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재: (9)保守의 전략, 우파의 신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發題: 한반도에서 이념은 가장 큰 戰略이다
  
  
  <정통보수의 자세: 김정일에 분노하고 북한동포들을 동정하며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미국에 고마워하며 중국과 일본에 당당한 것이 한국 정통보수 세력의 자세이다. 이에 반해 親北좌파는 대한민국에 무정하고 김정일에게는 비굴하며 북한동포들에게 냉담하고 미국에는 악랄하며 중국에 굽신대고 일본에는 無知하다>
  
  제가 이념이란 말을 많이 쓰니까 무슨 대단히 어려운 이론을 논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계실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이념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한반도 무장대치상황의 본질은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양식, 그리고 선과 악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라는 인식에서 저의 이념은 출발합니다. 한국과 김정일 정권의 대결에서 누가 민족사의 정통이고 이단인가, 누가 자유의 편이고 억압의 편인가, 누가 善이고 惡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이념정리의 기초가 됩니다.
  
  이런 판단은 초등학교 학생이면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 판단이 이론적인 바탕에서 자신의 신념으로 승화되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감정이 들어갑니다.
  저처럼 북한 취재를 하면서 김정일을 증오하게 되면 그 증오가 정의감으로 변하고 나의 판단을 타인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려니까 이론체계를 갖추어야 하는 과정을 밟게 됩니다. 요컨대 한반도에서 이념은 김정일에 대해 공분심을 느끼느냐의 여부에서 갈라집니다.
  
  김정일에 대해서 공분심을 느끼면 북한동포들에 대해서도 자연히 동정심을 갖게 되고 김정일에 조종당하는 한국내 좌파세력에 대해 분노하게 되고 김정일을 자유통일의 걸림돌로 인식하게 되고 이 걸림돌을 치우는 데 우리를 도와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시하게 됩니다.
  
  이래서 신념은 감정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입니다. 저는 북한사람들을 많이 만나 그들이 체험한 고통과 억압, 특히 강제수용소의 지옥도 같은 상황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김정일을 인간으로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자이므로 탈북자들, 북한전문가들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보통사람들은 언론이나 교사들을 통해서 그렇게 하니 저처럼 실감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언론이나 교사가 상황을 조작하거나 왜곡해버리면 김정일에 대한 공분심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생기더라도 좀 애매한 것이 생기겠죠.
  
  지금 한국에 친북좌파, 즉 김정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언론과 교사의 역할에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실전달이나 상황설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거꾸로였다는 추리가 가능합니다.
  
  이념이 중요한 것은 인간의 행동에 일관성을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치인이나 지식인의 경우 이 일관성은 그 사람의 행동에 힘을 부여합니다. 일관성에서 힘이 생깁니다. 일관성이란 것은 電池를 직렬로 이어주는 것이고 이념 없는 갈 之자 행동은 電池를 병렬로 잇는 것입니다. 1.5볼트짜리 전지를 열개 직렬로 이어놓으면 15볼트가 되는데, 병렬로 이어놓으면 1.5 볼트 그대로입니다.
  
  직렬에서 힘이 생기는 것은 앞의 행동을 뒤의 행동이 이어주면서 한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 되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념형 인간은 바로 직렬형 인간입니다. 오늘의 행동이 내일의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오늘과는 다르지만 보다 발전한 상황과 조건을 만들어내는 일관성이 있는 행동양식의 소유자이기 때문입니다.
  비이념형 인간은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데 오늘의 일과 내일의 일이 별로 연관성이 없고 발전도 없습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전략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념형 인간은 역경에 처했을 때 이를 돌파합니다. 이념에서 나오는 전략과 전망이 있으므로 미래를 낙관합니다. 비이념형 인간은 역경에 처했을 때 이것으로 끝이구나 하고 좌절하든지 변절합니다. 이념이란 것은 가치관입니다. 이념이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확신을 부여하는 신념화된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산주의처럼 잘못된 이념은 살인까지도 聖戰이라 하여 인간을 광기로 몰고 갑니다.
  
  이념형 인간은 여론에 밀리지도 않습니다. 이념논쟁을 제기할 때 언론과 상대방이 '또 색깔론이냐'하고 치고 나와도 '그래 색깔론이다, 왜. 남북한이 지금 빨간색의 공산주의냐 하얀색의 자유민주주의냐로 갈려 사생결단을 하고 있는데 색깔론은 얼마나 중요한가. 치열하게 할수록 국민들에게 좋은 것이 색깔론이다'라고 나섭니다. 여론이 중요하긴 하지만 자신의 이념과 맞지 않을 때는 참고로만 씁니다.
  
  李會昌씨의 두 번에 걸친 실패는 非이념형 인간의 전형적 실패입니다. 1997년과 2002년에 그는 김대중과 노무현 후보의 이념적 위험성을 선거의 가장 큰 쟁점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졌습니다. 그가 그런 쟁점을 만들 생각과 전략이 있었으면 김종필씨외 충청표를 넘겨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이념은 감정이고 그 감정은 체험과 교육에서 생깁니다. 이념은 또한 가장 큰 전략이며 전술입니다. 두 차례 큰 선거에서 이념대결을 기피해온 한나라당의 일패도지는 이념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두 차례 선거의 이런 패인을 자각하지 못하고 지금도 이념무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반도에선 이념이 가장 큰 전략이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한나라당은 지금이라도 자민련과 손을 잡고 충청도의 보수표를 붙들어두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놀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작은 선거에서 이긴 데 도취하여 '자민련 정도와는 상대하지 않는다'는 자세인데, 언젠가는 자민련을 붙들지 못한 것이 큰 낭패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적화냐, 선진화냐', '한미동맹 해체냐, 존속이냐'를 결판낼 2007년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이념대결을 기피한다면 必敗할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가장 큰 기준이 이념인데 이것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패션추종형 인간형은 당의 총재나 서울 시장은 될 수 있어도 역사의 짐을 지고 가는 한국의 대통령이 되어선 안될 것입니다.
  
  

  자료1: '합리적 보수'의 사기성
  
  '합리적 보수'니 '개혁적 보수'라는 말을 쓰는 기회주의자들이 많다. 이는 無知의 소산이자 언어파괴이다. 보수는 원래 합리적이고 개혁적이다. 합리성과 개혁성을 결여한 이념은 보수가 아니다. 한국의 가장 성공한 개혁가인 박정희와 이승만, 20세기 후반의 가장 성공한 개혁가 대처와 레이건은 모두 보수 정치인으로 분류되며, 선동성을 경멸하고 오로지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여 그 개혁을 성공시켰다. 합리성은 곧 과학성이다. '과학의 생활화' 운동을 펼친 것도 박정희였다.
  따라서 '합리적 보수'란 말은 보수의 본질에 대한 무식에서 생긴 말이고 보수를 자처하고싶어도 좌익의 반대가 두려운 기회주의자들의 造語이다. '나는 진정한 개혁가로서 정통보수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맞다.
  
  

  자료2: 한국사회에서 보수주의란 무엇인가
  
  보수주의의 4大 원칙은 경험주의•현실적 점진주의•실용주의•도덕적 內在주의이다
  
  <편집자 注-2004년 5월12일 오후 6시, 조선일보 광화문빌딩 9층 강당에서 「제6회 月刊朝鮮 수요강좌」가 열렸다. 주제는 「한국사회에서 보수주의란 무엇인가」였다. 비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청중이 많이 몰렸다. 마련된 200여 석의 좌석이 가득 찼고, 보조의자 40여 개를 동원해도 부족해 서서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있었다.
  宋復 前 연세대 교수는 보수주의에 대한 명쾌한 논리로 1시간 여의 강의를 이끌었다. 질의 응답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다음은 宋復 교수의 강의 요약문이다.>
  
  
  보수주의는 역사, 전통, 관습 중시
  
  <보수주의는 300년 前 영국에서 농업사회가 끝나고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만들어진 사상입니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한 것으로, 그 당시로는 획기적인 진보사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모순을 止揚(지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등장했죠. 이 역시 진보사상입니다.
  
  둘 다 진보사상이지만 자본주의가 먼저 만들어졌기 때문에 보수주의가 된 것이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나중에 만들어져서 진보주의가 된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진보주의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말을 쓰죠. 보수주의는 여전히 쓰입니다. 보수주의, 보수당, 보수파를 말할 때에는 「Conservative」라고 첫 자를 대문자로 씁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말할 때에는 첫 자에 대문자를 쓰지 않죠. 이는 보수주의자들의 자긍심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수주의에는 4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경험주의입니다. 보수주의자들에게 경험적 사실은 금과옥조입니다. 경험적 사실이 축적된 것이 역사, 전통, 관습, 관행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기 때문에 왕왕 守舊주의자로 몰립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 살아남은 전통은 그만한 이유와 생명력이 있는 겁니다. 역사를 모르는 인간은 인간이 아닙니다.
  
  둘째, 방법론적 현실주의입니다. 보수주의자는 현실을 중시합니다. 일반적인 시각과는 달리 현실을 개혁하는 사람들입니다. 현상을 유지하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피와 땀과 노고가 들어가는 노력을 하지 않고는 현상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보수주의는 현상유지를 하려 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개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개혁한다는 점에서는 보수주의나 진보주의가 같습니다.
  
  방법이 다를 뿐이죠. 이제 그 방법을 보겠습니다.
  
  보수주의는 개혁할 때 현실 인식을 중시합니다.
  
  어떤 제도를 시행하기에 앞서 「이 제도와 관행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모순과 부작용은 무엇이며, 대안은 무엇인가. 대안의 전례는 없는가」하는 철저한 현실 인식 위에서 개혁을 합니다.
  
  또 우선순위를 마련합니다.
  
  정치개혁, 노사개혁, 언론개혁을 할 때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먼저 정합니다.
  
  개혁의 여건을 마련해 두는 것도 보수주의의 특징입니다.
  
  개혁을 하게 되면 덕 보는 사람과 손해 보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은 개혁에 앞서 개혁의 여건을 먼저 마련한 후 이익집단과 타협하고 언론의 협조를 얻고 여론을 환기시킵니다.
  
  또 개혁을 할 때 점진주의를 지향합니다.
  
  이것은 보수주의자만의 특징입니다. 진보주의자는 급격하고 과격하게 개혁을 하죠. 일반 인이 볼 때 보수주의자들의 개혁은 개혁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개혁을 급격히 하면 구조에 의한 反動이 일어납니다. 개혁 중 가장 급격하고 과격한 개혁은 혁명인데, 혁명을 할 경우에는 예외 없이 구조 반동이 일어나죠.
  
  그 대표적인 경우가 프랑스 혁명입니다. 루이의 절대王政이 무너지고 로베스피에르가 들어선 후 2만 명이 단두대에서 죽고 자신도 단두대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에 들어선 나폴레옹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폴레옹 정부가 들어서면서 프랑스 정치구조는 루이 시대보다 훨씬 후퇴했어요. 1830년에 7월 혁명, 1848년에 2월 혁명이 일어나고 나폴레옹 3세 때에는 프러시아와 전쟁해서 지고 파리 콤뮨 내전으로 파리가 피바다 됐습니다. 개혁하면 할수록 프랑스인들의 목이 날아갔어요. 급격하고 과격한 혁명은 안 됩니다. 하는 듯 안 하는 듯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셋째, 실용주의입니다.
  
  보수주의는 이 세상에 얼마나 이익이 되는가를 따집니다. 실용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입니다. 중국에는 「政無舊新 以便民爲本(정무구신 이편민위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오로지 백성을 편하게 하는 정치가 가장 잘 하는 정치이다」라는 말입니다.
  
  넷째, 도덕적 內在주의입니다.
  
  「內在」는 내 몸에 들어가 뼈와 살이 된 상태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학교 다닐 때 학칙을 외우지 않아도 어기지 않았을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서 배운 도덕이 몸에 밴 것이죠. 헌법을 몰라도 헌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헌법이 우리 몸에 內在化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그 시대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사고, 윤리를 자신의 뼈와 살로 만듭니다.
  
  투명성과 정직성, 성실성이 보수주의자들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자기 자신의 성실성을 중시하면서 잘못되면 자신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진보주의는 이념, 理想 중시
  
  진보주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습니다.
  
  첫째, 先險주의입니다.
  
  경험을 안 해보고 아는 것을 말하는 거죠. 진보주의자들은 「빛나는 두뇌와 냉철한 이성으로 일일이 경험을 안 해 보고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행착오와 경험적 오류를 많이 범합니다. 진보주의자들이 경험적 오류를 펼치지 않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 이념, 이상, 꿈, 상상입니다.
  
