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유조선 타고 오일로드를 가다(1)-불간 대유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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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15일
  
  한국의 시월과 같은 청명한 날씨. 금요일은 이슬람교의 주일로 휴일이다. 모스크의 탑에 붙은 마이크를 통해 아침 하늘을 가르며 울려 퍼지는 낭랑한 코란 낭송 소리, 희게 빛나는 건물群, 잔디밭 너머로 출렁이는 남빛의 아라비안 걸프, 메실라 호텔은 공항과 쿠웨이트시 사이의 중간에 자리잡은 살미아市에 있었다. 아라비아灣으로 돌출한 해안에 서 있는 이 호텔의 옆은 백사장. 휴일을 맞아 어린이들을 데리고 나온 어른들이 모래밭 위에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누구나 쿠웨이트에 와서 심각하게 놀라는 것은 물가다. 메실라 호텔의 2인1실 숙박료는 26KD. 1KD, 곧 1쿠웨이트 디너는 3.6달러이니 숙박비만 94달러. 원화로 7만 원쯤이다. 여기에 15퍼센트의 세금이 붙는다. 시설은 서울의 중급 호텔 정도이고 봉사 정신은 하급에 속하는 호텔의 숙박료가 그렇다. 쿠웨이트 힐튼호텔 정도면 1실 숙박료가 하루 17만원 꼴.
  
  점심을 호텔 식당에서 먹었더니 두 사람 앞으로 12KD, 곧 3만원쯤의 계산서가 나왔다. 저녁 값을 줄이려고 한국식당을 찾아갔다. 여기서도 육계장 한 그릇이 6000 원, 우동 한 그릇이 5000원 꼴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쿠웨이트市의 환한 거리로 나섰다. 행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활주로처럼 잘 닦여진 도로 위로 승용차들만 무지한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벤츠, 푸조, 올즈모빌, 시보레, 비크, 캐딜럭, BMW, 롤스로이스 등등 최고급 대형차뿐. 그 흔한 日製 승용차는 눈 닦고 보아도 없었다. 미국 포드 자동차의 제품, 예컨대 링컨 컨티넨틀도 보이지 않았다.
  
  포드 자동차는 유대인 경영주에 의해 운영되는 회사라 하여 아랍 국가에선 수입하지 않는다. 쿠웨이트에 나와 있는 한국 상사원들은 서울 본사의 회장도 타기 어려운 비크, 벤츠 따위를 몰고 있다. 자동차 수입세가 4퍼센트에 지나지 않아 자동차 값이 싼 덕도 보지만 더위 때문에 큰 차를 몰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 더위 속에선 냉방이 잘 되는 큰 차를 타지 않으면 업무에 큰 지장을 받는다. 워낙 대형 승용차가 많이 몰려다니기 때문에 현대건설 등 일부 한국 회사에선 포니 같은 소형 승용차는 공사장 내의 연락용으로만 쓴다.
  
   인구 136만의 이 도시국가에는 51만3000대의 등록된 차가 있다. 이 가운데 35만4000대가 자가용 승용차. 잘 조직된 도로망에 모두 성능 좋은 차들이니 시내에서도 시속 100 킬로미터를 예사로 넘기며 쌩생 달리고 있었다. 웬만한 집에선 개인 앞으로 차가 한 대씩 있고 통학용 차, 시장 보러 가는 차 식으로 용도별로 다로 여러 대를 쓰는 집도 있다고 한다. 호텔의 수도꼭지를 트니 누런 녹물이 한참 쏟아졌다. 바닷물을 탈염수 공장에서 담수로 만든 것인데 이것은 주로 세탁 목욕용이고 食水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냉장고에 길쭉한 플라스틱 물병이 들어 있었다. 상표가 붙어 있었다.
  <"프랑스 에비안사의 기술 감리 아래서 병에 담은 아랍에미레이트 연방 마사피 샘물. 커피나 차에 섞어 맛을 내 보실 것. 1리터다 칼슘 7.63, 마그네시움 25.5, 인1.68, 중탄산염 113.7 밀리그램이 들어 있음.>
  한국의 초정 약수와 비슷한 미네럴 워터란 얘기다. 이것이 그런데 공짜가 아니다. 1리터를 마시면 5백 필(Fils), 곧 1400원을 투숙객에게 물린다. 어른의 하루 평균 물 섭취량이 2리터라면 물 값만 1인당 2800원. '물만 마시고 산다'는 농담은 한국에서나 통하지 이곳에선 적용되지 않는다.
  
