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유조선 타고 오일로드를 가다(3)-23만톤 대곡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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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래카 해협 아슬아슬 통과記
  
  
  
  동해2호의 둘레는 이제 어두운 구름의 장막으로 감싸진 것 같았다. 정면의 구름 커튼은 회색이었는데 그 가운데 검은 부분이 깔때기 모양으로 바다에서 하늘로 뻗어 있었다. '동해'는 그 깔때기를 향해 가고 있었다.
  "지금 저것은 스콜이 내리고 있는 거예요."
  
  崔 선장이 또 해설을 맡았다. 30분쯤 지나 그 검은 장막 속으로 들어가니 폭우가 쏟아졌다. 갑판엔 홍수가 났다. 갑판을 넘은 물이 폭포수처럼 콸콸 바다로 들어갔다. 약한 바람이 해면을 쓸고 가며 주름살을 남겼다. 이 비 기둥 사이를 빠져 나오는 데 30분쯤 걸렸다. 천둥소리가 음산하게 울려왔다. 이때는 레이다 스코프도 부옇게 되어 배의 항적을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동해'가 스콜의 장막을 막 헤치고 나오는 순간 왼쪽 11시 방향에서 안개 사이로 불쑥 巨體가 드러났다. 초록색 탱커였다. 우리와의 거리는 1해리쯤. 소스라친 '동해' 항해사는 경적을 연거푸 울렸다. 5리나 떨어졌는데 뭘 그러냐고 할지 모른다. 초대형 유조선에 있어서 5리는 방향을 바꾸기엔 너무나 좁은 거리다.
  
   "유조선은 절대로 자동차처럼 갑자기 부딪치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이 다가오는 것을 뻔히 보면서, 몇 분 뒤에는 박살이 난다는 걸 알면서 충돌하는 겁니다. 한 5분간은 서로의 배를 쳐다보며 그냥 '어! 어!' 소리만 내고 있는 거예요. 그때쯤 되면 全速 후진을 걸어도 급선회를 걸어도 이미 늦어요. 20만 톤 짜리를 택시처럼 홱홱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지요. 그래서 유조선 선장은 자동차 운전은 못 할 겁니다. 도대체 時差 감각이 다르거든요."
  
  李 선장의 말이었다.
  
  "5만 톤 짜리 한국 유조선을 타고 봄베이에 입항하다가 사고를 낸 적이 있죠. 인도 도선사가 잘못 지시를 내렸어요. 全速 후진을 해야 할 상황인데 착각인지 全速 전진으로 엔진을 돌리도록 명령했단 말입니다. 뒤늦게 전속 후진으로 바꾸었으나 늦었어요. 우리 배는 부두를 향해 슬금슬금 미끄러져 가는 겁니다. 부두 위에는 그때 인부들이 크레인을 갖고 하역작업 중이었죠. 우리 선원들은 선실 바깥으로 뛰쳐나왔죠. 모두 질린 얼굴로 멍하니 있는 거예요. 그 5분간의 초조, 긴장을 뭐라고 표현할까요. 틀림없이 터질 사고를 운명처럼 기다리는 겁니다.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심리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몇 시간이나 흐른 것 같습디다. 배가 부두에 충돌하기 직전 나는 하역 인부들의 놀란 표정과 흩어져 달아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배는 船首로 크레인을 들이받았는데 크레인이 두 동강 나면서 한 동강은 바다로 고꾸라집디다. 배와 부두 시설만 부수어고 사람은 안 다쳤지만 사고를 미리 알아버린다는 건 지옥이에요."
  통신장 안장렬 씨의 체험이었다.
  
