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의 마지막 10년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순동 전 홍보담당 사장, “우국충정의 애국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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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동(李淳東) 전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사장은 삼성전자 최초의 홍보팀장이며 국내 대기업에서 홍보 담당으로는 처음으로 사장을 지냈다. 그는 1980년부터 2011년까지 삼성그룹 홍보를 책임졌고, 현재 국제광고협회 한국지부 회장을 맡고 있다. 배재고-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1972년 《중앙일보》에 기자로 입사했고 언론통폐합 후인 1980년 삼성전자 홍보팀장(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월간조선 11월호와 한 인터뷰에서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故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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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이건희를 우국(憂國)의 애국자라고 했다.
  
   “이건희라는 인물은 단순한 기업인이 아닙니다. 전설적인 혁신가였고, 우국충정(憂國衷情)의 애국자였으며,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자였습니다.”
   이건희는 홍보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성을 갖고 있음을 간파했다.
   “그때 삼성에 홍보팀이라곤 그룹 홍보팀, 제일 큰 회사인 제일제당 홍보팀 정도만 있었고 인원도 소수였어요. 그런데 언론통폐합이라는 사건을 겪은 후 이건희 부회장이 대책을 마련해야겠다고 결심한 겁니다. 1967년 한국비료를 정부에 뺏긴 것도 삼성가(家)에는 엄청난 사건이었거든요. 정부에 기업을 뺏기지 않으려면 강력한 홍보 기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직접 삼성전자에 홍보팀을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언론통폐합으로 갈 곳을 잃은 기자들이 삼성으로 상당수 들어왔는데 그 아까운 인력을 다른 데 쓰지 말고 각 사에 홍보팀을 만들라고 직접 지시를 했습니다.”
  
   이순동 씨는, 이건희 회장이 1981년 6월 에버랜드에서 각사 홍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얘기를 했다고 증언했다.
  
   “세간에서 삼성 이병철을 돈병철이라고 부르더라. 다들 미워한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기업을 밉게 보니 기업인들은 정권이나 정치인들에게 이용을 당하고 기업도 하루아침에 뺏기는 상황이 벌어진다. 기업은 국민의 사랑을 받아야 하고 사랑을 받지 못하면 기업이 없어진다. 사랑받기 위해선 국민들이 원하는 걸 들어주고, 국민에게 우리가 하는 일을 잘 설명해야 한다. 그게 홍보의 역할이고, 즉 홍보인은 기업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
  
   국민들의 신뢰를 받아야 권력에 맞설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기업 이미지 광고와 캠페인을 시작한 것도 이건희 회장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삼성 하면 기억나는 카피 많죠? 또 하나의 가족, 국민 대표 브랜드 삼성, 디지털 프론티어,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 이런 문구 다들 한 번씩은 들어봤잖아요. 기업 이미지 광고를 만들라고 했어요.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만들라는 겁니다. 그 전엔 재벌그룹은 많았지만 ‘그룹 홍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거든요. 신문 1면과 맨 뒷면에 이런 그룹 광고를 실으니 독자들에게 ‘아 삼성은 단순히 제품을 만들고 파는 기업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일을 하는 기업이구나’라는 이미지가 형성된 겁니다. ‘감사합니다 캠페인’도 이 회장의 아이디어였어요. 국민에게 감사한 마음을 항상 가지라는 거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시대를 한참 앞서 나갔습니다.”
  
   “한국비료나 TBC를 뺏긴 경험이 뼈아프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선대 회장(이병철)은 그런 이유로 정치를 할 생각을 했었는데 이건희 회장은 선대와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기업이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응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뺏길 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對국민-對언론 홍보를 통해 여론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이건희는 광고가 언론의 자유를 강화한다고 믿었다.
  
   “광고 시장이 커지면 혜택을 누가 봅니까. 언론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언론이 자유시장경제를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하고, 언론이 제대로 생존하면서 제 역할을 하려면 기업들의 광고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론에 광고를 주는 게 기업의 사회적 비용이라고 본 겁니다. 보수 언론이고 진보 언론이고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에 광고를 줬죠. 구독률 낮은 진보 언론에도 광고를 주니 일부 보수 언론이 불만을 품는 일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 회장은 ‘보수 언론도 진보 언론도 살아야 언론이 산다’고 강조했습니다.”
  
   월간조선 기자가 “30년 이상 함께해 온 이건희 회장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이라고 물었다. 이순동 씨는 이렇게 답했다.
  
   “우국충정입니다. 요즘 시대에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이념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나라를 걱정하고 잘되길 바랐어요. 이건희 회장은 기업인이나 경제인이라고 말하기엔 아까운 존재입니다. 늘 나라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업무를 마치고 쉬려고 해도 나라 걱정에 잠이 안 온다고 했습니다.
   사실 처음엔 ‘이분이 대통령을 하고 싶은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은 6·25전쟁과 군사쿠데타 등 현대사의 굴곡을 겪으며 자란 기업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혹시라도 자유시장경제체제가 무너질까 봐 걱정을 한 겁니다. 1987년 회장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돼서 한 일이 달동네를 돌아다닌 거였어요. 동행했던 임직원들은 의아해 하기도 했죠. 삼성 회장의 초기 행보가 달동네라니. 다시 생각해보면 임직원들에게도 자신과 같은 결심을 심어주려 한 것이었습니다. 돌아다니면서 달동네 사람들이 이곳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빈곤층이 희망을 갖지 못하면 자유시장경제는 무너지고 공산주의가 우리 사회를 침범하고 국민은 더 비참한 형편이 되고 나라는 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달동네 사람들이 번듯한 집을 갖고 중산층으로 살 수 있도록 삼성이 앞장서겠다고 했지요.”
  
