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웅, 넌 바르게 살면 안된다”고요?
세상을 먼저 살아온 어른으로서 미안합니다

徐誌瑩(자유기고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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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인간 황영웅과 그의 삶... 그리고 나의 생각과 하고 싶은 말들...


저는 TV 시청을 즐겨보지 않아서 '미스터 트롯1'도 중간회차부터 보았습니다. 참가자들의 발전하는 모습, 특히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도 서로에게 애정을 가지고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이 보인 인간적인 모습에 앞으로 이런 감동을 줄 팀들이 또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 이런저런 경연프로그램들이 쏟아졌지만 시청은 안 하게 되더군요.


그러다 MBN '불타는 트롯맨'을 우연히 중간회차부터 보게 되었고, 황영웅이란 가수의 노래를 듣고 ‘이 느낌은 뭐지?’하며 지난 회차들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타고난, 천재적”이란 표현만으론 부족한 알 수 없는 기운이 깃들여 있다고 느꼈습니다. 

심사위원과 선배 가수들의 짧은 지도에도 잘 흡수하고 표현하는 모습에 감탄했습니다. ‘황영웅 가수는 노래할 때 어떤 상태일까? 그의 노래의 깊이는 어디까지인가? 한계가 있기는 한 걸까?’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면서 매 회 그의 모습을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경연 대기 중 카메라에 잡힌 모습에서 경연이 주는 압박감이나 두려움은 분명 아닌데, 언뜻언뜻 뭔가 다른 느낌을 받으며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런저런 제보들이 쏟아지고, 도를 넘는 인신공격은 점점 그 강도를 더해가고, 그런 혼란 속에도 흔들림 없이 무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저런 정신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간절함인가? 암튼 제 궁금증은 더해갔습니다. 

난무하는 악플들 속에 ‘황영웅을 항변해주는 사람은 왜 없는가?’ 의문이 들며 화도 났습니다. 본인은 당황스러워 그렇다 쳐도 황영웅의 친구, 지인(知人)들, 회사 동료, 방송사는 왜 아무 말이 없지? 울산시는 뭐야? 고향 사람 하나 못 지켜주나? 제 지인은 제가 이렇게 흥분하는 걸 처음 봤다며 놀라기도 했습니다. ‘폭행 외에는 진실이 아니니, 공정한 경연을 위해 경연에 집중하도록 협조 부탁드리며, 추후 불미스런 일이 확인되면 책임지겠다 입장표명 하면 될텐데...’ 혼자 되뇌였습니다.

저는 폭행 건에 대해서만 받아들였고, 그건 벌써 죄 값을 치렀으니 황영웅이 당당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분이 황영웅 씨의 사과가 없어 마음의 용서가 되지 않아 괴롭다면 그건 당사자들끼리 만나서 얘기해야 될 부분이지 제3자가 개입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인(成人)이고, 만남은 자신들이 결정하면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 많은 부분 왜곡될 수 있으니, 당사자들이 만나 감정의 골을 풀어가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MBN '불타는 트롯맨' 결승 1차전 1등 발표 직후 심사위원석이 화면에 잡혔을 때, 그 순간이 정지화면으로 제 머리에 박혔고, 순간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황영웅 씨가 저 순간 이런 느낌을 받았다면 더 이상 견딜 수 없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영웅 씨의 흔들리는 눈빛에서 절망을 보았고, 저는 아! 외마디 외침만 내뱉었습니다. 검게 타버린 그의 낯빛에서,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모습에서 갈등과 고통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나조차 이해 안 되는 일들로 인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노래를 또 놓아야 하는가? 나는 왜 나의 길을 갈 수 없는가? 나의 잘못은 어디까지인가?...” 무수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결승 1차 우승 소감의 팩트는 “노래는 저의 삶입니다. 저는 그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노래할 기회를 주십시오.” 노래만 하고 싶다는 간절함의 표현이었는데, 그 절규마저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폭력 가해자” 란 프레임에 자유로운가?


