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쇼프의 깨끗한 斷念과 케네디의 신중함이 인류를 구했다! <2>
최근 러시아 비밀문서 공개로 밝혀진 쿠바 미사일 사건의 결정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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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6월호

 

⊙ 쿠바 실패의 교훈 잊은 푸틴, 위기 때 핵 쓸지도

⊙ 미국이 쿠바 침공했으면 현지 소련군은 핵으로 반격했을 것

⊙ 군 지휘관들이 정치인들의 핵 사용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착각

⊙ 미사일을 숨길 야자수 숲은 없었다… 은폐 불가능하다는 보고는 차단

 

趙甲濟(조갑제닷컴/TV 대표)

 

 

핵 미사일 발사 준비 완료

  

CIA는 8월에 대공포(對空砲)가 쿠바에 반입되는 것을 확인하고도 목적에 대하여 오판했다. 소련 미사일 기지 보호용인데도 쿠바의 재래식 군사력을 공습으로부터 지키려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존 맥콘 CIA 국장만은 미사일 건설로 보았다. 미국 U-2 정찰기가 2만m 상공에서 쿠바 상공을 비행하다가 소련 미사일 기지 사진을 찍은 것은 1962년 10월 14일이고 그 후 보름 간 인류 공멸의 위기가 지속된다.

 

케네디 대통령이 사회를 본 대책회의에서 해상봉쇄를 택하게 된 이유는 쿠바에 배치된 소련의 핵 투발 미사일이 발사 가능한 수준인가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핵폭탄이 미사일과 같이 반입되었는지도 불투명했다. 이번에 비밀이 해제되어 밝혀진 바로는 10월 20일에 한 곳의 미사일 기지가 작전 가능하게 되었는데 8기의 미사일을 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해상봉쇄가 작동하고 있던 10월 25일에 두 기지가 작전 가능 상태로 전환되었다. 10월 27일 현재 24기의 미사일 발사대가 대기 상태였다. 핵폭탄 저장고와 미사일 기지 사이는 120~500km나 떨어져 있었다. 소련 지도부가 모스크바에서 명령을 내릴 경우 실제 발사 시간까지는 14~24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위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10월 27일 미사일 부대 스타첸코 사령관은 핵폭탄을 미사일 기지 근방으로 갖다 놓아 10시간 만에 발사할 수 있게 했다.

 

만약 미국이 소련 미사일 부대의 이런 사정을 알았더라면 전면 공습으로 기지들을 모두 파괴할 수 있었겠지만 소련과 쿠바의 대응으로 전쟁으로 확대되었을 것이다. 그런 공습을 받았을 때 소련군은 쿠바 내의 핵 미사일로 미국을 칠 수 있었을까? 포린 어페어 논문 저자들은 최근 공개된 자료에 근거하여 이렇게 정리한다.

  

미국이 침공했다면 핵전쟁으로 갔을 것

  

쿠바에 들어온 소련군은 미국에 대한 핵 공격 권한을 미리 위임 받은 적이 없었다. 발사 명령은 모스크바에서만 내리게 되어 있었다. 미군의 공격을 받는 경우에도 쿠바 주둔 소련군엔 핵으로 대응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흐루쇼프는 케네디 대통령이 해상봉쇄 선언을 한 10월 22일에서 23일에 걸쳐 고위 대책회의를 주재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번 작전에서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쿠바 주둔군 사령관 플리브 장군에게 모스크바의 지시를 받지 않고서는 전술핵이나 전략핵을 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행히 미군의 침공도 소련군의 핵 발사도 없었다. 만약 미군의 쿠바 침공이 시작되었다면 흐루쇼프는 쿠바 주둔 소련군의 괴멸을 지켜보기만 했을까, 아니면 핵으로 반격하여 미소(美蘇) 핵전쟁으로 확대되었을까?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

 

이 논문 저자들은 소련군 지휘관들이 모스크바의 핵 발사 명령에 따랐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미사일 부대 사령관 스타첸코 장군도 나중에 "공산당과 소련 정부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썼다. 저자들은 군 지휘관들이 정치인들의 핵 사용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착각이란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푸틴이나 김정은이 핵발사 명령을 내릴 때 말릴 사람이 없을 것이란 이야기로 들린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누가 먼저 권총을 뽑느냐로 승부가 결정되는 서부 영화의 결투 장면을 연상시킨다. 상대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미국과 소련은 미사일, 전폭기 등 핵투발 수단을 총동원하여 대치하고 있었다. 작은 사고가 순식간에 핵전쟁으로 커질 수 있는 긴장 속에서 케네디와 흐루쇼프는 강경론을 누르고 이성적으로 행동한다. 지도력에 치명상을 입은 흐루쇼프가 부하들의 경멸 섞인 눈초리를 의식하면서도 패배를 받아들이기로 한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이 패배로 그는 2년 뒤 궁정 쿠데타를 자초, 실각한다.

  

핵으로 선제공격 해달라는 카스트로

  

10월 25일 흐루쇼프는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시키기로 결심하고 케네디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미국이 쿠바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틀 뒤 흐루쇼프는 터키에 배치한 미국의 미사일을 철수하라는 조건을 추가했다. 27일 저녁 케네디 대통령은 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을 미국 주재 도브리닌 소련 대사와 만나게 하여 비공식으로 터키 배치 미사일을 철수시키겠다고 통보한다. 케네디는 이 양보는 비밀에 붙여져야 한다고 조건을 붙였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 흐루쇼프는 소련 대사에게 '미사일 철수 합의'란 말을 꼭 받아내도록 하라고 지시했음이 드러났다. 그렇게 해야 흐루쇼프는 소련 공산당 지도부에 이번 게임에서 자신이 이겼다고 우길 수 있었다. 케네디는 이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흐루쇼프를 더 버틸 수 없도록 한 것은 27일 오전의 미국 U-2기 격추 사건이었다. 쿠바 주둔 소련군 장교의 명령으로 정찰기가 떨어져 미군 조종사가 죽자 미국 여론은 쿠바 침공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이는 카스트로였다. 그는 흐루쇼프에게 메시지를 보내 "만약 미군이 침공하면 미국에 대한 선제적 핵 공격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흐루쇼프는 화를 내면서 "뭐야 이건, 잠시 미친 거야, 정신이 나간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논문 저자들은 <흐루쇼프는 감정적 인간이었지만 최대의 위험에 직면한 순간에 벼랑에서 벗어나는 결단을 내렸다>고 평했다. 흐루쇼프는 위기중에 만난 인도 방문객에게 "내가 살아온 경험에서 전쟁은 카드 놀이 같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카드 놀이를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고 털어놓았다.

<계속> 

 

[ 2023-05-25, 16:0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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