  진보주의자들의 글에는 풍부한 상상력과 높은 이상, 화려한 이념이 피력돼 있습니다. 진보주의자들에게는 지식이 중요합니다. 보수주의자들에게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20세가 40대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질 수 있지만 20세가 21세보다 지혜로울 순 없죠. 지혜는 머리가 좋다고 쌓이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을 통해서 축적된 지혜를 「경륜」이라고 합니다. 보수주의자는 경륜을 중시합니다. 현실을 개혁하는 데 중요한 것은 경험과 경륜이지 지식이 아닙니다.
  
  둘째, 진보주의자들은 방법론적 이상주의를 지향합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역사, 과거, 전통을 부정합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역사는 잘못된 것의 되풀이이기 때문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역사가 있다 해도 「역사 바로 세우기」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머릿속에 있는 理性을 통해 현실화시키려 합니다. 현실에 없는 것을 하기 때문에 방법론적 이상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급진주의입니다.
  
  과격하게 뿌리째 바꾸는 것이 진보주의자들의 특징입니다. 「改革(개혁)」에서 「改」는 바꾸는 것이고, 「革」은 가죽입니다. 진보주의자들은 개혁해서 바꿀 수 없는 껍데기를 내버립니다. 이들의 개혁은 구조반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지금까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성공한 개혁은 없습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개혁에 성공한 것은 보수주의 방법인 「방법론적 현실주의」를 썼기 때문입니다. 진보주의자들의 개혁은 이성적으로는 최선의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넷째, 명분주의입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 「대의명분에 맞는가」를 먼저 고려합니다. 월남戰 파병과 이라크 파병이 국익과 국가안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보다 인류평화에 얼마나 맞는가가 더 중요하죠.
  
  조선 仁祖 때 주화론자와 주전론자와의 싸움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조 바로 앞 代인 광해군 때에는 실용주의를 택해서 체계를 다 만들어 놨죠. 淸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明을 지지하는듯 하면서 실리를 챙겼습니다. 그런데 인조가 「떼놈들(淸)을 따르는 것은 대의명문에 어긋난다」면서 쿠데타를 일으켰죠. 그러자 靑이 쳐들어오면서 우리나라는 굴욕적인 외교노선을 걸어야 했습니다. 오늘날 진보주의자들의 명분론은 仁祖 때의 명분론과 비슷합니다.
  
  다섯째, 도덕적 수단주의입니다.
  
  진보주의자들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미래에 실현하려는 세계에 가치를 둡니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 범하는 탈법?불법적인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주의자들은 거짓말을 잘 합니다. 그러면서 양심의 가책을 안 느끼죠. 공산주의라는 미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金大中 前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탈법과 불법을 해도 괜찮다고 본 사람입니다.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은 불법인데도 정치개혁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용인했죠. 盧武鉉 대통령도 불법적인 노동쟁의 행위에 대해 「정의」를 위해서라면 괜찮다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한국 사람 63%가 중도
  
  조선일보와 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스스로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63%. 진보는 14%, 보수는 23%였습니다. 중도주의는 보수주의입니다. 왜냐하면 중도에 선 사람은 실용주의를 중시하는데, 실용주의는 보수의 핵심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수업 중 진보를 자처하는 학생한테 『왜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저는 누구한테 속박당하는 것이 싫습니다. 내 스스로의 자유와 의지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진보주의자입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 두 가지는 자유와 평등입니다. 자유를 지향하느냐, 평등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진보와 보수로 나뉩니다.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은 보수주의자이고, 평등을 내세우는 사람은 진보주의자입니다.
  
  자유를 내세우면 경쟁체제로 갑니다. 경쟁에서는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생기고 代價를 많이 받는 자와 적게 받는 자기 생기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아집니다. 자유는 경쟁으로 이어지고 경쟁은 생산성 향상으로, 생산성은 업적으로 이어지고 업적은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평등해지려면 국가권력으로 경쟁을 막아야 하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독재주의와 전체주의에서는 국가권력과 통제가 커집니다. 통제를 함으로써 분배가 가능해집니다. 평등은 통제로 이어지고 통제는 분배로, 분배를 통해 형평이 이루어지고 복지가 증대되는 주장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은 경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경쟁에서는 룰이 중요하기 때문에 法治를 중시하는 것이 보수주의자들의 특징이죠. 평등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사회제도와 구조 탓으로 돌립니다.
  
  
  한국의 진보, 닫힘과 폐쇄 지향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에 대한 시각이 구부러져 있습니다.
  
  보수주의자를 수구세력, 기득권 세력, 나아가 산업화, 親기업, 親시장경제, 反노조, 反통일, 反김정일, 냉전주의자, 親美주의자, 親日주의자라고 봅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가 아닙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스스로 보수주의라는 말을 듣기 거북스러워해요.
  
  진보주의자는 反기득권, 反기업, 親노조, 反시장경제, 親北, 親김정일, 민족주의자, 통일주의자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습니다. 이건 진정한 진보주의가 아닙니다. 진보주의를 가장한 수구주의자인 거죠. 진보주의 정권이 어떻게 탈북자 인권을 외면하고 유엔의 인권문제에 침묵합니까.
  
  우리나라 진보주의자의 맹점은 자기가 진보주의자가 아니면서 진보주의자라고 믿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진보주의자들은 열림이 아니라 닫힘을 지향합니다. 가장 닫힌 사회인 북한에 동조하는 것은 닫힘을 지향하는 자세입니다.
  
  우리 사회의 위기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닫힘과 폐쇄를 지향하면서 진보라는 말을 하는 것,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 큰 문제입니다.
  
  
  [질문 응답]
  
  포퓰리즘의 위험성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미공조는 핵심입니다. 우리는 미국을 통해서 협상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제 질서가 위태로워졌다고 일방적으로 파병 약속을 파기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파병을 철회하면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에 절대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진보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우리 학교(연세대)에서 강의가 있었습니다. 옛날에 저를 보고 보수꼴통이라고 강의실 밖에서 데모하는 학생도 있었어요. 알아보니 편입생이 주도가 됐다는군요. 우리 학교에는 스스로 보수주의라고 생각하는 학생수가 훨씬 많습니다. 20~25세 학생 중에는 열린우리당 지지가 많지 않아요. 저를 꼴통 보수주의자로만 본다면 정년 퇴임 후에도 다시 수업을 주겠습니까.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교수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南美型으로 간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아르헨티나가 南美型의 대표적 국가입니다. 아르헨티나는 1950년대 세계 10대 富國의 하나였습니다. 親노조주의 포퓰리스트 페론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힘들어진 거죠. 북한은 1950년대까지 남한보다 두 배 잘 살았습니다. 세계 10대 공업지대 중 하나였어요.
  
  포퓰리스트는 성장은 안 하고 분배만 강조합니다. 이들은 부자를 매도하고 상층을 적대시합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상태에 9년 동안 주저앉아 있어요. 얼마 전 잠재 성장률을 5%에서 4%로 낮췄습니다. 성장률 4%에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인 나라가 2만 달러가 되려면 20년이 걸립니다. 우리와 같이 아시아의 용이라고 뛰던 싱가포르, 홍콩, 대만은 오래 전에 2만 달러를 달성했어요.
  
  우리가 이렇게 된 데에는 부자 때리기, 上層 적대시하기 등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것은 金大中 정권과 盧武鉉 정권의 실패에 있습니다.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규제철폐인데, 이 두 정부에서는 작은 정부를 만든다, 철폐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키웠습니다.
  
  英國의 대처 정부가 개혁을 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규제를 없애고 정부 규모를 줄인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무원 수를 더 늘린다고 합니다. 유능한 정치지도자는 정부 규모를 줄여야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공무원 60만 명, 국영기업체에 5만 명, 산하 기관 종사자 150만 명이 있습니다. 국민 1000명당 공무원 비율이 미국과 프랑스보다 적다고 하는데 공무원 숫자만 가지고 비교한 분석이에요.
  
  정부에 20개 부서가 왜 필요합니까, 교육부가 왜 필요합니까. 다른 나라 교육부는 교육 예산처입니다. 우리는 교육 개혁을 수도 없이 많이 해 봤는데 하나 안 해 본 것이 있습니다. 교육부를 없애는 것이죠』
  
  <정리•金玟希 月刊朝鮮 기자>
  
  

  자료3: 金文洙(한나라당 의원, 2005년7월28일)
  
  미국 보수주의 학교 참관기
  
  뿌린대로 거두리라 / 미국 보수주의자 양성학교, 리더십연구소
  
  프리덤하우스 주최 “북한인권국제대회” 참석차 방미 중이던 지난 7월 21일, 나는 워싱턴 D.C. 근교 알링턴에 위치한 보수지도자 양성기관인 '리더십 연구소' (Leadership Institute)를 방문하였다. 미국 공화당계열의 교육훈련기관이다.
  
  1979년에 처음 세워진 리더십 연구소는 작은 정부(limited government), 자유 기업정신(free enterprise), 전통적 가치(traditional values) 튼튼한 국가 안보 (strong national defense) 등의 보수가치를 지향하는 젊은이들을 훈련시키고 정책집행자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4년에는 3,800명이 배출되었고, 지금까지 44,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연구소의 임무는 보수주의자들이 동참하고, 선발되고, 훈련되어 정치계, 정부조직, 언론계에 배치되도록 하는 일이다. 졸업생 중 상당수가 미국 정가와 정부조직, 언론 등에서 맹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보수적인 가치들을 가지게끔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이 미국사회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입니다.”(For conservatives who want to win)
  연구소의 창립자이자 현 회장인 모튼 블랙웰(Morton Blackwell, 65세)의 말이었다.
  블랙웰 회장은 미국 공화당 전국위원이며, 현장조직가이며, 직업정치활동가이기도 하다.
  
  연구소에서는 정치지망생들을 위한 선거 전략과 미디어대응 전략, 정책집행 방법, 풀뿌리 캠페인 전개방법 등을 담은 34개의 교육프로그램과 인턴프로그램, 캠퍼스 리더십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캠퍼스관련 강좌>에는 청년지도자학교, 학생신문발행학교, 캠퍼스선거워크샾이 있다.
  
  “청년지도자학교”는 작년의 경우, 미국 전역 22개지역에 걸쳐, 2일간의 훈련이 $60의 참가비를 받고 실시되어, 437명을 배출하였다.
  “학생신문발행학교”는 $60를 받고, 보수성향의 간행물 출판에 대해 이틀간 훈련시킨다. 보수학생신문 창간에도 도움을 주는데, 작년의 경우 최대 $500를 연구소로부터 지원받아 발행한 새신문이 22개였다.
  “캠퍼스선거워크샾”은 $20를 받고, 4시간 내지 8시간 교육하여, 대학학생회 선거기법을 가르친다.
  
  <풀뿌리학교>에는 풀뿌리활동가학교, 풀뿌리모금훈련, 풀뿌리투표활성화훈련, 풀뿌리커뮤니케이션훈련 등이 있다.
  
  <핵심학교>에는 캠페인리더십학교, 후보자개발학교, 의회보좌진훈련학교, 의회집필훈련, 우편모금기법, 해외근무직시험학교, 공무원시험학교, 인터넷활동가학교, 투표자메일학교, 입법프로젝트관리(효과적으로 원하는 입법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홍보기법, 연설훈련학교 등이 있다.
  
  <캠퍼스 리더십 프로그램>은 보수청년리더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대학가운동과 신문창간운동을 도와준다. 작년에만 246개의 새로운 보수학생단체가 미국 대학 곳곳에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인턴 프로그램>은 연구소의 졸업생 중 우수한 이들을 따로 뽑아 한 학기동안 인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연구소 직원과 함께 일하며 현장근무 경험도 쌓고 연구소의 다양한 강좌를 들을 수 있게 해준다.
  
  연구소는 그밖에도 무료 취업지도와 취업알선온라인게시판을 운영하여 우수한 인재들을 고용주와 연결시켜 준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한 학기까지 프로그램마다 길이가 다양한데 숙식까지 연구소에서 해결해 주는 것을 감안한다면 $20부터 $250까지 이르는 수강료는 그다지 비싼 편이 아니었다.
  수강료는 전체 수입 중 1-2%에 불과하고 운영비의 상당부분을 외부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었다. 한번이라도 연구소에 기부한 사람들에게는 감사편지와 연구소 행사 초청 기회 등을 주는 등 극진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거액기부자의 경우에는 건물입구 엘리베이터 앞에 사진과 이름을 동판에 새겨 주고, 기부액수에 따라, 어떤 이는 한층 전체를 기부자의 이름으로 명명하고, 어떤 이는 교실하나에 기부자의 이름을 붙여주기도 하였다.
  