  선경 쿠웨이트 지사장 김용성 씨의 말.
  "가정에선 백화점에 가서 매일 식수를 사 두어야 합니다. 여름에는 하루 물 값이 2.5KD, 그러니까 6000 원쯤 들 때도 있지요. 정수기를 달아 수도 물로 취사를 하고 미네럴 워터는 식수로만 엄격히 국한시키는 데도 그렇습니다. 생활비를 계산하면 물값이 두서너 번째 항목이 될 겁니다. 남의 집에 가서 물 마시는 것도 눈치를 보아야 할 정도지요."
  
  아세아 상선 쿠웨이트 주재원 장석용 씨는 '여기에선 물 기름 술 가운데 기름이 가장 싸고 물이 가장 비싸다'고 농을 했다. 물은 모두 수입해 마시니 비싸고 음주는 정부에서 일체 금지시키니 밀매 술이 비쌀 수밖에 없다. 장씨의 말은 농담이 아니고 사실임을 곧 알게 됐다. 이곳 주유소에서는 옥탄가90의 보통 휘발유를 리터 당 37원에 팔고 있었다. 식수 값의 40분의 1이고 한국 기름 값의 약 20분의 1. 아무리 호화 승용차를 몰아도 차 유지비가 한 달에 10만 원을 밑돈다. 고급 차가 많은 까닭의 하나는 이런 값싼 기름에 있는 것이다.
  
  - 1월16일
  
  가랑비가 내리면서 기온이 내려갔다. 최저 기온이 섭씨 2도, 낮인데도 섭씨 14,5도를 맴돌았다. 오후에 알 아하마디시의 파힐 지역에 있는 KOTC 사무실로 해운부장 나시 알아즈미 씨를 만나러 갔다. 사무실에는 전기 난로가 켜져 있었다. 우리는 땀이 났지만 아랍인들은 혹한이라고 했다. 우리를 태워다 준 KOTC 소속 승용차 운전사는 파키스탄인 나즈리씨, 아즈미 부장의 비서는 이집트 여자, 우리를 안내한 베루티 영감은 팔레스타인 사람이었다. 쿠웨이트의 주민들을 보고 두 가지 인상을 강하게 받는 것이 보통이다. 하나는 남녀 모두 잘 생겼다는 것. 특히 코가 적당히 높고 눈이 깊숙하고(멀리서 보면 눈망울이 안 보이고 터널 속처럼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얼굴이 갸름하며 눈망울이 크고 피부가 고운 아랍여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예쁘다는 평을 받는다.
  
  다른 인상은 다양한 얼굴과 색깔이다. 1980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쿠웨이트 原住民은 전체 거주 인구의 41.5퍼센트인 56만2000명, 나머지 58.5퍼센트는 쿠웨이트로 이주해 온 외국인들이다. 요르단 및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20만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6만의 이집트인, 이라크(4만5000), 시리아(4마1000), 이란(4만800), 인도(3만2000), 레바논(2만4000), 예맨(1만7000) 순이다. 非아랍인은 10퍼센트쯤. 쿠웨이트 거주민들의 국적수가 80가지를 넘는다고 한다.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이런 다양한 구성은 쿠웨이트의 도시 분위기에 활기찬 느낌을 준다. 옷차림에서부터 전통적인 아랍 복장, 양복에다가 울긋불긋한 인도여자들의 전통 의상까지 뒤섞여 자유분방하다.
  