  초록색 탱커는 驚笛(경적)을 든고 방향을 틀었는지 좌현으로 5백 미터쯤 거리를 두고 지나갔다. 뱃전에 쓰인 'DOCENAVE'란 글자가 맨눈으로도 보였다. 오후가 되자 구름이 서서히 걷혀 갔다. 스콜 뒤의 공기는 상당히 맑아졌다. '동해'의 전후 좌우 배들이 쫙 깔리다시피 했다. '동해'는 말래카 해협에 들어서면서 마스트에 그물로 만든 원통을 달았다. 이것은 홀수가 깊은 배라는 표시다. 통신사는 또 싱가포르 무선국으로부터 다른 대형 유조선의 말래카 해협 통과 시간표를 받아 항해사에게 전달했다. 서해만큼이나 넓은 해협이지만 홀수가 20미터나 되는 VLCC가 지나다닐 수 있는 뱃길은 좁고 빠칭고 기계 속의 迷路처럼 난관이 많고 복잡하다. 이 좁은 뱃길에서 자칫 벗어나면 좌초. 滿船한 유조선은 그럴 때 두 동강 나기 십상이다. 이어서 원유 대유출.
  
  공중줄타기 하는 곡예사처럼, 이 거대한 선체는 좁디좁은 항로 위에서 발을 헛놓아선 대파멸이다. '동해'는 이제 첫째 관문을 향해 10노트 속도로 다가가고 있었다.
  
  원패덤 뱅크(One Fathom Bank). 세계의 유조선 선원들의 소름을 돋게 하는 地名이다. 뜻 그대로 水深이 한 길밖에 안 된다는 길쭉한 모래톱이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40킬로미터 서쪽에 있는 항구가 포트 클랭이고 이 항구에서 약 60 킬로미터 서쪽으로 나간 해협의 한가운데, 해협과 같은 방향으로 20킬로미터쯤 길게 발달해 있는 것이 이 모래톱이다. 물론 이 모래톱은 해면 밑에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수심이 3∼15미터 유조선이 얹히기 안성마춤이다. 원 패덤 뱅크 근방에는 같은 방향의 길다란 모래톱들이 뻗어 있다. VLCC급 유조선들은 이 모래톱 사이의 좁은 공간을 통해 빠져나가야 한다. 그것은 바늘 구멍에 낙타 지나갈 정도는 아니지만 바늘을 서 너 개 나란히 세워놓고 한꺼번에 구멍을 꿰는 것만큼 어려운 곡예다.
  
  원 패덤 뱅크는 한국행 유조선엔 말래카 해협의 실질적인 시작을, PG행 유조선엔 긴장의 해소를 알려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이 모래톱에서 싱가포르까지의 약4백 킬로미터가 말래카 해협(총 길이 8백 킬로미터)의 위험水路다. 이덕인 선장이 직접 항해를 지휘하기 위해 브리지에 올라온 것은 원 패덤 뱅크통과를 앞둔 이날 오후였다. 그는 조류의 방향과 조석의 차이를 수시로 체크하도록 항해사에게 지시하고 스크류 회전수, 레이다 스코프, 海圖를 훑어 가며 바늘구멍의 통과작전을 머리에서 설계하기 시작했다. 오
  
  후 2시쯤 '동해'는 인도네시아 어선들이 그물을 치고 있는 漁場 바로 옆을 지나갔다. 어부들의 모습이 쌍안경에 잡혔다. 쿠웨이트를 떠난 뒤 外界의 인간을 구경하기란 이것이 처음.
  
  오후 3시쯤 오른쪽 수평선에서 작은 바위섬들이 점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배의 진로에 따라 암초는 하나, 둘씩 새로 등장했다. 그 바위섬의 행렬은 '동해'를 향해 뻗어 있었다. 해면은 검푸른 색을 벗어 던지고 초록 빛깔로 갈아입고 있었다. 초록색은 바다가 얕다는 암시다. 바다 위에 잉크를 뿌려 놓은 것 같은 이 암초 밭에는 살롱 알랑, 투홍 신방, 바 투 벨라야, 바투 만디 따위의 이름을 가진 無人 바위섬이 열 몇 개나 솟아 있었다. 게 중에는 해면 바로 밑에 잠겨 있는 암초도 있어 휜 물결이 그 위에서 일고 있었다. 그것이 아마도 '하프 타이드 록'(Half Tide Rock)인 듯했다. 밀물 때는 여섯 개로 보이고 썰물 때는 다섯으로 보이는 五六島처럼 조류에 따라 드러나기도 하고 잠기기도 하는 암초란 뜻이다.
  