  Blackwell 회장의 친절한 안내로 연구소 구석구석을 직접 돌아볼 수 있었는데, 6개의 강의실과 최첨단 멀티미디어센터와 방송통제실, 남녀 기숙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특히 흥미롭게 본 것은 연구소의 뛰어난 멀티미디어센터와 인쇄방송미디어 시설이었다.
  
  최첨단 시설로 꾸며진 미디어센터는 방송스튜디오, 방송통제실 등이 있어 방송계 진출을 꿈꾸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방송출연테크닉을 배우고 싶은 미국의회 의원들도 상당수 찾아온다고 한다.
  
  우리 한나라당에서도 지난 대선 때 이회창 후보의 방송토론 준비를 위해서 몇달간 방송스튜디오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선거에서 패한 후에 바로 철거해버렸다.
  
  연구소는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었는데, 외국 인턴들의 경우 항공료와 숙소를 지원해주고 1년에 몇 차례 외국으로 초청강연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일본 수강생이 4명 눈에 띄었다. 아직까지 한국인 수강생은 없었다고 했다.
  
  미국 공화당이 최근 대통령선거, 의회, 주지사 선거 모두에서 내리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리더십 연구소와 같은 기관을 통해 지도자들을 꾸준히 훈련시켜 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서도 천안연수원을 가지고 있지만, 큰 건물만 있을뿐 돌아가고 있는 프로그램은 없다.
  번듯한 건물은 없지만 프로그램만큼은 풍부하고 내실있는 리더십연구소와는 딴판이다.
  
  뿌린대로 거둔다.
  가꾼대로 자란다.
  
  정치에서도 예외는 없다.
  뿌리지도 않고,
  가꾸지도 않고,
  거두기만 하려는
  우리 한나라당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2005. 7. 26. 김문수
  
  

  자료4: 미국 보수의 對좌파 전략문서
  
  파월 메모 : 미국은 1960~70년대 신좌익의 확산을 어떻게 막아내었나?
  (Powell Memorandum)

  
  < 배 경 >
  - 이 글은 1971년 미국 리치몬드 지방검사였던 루이스 파월2세가 작성하여 全美상공회의소 교육위원장이었던 유진 시드노어 2세에게 전달한 것임
  
  - 1960~70년대 미국에서 신좌익을 중심으로 지식인 및 학생운동권이 반전운동, 히피운동 등을 전개하면서 미국사회 전체가 좌편향하던 시기에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 것임
  
  - 全美상공회의소 및 주요 경제단체 소속 주요기업의 임원들에게 배포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음
  
  - 그 결과 미국 헤리티지 재단이 설립되는 등 경제계를 중심으로 좌파운동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이 적극적으로 전개되었으며, 그 성과로 레이건 대통령이 탄생하였음
  
  - 글에서 적시하고 있는 상황이 최근 한국사회에서 전개되는 상황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판단됨
  
  
  <대외비 메모>
  
  미국 자유기업체제에 대한 공격
  
  수신 : 全美상공회의소 교육위원장 유진 시드노어 2세(Eugene B. Sydnor, Jr.)
  발신 : 루이스 파월 2세(Lewis F. Powell, Jr.)
  날짜 : 1971년 8월 23일
  
  귀하의 요청에 따라, 8월24일에 개최될 全美상공회의소 부스(Booth) 상근부회장 및 기타 인사들의 토론 자료로 이 메모를 제출합니다. 이 메모는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직시하고 추후에 고려할 수 있는 행동방향 중 가능한 것들을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차원이 다른 공격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미국의 경제체제가 광범위한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공격은 범위와 강도, 방법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다양한 양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체제를 반대하고 사회주의나 국가주의(공산주의나 파시즘)를 선호하는 사람은 항상 있었으며 과격하지는 않더라도 미국의 체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비판이 체제를 전복하거나 파괴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고 개선하자는 수준에 머무르는 한 건전하고 건설적인 역할을 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미국 역사상 아주 새로운 현상입니다. 우리가 다뤄야할 것은 소수의 극단주의자나 사회주의자로부터 나오는 공격이 아닙니다. 자유기업체제에 대한 공격은 광범위한 기반 위에서 일관되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격은 추종자를 더해 가면서 강력한 추동력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공격의 근원
  
  공격의 근원은 다양하며 널리 퍼져 있습니다. 예상하시겠지만 정치와 경제를 포함하여 체제 전체를 파괴하고자 하는 공산주의자들과 신좌익들(New Leftists), 기타 혁명가들이 공격의 근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 좌익 극단주의자들은 우리 역사상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인원과 자금을 확보한 상태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회구성원으로부터 환영과 성원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며 우리의 주된 걱정거리는 아닙니다.
  
  가장 불안한 것은, 겉으로는 아주 반듯해 보이는 사회구성원들입니다. 즉 대학가, 종교계, 언론계, 지식인, 문학계, 학계, 정계 인사들이 나서서 미국체제를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 집단에서 체제 비판운동에 가담하는 인사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수들이 대개 언변이 뛰어나고, 목소리 크고, 말과 글을 가장 많이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미디어가 이들 “공격자”에게 자기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물론 동기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공격자”들이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미디어를 이용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미국인들의 사고와 태도 그리고 정서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압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TV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우리 시대의 황당한 역설 중 하나는 기업들이 자신을 파괴하는 일에 참여는 하지 않더라도 상당한 정도로 이를 용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체제비판 중 많은 부분이 대학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들 대학은 미국기업이 납부한 세금과 미국기업이 조성한 기금으로 대부분 운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 대학교의 이사회는 주로 재계 인사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전국적인 TV망을 포함해서 미디어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통제하고 있는 것은, 생존을 위해 이윤추구를 하면서 자유기업체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주식회사들입니다.
  
  공격의 강도
  
  이 글은 공격의 어조나 성격 혹은 강도를 자세히 정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음의 인용문을 보면 대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가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으며 최근 대학생 여론조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미국변호사”로 선정된 윌리엄 쿤슬러(William Kunstler)는 다음과 같이 청중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거리에서 싸우는 법, 폭동 하는 법, 총 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자산가들이 두려워하는 모든 일을 하는 방법을 우리는 배울 것입니다” (Richmond News Leader(1970. 6. 8), William F. Buckley, Jr.의 칼럼)
  
  
  쿤슬러의 충고를 따르는 신좌익주의자들은 軍 모병소와 군수공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체들에 대해 행동을 취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1970년 2월 이래 미국은행(Bank of America)의 지점이 39차례 공격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22차례는 폭발물, 17차례는 화염병이나 방화에 의한 공격이었다” (New York Times 배급 기사, Richmond Times-Dispath(1971. 5. 17) 게재)
  
  
  신좌익 연설가들이 수천 명의 젊은이들을 급진화시키는데 성공하고 있지만 이보다 더 우려할 사항은 명망있는 자유주의자들과 사회개혁가들에 대한 적대감입니다. 이러한 견해가 결집되고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면 우리의 체제가 정말로 약화되어서 결국 파괴되고 마는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스튜어트 앨섭(Stewart Alsop)이 미국대학의 교육내용에 관해 쓴 것을 보면 그저 오싹할 뿐입니다.
  
  “모든 주요 대학과 마찬가지로 예일대학도 ‘절망의 정치’를 실천하고자 하는 수많은 똑똑한 젊은이들을 배출하고 있다. 이 젊은이들은 미국의 정치, 경제제도를 경멸한다. (중략) 이들의 마음은 완전히 닫혀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합리적인 토론이 아니라 터무니없는 구호로 살고 있다” Stewart Alsop, 'Yale and the Deadly Danger', Newsweek (1970. 5. 18)
  
  12개 대표적 대학가에서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는 이렇게 보고하고 있습니다.
  
  “학생들 중 거의 절반이 미국 내 주요산업의 사회화를 지지했다” (Richmond Times - Dispath (1971. 7. 7), 사설)
  
  영국에서 록포드대학(Rockford College)으로 온 한 객원교수는 “서구사회에 대한 이념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일련의 특강을 했습니다. 이 특강에서 그는 지식인들이 자유기업체제와 서구사회의 가치들에 대해 어느 정도로 이념전쟁을 벌이고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 특강의 서문에서 시카고대학의 저명한 밀튼 프리드만(Milton Friedman) 박사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기반이 광범위하고 강력한 공격에 노출돼 있다는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 공격은 공산주의자나 다른 누구의 음모가 아니라 무심코 다른 사람의 행동을 흉내내는 개인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잘못된 길을 감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이 의식적으로는 결코 옹호하지 않았을 목적에 봉사하게 되는 것이다.” (아더 셴필드(Arthur A. Shenfield) 박사의 록포드 대학 강연집,『Idealogical War against Western Society』(Rockford College, 1970)에 실린 시카고대학 경제학 교수 밀튼 프리드먼 박사의 서문)
  
  아마도 미국기업의 가장 강력한 적수는 랄프 네이더(Ralph Nader)일 것입니다. 그는 미디어 덕분에 살아생전에 전설이 되었고 수백만 미국인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포춘』(Fortune)誌는 최근 기사를 통해 네이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의 내면을 지배하는 열정은 ― 그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 증오의 대상인 기업의 힘을 완전히 박살내는 데 겨눠지고 있다. 엉터리 제품으로 소비자를 속이고 화학첨가제가 들어있는 불량식품을 공급하고 구매자를 불구로 만들거나 죽일 수 있는 위험한 제품을 고의적으로 만든 죄로 대다수 기업 임원들이 감옥에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런 생각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말이 단지 야반도주를 일삼는 소상인뿐만 아니라 일류 기업의 최고경영진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Fortune (1971. 5), 145 쪽, 네이더에 대한『포춘』지의 이 분석에는 네이더가 한 대학을 방문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곳에서 그는 “미국의 대기업을 독설로 비난하고” 언제 대통령에 출마할 계획인지를 질문 받고 “박수가 터져 나오게 한” 대가로 2,500달러의 강연료를 받았다.)
  
  예일대학의 찰스 라이히(Chrles Reich) 교수는 지난 해 겨울 출판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은 책『젊어지는 미국』(The Greening of America)에서 우리 정부와 사법체계 그리고 자유기업체제를 정면으로 공격했습니다.
  
  이상의 예는 체제 자체에 대한 광범하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뢰를 허물고 시민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표적을 정해 공격하는 일도 무수히 많습니다. 요즘에는 감가상각률 조정과 투자세액 공제를 통해 조세상의 유인을 제공하자는 제안이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미디어에서는 이런 제안을 통상 “조세감면”이나 “개구멍” 혹은 “조세혜택”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誌의 한 칼럼니스트에 의하면, 그런 조세조치는 “오로지 부자, 즉 대기업 소유주”에게만 혜택을 주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워싱턴 포스트(1971. 6. 28), 윌리엄 래습베리(William Raspberry)의 칼럼)
  
  다수의 정치가들도 이런 종류의 조세조치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혜택도 없고 오로지 “기업”에게만 혜택을 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 경악스러울 뿐입니다. 이것이 정치적 기만이거나 경제적 무지에서 기인했다 하더라도 별로 위안이 되지는 못합니다. 이처럼 “부자”와 “빈자”, “기업”과 “인민”을 대결시키는 구도는 가장 천박하고 가장 위험한 종류의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무관심과 무대응
  
  근본적인 경제원리와 철학, 경영권 그리고 심지어는 존립 자체에 대한 이러한 대규모 공격에 대해 기업은 이제껏 어떻게 대응해 왔습니까?
  
  쓰리도록 아픈 진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사회와 최고경영진 그리고 각급 기업단체들이 유화책과 엉터리 대응책, 그리고 문제를 무시하는 것으로 일관해 왔다는 점입니다.
  
  따지고 보면 기업인들은 호시탐탐 일관되게 체제 전복을 꾀하면서 반체제를 선동하는 인사들과 게릴라전을 벌일 수 있는 훈련을 받지 못했고 장비도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기업 임원들의 역할은 관리하고 생산하고 판매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윤을 내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지역사회의 지도자가 되고 자선단체와 교육기관의 이사로 봉사하는 등 전반적으로 선량한 시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비판자들과 맞대결을 벌일 배짱도 거의 없고 효과적인 지적, 철학적 토론을 벌일 기술도 거의 없었습니다.
  
  최근『월스트리트 저널』에 “GM에 보내는 메모 : 왜 싸우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린 바 있습니다. <제프리 세인트 존 (Jeffrey St. John),『월스트리트 저널』(1971. 5. 21)>
  이 기사는 GM을 지목하고 있지만 실상은 미국의 모든 기업에게 보내는 경고였습니다. 칼럼니스트 세인트 존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미국기업 대부분이 그러하듯 GM 역시 문제의 핵심에 관해 知的으로 타당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진부하게 대응함으로써 명백한 어려움에 빠져 있다”
  
  이어서 세인트 존은 비판자들과 타협하고 이들을 달래려는 기업 지도자들의 경향에 대해서 논평하고 있습니다. 그는 네이더가 경영진으로부터 받아내는 양보들을 열거하면서 많은 “기업인들이 그들의 비판자에 대해 갖고 있는 잘못된 견해”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업 지도자들이 채택하고 있는 잘못된 전술이 수많은 대학 경영자들이 범하고 있는 실수와 유사하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습니다.
  
