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後 70년'이란 새로운 '시대구분'으로 우리의 생각을 확 바꾸자!
우리의 戰後史는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 복지화를 거쳐 이제는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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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국제정세와 나라의 분위기는 올해 자유통일의 문이 열릴 것이란 예감을 갖게 한다. 피, 땀, 눈물로 써온 70여 년의 한국현대사는 ‘The Greatest Story Ever Told’,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로 기억, 기록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착하게 살아왔다. 부채의식도, 열등의식도, 노예근성도 필요 없다. 올해 한국인은 세계 앞에서 당당해져야 한다.
 
 
'戰後70년',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자랑하고, '가장 위대한 세대'에 감사하자
  
   趙甲濟(조갑제닷컴 대표)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휴전협정 조인식에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표를 보내지 않았고 서명도 하지 않았다. 북한정권의 비겁한 기습남침으로 국토가 난장판이 되고 3년 1개월간 피 터지게 싸운 결과는 거의 원위치로의 복귀였다. 대통령은 다 이겨놓은 전쟁을 미국이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도저히 이 휴전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휴전협정 조인식을 보도한 1953년 7월29일자 조선일보의 사회면 머리기사 제목은 ‘오고야만 휴전의 날. 통일쟁취는 이제부터’였다. 판문점에 특파되었던 최병우(崔秉宇) 기자는 그 뒤 한국일보로 옮겨 대만해협 위기를 취재하던 중 타고 있던 함정이 침몰할 때 순직했다.
  
   <백주몽(白晝夢)과 같은 11분간의 휴전협정 조인식은 모든 것이 상징적이었다. 너무나 우리에게는 비극적이며 상징적이었다. 학교 강당보다도 넓은 조인식장에 할당된 한국인 기자석은 둘뿐이었다. 유엔 측 기자단만 하여도 약 백 명이 되고 참전하지 않는 일본인 기자석도 10명을 넘는데 휴전회담에 한국을 공적으로 대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이리하여 한국의 운명은 또 한 번 한국인의 참여 없이 결정되는 것이다.
  
   27일 상오 10시 정각 동편 입구로부터 유엔 측 수석대표 해리슨 장군 이하 대표 4명이 입장하고 그와 거의 동시에 서편 입구로부터 공산 측 수석대표 남일(南日) 이하가 들어와 착석하였다. 악수도 없고 목례(目禮)도 없었다. ‘기이한 전쟁’의 종막(終幕)다운 ‘기이한 장면’이었다. 해리슨 장군과 남일은 쉴새 없이 펜을 움직인다. 각기 36번 자기 이름을 서명하여야 하는 것이다. (중략) 그 속에는 우리가 그리지 않은 분할선이 울긋불긋 우리의 강토(疆土)를 종횡으로 그려져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곳이 우리나라인가?” 이렇게 의아한다. 그러나 역시 우리가 살고 죽어야 할 땅은 이곳밖에 없다고 순간적으로 자답(自答)하였다. (중략) 관례적인 합동기념 촬영도 없이 참가자들은 해산하였다.>
  
  
   2023년은 1953년 한국전 휴전으로부터 70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가 미국 등 유엔 회원국들과 손잡고, 스탈린·모택동·김일성 세 악당(惡黨)의 침략과 맞서 싸운 한국전은 무승부로 끝나는 듯했지만 그해 7월27일부터 새로운 형태의 체제경쟁이 시작되었고 이기고 있다.
  
   우리가 한미(韓美) 양국의 최고사령관 이승만, 트루먼 대통령의 영도 하에 세계시민으로서 싸운 덕분에 자유세계가 냉전에서 최종승리했다. 우리의 정의로운 항전(抗戰)으로 대만이 살았고, 일본이 경제부흥했으며, 서독은 재무장하고, NATO는 군사동맹체로 강화되었다. 미국은 군사비를 4배로 늘려 본격적인 대소(對蘇) 군비경쟁을 시작했고, 한국은 폐허 위에 위대한 문명을 건설하였다. 남침 40년 뒤 소련(동구) 공산제국은 군비경쟁으로 경제적 기반이 주저앉고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니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핵무기를 껴안은 채 무너졌다.
  