그날 심사위원들이 보인 반응들이 바로 폭력이고 왕따고 따돌림입니다. 파티에 초대해 놓고 파티를 즐기지 말라는 것이니 폭력이고 왕따입니다. 폭력은 꼭 물리적 힘을 가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몸짓으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왕따가 아이들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나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내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향해 이런 폭력과 왕따를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이 폭력이란 걸 인지(認知) 못할 뿐입니다. 왜냐면 내가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후로 많은 독백을 했습니다. 

‘황영웅 씨 조금만 더 버텨요. 자신을 믿고...현재 그 자리를 지키고 그 자리에 있어야 자신을 지킬 수 있어요. 그 자리에 있어야 노래로 억울함도, 진실도 밝힐 수 있어요. 아니 저절로 거짓은 사라질 거에요. 지금껏 잘 견뎠잖아요. 힘들면 영웅 씨가 거기 있어야 하는 이유에 집중해 봐요.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잊지 마요. 모든 사람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어요.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과 손잡고 에너지를 얻고 견디면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제발...이번만 이기적인 선택을 해봐요. 제발...’ 저의 바램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황영웅 씨는 모든 걸 뒤로 하고 하차했습니다. 주위분들께 피해를 주기 싫었던 그는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 속에 살을 에는 고통만을 안은 채, 주변인들에게 불편조차 주지 않으려 아무런 항변 없이 조용히 내려왔습니다. 


결승 1차 생방송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심사위원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아쉬운 생각과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시 내려놓고 그분들이 왜 그랬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처음”이란 단어 속에는 설렘도 있지만 서툴고 두려움도 함께 합니다. 심사위원들도 처음 맞는 상황 –비난의 화살 속에서도 황영웅 씨에게 쏟아진 대중들의 압도적 지지- 이라 당황스럽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제대로 된 반응을 못한 게 아닐까?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제가 황영웅 씨 사태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건 도를 넘는 인신공격 때문이었습니다. 

살인자도 증거가 없으면 증거불충분으로 죄를 물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우리 이웃 청년의 꿈의 여정을 왜 이렇게까지 짓밟는 걸까요? 누구를 위해서? 

제 생각에는 최근 뉴스에 나왔던 학폭 문제, ‘더글로리’라는 학폭드라마, 그리고 문신 이 3가지 프레임에 황영웅이 희생양이 되었다고 봅니다. 분명 학교 졸업 후 성인 때 발생한 폭력인데, 뉴스에서 시끄럽게 문제화되던 학폭에 황영웅 씨를 같이 묶어 모든 화살을 황영웅 씨에게 돌려야 했던 이유가 뭘까요? 또한 황영웅 씨를 ‘더글로리’라는 학폭드라마의 한 등장인물로 이미지화시키니, 그 시각적 효과는 대중들의 오감을 자극했고, 그로 인해 대중들의 분노는 더 커져만 갔습니다. 거기다 황영웅의 문신은 기름을 부은 격이니, 황영웅은 전형적인 조직폭력배로 낙인찍혔습니다. 


