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운동 지도자 이상훈 前 국방장관 별세
한국전 월남전에 다 참전하고 좌파정권에 맞서 애국운동을 지휘, 국가보안법 폐지를 막은 육군 대장 출신

조샛별(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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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국방과 애국운동에 헌신했던 李相薰 전 국방장관이 어제 향년 90세에 별세했다. 故人은 지난 8월15일 광화문 광장 집회에서 연사로 나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내년 총선에서 애국세력이 승리하려면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故人은 1933년 6월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으며 경기고, 육군사관학교(11기)를 졸업했다. 경기고 재학 당시 학도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했고 전쟁 중 육사에 지원해 1955년 소위로 임관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같은 육사 11기다. 베트남전쟁에도 참전해 맹호부대(수도기계화보병사단) 26연대 1대대장으로 武功을 세웠고, 이후 韓美 제1군단 정보참모, 육군 제3군단장, 합동참모본부 본부장을 지냈다. 1983년 韓美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내고 1985년 육군 대장으로 예편했다. 그는 정규 육사 출신들의 사조직인 하나회에 들지 않고 맞서는 입장이었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27대 국방부 장관을 맡았으며 공직을 떠나서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재향군인회 회장, 애국단체총연합회 상임의장, 국가원로자문회의 상임의장 등을 맡아 왕성하게 활동했다. 특히 2000년부터 6년간 재향군인회장을 지내며 국가보안법 사수, 한·미동맹 강화, 북핵 저지, 군인연금 현실화 등에 앞장섰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수십만 애국 집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행동하는 우파의 힘을 최초로 보여준 2003년 3월1일 서울시청 앞 집회, 보안법 폐지를 막은 2004년 10월 대집회를 이끌었다. 故人은 사심이 없고 늘 담백하고 절도 있는 言動으로 애국운동을 지도했다. 연설은  힘이 있고 간결했다. 애국단체장직을 여러 개 맡았고, 현직에서 물러난 다음에도 애국투쟁의 현장을 자주 찾았다. 

 

국가안보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은성훈장, 충무무공훈장, 보국훈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안정숙씨, 자녀 이웅희(한양대 교수)·장희씨(IT기업 대표) 등이 있다. 이상철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고인의 동생이다. 장례는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와 국가원로 상임회의가 공동으로 주관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4일 오전 7시, 장지는 충북 청주 선영. (02)3010-2000


*이상훈과 박정희(박정희 傳記 중에서)

 

이상훈 전 장관은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경호원을 지내기도 했다. 당시의 경험을 나에게 털어놓아 '朴正熙 傳記'에 실은 적이 있다. 

 

<권력자로 변한 박정희는 소박한 인간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전두환 등과 함께 후배인 육사 생도들을 혁명 지지 시위에 동원하는 데 일역을 맡았다가 박정희의 경호원이 된 육사 11기 이상훈(전 국방장관) 대위는 광주에서 열린 혁명 지지 대회에 참석한 박 의장을 수행하여 작은 호텔에 들었다. 한밤중에 호텔 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데 화장실을 겸한 세면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이 대위가 가보니 박정희가 양말을 빨아 줄에 널고 있었다. 양말이 신고 온 한 켤레밖에 없어 밤에 몰래 나와서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위에게 들킨 박정희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박정희의 양말과 관계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5·16 당시 국무원 사무처 보도과장은 국방부 보도과장 출신 李容相(이용상)이었다. 혁명 정부하에서는 공보부의 보도처 보도과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박정희가 9사단 참모장일 때 그 밑에서 정훈부장으로 근무했던 이용상 시인은 계급을 떠나서 박정희 집안과 인간적으로 친밀했다. 


기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이용상에게 박정희 의장과의 기자회견을 주선해 달라고 졸랐다. 이용상은 장충동의 의장 공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육영수가 받았다. 박 의장이 언제 돌아온다는 것만 확인했다. 이용상은 중앙청 출입기자들을 데리고 무턱대고 장충동으로 갔다. 


박정희는 외출에서 돌아오더니 발을 씻고는 양말도 신지 않은 채 회견 장소에 나와 의자에 걸터앉았다. 이낙선 소령이 호주머니 속에 양말을 넣고 와서 박 의장에게 귀엣말로 “사진기자들도 왔으니 양말을 신으시지요”라고 했다. 박정희는 큰 소리로 “발은 찍지 말라고 해!”라고 하면서 끝까지 맨발로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일보 尹宗鉉(윤종현) 기자가 “박 의장님은 주량이 어느 정도입니까” 하고 물었다. 


“내 주량은 여기 있는 이용상 동지에게 물어 보시오.”

