궁금해졌단다. 말 그대로 머리 위에 칼이 매달려 있는 가운데 말이지.
  
  나도 이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어. 왜냐하면 우리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했을 때 내가 대학교에 있었거든. 이는 미국이 오랜만에 치른 첫 번째 전쟁이었고 우리 대부분에게 이는 영광스럽고 흥미로운 모험이었단다. 우리는 그때에는 이 전쟁이 다른 일련의 전쟁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몰랐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열병식을 비롯한 국민적 열기를 즐겼었어. 그러다 휴전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울렸을 때 장교 훈련소로 뽑혀 갔던 우리들 중 일부가 실망하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단다. 우리는 이 뉴스가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계속 훈련을 하기도 했었지.
  
  
  
  - 無益한 전쟁?
  
  
  
  하지만 너희 세대 소년들은 우리보다 훨씬 세련된 세대야. 그리고 이 나라는 이후 두 번의 큰 전쟁을 연속으로 겪었지. 뒤이어 한국이라는 곳에서 피가 넘치고 참혹한 하나의 냉전(冷戰)이 발발했단다. 그렇게 모든 화려함과 신기함, 그리고 흥분은 사라졌어. 또한 한편으로 나는 한국에 있는 미군 중위 한 명이 “내 평생 그렇게 쓸모없는 빌어먹을 전쟁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한 것을 딱히 비난하지 않는단다.
  
  8000마일(약 1만2800km) 떨어진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변수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는 점은 잘 이해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1950년이라는 해가 한국전쟁이라는 이유로 역사에 남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내가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은 아닐 거야. 이는 이 전쟁이 미래의 전쟁을 멈추고 통합과 평화의 새로운 시대로 이어지도록 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외국에 있는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엉클샙(Uncle Sap)’이라고 부르기도 해(번역자 注: 부연 설명이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미국의 정신을 의인화한 엉클샘·Uncle Sam을 쉽게 잘 속는 사람이라는 뜻의 Sap으로 바꾼 것으로 보임). 미국에서도 시카고트리뷴 같은 데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그렇게 부르기도 한단다. 우리의 돈과 음식, 철강, 그리고 이제는 생명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비현실적인 바보라는 것이지.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역시도 사실상 ‘엉클샙’으로 불렸어. 그 역시 비실용적인 선각자(先覺者)로 낙인찍혔지만, 그의 가르침은 인류가 그 이후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하나의 목표를 만들어냈어. 미국은 마셜플랜 등 여러 방식으로 우리의 이웃들에게 도움을 줬단다. 나는 미국이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산상수훈(山上垂訓·산 위에서 내린 교훈)을 통해 내린 위대한 가르침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이를 실천적으로 이행하는 것에 가까워졌다고 말하는 것이, 내가 너무 낙관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 피크에 도달한 미국
  
  
  
  네가 알다시피 나는 꽤 비판적인 신문기자로 여겨진단다. 우리 정부나 국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지.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나라가 이제 막 이상주의와 비(非)이기주의, 그리고 힘의 정점(頂点)에 도달했음을 깊이 느끼고 있단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수준으로 말이지. 우리는 이에 도달했지만 또 잃게 될 수도 있어. 위대한 제국들은 과거에 생겨났다가 다시 사라졌었지. 너무 유순해졌거나, 너무 멍청해졌거나, 너무 강력해졌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의 힘을 물질주의적인 정복에 사용했고, 무장된 힘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몰락했단다. 이상주의보다 이기주의를 앞세워 무너지게 된 거지. 우리도 똑같아질 수 있어. 실제로 우리들 중 일부는 평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보다 우리의 뱃속과 배당금, 임금과 물가, 우리나 이웃들이 얼마나 많은 자동차를 갖고 있는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단다.
  
  필라델피아 출신 도널드 서먼 중위가 한국에서 붙잡혔을 때 기자들을 만나 美 공군에 입대한 이유가 “돈을 받았고 이를 통해 필라델피아에 오두막을 짓고 싶어서”라고 말했을 때 나는 완전히 놀랍지도 않았단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중 일부는 한국이 필요했을지도 몰라. 우리가 너무 유순해지거나 이기적이고 물질주의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말이지.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이를 필요했던 것은 침략자에 맞서 전세계가 단결하는 본보기로 삼는 것이었단다.
  
  
  
  - 자유인의 짐
  
  
  
  내가 생각했을 때 이제 막 입대할 나이가 다가오는 너희 소년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한국이라는 결정이 지금이 됐든 얼마 후가 됐든, 언젠가는 내려질 것이었다는 점이야. 국가라는 것은 끊임없이 전쟁을 위협하는 국가와는 함께 살 수 없단다. 그리고 하나의 국가가 자신들의 정치적 신조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들을 상대로 무장을 하고, 그리고 침략하겠다고 위협한다면 자유세계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단다. 특히 너를 비롯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자유인의 짐, 즉 세상을 자유롭게 유지해야 할 자유인의 의무야.
  
  두 개의 대양(大洋)으로 보호받았고 다른 국가들을 신경 안 쓰고 우리의 길만을 걸어 갈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단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원자폭탄과 장거리 전투기로 인해 끝나버렸어.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염병처럼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된 거지. 이것이 자유에 대한 사실이란다.
  
  이곳은 자유로운 세상이 돼야만 해. 그리고 나는 하나의 자유국가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유가 없는 경찰국가들에 둘러싸인 섬처럼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단다. 이와 같은 자유국가와 경찰국가의 충돌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는 것이 낫다는 거야.
  
  
  
  - 전쟁의 씨앗을 멈춰야
  
  
  
  아마 너는 내가 신문기자로 취재하던 국제회의들 가운데 내가 실제로 전쟁의 씨앗이 심어져 있는 것을 직접 눈으로 봤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내 눈으로 이를 직접 보고 국제사회 모두와 함께 이 씨앗이 자라나고 배양되는 것을 지켜본 거지. 하지만 그런 임박한 위기를 막을 힘이 없었단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가 무기력(無氣力)하지 않았어. 임박한 위기를 봤고 이를 막기 위해 움직인 거지. 입대 나이가 다가오는 너와 다른 소년들이 이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오늘날 세계의 어떤 국가도 우리와 같은 희생정신, 용기, 그리고 이상주의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 역시 말이지.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이렇게 나아가야 해. 그러므로 이 한국전쟁은 비록 멀고, 힘들며, 반갑지 않은 전쟁이지만 이 세기의 정중앙인 1950년이라는 해의 위대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단다. 우리가 국제경찰력과 국제적 권위를 구축해 미래의 모든 전쟁을 진압할 수 있도록 한다면 말이지. 이런 것들이 너희 세대의 소년들이 기대할 수 있는 위대한 것들 중 일부란다. 너희 세대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더 똑똑하며 우리가 실패한 곳에서 성공할 수 있단다.
  
  사랑하는 너의 아빠가. (번역/金永男(在美 프리랜서)>
  
  
  
[ 2022-07-30, 23:0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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