  아즈미 부장은 쿠웨이트 원주민이다. 눈동자가 부리부리하고 콧수염을 기른 전형적인 아랍인. 그는 쿠웨이트의 다섯 항구에서 원유를 싣거나 연료공급을 받는 세계 각국 유조선들과 대리점 계약을 맺고 그들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KOTC는 아세아 상선의 대리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는 한해에 1000 척쯤의 유조선과 3만 명쯤의 세계 각국 선원들과 직접, 간접으로 접촉, 선원들의 자질을 비교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그는 "탱커 선원으로는 일본 선원들이 단연 으뜸이다"고 잘라 말했다.
  
  "아무리 오랜 배라도 일본 선원들이 모는 탱커는 신조선처럼 잘 관리되고 있다. 선원들끼리의 팀웍도 좋고 새로운 해운정보에 밝으며 사람들이 바뀌더라도 업무에 지장을 전연 주지 않을 만큼 정보의 인수인계에 철저하다. 한국 선원들도 매우 영리하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 굳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고용하고 있는 한국 선원들과 접촉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대화의 부족을 불평하고 있다. 회사에 대한 보고체제에 문제가 있고 그들에 대한 회사의 지시 사항이 잘 이행되지 않고 있다. 특히 외국인에게 협조를 잘 하지 않는 것 같고 경원하는 인상을 받고 있다."
  
   아즈미 씨는 친절하게 우리를 대신하여 알 아하마디 항구와 원유 적출 시설의 취재 수속을 해주었다. 원유 적출 시설이나 저유시설 및 유전은 중요시설로 지정, 엄격한 출입통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쿠웨이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라크가 이란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란 공군이 쿠웨이트의 송유관을 폭격한 적도 있었다. 그런 비상 사태 아래 있는 나라로서는 퍽 쉽게 취재 허가를 내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KOTC의 사무실을 나오니 남쪽 아하마디 유전에서 나오는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게 보였다 석유와 함께 나오는 천연가스를 태운 연기다. 이 연기는 쉼 없이 나오기 때문에 그 연기가 만든 구름 층이 길쭉하게 쿠웨이트 쪽으로 뻗어 쿠웨이트의 고정된 풍경으로 되어 있었다. 아하마디 항구 쪽에선 정유공장 소각탑의 화염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수평선에 거대한 유조선과 화물선 10여 척이 섬처럼 어렴풋하게 떠 있었다.
  
  이곳에서 탱커는 울산항에서 보다 훨씬 크게 보인다. 울산항에 들어오는 배는 기름을 잔뜩 실어 물에 푹 잠겨 있는 데 반해 이곳의 탱커는 빈배이기 때문. 이날 우리는 KOTC 승용차로 쿠웨이트를 한 바퀴 돌았다. 정확히 말하면 쿠웨이트 중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 부분을 일주한 것이다. 쿠웨이트의 면적은 섬을 합쳐 1만7818평방 킬로미터. 경상남북도의 넓이와 비슷하다. 그 가운데 주거 지역은 아라비아만(페르샤만을 아랍 사람들은 그렇게 부름)의 해안을 따라 길이 약100 킬로미터에 걸쳐 남북으로 띠처럼 발달돼 있다. 띠의 너비는 최대 약 15킬로미터. 남쪽에서부터 알 아하마디, 살미아, 쿠웨이트시, 수웨이크시 등이 차례로 형성돼 있다.
  
  이들 도시 사이는 주거 지역이 계속되어 별도로 구별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쿠웨이트 국가와 쿠웨이트 시를 동일시한다. 쿠웨이트의 스카이라인을 특징짓는 것은 집집마다 옥상에 얹혀있는 은빛 나는 저수 탱크, 거대한 원유 저장 탱크 군(群), 나지막한 주거건물(보통 3층 이하), 기중기가 많이 걸려 있는 도심지의 고층 신축 건물群, 산이 안 보이는 광활한 지평선과 이어지는 수평선의 원호, 그 사이로 어린이들이 도화지에 마구 그린 것처럼 어지럽게 뻗어 있는 도로선….
  
