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유조선을 타고 오일로드를 가다(4) - 해적의 바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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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유조선 타고 오일로드를 가다④
  
  해적의 바다, 통곡의 바다, 기름의 바다
  
  동지나해에서 동해2호는 폭풍을 만났다. 23만 톤의 거체와 파도의 격돌, 선수에서 부채 살처럼, 장막처럼 쳐 올라온 바닷물은 갑판 위에 벼락을 내렸다. 그때마다 대포 쏘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3백 미터 후방의 선실에선 그 격돌을 남의 동네 불 구경하듯 무관심하게 취급하고 있었다.
  
  <1982년 6월 마당>
  
  야식이 나왔다. 떡과 감주. 원 패덤 뱅크의 '바늘구멍'을 무사히 통과한 2월15일 밤이었다. '살롱' 이영우씨가 선실을 돌면서 배달해 주기도 했다. '살롱보이'라는 애칭을 가진 이씨는 서른 살의 '어른'. 앳된 동안으로 해서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선실의 청소, 선 내 매점운영 등을 맡고 있는 그는 줄곧 유조선만 타느라고 혼기까지 놓쳤다고 했다. 야식은 배에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울산 출항 때 실어 보관한 것이었다. 취사恝【?3, 4일에 한 번쯤 이런 야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동해2호 선원들은 한결같이 '사주장을 잘 만났다'고 했다. '선 내 분위기를 좌우하는 건 선장과 사주장이다'는 말이 있다. 사주장, 곧 취사부의 책임자가 어떤 요리 솜씨와 성의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선원들의 일상 분위기가 흐렸다, 개었다 한다는 것이다.
  
  유조선 선원들의 미각은 예민하다. 고립된 무기항 항해, 달리 욕구를 발산시킬 출구가 없다. 막혀서 충만해진 욕구는 미각에 집중되고 '먹는 재미'를 갈구하게 된다. '다른 배 같으면 음식에 좀 불만이 있더라도 항구에 닿으면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배설할 수 있어 쌓인 스트레스가 풀립니다. 탱커에서는 그렇게 안 되지요. 설상가상으로 부식조달에 애로가 많습니다. 출항 때 한 번 실으면 그걸로 두 달을 견뎌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귀향 길에는 김치 등 채소가 동이 나는 수가 많아요. 그러면 고기만 내놓게 되는데…아무리 요리 솜씨가 뛰어나도 그것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재료가 한정되어 있어 안타깝습니다.'
  
  사주장 박도석 씨의 말이다. '음식 솜씨도 좋아야 하지만 사주부의 사교술도 중요합니다. 평소에 선원들과 잘 어울려 인간 관계를 돈독히 해 놓으면 우리의 작은 실수는 묻혀 넘어가 버립니다. 요리가 언제나 좋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군중심리라 할까요. 누가 먼저 음식 투정을 하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들고 나와 사주부를 집중 공격하게 됩니다. 이런 불만의 집결과 폭발을 막으려면 평소에 정치를 잘 해야 한다 말입니다. 허허…' 조리수 김동훈씨는 얼마 전에 선원들로부터 밀리다시피 하여 하산한 어느 사주장의 사례를 들면서 말했다.
  
  배는 밤에도 분명히 가고 있었다. '밤에도 정말 배가 가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늘 반바지 차림으로 알몸을 드러내 놓고 다니는 펌프 맨 김무 씨가 휴게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뭍 사람들의 뱃사람들에 대한 무식을 비꼬고 있었다. '윤정희가 여 선장으로 나오는 영화가 있었죠? 선장이 키를 잡지 않나, 갑판장이 선장에게 말을 놓고, 하역중인데 출항 명령이 떨어지지 않나…개판 오 분 전 같은 영화 말입니다.' 윤기관장이 화가 치민 듯 내 뱉었다. 대다수 육지 사람들이 가진 선장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마도로스 모자를 약간 치켜 쓰고 파이프 담배를 지긋이 문 채 키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털보 사나이- 통선 이면 몰라도 큰배의 선장은 절대로 키를 잡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 멋은 있겠지만, 키를 돌리는 건 조타수의 임무이며 그것도 위험한 항로를 지날 때만 그런다. 90퍼센트 이상의 시간은 자동 항해기에 맡겨두고 브리지 안을 어슬렁어슬렁 왔다 갔다 하는 게 조타수의 일이다.
  
