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주먹 토종 한국인 '정주영'의 세계적 성공신화!
金鎭炫 회고록을 읽고: 한 경계인의 ‘대한민국 현대사 紀行’③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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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적 한국인 鄭周永
 

김진현 전 장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김구 선생의 ‘益世濟民’ 휘호. 김 전 장관의 거실에 걸려 있다. 사진=김진현

  김진현 선생은 경제부 기자로 출발,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경제연구원 대표이사, 과학기술처 장관, 《한국경제신문》 회장, 《문화일보》 회장, 건국 60주년 기념사업 집행위원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 등을 거치면서 특히 재벌 내부 사정에 밝은 분으로 알려져 있다. 회고록에도 재벌 회장들 이야기가 더러 나오는데 그는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鄭周永)을 가장 논쟁적 인물로 꼽았다.
 
  “현대그룹은 삼성, LG·GS, SK, 한화그룹과 더불어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기업그룹-선진국에도 일본에도 없고 인도, 타일랜드, 필리핀 등에서만 일부 아직 존재하는, 그러면서도 이들과도 다른 독특한 가족기업 복합그룹”이라고 정의한다. ‘그룹’이라기보다 영어의 스피어(Sphere, 天球, 또는 세계)라고 했다. 경제·금융산업을 넘어 사회 모든 부문, 정치·외교·교육·예술·법조·의료·복지·스포츠·언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독립왕국의 한 전형이란 것이다.
 
  정주영에 대한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이 점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 20세기 근대화 혁명의 큰 줄기의 하나이고 산업화 담당 초(超) 거물, 한국 산업혁명의 상징 기업인이라는 점, 특히 ‘맨주먹 소박한 한인(韓人)’의 세계적 성공 신화, 단군 이래 ‘원형(原型) 한인’의 ‘세계적 기업 성공신화’의 창조자라는 점에서 같은 세대의 성공 기업인들과 도전의 질(質)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삼성, LG·GS, 효성, 쌍용 등 영남 부자(富者) 상인 출신들의 성공신화와도, 동양화학(이희림), 대한선박해운(이정림) 등 개성 출신 재벌들과도 차별성이 분명하다. 가장 ‘원초적인 한인’으로서 ‘최초의 세계 기업인’이 된 점, 이게 정주영의 역사적 위상이란 것이다.
 
  그는 기업인이면서도 정권에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때로는 정권에 도전을 서슴지 않았으며 정치에 뛰어들었다. 저자는, 그를 ‘가장 철저한 한인, 보편인, 세계인, 전면인(Totalman) 정주영’이라고 요약했다. “한국적 기준으로는 가장 동물적인 보편성, 그러나 그 시대 인물 대부분이 그러하듯 ‘권력-국가’ 의식은 강하나 본질적 의미의 사회공동체, 보편적 사회 시민의식은 부족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인격”이라고 보았다.
 
  나는 1992년 가을 대통령 후보로 나선 77세의 정주영을 인터뷰했는데 그렇게 신나 보일 수가 없었다. 기업인으로 맨날 정치인, 특히 대통령 눈치를 보다가 선거운동 기간에 욕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기분이 좋다는 이야기였다. 대선 직후 김영삼 당선자를 만나보니 낙선한 김대중 후보보다 보수표를 잠식, 자신이 낙선할 뻔했다고 정주영을 벼르고 있었다. 정 회장은 김영삼 5년 동안 비자금 관련 수사로 검찰에 불려 다니고, 현대그룹은 정권 눈 밖에 나 고생했다. 건강도 악화되었다. 경제 권력이 정치 권력을 못 당한다는 원리를 재확인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니 기를 펴게 된 정주영은 소떼를 몰고 방북, 김대중-김정일 평양회담의 길을 닦았지만, 아들 정몽헌은 그 회담과 관련된 대북(對北)송금 사건 수사를 받다가 자살했다.

 

(계속)

 

[ 2022-10-04, 12: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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