  "저렇게 보이는 암초는 겁이 안 납니다. 안 보이는 게 문제지요."
  李 선장이 말했다. 이 암초 밭을 지나고 있을 때인 3시30분께 레이다 스코프에 반짝이는 영상이 나타났다. 11시 방향으로 약 15해리 떨어져 있었다. 그 영상은 30초마다 한 번씩 스코프에 잡히고 있었다. 이것은 원 패덤 뱅크에 설치된 전파 반사기. 모래톱의 위치를 접근하는 선박의 레이다에 알려주는 구실을 한다. 이제 브리지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李 선장은 느릿느릿 항해실을 오가며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항해사는 레이다 스코프에, 조타수는 키에 매달려 있었다. 여느 때의 풀어진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 같은 관람객은 말을 붙이기가 미안할 정도로 브리지의 공기는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고 그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동해'는 수심 25∼30미터의 바다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 때 '동해'는 선체를 19.5미터나 물 속에 잠그고 있었다. 오후 4시30분쯤 1항사가 '보인다'고 조용히 말했다. 선원들의 눈은 워낙 좋다. 1항사가 맨눈으로 찾아낸 것을 나는 쌍안경으로 겨우 발견했다. 10시 방향으로 등대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흰 바탕에 검은 테를 두른 등대는 노리개처럼 좀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그러나 그 주변의 표정이 살벌했다. 등대 바로 옆에는 검은 암초, 등대 앞쪽에는 굴뚝과 마스트를 내어놓고 모로 쓰러진 난파선이 있었다. 잡화선인 듯한 이 沈船(침선)은 말래카 해협을 오가는 선원들에 대한 영원한 경고로서 처음부터 그렇게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 패덤 뱅크 쪽으로 '동해'가 바다를 지쳐가고 있던 오후 5시30분께 정면 바다에서 갑자기 허수아비가 솟아났다-고 나는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확 트인 바다에 불쑥 솟은 빨간 쇠기둥은 주변풍경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고 톡 튀어나와 있어 허수아비가 방금 바다 밑에서 솟은 것처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찬찬히 훑어보니 이 허수아비 모양의 쇠기둥은 서울의 길가에 박아 둔 철제의 원통형 쓰레기통과 닮았다. 높이 10미터쯤. 이것을 부이(Buoy)라고 부르는데 아무래도 적당하지 않은 이름인 것 같다. 이 빨강 허수아비 뒤편 오른쪽에는 파란 부이가 하나 또 바다에 말뚝처럼 박혀 있었다. 이 파란 것은 여자 변소의 표지처럼 2등변 삼각형의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 빨강 부이가 남자라면 波浪(파랑) 부이는 여자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 두 개의 말뚝 사이로 지나가야 하는 것이 동해2호 같은 VLCC의 숙명이다. 말뚝 사이의 간격은 1천3백50미터. 쿠웨이트에서 여기까지 3천7백리 곧 1만8천리를 달려온 것도 한 뼘밖에 안 되는 이 목구멍을 지나기 위함이었다. 붉은 부이의 바깥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수심 14미터의 모래톱, 파랑 부이의 바깥은 폭발물 투기장과 깊이 12미터의 모래톱. 두 부이 사이의 수심은 24미터. 동해2호의 홀수는 19.5미터니 5.5미터의 여유가 있다. 그러나 10 노트로 달리면 船首가 1미터쯤 가라앉으므로 여유 수심은 더욱 좁혀진다. 동해 2호보다 더 큰 26만 톤 코리아 선, 코리아 배너, 코리아 스타 호는 24만 톤의 기름을 싣고 여기를 지나는데 여유 수심이 3미터 안쪽일 때도 있다.
  