  선장이 키를 잡아야 할 때는 사고로 항해사들과 조타수들이 전멸한 뒤이다. 갑판장은 거창한 직명에도 불구하고 선장과 감히 맞먹을 수 없다. 선장 다음의 선임자는 기관부의 책임자 기관장, 세 번째가 갑판부의 책임자 1등 항해사. 1항사는 흔히 '초사'로 불린다. '치프 오피서'(Chief Officer)를 일본 사람들이 줄여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초사는 갑판부의 일과(日課), 선실 생활의 통제, 화물의 싣고 부림을 책임 맡은 사관, 곧 선박 운용의 실무 책임자. 배에서 가장 분주한 사람일 것이다. 초사 밑에 2항사, 3항사, 통신장이 있고 기관장 밑에는 1기사, 2기사, 3기사가 따른다. 이들이 장교단과 같은 사관 그룹을 이룬다.
  
  갑판장은 '보숭'(Bos'n)이라고 불리는데 갑판부의 보통 선원들 가운데 선임자. 군대에 비교하면 선임하사다. 기관부의 선임하사는 '남방'(Number One Oiler의 준말)으로 불리는 조기장. '보숭'밑에는 펌프 맨, 갑판수, 갑판원, '남방' 밑에는 기관수, 전기수, 기관원. 이런 계급 구조이니 갑판장이 선장과 맞먹는다는 것은 선임하사가 부대장과 맞먹는 것과 같다. 세계 어떤 나라에서든 항해사 출신만이 선장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항해사와 갑판부가 기관사나 기관부보다 서열이 높다는 인상을 주고 불화와 대립의 잠재적 요인이 되고 있다.
  
  브리지가 배의 가운데에 있는 선박에선 사관들과 갑판 부원들에겐 중앙 선실에, 기관부의 보통 선원들에겐 기관실이 있는 배 꽁무니의 선실에 침실을 배당, 분단을 고착화시켰는데 슈퍼 탱커에서는 중앙 선실이 선미 선실로 바꾸어지면서 '통일'되어 양쪽의 갈등이 상당히 해소되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해양 대학이 후배인 선장이 선배 기관장을 거느리게 되면 여러 가지 미묘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선박회사에서는 선배 선장-후배 기관장으로 짝을 맞추어 놓으려고 애쓰고 있다. 동해2호도 그런 경우인데 선장과 기관장 사이가 좋은 것이 선 내 분위기가 명랑한 주요한 배경이라고 선원들은 말하고 있었다.
  
  말래카 해협에 들어선 이후 선원들은 한결 들떠 보였다. 휴게실 텔레비전 수상기에선 인도네시아 방송이 잡히다가 말레이시아 방송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휴게실은 시청자들로 흥청대고 있었다. '내일 싱가포르를 지난다' 선원들의 표정은 그 기대로 밝아져 있었다. '내일 소풍간다'는 희망에 들뜬 국민학생들처럼. 다음날 아침은 부옇게 밝았다. 욕실의 수증기처럼 진한 공기가 해면을 얕게 덮어 누르고 있었다. 동해2호는 새벽 3시에 말래카 앞바다를 지나 싱가포르로 다가갔다. 우리는 한 달 전의 약속에 따라 사흘 전에 말래카의 폭슬리 영감에게 동해2호의 항공 촬영을 재차 부탁하는 전문을 보냈다.
  
  말래카 비행장에서 동쪽으로 약 1백 킬로미터 떨어진 해상을 지날 때의 시간(상오10시)을 미리 알려주고 비행기의 출현을 기다렸으나 말래카 현지의 날씨 때문인지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동해2호는 새벽부터 각양각색의 선박들에 둘러싸여 싱가포르로 접근하고 있었다. 말래카 해협은 선박 전시장이었다. 맨눈으로도 열 한 척의 탱커, 어선, 컨테이너 선들이 오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거선들이 오, 륙백 미터 간격을 두고 우리 배를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바다가 좁게 느껴졌다. 바닷물 색은 텁텁한 초록이었다. '한달 전 싱가포르 항구에서 본 바로 그 물색이구나'고 나는 직감했다.
  