  “대학 경영자들은 그러한 유화책이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 그리고 진정한 학문을 파괴하는 데 일조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대학 당국이 교내의 급진적 요구 하나를 들어주자 사실상 완전히 항복하라는 요구와 다를 것이 없는 더 큰 새로운 요구가 뒤를 이었다.”
  
  세인트 존의 분석에 전적으로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개 그의 메시지가 본질적으로 옳다는 점에 동의할 것입니다. 미국의 기업은 “명백한 어려움”에 빠져 있고 광범위하게 포진한 비판세력에 대한 대응은 효과 없는 유화책일 뿐입니다. 많이 늦기는 했지만 이제 미국기업의 지혜와 재능 그리고 자원을 파괴자들에게 대항하는 사업에 결집시킬 때가 왔습니다.
  
  기업 임원들의 책임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 번째로 필수불가결한 것은 기업인들이 이 문제를 기업경영의 우선적인 과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업인들의 궁극적인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은 곧 자유기업체제의 생존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힘과 번영, 국민의 자유를 보전하는 수단이 유지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유효한 행동의 전제조건입니다.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가지면서 안정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 하던 시절은 오래 전에 끝났습니다. 우리의 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진이 체제 자체를 보호하고 보존하는 데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홍보(Public Relations)와 對정부업무(Governmental Affairs) 등 그 동안 기업들이 상당한 돈을 투자해 온 두 가지 분야를 강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합니다.
  
  개별 기업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첫 번째 조치는 아주 광범위한 전선에서 기업체제에 대한 공격에 맞서는 책임을 맡는 부사장을 다른 부사장과 동격으로 임명하는 일일 것입니다. 홍보실이 이 임원에게 맡겨지는 부서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책임은 홍보부서를 맡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언급할 여러 유형의 활동을 포함해야 합니다. 예산과 인력도 임무에 맞게 주어져야 합니다.
  
  경제단체가 맡을 수 있는 역할
  
  개별 회사에 의한 활동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독립적이고 조정되지 않은 활동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직적으로, 주도면밀한 장기계획과 실행을 통해, 오랜 기간에 걸친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공동의 노력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 자금규모를 바탕으로, 통일된 행동과 전국적 조직을 기반으로 할 때 비로소 얻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全美상공회의소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다른 조직들, 특히 다양한 산별조직이나 업종조직도 동참해야 하지만 다른 어떤 조직도 全美상공회의소만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全美상공회의소는 전략적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평판도 좋고 지지기반도 넓습니다. 또한 매우 중요한 지원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수백 개의 지방 조직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한한 강점입니다.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어떤 프로그램에 착수하기에 앞서 全美상공회의소는 실행 가능성 및 예상되는 효과에 따르는 위험을 분석하고 가능한 행동방향과 활동을 연구, 분석해야 합니다. 가장 심사숙고해야 할 것은 이러한 사업에 소요되는 비용이 얼마나 되며 회원사들이 필요한 재원을 얼마나 지원해 줄 수 있는가, 그리고 사업을 수행하는 인원을 적절하게 배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들입니다.
  
  대학가
  
  자유기업체제에 대한 공격은 지난 몇 달 사이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20년에 걸쳐 서서히 전개돼 왔습니다. 이 공격은 초기에는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점진적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응을 준비하기는커녕 인식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반체제적 공격의 기원과 근원 그리고 원인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일목요연하게 가려내기 어렵지만, 대학가가 가장 역동적인 근원이었다는 것을 믿을 만한 근거는 충분합니다. 사회과학 분야에는 자유기업체제에 비우호적인 교수들이 흔하게 포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디에고 캠퍼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자인 허버트 마르쿠제 같은 교수를 필두로 수많은 사회주의 신봉자들, 칭찬보다는 비난거리를 찾아내기를 즐기는 학자들, 그리고 모호한 진보평론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이런 교수들은 굳이 다수여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들은 대개 인간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극적인 강의와 논쟁을 통해 학생 추종자들을 끌어들입니다. 이들은 왕성하게 글을 쓰고 강연하며 수많은 교과서를 펴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숫자를 훨씬 능가하는 영향력을 동료 교수들과 학계에 끼치고 있습니다.
  
  사회과학 분야 교수들(정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그리고 다수의 역사학자)은 좌익이 존재하지 않을 때부터 진보적 성향을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보적 사고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문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많은 대학에서 이 “균형”이 현저하게 결여돼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비교적 소수의 교수만이 보수주의나 온건한 성향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더욱이 이런 교수들은 聖戰을 벌이고 있는 동료 교수들에 비해 언변도 떨어지고 공격성도 떨어집니다.
  
  여러 해 전부터 이런 상황이 시작되었고 불균형이 점점 더 악화되면서 젊은 학생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배런스 위클리』(Barron's Weekly)誌에서 근무하는 한 기자가 왜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혁명가가 될 지경에 이를 만큼 현실에 불만을 갖고 있는지 그 해답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 기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한편 칼럼니스트 스튜어트 앨섭은 자신의 모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주요 대학과 마찬가지로 예일대학은 (중략) 미국의 정치, 경제제도를 경멸하는 수많은 똑똑한 젊은이들을 졸업시키고 있다”
  
  전국의 대학에서 배출된 이들 “똑똑한 젊은이들”이, 이제껏 “경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불신하도록 교육을 받아왔던 미국체제를 바꿀 기회를 찾아 이 나라의 실질적인 권력과 영향력을 지닌 중추적 분야로 취업을 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취업하는 곳은 (1)뉴스 미디어, 특히 TV, (2)정부의 각급 공무원이나 컨설턴트, (3)선거정치판, (4)강사와 작가, (5)각급 교육기관의 교원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기업과 전문직 등 자유기업체제 안으로 취업하게 되며 대개의 경우 이들은 자기들이 배웠던 것의 오류를 곧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곳을 피해 취업한 자들은 흔히 영향력 있는 핵심 지위에 남아서 여론을 조성하고 종종 정부행동을 형성합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이들 “지식인”들은 결국에는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기업체제에 대해 권한을 행사하는 규제기관이나 정부부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상의 분석이 대체로 옳은 것이라면, 업계와 全美상공회의소 같은 조직이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는 대학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적대감을 처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학문의 자유보다 더 신성시되는 것은 없습니다. 학문의 자유라는 원칙을 공격하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학문의 자유가 “개방성”과 “공정성” 그리고 “균형”의 속성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건설적인 행동을 할 기회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기회를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방금 언급한 속성, 즉 개방성과 공정성 및 균형을 학계에 회복시키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대학가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대학의 知的 건전성은 궁극적으로 대학의 행정당국과 교수진이 책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全美상공회의소와 같은 조직이 다음의 예를 포함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건설적인 변화를 지원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학자 스태프
  
  全美상공회의소는 체제를 신봉하는 사회과학자 스태프를 구축하는 일을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로부터도 그 저술이 널리 존중받는, 전국적인 명성을 지닌 학자들이 여럿 포함돼야 합니다.
  
  강사 스태프
  
  최고의 능력을 지닌 강사 스태프도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학자들도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자가 아니면서 全美상공회의소를 대변하는 강사들은 당연히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말로 전달하는 능력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강사 관리부서
  
  상근 스태프에 더하여, 全美상공회의소에는 강사를 관리하는 부서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미국 기업계의 최고위직 출신의 가장 유능하고 가장 효과적인 논객들이 포함돼야 합니다.
  
  교과서 평가
  
  학자 스태프는 (더 바람직하기는 독립적인 학자들로 구성된 패널이) 사회과학, 특히 경제학과 정치학 그리고 사회학 분야의 교과서들을 평가해야 합니다. 이것은 지속적인 프로그램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평가의 목표는 진정한 학문의 자유를 확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균형”을 회복하는 데 두어져야 합니다. 이 목표에는 우리나라의 정부체제와 기업체제, 이 체제의 업적, 이 체제와 개인의 권리 및 자유와의 기본적인 관계, 사회주의-파시즘-공산주의 체제와의 비교 등을 공정하게 그리고 사실에 입각해 다루도록 하는 일이 포함돼야 합니다. 기존 교과서도 일정 정도 비교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가 피상적이고 편향적이며 공정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민권운동단체가 대학과 각급 학교의 교재 가운데 다수를 다시 써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노동조합도 교과서가 조직노동운동에 대해 공정한 시각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기타 시민단체들도 교과서와 교재를 검토, 분석, 비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아 왔습니다. 민주사회에서 이것은 건설적인 과정일 수 있으며 진정한 학문적 자유에 대한 지지로 봐야지 그에 대한 침해로 간주돼서는 안됩니다.
  
  미국 체제를 신봉하는 저명한 학자들이 나서서 숨김없고, 공정하고, 철저하게 교과서를 검토하고 비판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교과서 저자와 출판사 그리고 사용자들이 알게 된다면 그들은 보다 합리적인 균형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대학 강연시간의 평등한 분배
  
  全美상공회의소는 대학의 초청강연에 있어서 평등한 시간분배를 요구해야 합니다. 매년 연방수사국(FBI)은 공산주의자를 자처한 인사들이 대학 캠퍼스에서 행한 강연의 목록을 발표합니다. 1970년에 이 숫자는 연간 100회를 상회했습니다. 물론 이 글의 앞 부분에서 지적한 유형의 시각을 내세우는 좌익인사와 급진진보주의자들까지 합친다면 연간 강연 횟수는 수백 건을 상회합니다. 미국의 기업과 정부체제를 옹호하는 듯이 보이는 인사나 조직은 이에 상응하게 대표되지 못했습니다.
  
  모든 캠퍼스에는 연사를 초청하는 공식, 비공식 집단들이 있습니다. 학교별 법과대학원(Law School)에서도 같은 일을 합니다. 많은 대학이 특강이나 강연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후원합니다. 이들 프로그램에서 기업이 적절하게 대표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全美상공회의소의 연사들에게는 거의 초청장이 발송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대학에서 온건하거나 보수적인 견해를 보이는 모든 사람에게 언론의 자유가 부정돼 왔다.
  全美상공회의소가 공격적으로 강연할 권리를 (실제에 있어서는 “평등한 시간”을) 고집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사실 평등한 시간을 요구하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에게 강연을 허용하기 위한 고전적인 변명입니다. 대학당국과 대다수 학생집단은 다양한 견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공공연하게 박탈당하는 처지에 놓이기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두 가지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1)매력적이고 언변 좋고 아는 게 많은 강사를 확보하는 것과 (2)강연 기회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모든 압력을 공개적으로 또는 비공개적으로 행사하는 것입니다. 강연의 목표는 언제나 단순한 선전이 아니라 정보제공과 계몽이어야 합니다.
  
  교수진의 균형잡기
  
  아마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교수진의 불균형일 것입니다. 이것을 시정하는 일은 실로 장기적이고 어려운 프로젝트입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프로그램의 일부로서 실행해야 합니다. 이는 대학의 행정당국과 이사회에 교수진의 균형을 이룰 것을 촉구해야 한다는 의미합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할지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으며 뻔히 보이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부적절한 압력은 역효과만 낼 것입니다. 그러나 말과 글로 그리고 동문회와 동문집단에 호소해 이사회에 적절히 전달하기만 한다면, 균형과 공정성 그리고 진실이라는 기본 개념들을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는 머나먼 길이며 조급한 사람을 위한 길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신념을 가지고 추구한다면 대학가에서 학문의 자유를 확보하는 동시에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생산적인 사회로 만든 바로 그 가치를 강화하는 길로 이어질 것입니다.
  
