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재산권의 보장이 國富(국부)의 지름길
FREEDOM 교양영어 (187): Wealth of Nations (Excerpt)

朴承用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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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the slave cultivation of antient times, gradually succeeded a species of farmers known at present in France by the name of Metayers. They are called in Latin, Coloni Partiarii. They have been so long in disuse in England that at present I know no English name for them. The proprietor furnished them with the seed, cattle, and instruments of husbandry, the whole stock in short, necessary for cultivating the farm. The produce was divided equally between the proprietor and the farmer, after setting aside what was judged necessary for keeping up the stock, which was restored to the proprietor when the farmer either quitted, or was turned out of the farm.  


Land occupied by such tenants is properly cultivated at the expense of the proprietor, as much as that occupied by slaves. There is, however, one very essential difference between them. Such tenants, being freemen, are capable of acquiring property, and having a certain proportion of the produce of the land, they have a plain interest that the whole produce should be as great as possible, in order that their own proportion may be so. A slave, on the contrary, who can acquire nothing but his maintenance, consults his own ease by making the land produce as little as possible over and above that maintenance. It is probable that it was partly upon account of this advantage, and partly upon account of the encroachments which the sovereign, always jealous of the great lords, gradually encouraged their villains to make upon their authority, and which seem at last to have been such as rendered this species of servitude altogether inconvenient, that tenure in villanage gradually wore out through the greater part of Europe. The time and manner, however, is one of the most obscure points in modern history.


현재 France에서 Metayers의 이름으로 알려진 한 종류의 농민들이 고대의 노예 農耕(농경)을 점진적으로 계승하였다. 그들은 Latin語로 Coloni Partiarii로 불려진다. 이 말(Metayers)은 영국에서 하도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아서 나는 현재 영어의 이 단어를 모른다. 지주는 이들(Metayers)에게 종자와 소와 농기구와 간단히 말해서 농사에 필요한 모든 농사용 물자(stock)를 제공하였다. 농사용 물자(stock)를 보존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는 것을 제쳐 놓고, 생산물(produce)은 지주와 농부(소작농)사이에 동등하게 분배되었다. 농사용 물자는 농부가 사임하거나 농장에서 해고 될 때는 주인에게 되돌아갔다.


이런 借地(차지)농부(tenants)가 차지한 땅은 노예가 차지한 땅과 똑 같이 주인의 비용으로 적절하게 경작되었다. 그러나 이 들 둘 사이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이런 차지농부는 자유민이기 때문에 재산취득이 가능하고 토지의 생산량의 일정 부분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전체 생산량 중에서 그들의 할당비율을 최대화하기 위하여 생산량을 가능한 한 크게 하는 데에 명백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와 반대로 자신의 유지비 외에는 아무 것도 취득할 수 없는 노예는 토지에서 유지비 외에는 가능한 한 적게 생산함에 의해서 자신의 편안함을 도모한다.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이런 이점 때문에, 또 부분적으로는 대지주(봉건영주)들을 항상 질투하는 국왕(sovereign)이 점진적으로 차지농부(villain)들로 하여금 영주의 권위를 훼손하게 함으로서, 그래서 마침내 이런 종류의 복속이 전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게 되어서 농노의 借地(차지)는 유럽의 대부분 지역에서 점차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 시기와 방법은 현대역사에서 가장 불분명한 점 중의 하나이다.

 


*해설:

Smith가 누차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노예의 노동생산성은 지극히 낮다. 개인적 재산권이 없는 노예에게 창의적이고 의욕적인 노동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노예들에게는 게으름피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된다. Smith는 미국의 남부가 노예대신 농업 노동자를 고용하면 생산성이 훨씬 더 높아질 것이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의 자발적인 이상주의적 공동체인 kibbutz가 실패하고 공산주의국가들이 모두 상시적으로 물자의 부족에 허덕이게 되는 것은 이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모두 개인적인 재산권이 없는 노예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Smith는 영국처럼 소유의 자유를, 즉 개인의 재산권을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 번영하는 나라의 성립조건이라고 하였다:


That security which the laws in Great Britain give to every man that he shall enjoy the fruits of his own labour, is alone sufficient to make any country flourish, notwithstanding these and twenty other absurd regulations of commerce; and this security was perfected by the revolution, much about the same time that the bounty was established. The natural effort of every individual to better his own condition, when suffered to exert itself with freedom and security, is so powerful a principle, that it is alone, and without any assistance, not only capable of carrying on the society to wealth and prosperity, but of surmounting a hundred impertinent obstructions with which the folly of human laws too often encumbers its operations.


<대영제국에서 법률이 모든 개인에게 자신의 노동의 열매를 향유하도록 해주는 그 보장(security)만이 어느 나라라도, 상업에 대한 이런 저런 많은 부조리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번영하게 만드는 데 충분하다. 그리고 이러한 보장은, 이런 혜택이 확립된 것과 같은 시기에, 혁명(1688년의 명예혁명)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자신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려는 모든 개인의 천부적인 노력은, 그것이 자유와 보장에 의해서 자유롭게 그리고 안전하게 스스로 노력하도록 허용될 때 너무나 강력한 원칙이 되며 그 그런 노력만이 어떠한 도움이 없이도, 사회를 富(부)와 번영으로 이끌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법률이 너무나 자주 그 노력의 작용을 방해하는 백가지 뻔뻔스런 부적절한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

 

 

[ 2022-11-15, 14: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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