저는 우리 대중들이 좀 더 냉철한 판단과 문제를 바르게 보는 시야를 키웠으면 합니다. 전체를 제대로 보고 연결고리를 찾아 들어가면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감정적이고 군중심리에 휩쓸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의 한 면만을 보게 되니 바른 판단을 할 수 없고, 억울한 희생양이 생깁니다. 왜 힘없는 사람끼리 싸우고 부화뇌동(附和雷同)하십니까? 왜 저들의 의도에 맞게 행동하십니까? 내 이웃 아이에게 날린 잘못된 화살이 언젠가 내 아이에게도 날아 올 수 있다는 걸 왜 모르십니까? 문제가 생기면 항상 똑같은 굴레에서 똑같은 반응을 보이니 이 사회가 항상 제자리 아닙니까? 제자리라도 지키면 좋겠네요. 제가 보기엔 오히려 퇴보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국가가 제자리에서 제 기능을 제대로 못하니 이런 잔혹한 학폭이 발생하는 것 아닙니까? 인성, 가치관, 역사교육 제대로 시키는 곳 있습니까?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라는 교육만 해도 이런 잔인한 학폭은 안 생깁니다. 정신은 말살되고 가치관이 없잖아요? 왜 아이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맡깁니까? 저는 예전에도 그리 생각했지만 학폭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다 피해자라 생각합니다. 지금 환경에선 더욱더 그리 생각합니다. 지금 모든 시스템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나요? 내 아이가 안 그러니 화살을 날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입니다. 그 아이들처럼 내 아이가 그런 환경에서 24시간 365일을 견딘다고 생각해보세요. 내 아이가 어디까지 자기를 지키며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결과만 보고 손가락질하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이끌어 주려면 먼저 그런 교육 및 사회적, 제도적, 문화적 환경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짓 정보나 자극적 내용, 여론몰이보다 더 위험한 건, 그 정보를 여과 없이, 비판 없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성 댓글들은 점점 더 과열되었고, 아무런 항변이 없으니 저도 혼란스러웠습니다. ‘만약 떠도는 소문들이 사실이라도 황영웅을 응원할건가?’ 자문자답도 했습니다. 저는 그의 노래에서 진심을 느꼈고, 현재의 그는 과거의 그가 아님을 알기에, 그 소문이 사실이라 해도 그를 응원할 거라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전 황영웅이란 사람에 대해 제 스스로 알아보려고 인터넷 여기저기를 찾다 보니, '불타는 트롯맨'  참가 전 여러 다른 가요제에 참가했던 영상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영상에서 하루하루 무르익어가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황영웅 씨의 노래에 대한 진심과 간절함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황영웅의 인성


프로그램 “TV는 노래가 좋아” 경연 참가 때 노래를 부르기 전 가족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팀명도 “첫째는 찬밥신세”입니다. 팀명에서도 가족 내에서 황영웅 씨 입지를 알 수 있겠죠?  황영웅 씨도 본인을 주워 온 자식인 줄 알았다 했고, 동생은 형에게 미안할 정도로 부모님 지지와 좋은 대우를 받았고, 그래도 형은 늘 자신을 응원해줬다고 했습니다. 부모님 인터뷰 중 카메라에 잡힌 황영웅 씨의 표정을 잘 보면, 아버지라는 큰 산 앞에 자신의 꿈을 접고 또 접으며 잔뜩 주눅이 든, 두려움이 함께한 가엾은 영혼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하고 싶은 것 다하고 가족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동생을 미워하지도 경쟁하지도 않고 지지해 준 그의 인성을 누가 감히 논할 수 있습니까? 자신의 뜻이 꺾여질 때마다 느꼈을 절망을 동생은 겪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슬픔을 위로받았으리라 짐작합니다. 보통의 우리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인성과 인격의 소유자입니다.


황영웅의 문신


저는 황영웅 씨의 문신은 자신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고,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달리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도 못하는 자신의 무력감과 절망 앞에서 그래도 살아내려는 의지의 몸부림이자 분출구였다고 생각합니다. 왜 무조건 부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지 안타깝습니다. 문신은 몸에 그려진 그림 조각일 뿐입니다. 몸에 걸치는 장신구처럼 액세서리일 뿐입니다. 악플을 다시는 분들의 말씀처럼 황영웅 씨가 그 문신이 주는 의미에 합당한 비행을 저질렀습니까? 그깟 몸에 새겨진 그림 조각 몇 개가 왜 그 사람의 인생을 짓눌러야 합니까?  

타인의 삶에 대해 선을 넘는 관심은 폭력입니다. 