  경영대학원
  
  全美상공회의소는 영향력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경영대학원들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위에서 제안한 것의 대부분은 경영대학원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全美상공회의소는 이 글에서 제기한 문제 전부를 다룰 수 있는 교과목을 개설해 달라고 이들 대학원에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는 미래의 경영자를 위한 훈련에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중등교육
  
  첫 번째 우선순위는 대학 수준에 두어야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경향들이 고등학교에서도 점차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앞에서 제시한 방법들과 유사하면서도 고등학교의 실정에 맞는 행동 프로그램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것을 실행하고 관리감독하고, 수준 높은 품질을 유지하는 일은 全美상공회의소가 주관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이것은 지방상공회의소의 주요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 국민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
  
  대학과 중등학교에 접근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일반 국민에게 접근하는 것은 중단기적으로 더욱 중요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필수적인 것은 저명한 학자와 작가, 그리고 강사로 구성된 스태프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생각하고 분석하고 글쓰고 강연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입니다. 아울러 미디어를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서 대중에게 아주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스태프를 갖추는 일도 필수적입니다. 아주 명백한 수단으로 다음의 것들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
  
  교과서를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TV 방송을 꾸준히 모니터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교육관련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매일매일 방송되는 “뉴스”가 포함돼야 합니다. 자유기업체제에 대한 가장 은밀한 유형의 공격을 너무나 자주 포함하고 있는 것이 바로 뉴스이기 때문입니다. 방송사의 30분짜리 저녁뉴스는 매일 약 5천만명의 미국인들이 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방송의 비판이 기업에 대한 적대감에서 비롯된 것이든 경제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든 결과적으로는 기업경영과 자유기업체제에 대한 신뢰를 서서히 부식시키게 됩니다.
  
  이러한 모니터링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프로그램 가운데 적절한 숫자의 표본을 골라 대본을 지속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불공정하거나 부정확한 프로그램이 발견될 때마다 미디어와 연방통신위원회에 즉각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항의해야 합니다.
  
  평등한 시간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이를 요구해야 합니다. 공개토론 형태의 프로그램(「투데이 쇼」,「언론과의 만남」등의 프로그램)에 체제의 지지자들이 공격자들과 적어도 같은 정도로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기타 미디어
  
  라디오와 신문도 중요합니다. 따라서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미국체제의 장점이 소개될 수 있도록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불공정한 공격을 문제삼고 반박해야 합니다.
  
  학술지
  
  全美상공회의소의 “학자 스태프”가 활발하게 책을 출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보 및 좌파교수들이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열쇠 중 하나는 “출판”과 “강연”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유사한 열정이 全美상공회의소의 학자들에게도 존재해야 합니다.
  
  全美상공회의소에 소속돼 있지 않더라도 체제를 신봉하는 학자들이 존재한다면 이들에 의한 “출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유인책을 고안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이들의 글은 대중잡지(「Life」,「Look」,「Reader's Digest」)에서부터 좀 더 지적인 잡지(「Harper's」,「Saturday Review」,「New York」)를 거쳐 다양한 전문학술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잡지와 정기간행물에 꾸준히 지속적으로 게재돼야 합니다.
  <대응없이 지나가서는 안될 유형의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글이 1971년 7월19일 字「뉴욕」(New York)誌에 실렸다. 급진진보주의자인 잭 뉴필드(Jack Newfield)가 쓴 “민중주의 선언”(A Populist Manifesto)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이 나라가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富의 재분배”라고 주장했다.>
  
  책, 페이퍼백, 팜플렛
  
  공항과 약국 등의 신문가판대에는 혁명에서부터 자유연애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주장을 옹호하는 페이퍼백과 팜플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 측”에서 매력적으로 잘 쓴 페이퍼백이나 팜플렛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엘드리지 클리버(Eldridge Cleaver)나 찰스 라이히(Charles Reich) 같은 사람이 독자들로부터 받고 있는 관심을 따라잡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큰 규모로, 그리고 성공을 담보해 줄 수 있는 적절한 상상력을 가지고 노력하지 않으면 일반국민을 교육할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유료 광고
  
  기업은 광고를 위해 수천만 달러의 돈을 미디어에 지불합니다. 이 돈의 대부분은 구체적인 상품을 판촉하는 데 쓰입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돈이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쓰여집니다. 하지만 체제를 지원하는데 쓰이는 돈은 극히 적으며 그나마 곁다리에 불과합니다. 국민을 대상으로 홍보하고 계몽하는 사업이 주요 사업으로 평가받으면서 지속적으로 추진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만약 미국의 기업이 연간 사용하는 전체 광고예산 가운데 10%만 체제를 수호하는 목적에 투입한다면 국민을 계몽하는 데 실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소홀히 다뤘던 정치영역
  
  따지고 보면 정부가 하는 일이란 혁명까지는 이르지 않지만 결국 부의 분배입니다. 기업은 여러 해 동안 정치인들의 동네북이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심해졌는지는 오늘날 주요 대통령 후보들이 피력하고 있는 반기업적 견해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대기업이 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교리입니다. 세계 전역에서 좌파들은 언제나 이 교리를 선전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이 교리를 신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기업임원들이 아는 바와 같이 미국사회에서 기업인이나 회사, 혹은 수백만의 주주만큼 정부에 대해 영향력을 갖지 못한 집단도 드뭅니다. 이런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의회에 가서 기업의 입장을 변호하는 “로비스트” 노릇을 해보라고 하십시오. 연방의회 뿐만 아니라 주 의회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입법방향과 정부행동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에 있어서 미국의 기업임원은 실로 “잊혀진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비자권리”나 “환경”과 관련된 거의 모든 법안에 대해 정치인들이 떼로 달려들어 지지하는 현실이 바로 기업의 무력함과 기업에 대한 경멸에 가까운 무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다수의 유권자들이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는 국민들이 기업인과 기업의 입장에 대해 거의 공감하지 않는다고 정치인들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앞에서 제시한 프로그램을 국민을 계몽하는 데 맞도록 고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기업인과 그 역할을 강조하기보다는 기업인이 관리하는 체제, 그리고 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재화와 용역 및 일자리를 제공하는 체제 자체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계몽하는 것입니다.
  
  교육과 홍보를 통해 여론이 점차적으로 변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보다 직접적인 행동을 등한시해서는 안됩니다. 기업은 노동조합과 기타 이익집단들이 오래 전에 배운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교훈은 다름 아닌 정치권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권력을 주도면밀하게 성장시켜야하고 필요할 때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그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미국의 기업이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당황하거나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全美상공회의소 입장에서는 결코 달갑지 않겠지만 정치의 장에서 더욱 광범하고 활발한 역할을 맡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소홀히 취급한 법원에서의 기회
  
  미국의 기업과 체제는 행정부와 입법부 못지않게 사법부의 영향도 많이 받습니다. 우리의 입헌제도, 특히 운동권 성향의 대법원이 존재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사법부를 활용하는 것은 사회, 경제, 정치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다른 조직이나 집단은 미국기업보다 훨씬 더 기민하게 사법적 조치를 활용해 왔습니다. 아마도 사법제도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진보에서 극좌에 이르는 정치정향을 가진 집단들일 것입니다.
  
  하나의 사례가 바로 미국민권동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입니다. 이 단체가 제기하거나 개입하는 소송이 매년 수십 건이며 대법원의 고문으로서 법원이 처리하는 수많은 재판에 관해 의견서를 제출합니다. 노동조합과 민권단체, 최근에는 공익법률회사들이 사법의 장에서 극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거두는 성공은 대개 기업을 희생시키면서 얻어지는 것이며 상당한 파급효과를 지닙니다.
  
  만약 全美상공회의소가 미국기업을 대변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용의가 있고 아울러 기업은 기업대로 자금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면 사법제도는 全美상공회의소에게 굉장한 기회의 영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자, 강사와 마찬가지로 全美상공회의소는 능력이 뛰어난 법률가 스태프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필요할 때는 대법원에 고문변호사로 출석할 수 있을 정도의 전국적 명망을 지닌 법률가들을 고용할 권한도 지녀야 합니다. 물론 개입하거나 제기할 소송을 선택하는 데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겠지만 이러한 노력은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소홀히 취급한 주주권력
  
  일반적인 시민들은 기업을 큰 부자가 소유하고 지나치게 많은 월급을 받는 임원이 관리하는 비인격적 법인체로 생각합니다. 기업이라는 게 실제로는 이런 저런 식으로 미국인 대부분이 품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업으로부터 일자리를 제공받은 사람들은 상당히 높은 사회계급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우리 체제 하에서 2천만 명에 이르는 주식소유자들은 기업의 진정한 소유자이며 진정한 기업가이며 진정한 자본가들입니다. 이들은 역사상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가능하게 한 경제체제에 대해 자본이라는 연료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주식소유자들은 기업임원과 마찬가지로 우리 체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거나 정치적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무력하기만 합니다.
  
  가장 철저하게 검토가 필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주주들, 즉 2천만 명의 유권자들의 영향력을 동원해서 (1)교육 프로그램과 (2)정치행동으로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개별 회사들은 이제 주주들에게 많은 보고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회사들이 직원과 주주들에게 제공되는 값비싼 소식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기회를 지금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교육미디어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업 자체는 정치행동을 자제해야 하며 당연히 법률을 준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全美상공회의소의 지부를 통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미국 주식소유자들의 전국적인 조직을 결정하고 여기에 충분한 힘을 실어주어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좀 더 공격적인 태도
  
  업계, 특히 대기업과 그들의 전국적 업종단체는 정치행동과 관련하여 저자세를 유지함으로써 눈에 띄지 않고자 애써왔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평균적인 기업임원은 자신의 회사와 기업체제를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 적어도 공개석상에서는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격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기업인이나 기업조직은 거의 없습니다. 반대세력이 타협할 용의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유화책을 제시하거나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 공격이 사라질 것으로 보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기업은 대결의 정치를 피해 왔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기업은 각종 이익집단이 끊임없이 내놓는 협상 불가능한 “요구들”에 넌더리를 쳐 왔습니다.
  
  全美상공회의소를 포함해 책임있는 업계라면 일부 압력집단의 무책임한 전술을 답습하려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업체제의 대변인은 모든 수준에 있어서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네이더 같은 사람들, 마르쿠제 같은 사람들 그리고 체제의 파괴를 공공연히 모색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데 있어서 망설임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정치의 장에서 기업체제에 대한 지지를 강력히 요구하는 데 있어서 추호의 주저함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기업체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불이익을 주는 데 거리낌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 점에 있어서 조직노동운동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습니다. AFL-CIO(미국 노조연합단체)의 의장은 기업인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인물입니다. 사랑스럽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여러 해 동안 전국적 노동단체의 임원들은 받는 월급에 걸맞게 매우 효과적으로 임무를 수행해 왔습니다. 그들은 사랑받지는 못했지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곳, 즉 정치권, 대학, 미디어에서 존경받았습니다.
  
  생산에 있어서 그리고 소비자 선택에 대한 영향력에 있어서 역사상 최대의 능력을 보인 미국의 기업은 이제 그 놀라운 재능을 체제 자체의 보존에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비 용
  
  여러 영역에 걸쳐 교육사업을 전개하고 정치행동을 도모하는 것을 포함해 앞에서 기술한 유형의 프로그램을 장기적으로 추진해 나가면서 이를 수행할 스태프를 적절히 갖추기 위해서는, 미국의 기업들로부터 지금까지 全美상공회의소가 받아온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재정지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기업의 고위경영진이 全美상공회의소 업무에 참여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全美상공회의소의 스태프의 숫자를 상당히 늘려야 하고 최고의 질을 확립하고 유지해야 합니다. 월급도 주요기업 임원과 저명한 교수에 필적하는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광고 전문가, 미디어 전문가, 강사, 법률가 및 기타 전문가가 충원돼야 할 것입니다.
  
  全美상공회의소 자체도 이러한 리스트럭처링으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노동조합의 경험에서 시사하듯 全美상공회의소 소장은 상근직으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대의 유효성과 연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全美상공회의소의 CEO를 매년 바꿔서는 안됩니다. 현재 소장이 수행하는 대부분의 기능은 이사장에게 이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사회가 정책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 행사해야 할 것입니다.
  
  품질관리가 중요
  
  전체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요소는 책임과 “품질관리”입니다. 간행물, 논문, 강의, 미디어 프로그램, 광고, 법원 제출 소견서, 의회 상임위 증언 등 모든 활동이 정확성과 전문성에 있어서 가장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제시된 의견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동의하든 하지 않든 간에 공적 책임성과 학식의 깊이만으로도 존경을 받을 만 해야 합니다.
  
  자유와의 관계
  
  자유기업체제에 대한 위협은 단순히 경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실이 신좌익과 진보주의자들의 수사로 인해 매몰돼 버렸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의미를 가지려면 이 위대한 진실을 재천명해야 합니다.
  
  자유기업의 반대편에 있는 단 하나의 대체물은, 온건 사회주의로부터 좌익 혹은 우익독재의 폭압에 이르기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개인적 자유에 대한 관료적 규제라는 것을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대한 도시사회의 복잡성에 따라 그 이전 시대에는 불필요했던 규제와 통제가 생겨나면서 우리 미국인들은 이미 여러 측면에서 국가사회주의에 상당히 근접해 있습니다. 어떤 영역에서는 그러한 규제와 통제가 기업과 노동자 모두의 자유, 나아가서는 국민일반의 자유를 이미 심각하게 손상시켰습니다. 하지만 자유의 핵심적인 부분은 남아 있습니다. 사적 소유권, 사적 이윤추구, 노동조합, 단체협상, 소비자선택, 그리고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재화와 용역의 가격과 질 및 다양성이 결정되는 시장경제는 남아 있습니다.
  