  나무 껍질, 판자, 해파리, 고무튜브, 야자수 잎 따위가 둥둥 떠내려왔다. 몰려 사는 인간들의 존재와 그 숨결을 확인시켜 주는 조짐들. 무선기에선 싱가포르 무선국을 부르는 소리가 숨가쁘고 어지럽게 오가고 있었다. 무선국의 교환수는 여자였다. 브리지 당직자들 가운데는 무전기에 귀를 바짝 대고 달콤한 그 목소리를 들으려고 애쓰는 선원들도 있었다. 항구, 등대, 갈매기, 돌고래, 여자는 선원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5대 친구라고 할까? 인간은 세 가지 동경을 갖고 있다고 한다. 고향에의 동경(Home Sick), 이성에의 동경(Love Sick), 바다에의 동경(Sea Sick). 육지 사람들은 이 세 가지 가운데 두 가지 동경을 충족할 수 있으나 바다 사람들은 하나밖에 만족시킬 수 없다.
  
  정오께 '동해'는 말레이지아 해역을 벗어나 싱가포르 남쪽의 필립 협수로에 진입했다. '동해'는 다도해 같은 섬 밭 사이를 지나가기 시작했다. 섬 마을의 방파제와 쇠 탑이 보일 정도로 가깝게 스쳐갔다. '동해'의 앞뒤로는 탱커, 켄터이너 선, 자동차 전용선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거선들의 행렬-그것은 광화문네거리의 자동차 행렬과는 다른 스케일로 융단처럼 깔린 적도의 바다를 꽉 채우고 있었다. '동해'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항로에 들어선 것이었다. '동해'는 정면에서 앞장 서 달리는 컨테이너 선과 자동차 전용선의 물길이 뒤따라가고 있었다. '동해' 뒤 1킬로미터쯤에서는 탱커가 따라 오고 있었다.
  
  오후1시쯤 '동해'는 싱가포르의 주롱 정유 공장지대 앞을 통과했다. 묘박지에는 탱커들이 열세 척 와글와글 떠 있었다. 1시35분께 앞서 가던 컨테이너선이 좌회전했다. 35분 뒤 이 선장도 동해의 선수를 056도 방향으로 돌렸다. 왼쪽으로 싱가포르의 고층건물 군이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항 내의 누런 바닷물이 초록색의 외양수와 맞닿은 곳에서는 뚜렷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었다. '동해'는 그 경계선을 돌파, 녹 쓴 해수 속으로 들어갔다. 수증기가 걷히고 하늘은 유리알같이 맑아졌다. '동해'는 싱가포르에서 인도네시아 쪽으로 징검다리처럼 놓여진 섬들의 띠를 향해 항진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펭기스 섬에서는 산불이 났는지 우유 빛깔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동해'는 싱가포르 쪽 타콩 섬과 인도네시아 쪽 타본 섬 사이를 지나는 항로를 밟아갔다. 이 항로는 국제 지정항로이며 중앙 분리 선이 있고 배들은 우측 통항을 해야 한다. 타콩 섬 바로 앞에 가면 20만 톤 이상의 슈퍼 탱커가 지날 수 있는 항로의 너비는 1천 미터로 좁혀진다. 양쪽에는 부이가 떠 있어 항로의 한계를 명시하고 있었다. 1천 미터 너비의 항로는 중앙 분리선에 의해 다시 쪼개어진다. '동해'는 오른쪽의 너비 5백 미터 항로를 지나가야 한다. 이 항로에서 벗어나면 충돌이나 좌초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윈 패덤 뱅크의 너비 1천3백50미터 '바늘구멍'보다 더 좁은 '바늘구멍'이다.
  
  '동해'는 이 바늘구멍을 1킬로미터 앞두고 변침했다. 침로를 056도에서 040도로, 선체는 덜덜 진동하며 완만한 원호의 물길을 그리고 방향을 바꾸었다. '중앙 분리선에 바짝 붙여 지나가야 안심이 됩니다. 이때 마주 오는 배의 선장이 당황하면 큰일납니다. 이쪽은 자신이 있기 때문에 중앙선으로 붙는데 상대방은 이쪽이 중앙선을 넘는 줄 알고 황급히 키를 돌려 피한다는 것이 중앙선을 넘어와 충돌 사고를 빚기도 합니다. 몇 년 전 그런 사고가 이 부근에서 났지요. 들이받은 것은 한국인 선장이 몰던 일본 탱커였고 중앙선을 침범, 들이 받힌 쪽은 일본인 선장이 몰던 일본 탱커였지요. 일본인 선장의 탱커가 침몰, 최근까지도 마스트를 드러내 놓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국인 선장에다가 '이순신'이란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이 선장은 항해사와 조타수에게 수시로 명령을 내리면서도 구경꾼인 나에게 항해 해설을 해주는 여유를 보였다.
  
