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함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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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년 전 내가 다니는 靈泉교회 이용호 목사가 로마서 12장21절의 <惡에 지지 말고, 善으로 惡을 이겨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것을 소개한다. 惡 중의 최고 惡은 공산주의이고, 惡의 핵심은 거짓선동과 폭력이다.
  
   이용호 목사는 이 세상에서 惡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前提를 깔고 이야기하였다. 성경에는 惡을 없애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惡은 인간 세상의 속성이다. 하나님이시기도 한 예수도 열두 제자를 뽑았지만 한 사람은 배신자 가롯 유다였다. 세상에서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惡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들을 없애는 것이다. 따라서 惡은 없애는 대상이 아니라 이기는 대상이다.
  
   惡에 이기는 방법은 세 가지이다(내 생각까지 보탠다면).
  
   첫째, 惡에 지지 않는 것이다. 惡에 물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惡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둘째, 善으로 惡을 이겨야 한다. 惡으로 惡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을 거짓으로 이길 수 없다. 괴물을 잡기 위하여 괴물이 되어선 안 된다. 조지 오웰의 말대로 공산당에 이기려고 공산당 식 수법을 써선 안 된다. 머리를 써야 한다. 밭에 곡식과 가라지가 섞여 있다고 하여 밭을 불태워선 안 된다. 惡을 덮으려면 善行을 많이 하여야 한다. 세상이 좋아지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惡이 없어지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 惡이 세상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善行에 힘써야 한다. 惡에만 집착하는 것은 惡에 지는 길이다. 무시하고 善의 길을 가면 된다.
   셋째, 내 속의 惡에 이겨야 한다. 내 바깥의 惡에 이기려면 내 속의 惡을 善行으로 눌러야 한다. 惡과 싸우다가 내가 惡을 닮아가고 있지 않은지 늘 경계해야 한다.
  
   이 원칙을 공산주의자들의 거짓과 폭력에 적용하면 이럴 것 같다.
  
   첫째, 거짓을 거짓으로, 선동을 선동으로 이기려 해선 안 된다. 진실의 힘으로 거짓을 이겨야 한다.
   둘째, 폭력을 폭력으로 이기려 하면 안 된다. 폭력에는 法으로 이겨야 한다.
   셋째, 반공자유민주주의일수록 거짓과 폭력에 대한 유혹, 그리고 獨善을 눌러야 한다.
  
   李承晩 대통령의 建國 기념 연설중 첫 문장,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믿어야 될 것입니다. 민주제도가 어렵기도 하고 또한 더러는 더디기도 한 것이지마는 義(의)로운 것이 종말에는 惡(악)을 이기는 이치를 우리는 믿어야 할 것입니다"도 성경과 같은 취지이다.
  
   트루먼, 레이건, 요한 바오로 2세, 대처, 李承晩 같은 이들이 惡에 지지 않고 善으로 惡을 이긴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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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정신에서 나온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긴 비결은 성경 속에 있다.
  
  
   *사도 바울: "惡(악)을 惡으로 갚지 말라"
  
  
   *로마서 12장9절: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惡을 미워하고 善(선)에 속하라.
   (Love must be sincere. Hate what is evil, cling to what is good)
   *로마서 12장17절: 아무에게도 惡을 惡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善한 일을 도모하라.
   (Do not repay anyone evil for evil. Be careful to do what is right in the eyes of everybody)
   *로마서 12장21절: 惡에 지지 말고, 善으로 惡을 이겨라.
   (Do no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
  
   공산주의자들과 싸울 때는 그들과 같은 방법을 써선 안 된다. 惡을 惡으로, 거짓을 거짓으로 깰 순 없다. 善意(선의)를 잃지 않고 진실을 무기로 삼아 꾸준히 싸워가면 惡은 자충수로 망한다. 공산주의자는 거짓을 먹고 살기 때문에 언젠가는 배탈이 나게 되어 있다.
  
  
   *루터의 처방: "惡魔(악마)를 조롱하라"
  
  
   "惡魔를 쫓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성경을 읽어줘도 굴복을 하지 않으면, 야유하고 조롱하라. 惡魔는 경멸을 견디지 못한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한 말이다. '惡魔'라는 단어 대신 從北(종북)좌익이란 말을 넣고 '성경' 대신에'헌법' 을 代入(대입)하면 이렇게 된다.
  
   "從北좌익들을 소탕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憲法(헌법)을 갖다대어도 승복하지 않을 때는, 야유하고 조롱하라. 그들은 경멸을 견디지 못한다."
  