  1974년 한국 선장으로선 처음으로 24만 톤급 VLCC 천우호를 몰고 말래카 해협을 지난 김태덕씨(45세 아세아상선)는 두 해 전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저와 해저 사이의 여유가 1미터도 안 된 적이 있었습니다. 수심 측정기를 들여다보면 배 밑창이 해저에 붙은 것처럼 나오지요. 이럴 때 배가 흔들린다든지 파도가 치면 박살이 안 나고 견디겠습니까?"
  
  코리아 배너 같은 배들은 홀수가 20미터를 넘는다. 해면이 가장 높아지는 밀물 때를 기다렸다가 그 대조기(大潮期)를 틈타 황급히 얕은 길목을 빠져나가기도 한다. 이 때 선장들은 '해도야, 제발 틀리지 말라'고 기도하는 심정이 된다. 그들의 행동은 해도에 나타난 수심(해도의 수심은 해면이 가장 낮아졌을 때의 깊이)의 정확성을 근거로 하여 결정된다.
  
  水深측량은 해저를 훑는 게 아니다. 몇 군데의 표본조사라는 한계성을 갖고 있다. 해저의 이변으로 모래톱이 생기거나 바위가 굴러 와 있을 수도 있다. 말래카 해협의 인도네시아 쪽 수심 자료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정평으로 되어 있다. 이 해협의 수심 표시는 세계 최고의 권위인 영국 해군 水路局 것보다 일본 수로국의 海圖가 더 정확하다고 한다. 일본은 해협 연안국과 합동으로 해마다 이곳의 水深측량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의 유조선들이 가장 많이 이 해협을 이용하고 있는 데 대한 일종의 보상이다.
  
  오후 5시30분 '동해'는 두 말뚝 사이 한가운데를 지나갔다. 빨강 부이를 통과하면서 李 선장은 變針 지시를 내렸다. 1백7도에서 1백16도로, 1백7도 방향으로 곧장 가면 5킬로미터 앞에 있는 또 다른 침몰선 부근을 지나가게 도어 있었다. 이 침선은 해면 위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그 부근은 수심 15∼18미터. 이 제2의 침선 바로 남쪽에는 제3의 침몰선이 묻혀 있다. 첫 관문을 통과한 동해는 두 번째 난관인 침선 골목을 빠져나가야 했고 그래서 5킬로미터를 앞두고 변침한 것이었다. 곧은 물길이 배 꽁무니에서 큼직한 원호를 그리기 시작했다. 두 침선 사이의 거리는 약 1천 미터. 투수 이덕인 선장는 5킬로미터 앞에서 공을 던져 1킬로미터 너비의 스트라이크존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공이 길이가 3백30미터. 너비가 50미터나 되고 반응 신경이 무딘 놈이란 점이었다. 다행히 李 선장은 20년 동안의 바다생활 중 백 번 이상 여기서 그런 투구를 해 본 사람이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예민한 감각으로 그는 이 둔중한 괴물을 부드럽게 몰이해 갔다. 李 선장은 두 시간에 걸쳐 세 곳의 관문을 더 통과해야 했다. '동해'는 노련한 조련사의 지휘를 받는 코끼리처럼 외길 항로의 줄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가며 다섯 개의 바늘구멍을 항로라는 굵은 실로 차례차례 꿰어 갔다. 구슬 꿰기가 대충 끝난 것은 밤 8시가 넘었을 때였다.
  
   "무슨 일 있으면 불러!"
  
  李 선장은 어둠이 깔린 해협을 항해사에게 넘겨주고 브리지를 떠나 식당으로 내려갔다. 이제부터 싱가포르까지엔 별 문제가 없으리란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남은 건 필립 채널 하나다. 그는 이번의 시험에서도 무사히 합격한 안도감에 잠시 젖었다. 그러나 내일의 시험은? 유조선 선장에겐 오직 백전백승이 있을 뿐임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백전 99승 1패는 뱃사람들에겐 파멸을 뜻한다. 그는 오늘밤도 다리 뻗고 자기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아직 2차 시험이 남아 있지 않은가.
출처 : 마당
[ 2003-07-09, 13:2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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