   소련과 동구 공산국가의 변화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우리가 주최한 88 서울올림픽이었다. 소련과 동독이 메달 수에서 1, 2등을 하고 선전매체들이 경기뿐 아니라 한국의 발전상을 열광적으로 중계방송을 한 것이 오히려 주민들에게 “우리는 뭐냐”는 문제의식을 심어 1989년의 공산권 대붕괴로 이어졌다. 우리는 사생결단의 저항과 평화의 올림픽 주최로 공산당을 무너뜨리고 자유세계를 구했다. 아시아에서 공산당과 싸워 자유를 지킨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지난 70년 한국인의 가장 위대한 결단은 괴물과 싸우되 괴물을 닮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희생시키지 않고 키우면서 공산주의와 싸웠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재임 18년간 수많은 폭력 시위에 직면했지만 한 번도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단 한 명도 총 맞아 죽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그런 점에서 진짜 노벨 평화상감이다). 그리하여 한국인은 최악의 조건에서 최단기간에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의 업적을 남겼다.
  
   미국의 한 매체는 연초 한국이 ‘강력한 나라 랭킹’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6위가 되었다고 했다. 인구 5000만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의 큰 나라들 중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한국·이탈리아뿐이다.
  
   신약성경 로마서 12장은, “아무에게도 악(惡)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善)한 일을 도모하라. 악에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는데 한국인이 걸어온 길이 바로 이 가르침대로였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도 건국기념 연설에서 “종국에 가서는 선이 악을 이긴다고 믿고 더디지만 민주주의를 밀고 나가야 합니다”라고 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 때도 언론검열을 폐지했고 역사상 최대규모의 선거를 했으며 특히 직선제 개헌을 했다. 한국인은 직선제 쟁취를 말하면서 최초의 직선 대통령을 독재자로 몰았다. 한국전은 세계사적 관점에선 자유를 지켜낸 정의로운 전쟁으로 평가받지만 한반도에서만은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작금의 국제정세와 나라의 분위기는 올해 자유통일의 문이 열릴 것이란 예감을 갖게 한다. 피, 땀, 눈물로 써온 70여 년의 한국현대사는 ‘The Greatest Story Ever Told’,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로 기억, 기록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착하게 살아왔다. 부채의식도, 열등의식도, 노예근성도 필요 없다. 올해 한국인은 세계 앞에서 당당해져야 한다. 세계 6위의 국력에 맞는 큰인물이 되자!
  
   개화기, 식민지, 해방, 건국, 전쟁의 격동기를 거친 뒤 얻은 자유와 평화의 戰後 70년! 우리는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 복지화를 성공시켰으니 이제는 통일이다. 戰後史 70년의 여세를 몰아 세계시민들과 손 잡고 자유통일로 직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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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戰後70년'을 화두(話頭)로 삼으면 신나는 이야기가 절로 풀려나온다. '戰後70년'은 '가장 위대한 이야기'이므로 그런 스토리를 만든 사람들 중심으로 생각이 전개된다. 가슴이 벅차고 눈물 나는 추억과 감격 속에서 밝은 미래를 자연스럽게 전망하게 된다. 예컨대 '戰後70년'을 화두로 던졌을 때 생각의 전개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자!
  