   “자신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100억 가져가나 200억 가져가나 무슨 의미가 있나, 내 재산 늘어나고 줄어드는 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나라가 잘살고 국민이 잘살아야 우리 후손들이 제대로 된 세상에서 살 수 있다고 했지요.”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이런 뜻을 받들어 일종의 종합적인 복지기관 역할을 하게 된다.
  
   “사실 세금이 사용돼야 하는 각계 분야에 지원한 것은 물론이고, 천재지변이나 사고 발생 시에도 삼성이 나섰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도 삼성봉사단이 출범했잖아요. 삼성 임직원들도 국가의 일에 삼성이 나서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순동 회장은 1990년대부터 삼성그룹 비서실과 구조조정본부에서 홍보, 광고, 사회봉사, 문화사업 지원 등 대외업무를 총괄했다. 모두 이건희 회장의 직접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세계적인 한국인 아티스트 중 삼성이 지원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백남준, 백건우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국내외 작품 활동을 지원한 건 물론이고, 박세리 등 스포츠인들도 지원했고요. 언론사에서 실시하는 대회들도 거의 다 지원했어요. 삼성이 안 하면 누가 하겠어요? 삼성 비서실에는 각종 협회와 단체들의 지원 요청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필요로 하는 데는 다 지원해라’라고 했습니다. 어느 단체에서는 30억원을 요청했는데 이건희 회장이 내용을 듣더니 ‘100억원 지원해라’라고 한 적도 있었어요. 빈곤층을 위한 일이거나 국가 이미지와 직결되는 일이면 더 규모가 커지곤 했습니다. 비서실과 홍보실이 난감해할 때도 많았는데 이 회장은 뜻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번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기업이 사회복지사업과 문화예술에 큰돈을 지원하기 시작한 건 삼성이 처음이었거든요. 이건희 회장은 ‘삼성이 해야 다른 기업들도 따라오고, 삼성이 기준이 된다’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분야에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했습니다. 재벌은 기업이 아니라 공익법인이라는 게 이 회장의 생각이었습니다. ‘기업은 국민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대명제가 분명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미관계에도 신경 썼다.
  
   “이건희 회장은 한미 관계가 악화됐을 때도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1990년대 반미감정이 고조되고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실망하고 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올 때 이 회장은 한미 관계가 우리 기업과 정부에 큰 부담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컸거든요. 지금도 미국이 한국산 전기자동차 규제에 나서니까 국내 기업들이 크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때 국방부의 한 장성이 우리(삼성) 비서실에 미국의 한 군사학교에 있는 한국전쟁기념관이 오래되고 낡아서 보수해야 하는데 예산이 없다는 얘기를 전했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이건희 회장이 ‘무조건 지원하라’고 지시했어요. 이건희 회장은 한미우호 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과 미국에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안보 분야에도 말할 순 없지만 지원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각종 국제대회에 한국인이나 한국 단체가 나가면서 지원을 요청하면 무조건 했습니다. 출판, 애견, 레저 등등 국제적인 무대에 삼성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88올림픽 전에 유럽 일부에서 한국인이 개를 먹는다며 보이콧한 적이 있었잖아요? 그때 국제애견대회를 삼성이 후원하면서 한국의 애견문화에 대해 홍보를 했고 보이콧 사태는 사라졌습니다.”
  
   그는 이재용 회장에 대한 기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 DNA가 어디 가겠습니까. 우리 세대는 이재용 부회장을 어릴 때부터 봐 경영 능력을 잘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본인도 힘들었을 겁니다. 엄격하고 꼼꼼하고 가족보다 나라 먼저 생각하는 아버지 아래에서 하고 싶은 일이라곤 할 수 없는 성장환경이었잖아요. 늘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 놀 수가 있나 맘껏 술 마시러 다닐 수가 있나, 허튼 행동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쓰러지고 나서 좌파들로부터 숱한 공격을 받고 거기다 감옥까지 갔다 왔으니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나라를 걱정하던 아버지가 나라에 당한 셈이잖아요.
  
   하지만 요즘 행보를 보면 아주 믿음직하고 단단해졌습니다. 이건희 회장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이재용 부회장에게서 많은 수난을 겪으면서 아버지와 유사한 국가관과 책임의식이 정립됐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돈에 연연하지도 않고요. 보통 아들은 아버지와 대립하다가도 나이 먹어 가면서 아버지와 비슷해지잖아요. 개인적으로 그가 수난을 겪은 것은 아버지를 이어 대한민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경제 강국으로 만들라는 운명의 장난이었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이순동 씨는 이건희 회장의 생전 마지막 10년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은 마지막 10여 년은 이전만큼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했죠.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고, 일부 시민단체와 노동 세력으로부터 비판받고,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삼성은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고…. 국내 의료 수준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이건희 한 사람 일으켜 세우지 못했는지 울분이 터질 때가 있습니다. 본인이 의료와 복지에 얼마나 돈과 정성을 쏟아부었습니까. 10년만 더 경영을 했으면 지금의 삼성과 대한민국은 더 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거기다 일부에선 루머를 퍼뜨리고 음해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통증치료와 민간치료 과정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일들이 악의적으로 포장됐습니다.
  
   저는 이건희 회장을 30년 이상 봐 왔지만 술도 골프도 좋아하지 않고, 입는 것 먹는 것 사치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밤잠 설치며 나라 걱정하고, 강아지 좋아하고, 라면 좋아하고요. 무엇보다 명예를 중시했던 이 회장이 마지막에 그런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춰졌다는 점은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이건희 회장의 세계적 컬렉션은 국가에 기부되어 서울 송현동에 전용 미술관을 짓는다고 한다. 살았을 때나 죽고 나서도 아낌없이 준 나무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 2022-11-23, 15:3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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