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민주주의 가능한 나라는 한국뿐”
金鎭炫 회고록을 읽고: 한 경계인의 ‘대한민국 현대사 紀行’⑥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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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를 많이 만든 분
 
  일류(一流)국가는 명사를 만들고 이류(二流)국가는 동사를 만든다고 한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3권분립, 인권 등 명사를 만든 나라는 1류이고 그들이 만든 민주주의를 따라 하는 나라는 2류를 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김진현 선생은, 명사, 즉 개념어를 많이 만들었다. 회고록에 ‘내가 만든 개념과 용어’가 두 페이지에 걸쳐서 소개되어 있을 정도이다. TK, 문어발 재벌, 선진화(善進化), 해양화, 준(準)조세 등이다. 1980년대 초 김 선생이 쓴 논문에서 “38도선 분단으로 한국은 섬이 되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해양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축복이었다”는 글을 읽고 세상을 보는 눈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좋은 글은 세상을 넓게 밝게 보게 하는 통유리와 같다”는 조지 오웰의 말처럼 되려면 개념어가 잘 정리, 활용되어야 하는데 한글전용으론 이게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김 선생이 염원하는 선진화는 한국어의 반신불수(半身不隨)로 불가능한 목표가 된 게 아닐까? 이 책에서도 ‘김진현’이란 발음부호만 있고 ‘金鎭炫’이란 뜻을 담은 본명은 맨 끝 이력난에 숨어 있었다.
 
 
  라이샤워, “아시아에선 한국만 민주주의 가능”
 

한국 민주화에 관심이 많았던 라이샤워 교수는 1973년 11월 16일 서울 동교동에 있는 김대중씨 사저를 찾아 김대중씨와 만났다. 사진=조선DB

  김진현 선생은 1970년대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 재단 초청으로 연수를 간 적이 있다. 나는 1990년대 니만 펠로였다. 그는 “한국 대학 4년보다 그곳에서 1년이 더 많이 배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 선생은 하버드에서 만난 에드윈 라이샤워 교수의 말 한마디에 한국 정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썼다.
 
  1972년 유신(維新)이 선포됐다. 김 선생이 오전 강의가 끝나고 니만 사무실 라운지에서 《뉴욕타임스》를 펼치니 1면 톱에 탱크가 국회 정문을 막아선 사진과 함께 유신계엄 선포 기사가 실려 있었다. ‘눈물이 났다. 이제 신문사도 문 닫겠구나. 나라는? 나는 어찌해야 하나?’ 니만 동료들도 있는데 눈물을 보이기 미안하여 정문을 열고 뜰로 내려가는데 다릿심이 빠져 계단에서 주저앉아 버렸다고 한다.
 
  열흘쯤 뒤 하버드대학 라이샤워 교수가 주동, 학자 전직 외교관 등 10여 명이 박정희(朴正熙) 독재를 맹렬히 비판하고 압력용으로 주한미군(駐韓美軍) 철수를 요구하는 성명서가 나왔다. 저자는 라이샤워 교수 면회를 신청, 옌칭도서관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유신반대 성명에 감사를 표하고, 그러나 유신의 명분이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인데 미군 철수 주장은 닉슨 독트린처럼 박정희 독재의 명분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설명 중에 1904~1905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친일(親日) 정책을 언급하는 순간 라이샤워는 책상을 탕 치면서 말했다.
 
  “미스터 김, 내가 한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는가. 옌칭도서관에 한국관을 만든 것도, 한국학 강의와 한국학 교수를 독립시킨 것도 나일세. 나는 아시아 국가 중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네. 한국인들의 개성적·직설적 성격으로 해서 한국만이 민주주의가 가능한 나라이네. 중국, 베트남? 일본? 내가 일본 전문가이고 주일대사 했고 마누라도 일본 사람이지만 일본은 민주주의 어려워….”
 
  〈두 가지로 큰 충격이었다. 일본에 대하여 경제 기술은 물론 정치 민주주의도 우리보다 훨씬 앞선 선진국으로 생각했던 나, 당시 평균적인 한국 사람 모두 그리 알고 있는 일본에 대한 미국 최고 일본 전문가의 말씀은 놀랍지만, 소화가 어려웠다. 한국만이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한 특출한 나라인데 오직 박정희가 이를 막고 있다는 판단은, 국내에서건 해외에서건 처음 듣는 말이었다.〉
 
  김 선생은, 그 이후로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아시아에서 한국의 특징, 세계적 보편성과 아시아적 일반성과 한국의 특수성·예외성 같은 명제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 결과물의 하나가 2005년에 출판된, 《일본 친구들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이고 아직도 매달리고 있다.
 
  라이샤워 교수는 통일신라를 높게 평가한 적이 있는데 이게 대한민국에 대한 낙관적 전망으로 연결된 것인지 모르겠다. 일본 천태종을 연 승려 엔닌(圓仁)의 여행기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를 영문(英文)으로 번역 출판하고 해설책 《엔닌(圓仁)의 당대(唐代) 중국 여행》이란 책을 냈던 그는 신라에 감탄했다.
 
  〈당시의 한국(신라)은 지리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문화적으로도 이미 오늘과 같은 나라였다. 같은 민족, 언어, 국경을 가지고 한국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한국에 필적할 만한 소수의 국가군(群) 속에 일본이 들어 있다.〉
 
  신라 통일을 가능케 했던 것은 나당(羅唐) 동맹이었다. 신라인의 해외 활동은 세계 제국 당(唐)의 제1 동맹국이었다는 데서 가능했을 것이다. 1945년 이후 한국인의 활동무대가 신라인을 닮아 세계로 넓어질 수 있었던 데는 한미(韓美) 동맹 덕이 컸다. 통일신라와 대한민국은 상무(尙武)정신, 자주정신, 해양화 등 공통점이 많다.

 

 

(계속)

 

[ 2022-10-07, 22: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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