  싱가포르 해협 통과 시간을 꼭 낮으로 잡는 것은 이 부근의 통항량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거선들이 줄지어 이 '바늘구멍'을 쉴 새 없이 들락거리는 그 시간에도 요트, 돛단배, 경비정, 원목 운반선 등 연안 선박들은 탱커 항로를 요리조리 가로질러 다니며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동해'는 연방경적을 울려댔다. 하늘에선 싱가포르 전투기들이 폭음을 내면서 공중전 연습에 열중, 이해협의 긴장감을 더해 주었다. 지휘권을 선장에게 빼앗긴 2항사 이종권씨는 진땀을 흘리며 필립 채널 부근의 확대판 해도에다가 10분마다 한 번씩 배의 위치를 그려 넣고 있었다.
  
  항해실 안의 팽팽한 긴장과는 달리 브리지 발코니엔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아이들처럼 재잘대고 있었다. 최화섭 동승선장, 최용선 2기사, 안장렬 통신장 등은 점점 또렷이 다가오는 싱가포르의 시가풍경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2시50분께 '동해'는 타콩 섬의 등대와 암초 밭을 왼쪽으로 바라보며 '바늘구멍'을 벗어났다. 그러나 아직 안심은 금물. 수심 19미터의 얕은 해저가 오른쪽으로 길쭉하게 달리고 있었고 '동해'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039도로 다시 변침해야만 했다. 이 항사는 이제는 2분마다 한 번씩 위치를 내고 있었다. 항해 계기만 믿고 있다가 조류에 밀려 좌초해 버리는 사고를 막기 위함이다.
  
  우리에게는 안면이 있는 싱가포르 시가지는 이제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왼쪽으로 뻗어 있었다. 정유공장의 울긋불긋한 굴뚝, 마운트 페이버의 케이블 카, 47층 짜리 DBS빌딩, 52층 짜리 OCBD빌딩들이 보였다. 해안 매립 공사장의 작업선과 쌓아 둔 모래더미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동해'의 구경꾼들은 넋빠진 듯 뭍의 풍경에 매달려 있었다. 그들은 입항 기분을 내고 있었다. 왕복 6만리의 오일로드에서 항구를 이처럼 가깝게 스치는 건 싱가포르뿐이다. 가수면 상태와 닮은 '가입항 상태'의 환상에 얼이 빠진 선원들은 난간에 턱을 괴고 하염없이 향수 어린 시선을 던져놓고 있었다.
  
  싱가포르 수역을 빠져 나와 다시 말레이지아 동해안으로 들어선 것은 하오5시께 였다. 놀이 지기 시작한 말레이지아 어촌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군데군데 솟아오르고 있었다. 싱가포르를 벗어나면 남지나해! 바람결부터 달라졌다. 서늘하고 세찬 맞바람에 물결도 거세어지고 가끔 백파(白波)도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뒤부터는 선수에서 파도가 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다 색깔도 초록에서 검푸른 대양의 물색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바다, 그것은 새로운 나라였다. 국경을 넘어 낯선 나라로 들어간 것처럼 풍경과 냄새와 색깔과 분위기도 급변했다. 싱가포르의 적도(赤道)적인 정물화 풍경은 사라지고 남성적인 살벌한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다.
  구경꾼들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식당으로 사라져갔다.
  
  저녁7시25분께 '동해'는 호스버거 등대 바로 앞을 지나 남지나 해의 종단항해로 돌입했다. 호스버그 등대는 바다 한가운데의 암초 위에 버티고 있었다. 어둑한 바다 속에서 파도를 맞대고 있는 얼룩무늬 등대는 겨울의 남지나해, 그 시작을 알리는 상징답게 처절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등대 바로 뒤에는 침몰선이 마스트만 비스듬히 내어놓고 모로 누워 있었다. 말래카 해협 위험 수로의 양쪽 입구인 원 패덤 뱅크와 호스버거 등대 곁에는 이런 침몰선이 상징적인 유적으로 남아 겁을 주고 있는 것이다. '동해'는 26시간만에 두 침몰선 사이를 주파한 것이었다.
출처 : 마당
[ 2003-07-09, 13: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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