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사건 당시 3군 사령관 이건영 별세!
그날 밤 이건영 사령관 전화를 국군보안사령부에서 감청, 녹음한 것이 1995년 9월호 월간조선에 의하여 공개되었다. 약90분간의 녹음이 담겼는데, 그와 노재현 국방장관, 윤성민 육군참모차장,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 수십 명과의 긴박한 통화는 쿠데타 현장중계처럼 들린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전두환 세력이 정권을 잡는 계기가 된 1979년 12·12 군사정변 당시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을 연행한 신군부 세력에 맞섰지만 아군 간 벌어질 유혈사태를 우려,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라”고 했던 강원도 영월 출신 이건영(李建榮) 전 육군 3군사령관이 11일 오전 8시45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7세.
  
  1926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난 故人은 육군사관학교(7기)를 졸업하고 1969년 월남사령부 부사령관, 1976년 국방부 관리차관보, 1977년 중앙정보부 차장을 거쳐 1979년 2월부터 3군 야전군사령관으로 근무했다. 12·12 때 그는 정승화 장군이 연행되고 국방장관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던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입장에서 반란사태를 막으려 했지만 전두환 측으로 넘어간 부하들의 항명과 아군 간 교전·유혈사태를 걱정, 결국 진압군 동원을 포기했다. 그날 밤 이건영 사령관 전화를 국군보안사령부에서 감청, 녹음한 것이 1995년 9월호 월간조선에 의하여 공개되었다. 약90분간의 녹음이 담겼는데, 그와 노재현 국방장관, 윤성민 육군참모차장,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 수십 명과의 긴박한 통화는 쿠데타 현장중계처럼 들린다. 이 녹음 테이프는 전두환 노태우 세력에 대한 수사와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신군부에 의해 연행된 그는 장태완(1931~2010) 수경사령관 등과 연락하며 진압을 시도했다고 수사를 받기도 했다. 육군 중장으로 강제 예편당했고,1982년 1월 마사회장으로 취임, 9년간 재임하며 뚝섬 경마 시대 36년을 끝내고 1989년 9월 과천 경마장 시대를 열었다.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통일국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 안보위원장, 당무위원 등을 역임했다. 같은 해 치러진 대선에서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가 패하자 1993년 민주자유당으로 옮겼다. 1996년 출간한 회고록 ‘패자의 승리’에서 “불행한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 때문에 자신의 일생에 어두운 과거로 남게 됐고, 항상 국민과 전우들에게 죄스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유족은 2남2녀(이명희·이대성·이학성·이해성)와 며느리 정송옥·장혜정씨, 사위 백남근·윤영섭씨 등이 있다. △빈소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 14일 오전 6시50분 △장지 국립서울현충원 △연락처 02-2258-5940
  
  
[ 2023-03-13, 11: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