  *戰後70년, 한손에 망치 들고 다른 손에 총 들고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웠다!
  *戰後70년, 이제는 통일이다!
  *戰後70년,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 복지화, 다음은 자유통일로 직진하자!
  *戰後70년,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지켜내 번영을 이룩했다.
  *戰後70년, 아쉬운 점도 많았다. 이승만을 잊고 박정희를 미워한 것!
  *戰後70년, 최악의 조건에서 최단기간에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업적을 이뤘다!
  *戰後70년, 우리는 선택했다.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을!
  *戰後70년, 당신의 가장 감동적 순간은?
  *戰後70년, 가장 슬펐던 때는?
  *戰後70년, 가장 위대한 인물은?
  *戰後70년, 가장 고마운 사람은?
  *戰後70년, 최고의 가수는?
  *戰後70년, 최고의 노래는?
  *戰後70년, 최고의 선수는?
  *戰後70년, 최고의 업적은?
  *戰後70년, 최고의 건축물은?
  *戰後70년, 자유통일 위해서 길러온 힘이기에 조국의 이름으로 어딘들 못가리까!
  *戰後70년, 자유의 방파제는 이제 그만, 자유의 파도가 되어 평양을 쓸어버리자!
  *戰後70년, 국가건설, 민주발전, 자유수호, 법치정착, 다음은 자유통일!
  *戰後70년, 自助정신-自立경제-自主국방-自由통일
  *戰後70년, 4대 재발견-해양정신, 기업가 정신, 자주정신, 尙武정신!
  
  이런 식으로 생각이 넓어지다가 보면 나라 분위기가 달라지고 사람들도 큰 인물이 된 기분이 들 것이다. 국력 6위에 맞는 국민이 되려면 정신력이 따라줘야 한다.
  
  *댓글창에 '戰後70년'을 주제로 좋은 아이디어 많이 남겨주세요!
[ 2023-01-17, 09:2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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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학산     2023-01-19 오전 10:00
"우리의 정의로운 항전"
"한국은 폐허 위에 위대한 문명을 건설하였다"
"아시아에서 공산당과 싸워 자유를 지킨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리하여 한국인은 최악의 조건에서 최단기간에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의 업적을 남겼다"
"올해 자유통일의 문이 열릴 것이란 예감을 갖게 한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로 기억, 기록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착하게 살아왔다. 부채의식도, 열등의식도, 노예근성도 필요 없다. 올해 한국인은 세계 앞에서 당당해져야 한다"
위의 문장들. 밥숟가락 놓을 때가 다 된 내가 읽어도
가슴이 뛰고, 희망이 솟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진다
그럴진대 젊은이들은 어떠하겠는가
이 글을 학생들 교과서에 실으라.

"戰後 70년"이란 새로운 "시대구분"으로 우리의 생각을 확 바꾸자!는 말씀은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 "대표를 보내지도 않고 서명도 하지 않은"
그런 기백이 생기게 하는 말씀이다
그렇다 지금까지는 패배주의적 시대구분이었고
패망한 조선의 생각이 담긴 시대 구분 용어였다
"해방 이후 몇년"이라는 용어는 비애감이 묻어나온다
그러나 "전후 70년"이란 "전후"라는 말부터가 건설을 의미한다
이제 활기차고 희망적인 시대구분 용어를 사용하자
말이 생각을 낳고 생각이 행동을 낳는다







   白丁     2023-01-19 오전 1:08
대한민국 내 자생적 공산주의 세력, 토착공비만 일소해버리면 그리 될 수 있다. 그게 먼저다.
   bestkorea     2023-01-18 오전 10:58
나는 평소 외국인들과 대화를 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고 도움을 받는 자료도
조갑제 닷컵이다.
The Greatest Story Ever Told!!!
반드시 그 꿈은 이뤄지리라 믿는다.
그 가운데 조갑제 닷컵이 있어
믿음직 스럽다.
감사합니다.
   무학산     2023-01-17 오후 4:51
현달한 어른의 말씀을 단디 들어야 한다 가슴에 새겨 놓아야 한다
자유통일의 문이 열리고 있을 때 어떻게 할지 미리 준비해 놓으라는 이야기이다
미국이 북폭을 하려 했을 때도 기회였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겁을 먹고 그 기회를 스스로 막았다
명분은 북폭 반대였고 민족을 핑계 대었다
기회가 흘러가버렸고
버림 받은 기회는 위기로 다시 찾아와서 북한의 핵무기가 돼 버렸다
이 일을 거울삼고 교훈삼아서 강단 있게 밀고 나아가야 한다
윤 대통령은 그러리라 믿는다
   prince     2023-01-17 오후 2:42
천하명문입니다.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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