황영웅의 효()


황영웅 씨는 현재 20대지만 그의 육체와 영혼은 지금 중장년층들이 살았던 시대의 환경에서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엄하기만 하셨던 아버지의 억압, “집안에 첫째가 잘 돼야 한다”는 첫째의 중압감, “공부만이 성공의 길”임을 강요받으며 통금시간까지 있었습니다. 부모님 말씀이 곧 법이던 시대를 살았던 우리 세대도 부모님 앞에선 “예”하고 돌아서서 딴짓거리 몰래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황영웅 씨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황영웅 씨도 마음만 먹었다면, 신청만 하면 누구나 다 나갈 수 있는 “KBS전국노래자랑”이라도 몰래 나갔겠지요? 근데 그는 학창 시절에도 아버지의 뜻대로 진학을 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의 뜻대로 직장생활을 성실히 했습니다. 직장 다니며 아버지의 신임을 얻은 후, 몇 년 남지 않은 30세까지만 좋아하는 노래 해보고 안되면 아버지 뜻대로 직장생활을 다시 하겠다고 허락을 구했습니다. 황영웅 씨는 매번 자신의 꿈을 꺾는 아버지에게 미운 마음을 내기보다는 끝까지 존중하는 마음을 더 소중히 여기며 효를 실천한 효자입니다. 자신의 아픔을 홀로 삭이며, 아버지를 먼저 생각하는 효심 깊은 아들입니다.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꿈도 못 꿉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여러분 중에 이렇게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꿈을 잃지 않고 용기 낼 수 있는 분이 몇 분 계십니까? 이런 사람이 왜 청소년에게 해가 되니 방송에 나오면 안 된다고 하십니까? 오히려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본보기가 되고, 지혜로운 삶을 산 인간승리의 표본 아닙니까? 부모를 존중한다는 게 어떤 건지? 부모와의 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자신의 꿈을 관철시키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이런 물음에 좋은 모델 아닙니까? 이렇게 많은 장점들이 있는데, 왜 전체를 균형 있게 보지 않고 한 곳만 보십니까? 무조건 황영웅 씨를 편들자는 게 아닙니다. 잘못한 것은 꾸짖어 반성하도록 하고, 잘한 건 잘한 대로 칭찬해주면 됩니다. 인간의 성장통은 이해와 배려로 감싸주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겁니다. 황영웅 씨가 불편하신 분들의 말씀대로라면 한번 사기 친 사람이 마음을 다잡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데, 넌 사기꾼이니 바르게 살면 안된다 하면, 이 사람은 살기 위해 또 사기를 쳐야 합니다. 그럼 이 사회는 사기꾼으로 가득 찰 겁니다. 그럼 그 피해는 누가 봅니까? 결국엔 우리가, 내 자녀가 봅니다. 모든 죄는 바르게 보고 합당한 벌을 주고 사회와 격리시켜야 할 죄가 아니면 다시 바르게 살아가도록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 사람이 바르게 살고자 노력한다면 더욱 응원해야 합니다. 그도 힘들면 최소한 방해가 되어선 안됩니다. 인간의 존재 이유는 누구의 잣대에 휘둘려선 안됩니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바라본 인간 황영웅에 대한 저의 관점과 생각들이었습니다.

아래는 여러 상황을 지켜보며 제가 했던 생각의 모음글입니다. 

             

황영웅 씨의 노래가 특히 중장년층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건 나이를 뛰어넘어 살아온 경험치가 같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황영웅 씨는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노래를 불러주고, 그들은 그의 용기에 희망을 노래합니다.   

노래 가사가 곧 그가 살아온 삶이었기에 우리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황영웅 가수가 무대에 다시 서는 날, 우리는 모든 시시비비의 논쟁을 끝냈으면 합니다. 그가 노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원망과 상처가 남는 투쟁은 결국 서로를 병들게 하고 피폐하게 하지만

이해와 용서를 동반한 평화적 시위는 서로를 이익되게 하고 행복을 안겨 줍니다. 


서로 의견이 달라도 비난은 멈추고, 건전한 비판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의견들을 함께 공유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 삶이 더 풍요로워집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고 함께 여물어가는 지혜로운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먼저 살아온 어른으로서 미안합니다.   