  이 글에서 논의한 것처럼 체제 자체가 공격을 받는 것 외에 그것의 핵심요소 또한 불공평한 조세와 통제 불능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물가와 임금의 “동결”은 현재의 인플레이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영구조치로 부과된다면 기업체제는 거의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가 축소되는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자유라는 개념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만이 진리입니다.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의 경험이 예시하듯이 자유를 축소하고 부정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여타의 소중한 권리에 대한 제한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미국인들로 하여금 깨닫도록 해야 하는 것은 다른 어떤 메시지보다도 바로 이 메시지입니다.
  
  결 론
  
  이상에서 제시한 의견이 잠정적인 제안이라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첫 걸음은 철저한 연구입니다. 다만 全美상공회의소의 이사회가 이 글의 기본 전제, 즉 기업과 자유기업체제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고 있으며 이미 시간이 늦었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이 모든 것이 부질없는 일일 것입니다.
  
  

  자료 5: 한국의 보수가 부진한 까닭
  
  복거일(소설가, 평론가)
  
  ‘보수’란 말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널리 쓰이지만, 그것은 깔끔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것은 대체로 현 체제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지닌 태도의 복합체를 뜻한다. 그래서 보수란 말은 엄밀한 뜻에서의 보수주의와 그리 큰 관련성이 없고 그 두 말은 구별되어 쓰여야 한다.
  
  다행히, 그런 사정은 실제적 논의들에선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현 체제의 구성 원리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구성 원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이므로, 보수는 그 원리들을 지지하고 변호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태도를 가리킨다.
  
  자유민주주의는 지금 가장 성공적이고 인기 높은 정치적 이념이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기 직전인 1989년에 나온 <역사의 끝(The End of History)>에서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예언한 것처럼, 인류 문명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이념적 진화의 종착지를 찾았다. 진화엔 최종적 상태가 없으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종착지란 말을 진화와 함께 쓸 수는 없다. 그러나 앞선 사회들이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누리고 다른 사회들은 그것을 지향한다는 사실은 예측 가능한 미래에도 그것이 지배적 이념으로 남으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자유를 불러오는 사회 체계로 여겨진다. 역사적으로, 문명이 발달하면, 늘 자본주의가 발전했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문명이 융성했다. 그리고 근년엔 거의 모든 나라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채택했고, 북한이나 쿠바와 같은 공산주의 나라들까지도 부분적으로 자본주의를 도입하려 애쓴다.
  
  자연히, 우리 사회에서 보수는 압도적 다수파이리라는 기대가 나온다. 사정은 크게 다르니, 근년에 보수는 세력이 점점 약해졌고 대통령 선거에서 거푸 패배하여 정권을 현 체제에 비판적인 세력에게 넘겼다. 실제로 현 체제를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보수가 이렇게 부진한 까닭은 무엇인가?
  
  근본적 까닭은 현존하는 체제를 지지하고 변호하는 일은 어느 사회에서나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것은 지적으로 무척 어렵지만 보답은 아주 적다. 반면에, 현존하는 사회 체제는 완전에 가까운 모습을 갖출 수 없으므로, 그것의 결점들을 지적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일은 매력적이다. 그것은 별다른 지적 능력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누구나 할 수 있고, 그것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한다는 지적 및 도덕적 만족감을 준다. 16세기 영국 신학자 리처드 후커(Richard Hooker)의 얘기대로, “대중에게 그들이 받아야 할 만큼 통치받지 못한다고 설득하러 다니는 사람은 정신을 쏟으며 옳다고 여길 청중이 결코 없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 체제의 비판자들이 대안으로 내놓는 것은 실재하는 체제가 아니라 대안적 체제의 청사진이다. 그런 청사진은 당연히 깔끔하고 매력적이다. 그런 대안적 체제에 근본적 모순들과 비현실적 가정들이 들어있어도, 청사진엔 그것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깔끔하고 매력적인 청사진이 체제로 변환되면, 아예 성립될 수 없거나, 이전의 공산주의가 그러했듯이, 아주 비효율적이고 흉측한 모습을 드러내리라는 점을 증명해 보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우리 사회는 겨우 한 세기 동안에 중세적 봉건 사회로부터 현대적 자본주의 사회로 바뀌었다. 그런 변환은 보기 드물게 성공적이었지만,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는 과정이었다. 당연히, 우리 사회엔 결점들과 부족한 점들이 많다. 대안적 체제의 청사진을 내놓고서 실재하는 우리 체제를 비판하는 사람들로부터 그것을 변호하고 지키는 일은 당연히 힘들다.
  
  다음엔, 현 체제에 대한 태도들을 변별하는 일에서,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일반적 관행에 내재하는 편향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보수나 진보와 같은 개념들은 엄밀한 뜻에서 방향을 가진 개념들은 아니다. 현실적 맥락 속에 놓여야, 비로소 그것들은 방향이 결정된다. 우리 사회에선 자유주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보수로 불리지만, 1990년대 초엽 러시아에선 공산주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보수로 불렸다는 사실이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보수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현상유지를 바라는 태도를 뜻하고 진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진취적 태도를 뜻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바뀌며 사회를 좀더 낫게 만들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하는 현실 속에서, 진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보수라는 말보다 훨씬 좋게 들린다. ‘보수’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따라서 그 두 말들은 가치중립적이 아니다.
  
  셋째, 자본주의의 본질과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큰 지적 투자가 필요하다. 자본주의는 사유재산 제도와 시장 경제에 바탕을 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체제다. 자본주의는 궁극적으로 개인들의 자기 이익 추구 활동들이 서로 조화되어 전체 사회가 제대로 움직이고 유지되고 발전한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 18세기에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생생한 비유로 이 사실을 잘 설명했고, 근년엔 유전 생물학자들이 개체들의 자기 이익 추구가 “상호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를 낳는 과정을 설득력있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반직관적(反直觀的)이어서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큰 지적 투자가 필요하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대한 몰이해와 불신은 어느 사회에서나 널리 퍼졌고, 재산권에 대한 엄격한 제약과 정부의 시장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은 늘 높다.
  
  넷째,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정의롭지 못하다는 견해가 널리 퍼졌다. 자본주의는 자연스럽고 정의롭다. 자본주의는 재산에 다한 권리가 재산의 형성에 공헌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에 바탕을 두었다. 그런 원칙은 모든 인류 사회들에서 받아들여진 보편적 원칙일 뿐 아니라 다른 종(種)들에서도 예외 없이 발견되는 원칙이다.
  
  실은, 사유재산 제도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이념이나 체제들도 재산의 소유는 그것의 형성에 대한 공헌을 근거로 삼아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사회주의는 재산의 가치가 노동에서 나온다는 노동가치설에 바탕을 두었고, 사회의 재산은 원칙적으로 재산의 형성에 공헌한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노동가치설과 그것에 바탕을 둔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은 논파(論破)되었지만, 재산에 대한 권리는 그것의 형성에 공헌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회주의의 근본적 가정은 오롯이 남아서 자본주의의 정의로움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정의롭다는 사실은 그리 널리 인식되지 않았고 자본주의의 지지자들이 이 사실을 들어 자본주의를 변호하는 경우는 드물다. 자본주의가 다른 체제들보다 훨씬 효율적이어서 늘 사람들에게 큰 번영과 자유를 제공하므로, 자본주의를 변호하는 사람들은 늘 그 점을 강조한다. 반면에,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평등을 보장하지 않으며 따라서 정의롭지 못하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다 보니, 자본주의는 효율적이지만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정의는 사람의 가치 체계에서 가장 근본적 요소며, 사회는 그것을 가장 근본적 원리로 삼아서 이루어지고 움직인다. 그래서 자본주의에 적대적인 세력이 정의를 내세워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현실적 여건이나 실질적 이득만을 내세우는 것은 ‘도덕적 고지’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일이며, 그렇게 ‘도덕적 고지’를 비판자들에게 내어주고선, 결코 자본주의를 제대로 변호할 수 없다.
  
  다섯째, 우리 사회의 거센 민족주의가 체제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해왔다. 우리 나라에 가장 적대적이고 위협적인 나라는 줄곧 동족 사회인 북한이었다. 그래서 민족적으로 가장 가깝고 언젠가는 합쳐져야 할 나라가 당장엔 가장 무섭고 경계해야 할 적국이라는 상황이 나왔다. 이런 사정은 북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체제가 임시적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도록 했고, 그것은 다시 통일을 위해선 우리 체제를 상당히 바꾸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낳았다. 그런 주장이 위험하고 해롭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드러내기는 무척 어렵다.
  
  여섯째, 그리고 아마도 가장 직접적인, 까닭은 보수의 핵심적 집단들이 모두 과거의 잘못들로 ‘오염’되었다는 사실일 터이다. 지금 보수의 핵심적 집단들 가운데 하나는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에 참여했던 사람들인데, 그들은 그 정권들의 억압과 부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자연히, 도덕적 권위를 잃었다. 또하나의 핵심적 집단인 대기업들을 소유하거나 경영하는 사람들은 흔히 ‘정경유착’이라 불리는 정권과의 공생 관계를 유지했었다. 반면에, 우리 체제를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런 잘못들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그래서 체제의 적대적 세력들이 아주 쉽게 ‘도덕적 고지’를 차지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현 체제를 변호하기 위해 보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밖으로는 북한의 점증해온 위협이 한층 심각해졌고 안으로는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미 체제의 전략적 요소들에 배치된 지금,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은 일은 절박하다. 안타깝게도, 그 것은 간단하지도 또렷하지도 않다. 우리 체제에 대한 위협들이 여러 방향들에서 갖가지 모습들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보수의 처지를 어렵게 만든 요인들을 살피면, 몇 가지 실제적 방책들이 보인다. 비록 시원스럽지는 못하지만, 그것들은 우리 체제를 변호하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추구할 가치를 지녔다.
  
  첫째, 우리 체제에 대한 비판은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우리는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가 아닌 이념들에 바탕을 둔 비판은 진정한 비판이 아니라 체제를 허물려는 시도다. 실제적으로, 이것은 체제에 대한 비판이 자유주의와 주류 경제학의 방법론을 따라야 함을 뜻한다.
  
  우리 체제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내놓는 대안적 체제의 청사진에 대해선, 아무리 매력적이더라도, 그것은 청사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긴요하다. 그런 청사진과 실재하는 우리 체제를 동등하게 다루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일과 관련하여,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뒤 역사적 공산주의 체제를 ‘현실 사회주의’라 폄하하고 ‘이론 사회주의’라는 급조된 개념 뒤로 숨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지적 부정직이 우리 사회에서 별다른 비판을 받지 않은 사정을 우리는 깊이 성찰해야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체제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그들이 지닌 태도를 ‘보수’로 부르고 그것을 허물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을 ‘진보’로 부르는 관행을 시정하는 일이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그런 용어들은 가치중립적이 아니며 언뜻 눈에 뜨이지 않는 편향을 품었다. 그렇게 편향된 말들로써 ‘도덕적 고지’를 선점하는 것은 좌파가 능란하게 써 온 책략이다. 마르크스 자신이 ‘착취’라는 말을 처음엔 가치중립적 용어로 쓰다가 뒤에 슬그머니 원래의 뜻으로 바꾸었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지금의 관행을 전통적 구분인 ‘우파’와 ‘좌파’로, 아니면 논의의 맥락에 따라 ‘친체제’와 ‘반체제’로, 대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관행을 바꾸는 것은 무척 힘들겠지만, 우선 ‘보수’ 진영에서 먼저 시도해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 시민들이 자본주의를 보다 잘 이해하고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정의롭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애써야 한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체제를 지키려는 사람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과제다.
  
  셋째, 우리는 민족주의가 너무 극단적 모습으로 분출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이것은 더할 나위 없이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한 가지 길은 대한민국의 헌법에 따라 우리 사회의 시민들인 북한 주민들과 그들을 압제적으로 통치하는 현 북한 정권을 또렷이 변별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체제에 가장 해로운 주장들은 북한의 주민들과 정권을 의도적으로 변별하지 않고 맹목적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것들이므로, 이런 변별만으로도 거센 민족주의의 위험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넷째, 어떤 이념이나 체제는 궁극적으로 그것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판별된다. 그래서 추종자들은 그들이 따르는 이념이나 체제의 궁극적 선전이다. 이런 관점에서 살피면, ‘보수’는 우리 체제의 좋은 선전은 못 되었다. 시민들의 자기 이익 추구는 흔히 부패로 이어졌고, 사회적 위계에서 높은 지위에 올라 권력과 부를 향유한 사람들은 그들의 지위에 걸맞는 윤리적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자연히, 우리 체제를 부패와 압제의 체제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 ‘보수’의 핵심 집단을 이끄는 사람들은 보다 윤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높은 지위에 걸맞은 고귀한 행동(noblesse oblige)은, 따지고 보면, 그들의 궁극적 이익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병역 기피’, ‘원정 출산’ 또는 ‘상속세 탈세’와 같은 말들이 그들과 연관되어 거론되는 한, 우리 체제는 그것을 반대하고 허물려는 사람들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없다.
  