   루터는 惡魔를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惡魔가 시키는 것을 거꾸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惡魔가 당신을 괴롭힐 때마다, 친구를 만들고, 술을 퍼 마시며, 농담을 하고 실없는 소리도 하면서 즐겁게 살아라. 惡魔가 사소한 것들로 우리의 양심을 어지럽히지 못하게 하려면 우리는 때로는 暴飮(폭음)을 하고, 잘 놀고, 죄도 적당히 저지를 필요가 있다. 의식적으로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 惡魔한테 넘어간다. 惡魔가 너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라. '네가 마시지 말라고 했으니 나는 멋대로 마시겠다'"
  
   *고린도 전서 13장
  
   [내가 사람의 方言(방언)과 天使(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과 시끄러운 꽹과리에 지나지 않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山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며,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救濟(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溫柔(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利益(이익)만 찾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고, 惡을 행하지 아니하며 不義(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즐거워하며, 모든 것을 감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고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으나 예언은 끊어지고, 方言도 그치고, 知識(지식)도 없어지리라. 우리는 단편적으로 알고 단편적으로 예언하나, 溫全(온전)한 것이 올 때는 不完全(불완전)한 것이 사라지리라.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았고 생각하는 것도 어린 아이와 같았으며 깨닫는 것도 어린 아이와 같았으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버릇을 버렸노라.
   지금은 흐린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때가 되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단편적으로 아나 그때는 主께서 나를 아시는 것 같이 모든것을 온전히 알게 되리라.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예수의 자본주의 정신
  
   불교는 無소유, 유교는 淸貧(청빈)을 강조하는데, 기독교는 돈벌이를 긍정한다. 열심히 돈을 벌어 하나님과 公益(공익)을 위하여 쓰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은 자본주의의 윤리가 되었다. 예수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하여 이 땅에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귀절이 있다.마태복음 25장 14절부터 29절까지의 유명한 에피소드가 그렇다.
  
   <또 어떤 사람이 他國(타국)에 갈 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金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리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는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取利(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邊利(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니라 하니라.>
  
   이 에피소드는 자본주의의 윤리, 그 핵심을 말하고 있다.
  
   1. 예수는 商행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돈을 빌어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도 부정하지 않는다.
   2. 예수는 공짜심리를 대단히 경멸한다. 예수는 부자 주인의 입을 통해서 세 번째 종이 주인에 대해서 노력하지 않고 돈을 버는 공짜심리의 소유자로 誤判(오판)하여 한 달란트를 땅에 파묻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데 대하여 분노하고 있다.
  
   3. 예수는 자본주의의 큰 동력인 모험을 찬양한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을 칭찬하는 主人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설사 손해를 볼 망정 돈은 돌려서 사업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란 점이다.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책망하면서 사업을 하기 싫으면 利子(이자)라도 놓았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예수는 현금을 장롱에 쌓아두는 행위를 죄악시한다.
   4. 예수는 게으른 것을 惡으로 본다. 세 번째 종을 문책하는 가장 큰 논리도 그것이다. 능력이 있으면서 게으른 자는 구원의 대상이 못된다는 식이다. 예수는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나, 게으른 인간을 책망한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특혜를 하나님으로부터 얻었다면 열심히 일하고 생산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할 의무를 진다. 그는 無能(무능)과 無知(무지)를 無産(무산)계급의 美德(미덕)으로 선전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억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셈이다.
  
   5. 예수는 열심히 잘하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효율의 논리에 충실하다. 게으른 종의 한 달란트를 빼앗은 주인은 네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어 열 달란트를 가진 종과 균형을 맞추려 하지 않고 열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어버린다. 자본주의적 경쟁원리를 새마을 운동에 도입했던 朴正熙 대통령은 自立(자립)정신이 없는 마을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는 대신 잘하는 마을을 돕도록 하여 마을 간에 경쟁을 붙여 사업을 성공시켰다.
   6. 예수는 악하고 게으른 자들이 인류 문명의 짐이 될 것임을 예언했다. 주인이 쫓아낸 악하고 게으른 종은 반성하지 않는다. 그는 슬피 울면서 이를 간다. 복수를 다짐한다.
  
   7. 이런 악하고 게으른 자들에게 공산주의 이념은 아편이 되었다. 게으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는 자칭 평등의 논리, 계급해방의 논리, 가진 자에 의한 착취의 논리가 인간의 양심을 마비시킨다. 게으른 자의 惡한 마음에 파고든 이 가짜 평등의 논리, 가짜 해방의 논리가 증오심을 부추기고, 인간의 發展(발전)동기를 말살시켰다.
   8. 朱子學(주자학)을 교조적으로 수입한 조선조 시대의 권력 엘리트들은 商행위를 경멸하였다. 士農工商(사농공상)의 조선조 신분질서는 그런 가치관의 반영이다. 주자학은 돈을 죄악시하면서 오로지 독서와 글짓기에 전념하는 무능한 선비들을 淸貧(청빈)한 인물로 존경했다(반면에 예수의 자본주의 윤리를 계승한 서양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 좋은 데 쓰는 것이 善이라는 淸富<청부>의 윤리를 가졌다). 자본주의의 씨앗이 도저히 자랄 수 없는 이념적 토양을 가진 곳이 한국이었다. 이런 척박한 토양에서 세계적인 경제大國과 대기업을 키워낸 李承晩(이승만), 朴正熙, 李秉喆(이병철), 鄭周永(정주영) 같은 사람들이 새삼 위대하게 보인다.
  
   한 달란트를 땅 속에 파묻어놓고 무위도식했던 자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즉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또 다시 다섯 달란트를 만들어내려다가 사소한 실수를 한 것만 들추어낸다. 이런 사람들이 이념에 물들면 자신의 패륜적 행동이 정당하다고 확신하게 된다.
  
[ 2023-03-11, 23: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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