이런 사회에 살게 해서...

이런 상황에 내몰리게 해서...

이런 아픔과 고통을 겪게 해서...

무거운 책임을 느끼며 

미안하단 말도 부끄럽지만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되었을 때 서로에게 빛이 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편 가르기는 이제 그만!

황영웅의 팬이 임영웅의 팬이 되고, 임영웅의 팬이 황영웅의 팬이 된다면 팬 수는 금방 두 배가 되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그들이 선의의 경쟁을 하며 손잡고 함께 성장한다면 우리가 해 줄 수 없는 많은 부분들을 그들은 이루어 갈 것입니다. 팬으로써 그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기 위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황영웅 씨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용서의 시점은 그들의 몫입니다. 영원히 용서받지 못해도 그들을 원망해선 안됩니다. 그들이 겪은 고통의 깊이를 완전히 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황영웅 씨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단단한 모습만 보여주면 됩니다.


황영웅 씨...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상처는 상처로 남을 뿐이지만, 그 상처를 바라보는 영웅씨의 시선은 바꿀 수 있습니다. 황영웅 씨 자신을 위해서 지혜로운 정견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어제의 그 선택이 후회의 눈물만 남기지 않기를...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위로하며 다시 서면 됩니다. 아버지의 반대, 대중의 부정적인 시선, 유튜브의 거짓. 이런 것들은 나의 발목을 잡는 모양만 바꾼 상황들일 뿐입니다. 익숙해서 편안하기까지 한 습관적 선택들이 나에게 고통만 준다면, 처음이라 불안하고 두렵더라도 그 습관에서 벗어나 한번은 다른 방향으로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익숙한 선택의 굴레를 벗어나야 또 다른 세상으로 한 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 영웅 씨의 정신력은 아버지의 고도의 훈련? 덕분 ~ 아버지께 감사해야겠네요.


부족함은 채워지지 않으면 늘 마음 한 켠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바라던 아버지의 인정, 대중의 인정을 충분히 느꼈다면 

이젠 자신에게 집중하고 스스로를 인정하며 

진정한 나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나를 지킬 수 있고 나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열린 마음으로 항상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과 대화하면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영웅 씨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훌륭합니다.

잘 견딘 것만으로도 아름다웠고 

과거에 숨지 않고 꿈을 위해 용기 내었기에 훌륭했습니다. 

현재 나의 모습이 제일 중요합니다. 현재에 집중하세요.

천천히 와도 됩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오롯이 당당하게 자신을 지켜내며 홀로서기 할 수 있을 때, 그때 오시면 됩니다. 

잊혀질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영웅 씨 가슴에도 잊혀지지 않는 가수가 있죠? 영웅 씨에게도 그런 힘이 있습니다. 어떤 여건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영웅 씨의 인생처럼, 팬들도 영웅 씨 곁을 그리 지킬 겁니다. 


우리가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그가 언제 돌아올지는 그가 결정할 일이다. 다만, 지금 우리는 그에게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를 잊지 않고, 좋은 기운과 응원을 보내면 된다. 팬이라는 하나하나의 점들이 모여 선을 만들고, 선이 모여 면을 만들고, 그 면들이 모여 그의 무대를 만들고... 그리고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 된다.


그가 긴 잠에서 깨어나 

콧노래 부르며

소풍 가는 설렘으로 뛰어나올 때 

여기야! 라고 말해주면 된다 

그가 무대에 올라 뛰어놀 때   

우리는 우리의 울타리를 허물어야 한다   

그의 비상(飛上)에 걸림이 없도록 ...  

허물어진 울타리는 거름도 되어야 한다    

그가 더 넓은 세상을 오래오래 여행하도록...    

그러면 그도 그리 살 거다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누군가의 거름도 되어주고   

그 누군가의 행복한 미소를 보며  

그 또한 행복할 것이다      


이것이 선한 영향력이다   


그가 우리에게...

우리가그에게...

[ 2023-03-28, 15: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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