  

  자료6: 한국 우파의 행동 윤리
  
  善하고 强해야 이긴다
  
  * 이 글은 2004년 11월5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던 [이론무장을 위한 大강연회] 때 발표한 내용을 보완 정리한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한국의 드라마
  
  한국은 국토의 크기에선 세계 109위, 인구에선 세계 25위이지만 세계최고의 IQ를 가진, 아시아 최강의 체력(평균신장이 남자 173cm으로 아시아 最長)을 가진 부지런한 민족의 저력을 살려 GDP 환산 경제규모에선 세계 11위, 1인당 GNI 에선 세계 50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은 선박건조량, 반도체 D램 매출액, TFT-LCD 출하량,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비율에서는 세계 1위가 되었습니다. 한국은 또 原油수입량(2002년), 미국내 유학생수에선 세계 3위입니다. 한국은 외환보유고에선 세계 4위, 粗綱생산량·에틸렌 생산능력·산업로봇보유대수·컨테이너 처리실적(부산항), 공항화물처리 실적(인천공항)에선 세계5위입니다. 한국은 자동차 생산은 세계 6위, 연구개발 투자액·석유소비량·선박보유량이 세계 7위입니다. PC 보급대수·국민소득 대비 연구개발액·세계 100대 브랜드 보유수에서는 세계 8위,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에 오른 기업수로는 세계9위, 근로자 행복지수는 세계10위, 전력생산·쌀생산량이 세계11위입니다. 한국은 수산물 생산량과 交易규모가 세계12위입니다.
  
  이런 대한민국이지만 1960년에는 국민소득이 필리핀, 타일랜드, 말레이시아, 아프리카의 잠비아와 모잠비크보다는 물론이고 방글라데시보다 낮았습니다. 1960년부터 20년간 한국은 세계 6위의 고도성장을 했습니다. 1980년대의 10년간은 全斗煥 시대와 거의 일치하는데 세계 1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1990년 이후 세 문민 대통령 시절, 경제 성장률은 급속히 내려앉았고 외환위기를 겪었으며, 작년과 올해에는 아시아 국가들 중 꽁지권입니다.
  
  지난 60년간 북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북한은 日帝로부터 중화학공업시설을 이어받아 남한보다 월등한 조건에서 출발했으나 金日成 부자의 수령독재정권이 인민을 착취, 고문, 살해하여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만 全力을 쏟는 바람에 한 경제학자의 추정에 따르면 북한의 생활수준은 조선조에서 가장 못살았던 철종·고종 때보다 더 못산다고 합니다. 20세기말에 약300만 명의 주민들이 굶어죽을 정도이니 철종 고종 때보다도 더 못산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남한의 거대한 진보와 북한의 참담한 퇴보! 그런데 남한의 친북좌익세력은 남한의 거대한 진보를 이룩한 주류층을 守舊라고 부르고 金正日 세력을 진보라고 칭합니다.
  
  이런 한반도에선 지금 세계사적인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 분들이 바로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십니다.
  
  
  가장 악독한 집단과 가장 성실한 사람들
  
  같은 한반도의 하늘 아래서 지금 인류역사상 가장 악독한 집단과 인류역사상 가장 성실한 사람들과 인류역사상 가장 사악한 위선자들과 인류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리들과 인류역사상 가장 불쌍한 백성들과 인류역사상 가장 비겁한 언론인과 정치인들이 뒤섞여 이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스탈린, 毛澤東 등 외세를 불러들여 동족을 친 6·25남침 전쟁으로 300만 명, 개혁개방을 거부한 결과인 대기근을 자초하여 300만 명, 아버지와 아들이 도합 600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갔습니다. 이런 인류역사상 최악의 守舊反動정권에게 혼을 팔고 굴종하고 있는 친북좌익세력은 지금 민주 개혁 진보세력으로 위장하여 남한내의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했습니다. 金正日 정권은 가장 사악하고 거짓된 이 위선자들의 집단을 下手人으로 삼고, 남한의 가장 어리석은 무리들을 속이고, 남한의 비겁한 야당을 무력화시키고 어용언론을 이용하고, 북한의 가장 불쌍한 주민들을 죽이고 가두고 굶기면서 남북한에 걸쳐서 反민족, 反민주, 反인륜 권력체계를 구축·확대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한반도의 기본 대결구도는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金正日 정권 편인가, 대한민국 편인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기는 국가와 체제 수호세력의 편에 서야 할 헌법적 의무를 지고 있는 盧武鉉 정부가 金正日 정권에 굴종하여, 대한민국 수호세력을 민족과 자유의 主敵인 金正日보다도 더 적대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애국세력이 반란집단의 깃발인 인공기를 불태우면 경찰이 육탄공격을 하여 인공기를 보호하여 줍니다. 盧정권은 반미세력이 성조기를 불태울 때는 구경만 하고 아시안 게임에서는 태극기를 압수하고 정체불명의 한반도 깃발을 대신 들게 하였습니다.
  
  남북한에 걸쳐 구축된 좌파 연합세력은 한반도 전체의 적화에 유일한 걸림돌로 남아 있는 여러분들을 요사이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거의 홀로 한반도의 반역세력과 맞서고 있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金正日 정권과 盧武鉉 정권, 그리고 친북세력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주인공들은 지난 60년간 나라를 만들고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근대화하고 나라를 민주화하는 데 피 땀 눈물을 쏟아부었던 위대한 세대, 바로 여기 모이신 한국의 애국주류층입니다. 한국의 애국세력은 40년 전에는 필리핀, 앙골라, 방글라데시보다도 못살던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발전시킨 우리 민족사의 가장 위대한 진보세력입니다.
  
  
  死大惡法 음모
  
  민족사 최악의 守舊독재세력인 김정일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남한내 친북세력은 이런 우리를 守舊꼴통이라고 매도하면서 최후의 공세를 시작하였습니다.
  
  저들은 지금 金正日 정권의 宿願사업이던 보안법 폐지안 등 四大惡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국보법 폐지안은 金正日 추종자와 간첩 공작원들이 날뛰는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신문규제법은 그 金正日을 비판하는 신문에 족쇄를 채울 것입니다. 과거사법은 동족상잔의 악몽을 재현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파괴할 것입니다. 私學개악법은 일종의 인민위원회가 사립학교를 접수하여 친북교과서로써 400만 학생들을 홍위병으로 키우게 할지 모릅니다. 국민국가의 기본 골격인 안보, 자유언론, 애국교육, 국가 정통성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려는 이 4대 악법은 대한민국을 죽음으로 몰고갈 죽을 사자 死大惡法에 다름 아닙니다.
  
  이 四大惡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하는 핵심세력은 전향했다는 증거가 없는 金日成 교도 主思派 출신 국회의원들입니다. 이들은 국민들의 절대적 반대와 헌법재판소 및 대법원의 경고를 묵살하고 이 4大악법 처리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이란 신문은 사설에서 이런 법안은 평양에서 쓴 것 같고, 金正日의 간첩이 지휘해도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다는 평가를 했습니다.
  
  좌파정권이 본색을 드러내자 드디어 국민들도 自衛행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60년 동안 피와 눈물과 땀을 쏟아부어 나라를 세우고,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근대화하고, 나라를 민주화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선진국 대열의 문턱에까지 밀어올렸던 우리 애국주류세력은 거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생애 최후의 결전을 시작하였습니다.
  
  
  정권과 방송과 홍위병의 3중 결탁
  
  상황은 불리한 듯보입니다. 헌법과 체제와 정통성의 수호자여야 할 盧정권은 金正日 정권의 더러운 對南적화 사업을 대행해주고 있다는 외국 언론의 의심까지 살 정도이니 더 기대하여 무엇하겠습니까. 어용방송은 金正日 정권의 눈치를 보고 金正日 정권에 굴종하는 盧武鉉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국민들을 속이고 북한동포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반미감정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사흘 전 한 어용방송의 해설자는 부시를 재선시킨 미국 국민들을 오만하다고 공격하였습니다.
  
  정권과 방송과 홍위병 세력의 이런 3중 결탁은 한국의 권력체계를 장악하여, 조직되지 못한 국민 개개인을 공포, 짜증, 울분, 좌절의 소용돌이로 밀어넣고 있습니다. 정권 방송 홍위병의 3중 결탁 구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국민들은 평균수명이 단축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를 더해주는 것은 부패, 무능, 비겁한 한나라당입니다.
  
  망국적인 수도이전에 찬성하는 등 결정적 시기 때마다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여 국민들을 배신함으로써 右翼守舊세력으로 전락한 것이 한나라당입니다. 권력기생정당화한 이들은 左翼守舊세력의 집요한 공세에 겁을 먹고 애국주류세력을 멀리 하려고 하다가 지금은 역사의 흐름에서 밀려나 친목회, 협회 수준의 정당으로 퇴락하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애국주류세력은 지금 이처럼 절망적인 조건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그들의 투지는 분노와 정의감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이게 하는 대한민국적인 가치와 요소, 즉 헌법, 정통성, 李承晩, 朴正熙, 반공, 자유, 사유재산, 시장경제, 언론자유, 선거의 자유, 기업활동, 국군, 조선 동아일보, 그리고 현대사에 대한 좌파의 비방을 자신에 대한 비방처럼 느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대한민국의 명예가 손상되는 것은 자신들의 명예가 손상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에 대한 칼질을 자신의 몸과 삶의 의미에 대한 난도질처럼 아파하고 울부짖는 분들입니다. 바로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입니다.
  
  
  애국세력의 반격
  
  대한민국과 일체감을 느끼는 老壯層이 행동을 개시함으로써 애국세력이 곳곳에서 교두보를 구축하고 실지를 회복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리의 투사, 인터넷 戰士, 애국투사들의 후원자, 무서운 아버지, 극성스런 어머니로 변하여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광화문 거리와 사이버 세계는 더 이상 좌익들의 놀이터가 아닙니다. 거리로 쏟아져나오고 인터넷속으로 들어가 밤낮없이 자판을 두드리는 애국주류세력의 반격으로 지금 좌파 철부지들이 몰리고 퇴각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애국주류층의 위기감과 분노는 이제 생활인 계층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좌파가 시작한 시대착오적인 이념투쟁은 나라를 쪼개고 찢어발기면서 경제를 망가뜨렸습니다. 경제가 망가지니 돈 없는 사람, 나이 어린 사람, 일자리 없는 사람들이 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생활인의 생존투쟁과 생계투쟁을 유발한 것입니다. 음식점 주인들이 솥을 들고 거리로 나오고 노점상이 나오고 시장상인들이 나오고 중소기업하는 분들이 나오고 청년실업자들이 나오고 종국적으로는 학생들이 합세하여 全국민들이 궐기하는 체제수호 국민혁명으로 진행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反共애국 기독교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성경해석적으로 본다면 金日成 金正日은 하나님을 참칭하는 사탄의 제자들입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개화기, 일제하 독립운동기, 건국과 호국과 반공의 시대, 그리고 근대화와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에서 국민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피를 쏟았습니다. 金正日 정권은 인간을 증오의 흉기로 만들고 사랑의 기독교는 그런 인간들을 구원합니다. 金正日 세력과 기독교는 같은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있지만 사탄의 세력을 용서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한국의 주류층에 이어 기독교인 생활인들까지 들고 일어나 체제수호의 국민혁명에 참여하면 젊은이들도 좌파척결 대열에 동참하여 거대한 救國의 연합전선이 형성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주류층이 노쇠했다고 얕보던 친북좌익 세력은 앞으로 그 代價를 치를 것입니다. 한국의 老壯層은 건강하고 시간도 많고 돈도 있으며 전문지식과 지혜도 있고 무엇보다도 투지가 만만합니다. 이 老壯層이 생활인과 청년층을 감화 각성시키려면 오늘처럼 공부하고 교육해야 합니다. 오늘의 위기가 좌경 의식화 교육의 산물이듯이 내일의 救國도 애국교육의 결과물일 것입니다. 공부와 교육 없이는 애국도 救國도 없습니다! 우리 기성세대가 모두 교사요원이 되어 젊은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때, 또 젊은이들로부터 배워서 우리도 달라질 때 조국은 구원될 것입니다.
  