윤 기자는 말을 잘못 알아듣고 다시 물었다. 

“아닙니다. 이용상 과장의 주량은 우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묻는 것은 의장님의 주량입니다.”

“아마, 이용상 동지 주량은 여러분들도 잘 모르실 겁니다. 이분은 종로에서 동대문까지 가는 데 일주일이 걸리는 사람이에요. 중간, 중간에 있는 술집을 다 들러야 하거든요.” 


5·16 혁명 직후 박정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 가운데는 洪得萬(홍득만) 중사가 있다. 그는 5·16이 났을 때 육군 참모차장실 선임 하사관이었다. 그는 1952년 박정희가 대구에서 육본 작전국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그 밑에서 하사관으로 근무했다.  어느 날 일직사령 박정희 대령이 사병들을 집합시켰다. 홍 중사가 “집합 완료”를 보고하자 박정희는 “전원 모자 벗어!”라고 명령했다. 사병들의 두발 상태가 불량함을 확인한 박 대령은 “가서 가위 가져와”라고 했다. 


박정희는 두발 상태가 가장 단정한 홍 중사의 머리칼을 싹둑 자른 뒤 “해산시켜”라고 하고는 아무 말도 없이 들어가 버렸다. 홍 중사는 박 대령에게 찾아가서 “명색이 제가 하사관인데 이렇게 하시면 부하들이 저를 어떻게 보겠습니까”하고 하소연을 했다. 박정희는 웃으면서 “그럴 거야. 지금 사병들이 뭘 하고 있는지 한번 보고 와”라고 했다. 홍 중사가 막사로 내려가 보니 텅 비어 있었다. 사병들이 모두 이발하러 갔다는 것이었다. 하사관이 억울하게 혼이 나는 것을 본 사병들이 알아서 한 것이었다. 홍 중사가 “이것도 지휘통솔법입니까”라고 하니 박정희는 “바로 그거야”라면서 씩 웃었다. 5·16이 터지자 홍 중사는 바로 곁에서 박정희를 시중드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박정희는 최고회의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잠을 언제 자는가 싶을 정도로 항상 깨어 있고 일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야전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면 아침 신문부터 꼼꼼히 읽었다. 그 다음엔 중앙정보부, 육해공군 정보부대에서 올라온 각종 보고서들을 뜯어 밑줄을 쳐가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진정서와 건의서들을 읽었다. 보고서를 읽느라고 아침을 생략할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육영수가 신당동 근무 중인 박환영 중사를 시켜 꿀 한 병과 잣 한 봉지, 그리고 양주 한 병을 보냈다. 박정희는 홍 중사가 있을 때만 잣 몇 알을 입에 털어 넣은 뒤 양주 한 잔을 얼른 마시곤 했다. 꿀은 가끔 한 숟갈씩 퍼먹었다. 

혁명의 성공으로 박정희의 신당동 생활은 곧 끝나게 되고 육영수의 생활도 많이 바뀐다. 육영수의 사촌동생인 宋在寬(송재관·전 어린이회관 관장)은 그때 <평화일보> 기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군부 쿠데타 소식을 듣고 이종 사촌 자형이 앞장을 섰다는 것을 알게 되자 한 반년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육영수가 송재관에게 전화를 걸어 “동생, 회사 끝나고 우리 집에 들러 줄 테야?”라고 했다. 


“무슨 일이죠?”

“나, 지난번에 돈 탄 것 가지고 집수리했어.” 

그날 퇴근길에 신당동에 들렀더니 육영수는 처마 끝에 플라스틱 차양을 덧대어 놓고 자랑하고 있었다. 곗돈을 타서 마음먹고 만든 것이었다. 

그런 평범한 주부이던 육영수에게 송재관은 5월17일 전화를 걸었다. 

“아니, 자형은 왜 앞장서서 그런 일을 했어요?” 

송재관은 이종 사촌누님으로부터 “그러게 말이다…”란 말을 기대하면서 위로의 말을 준비했다. 그런데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육영수는 정치나 시국 같은 데에는 무관심하던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육영수는 정색을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동생 무슨 소리야?”

“아니, 자형이 위험한 일에 가담하셨기에….” 

송재관은 순간적으로 ‘내가 말을 잘못 했나’라고 생각했다. 육영수의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상이 온통 부정부패로 물들고 혼란에 빠진 채로 국민들이 어떻게 살겠어? 그냥 그대로 간다면 나라는 어떻게 될 것 같아?” 

송재관은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면서 “이상하다. 저 누님이 언제 저렇게 변했나”라고 중얼거렸다.> 

[ 2023-09-12, 14: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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