  
  老壯層-생활인-젊은이
  
  이제 老壯層, 지식인층, 생활인층, 청년층이 헌법과 사실과 이론을 무기로 삼아 뭉치고 조직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등산모임과 의사회와 친목회와 향우회도 애국운동조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온건한 보수 지식인들도 핏발을 세우고 정직하게 글을 쓰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한국 언론과 지식인들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악랄하고 무능한 金正日 독재의 전위대를 진보 민주 개혁세력이라고 불러주었습닌다. 그러면서 그들은 가장 성실하게 조국을 발전시켜온 주류세력을 守舊니 보수라고 불러 국민들의 피아식별 기능을 마비시킴으로써 진보 민주 개혁으로 위장한 친북좌익의 대두를 허용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써 지식인들과 언론은 요사이 盧정권의 소위 「신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수도이전」, 또는 「遷都」라고 정확히 쓰고 있습니다. 청와대와 국회까지 옮겨가는 遷都를 「신행정수도 건설」이라는 말로 속임수를 쓴 그 명사와 수도이전이라는 정직한 명사의 싸움에서 정직한 명사가 이겼기 때문에 수도이전 위헌 결정이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국민들은 거침 없이 盧정권을 친북좌파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총리는 자신들을 좌파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만 그런 이름은 남이 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얼굴과 이름의 책임은 본인의 몫입니다. 정확한 명사를 써서 친북좌파의 정체와 속임수를 폭로하는 것이 가장 유효한 애국의 전략입니다.
  
  좌파 이념에 한번 물들면 인간을 물질적인 존재로 보고 정신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생명에 대한 존중심이 없으니 대량학살에 따른 양심의 가책도 없습니다. 사회관계를 계급투쟁설로만 해석하므로 사람들을 敵과 동지로 갈라 소위 계급의 원수들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거리낌 없이 자행합니다. 좌파이념에 한번 젖었던 사람은 선동과 거짓말의 기술자가 되고, 잘못이 드러나도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져도 졌다고 승복하지 않고, 헌법과 도덕을 파괴하는 데 죄책감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계통의 사람들을 상대로 싸워 조국을 지켜내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낌 없이 주는 나무
  
  지금 한국의 애국세력은 인류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위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은 私心 없이 공동체를 위하여, 후손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북한동포 구출을 위하여, 김정일 독재타도를 위하여, 남한의 위선자를 폭로하기 위하여, 좌익선동의 밥이 되는 어리석은 무리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正義를 위하여, 진실을 위하여, 진정한 개혁을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50대 이후 세대의 이런 행동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정의감의 눈물겨운 집단 표출입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든 주인공들이 다시 황혼의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老壯혁명」으로 불릴 이 기적은 백성의식과 노예근성을 가진 국민들이 나라의 주인으로 거듭 태어나도록 할 것입니다. 젊음을 불살라 세계 最貧國이던 대한민국을 인간답게 살 만한 나라로 만들었던 세대가 이제 「아낌 없이 주는 나무」처럼 마지막 남은 몸뚱이를 후손들을 위하여 내던지고 타고 남은 재까지도 文武王처럼 뿌려가면서, 조국과 후손들을 공산화와 후진화로부터 구출해야겠다고 나섰습니다. 이 일은 가히 세계사적인 대사건입니다.
  
  아직은 빡빡한 싸움 같지만 머지 않아 애국세력으로 대세가 쏠리면, 金正日 정권은 내부폭발로 무너질 것이 분명합니다. 친북좌파 세력은 지금 형성되고 있는 거대한 애국의 물결에 떠내려가든지 溺死(익사)하고 말 것이 또한 자명합니다. 애국세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행동이 세계사의 흐름, 인권 자유의 확장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보조를 같이 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진실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다소 걸릴지 모르지만 진실은 거짓과 선동을 결국 무너뜨립니다. 누가 뭐래도 金正日 정권은 구제불능의 악당이고 친북좌익 세력은 무능한 위선자이며 다수 국민들은 세번 속지는 않을 것이고 북한주민들은 들고 일어날 것이며 盧武鉉 정부와 한나라당은 살기 위해서라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머지 않아 어용방송은 국민들의 심판을 두려워하여 애국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정권의 선전원들도 언젠가는 양심의 명령에 따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자신과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진실의 편에 서 있고 저들은 거짓과 어둠의 자식들이기 때문입니다.
  
  먼 훗날 후손들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2004년11월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였는가. 여기 모이신 애국자들은 당당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는 너희들의 행복을 위해, 너희들의 자유를 위해, 너희들의 안전을 위해, 너희들의 미래를 위해서 마지막 싸움을 했다, 그리하여 승리했다, 우리가 승리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金正日 정권을 평화적으로 붕괴시키고 북한주민들을 구출했으며 그 자유통일의 관성으로 인구 7000만 명의 한민족이 화합하고 단결하여 선진강대국을 창조했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할 것입니다.
  
  
  수비하면서 공격을 준비해야
  
  애국운동은 지금 수비와 항의 위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비로써 애국 전투에서 이길 수는 없습니다. 수비를 하면서도 공격을 준비하고 우리의 꿈을 키워가야 합니다. 우리는 애국운동의 최종 목표를 분명히 하고 특히 젊은이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우리의 비전은 자유통일과 선진강국 건설입니다. 국민의 힘을 조직하여 막강한 어용언론과 친북적 권력을 상대로 싸워 이겨 국가, 체제, 자유를 지켜낼 수 있다면, 그런 국민들은 선진국민의 자격이 있습니다.
  
  애국운동을 통해서 우리는 선진화로 나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할 것입니다. 그 길에는 통일이라는 관문이 있습니다. 근대화를 이룩한 민족의 저력이라면, 애국운동으로 高揚(고양)된 국민들의 힘이라면 자유통일은 어려운 과제가 아닙니다. 자유통일이 되면 대한민국은 7000만 국민들을 갖게 됩니다. 서유럽에서는 독일만이 통일한국보다 인구가 많습니다. 7000만이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보다도 많은 인구입니다.
  
  흔히 한국의 국가적 목표를 작고 강한 나라, 즉 强小國으로 설정합니다. 네덜란드나 스위스를 모델로 삼으려 합니다. 인구 7000만의 통일한국에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 작은 목표설정입니다. 통일된 한국은 프랑스나 영국 정도의 강대국이 될 수 있습니다. 인구뿐 아니라 경제력, 특히 공업력과 군사력에서 그러합니다.
  
  반토막 난 국토를 가지고도 우리는 남한에서만 세계 10위안에 드는 중화학 공업을 여섯 종목이나 가진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전자,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제철, 원자력이 그것들입니다. 이런 나라는 미국, 일본, 독일을 제외하면 없습니다. 통일조국은 세계 5대 강국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애국세력이 하고 있는 운동은 그런 점에서 선진화 운동인 것입니다. 따라서 애국 운동의 비전은 「자유통일 이룩하여 선진강국 창조하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애국운동의 원칙
  
  여기서 한국적 선진애국운동의 몇 가지 원칙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1. 애국운동은 헌법과 헌법이 규정한 핵심내용들을 존중하고 수호합니다. 그 핵심 내용이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자유평화통일 원칙, 그리고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적 국가이자 민족사의 정통국가라는 사실 등입니다.
  2. 애국운동은 한국의 현대사를 긍정합니다. 한국의 주류층이 한국의 현대사에 쌓은 금자탑인 건국-호국-근대화-민주화의 全과정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그 그늘과 부정적인 요인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현대사의 음지와 양지가 다 우리 역사의 일부이며 오늘의 한국은 과거의 연장선장에 있고 미래 또한 그러할 것임을 믿습니다. 애국세력은 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져온 민족사의 主流를 계승한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통국가임을 확인하며 북한정권이 반국가단체이고 민족사의 이단이라는 사실을 양보하지 않습니다.
  3. 애국운동은 상당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유통일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유통일은 구호가 아니라 동포구출작전입니다. 자유통일은, 金正日 민족반역정권에 의해서 맞아죽고 굶어죽고 있는 북한동포를 구출하고 남한내 金正日 추종 세력을 제거함으로써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위한 피할 수 없는 대명제입니다.
  4. 애국운동은 韓美동맹을 국가생존의 필수 전략으로 설정하고 자유통일 이후에도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한국의 오랜 친선관계는 두 나라 국민들이 공유해야 할 소중한 역사적 기억이고 유산입니다.
  5. 애국운동은 金正日 정권을 헌법의 적, 민족의 적, 자유의 적으로 규정합니다. 金正日 정권의 구성원들이 북한주민들을 향해서 저지르고 있는 反민족적, 反인륜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통일된 이후에도 공소시효에 구애되지 않고 반드시 처단해야 할 것입니다.
  6. 애국운동은 선진국에 걸맞는 일류시민을 양성하고, 일류제도를 만드는 데 앞장섭니다. 일류시민이란 전문성과 애국심과 도덕성을 두루 갖춘 교양 있는 국민을 말합니다. 일류시민이 되어야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인류 전체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7. 애국운동은 한국의 전통과 관습을 존중하면서 이를 끊임없이 새롭게 계승 발전시킵니다. 우리는 민족사 2000년의 공용어인 漢字가 한글과 함께 國語의 일부임을 확인합니다.
  8. 애국운동은 과학과 합리정신을 행동의 규범으로 삼아 前근대적인 미신, 선동, 무능을 한국 사회에서 몰아내는 데 주력합니다.
  9. 애국운동은 관용과 嚴正, 자주와 개방, 文과 武가 조화되면서 보다 높은 차원의 생산력과 창조력을 발휘하는 생동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선진화 운동입니다.
  10. 애국운동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갑과 손발로 하는 것입니다. 관념속에서, 마음속으로 하는 애국은 자기 기만이며 自慰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돈, 건강, 지혜, 슬기, 조직과 인맥을 총동원하여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방법으로써 나라사랑 나라걱정을 실천하는 것이 애국운동입니다. 애국운동은, 그 누군가가 우리를 대신 지켜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무사안일과 방관적 자세를 취하는 가짜 보수세력을 경멸합니다.
  애국운동은 헌법을 활자상태에서 불러내어 우리의 가장 든든한 友軍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헌법파괴 행위자에 대한 감시와 고소 고발 提訴 운동을 공세적으로 汎국민적으로 벌여야 합니다. 전향했다는 증거가 없는 金正日 추종 세력이 정권의 핵심부에 둥지를 튼 지금 국민들은 헌법의 힘으로써, 헌법의 논리로써, 헌법에 기대어 좌경 권력과 맞서야 합니다.
  11. 애국운동의 이런 모든 노력은 최종적으로는 국민들의 민심, 특히 젊은이들의 마음을 잡고 돌려놓는 것을 목표로 하여야 합니다.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여론이 결국 정권을 선택하고 국가의 진로를 결정합니다. 정권 방송 홍위병의 3중 결탁구조가 하루 24시간씩 국민들을 향해 쏟아붓는 거짓선동에 국민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일, 국민들을 깨어 있게 하는 일, 이것이 애국운동의 핵심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전진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통일과 선진강국 창조로 가는 길에 놓인 걸림돌을 빨리 걷어내고 전진해야 합니다. 친북좌익 세력, 권력기생 정당, 기회주의자, 위선자들, 그리고 이 모든 惡의 축이고 惡의 근원인 金正日 세력을 치워야 합니다. 진실과 정의와 역사와 문명세계가 우리 편입니다. 어둠과 햇볕, 선과 악, 정통과 이단의 대결에서 중립지대는 없습니다.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습니다. 애국세력은 그 동안 어렵게 지켜온 자유의 불씨를 이제 횃불로 들어올리는 데까지 성공했습니다. 우리는 이 횃불을 들불로 번지게 해야 합니다. 애국의 들불은 金正日 정권, 친북좌익 세력, 거짓, 선동, 미신, 무능, 위선 등 전근대적인 잔재들을 모조리 불태울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을 되찾은 대한민국과 함께 전진할 것입니다.
  
  애국 운동의 최종 승리는 역사의 필연입니다. 우리는 정통이고 정의이며 선이고 진보입니다. 저들은 이단이고 수구이며, 거짓되고 악합니다. 우리는 정당하고 선하기 때문에 강한 것이고 강하기 때문에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의 이런 신념은 진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애국시민 여러분, 이제 용기를 갖고, 희망을 품고, 우리의 꿈을 향하여 함께 갑시다! 대한민국은 전진해야 합니다! 자유통일로써 선진강국 창조, 이 길을 함께 달려갑시다. 여러분, 대한민국과 함께 전진합시다!
  
출처 : 趙甲濟 외
[ 2005-10-31, 23: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