  - 1월18일
  
  다시 맑게 개인 날씨. 서늘하면서 공기는 바짝 말랐다. 시야는 늘 환하다. 하늘, 바다, 사막, 백색 건물군…. 몇 번 사진기 셔터를 눌러 본 박상원 기자는 노출을 한 단계 좁혀야 할만큼 광도가 세다고 했다. 이곳에 온 한국인들의 시력이 쉽게 나빠지는 경향이라는 얘기도 있다. 우리는 쿠웨이트 도심에 있는 사하라 호텔로 옮겼다. 객실이 50개로서 작은 편이고 숙박료도 2인1실이 하루에 70달러로 매우 싼 편이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잔정 있는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 비단 호텔뿐만 아니라 상점에 가도 상인들은 대체로 무뚝뚝하다. 들어와도, 물건을 골라도 본 체 만 체다. 손님에게 너무 치근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런 게 속 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잘사니 장사하는 데는 열성을 내지 않는 것이다. 호텔 방의 베개를 보니 중공 상해에서 만든 'SWAN BRAND' 상표가 붙은 수입품이었다. 호텔 전화기는 독일 '지멘스 제품, 텔레비전은 일본 '소니'제, 담요는 영국 '휘트니', 전등은 이태리의 '필립스'제, 냉난방 조절기는 미국의 '허니웰', 볼펜은 미국의 '스크립토', 성냥은 스웨덴의 '젠케핑', 편지봉투는 스웨덴의 '한사', 비스키트는 독일제, 웨하스 과자는, 일본의 '가네보'식품(주)이 서독으로부터 수입, 다시 쿠웨이트로 중계 수출한 '모카 아리바' 등등. 쿠웨이트 국산 제품을 찾으려고 노력해 보았다. 우유봉지에 쿠웨이트 제품이라고 씌어 있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네델란드 우유를 들여와 자동 포장한 것에 불과했다.
  
  휴지와 편지지는 쿠웨이트 제품으로 밝혀졌다. '쿠웨이트가 만드는 것은 기름과 아이뿐이다'는 우스개가 유행하고 있다. 기름과 아이에 공기까지 덧붙이면 그것이 이곳의 3대 국산품이 된다고도 한다. 물론 이것은 과장이지만 쿠웨이트의 자체 제조업이 얼마나 미약한가를 보여주는 말이다. 수웨이크시에는 공단이 있긴 해도 규모는 영세하기 그지없어 쿠웨이트 인들은 온통 수입품, 그것도 최고급 수입품에 파묻혀 살고 있다. 지난 1980년의 경우 쿠웨이트는 약 177억 달러의 상품(92퍼센트가 기름)을 수출, 약64억 달러 어치를 수입했다. 쿠웨이트의 기름을 가장 많이 사가는 나라는 일본, 이곳에 가장 많은 상품을 파는 나라도 일본이다.
  
  쉐라톤 호텔 근방의 광고 네온사인을 보면 대부분이 일제 선전이다. '81년 7월∼'82년 6월의 회계 연도 중 쿠웨이트 예산은 190억 달러였다. 그 96.5퍼센트는 원유수출대금. 쿠웨이트 정부는 매년 50억 달러를 '미래 세대를 위한 저축 기금'으로 집어넣는다. 이 '미래 세대 기금'을 포함한 쿠웨이트 정부의 유보 기금은 1980년에 530억 달러를 넘었다. 지금은 700억 달러쯤. 쿠웨이트는 이 기금의 66퍼센트를 미국과 유럽의 금융 시장에서 돌리고 있다. 쿠웨이트가 겉으로는 중립 노선을 걷고 있는 것 같아 보이나 경제면에서는 서구 및 일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 기금을 굴려서 얻은 수입은 1년에 60억 달러를 웃돈다. 기금 총액이 늘어가면 그 이자 수입도 불어갈 것이다. 그리하여 미래의 쿠웨이트 세대는 기름이 고갈되더라도 이러한 이자 수입만으로도 지금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자신인 것이다. 쿠웨이트의 정책은 석유 고갈 뒤의 대비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석유 생산을 1973년의 하루 300만 배럴 수준에서 1981년엔 100만 배럴 수준으로 낮춘 것도 그 대비와 전환의 시간을 벌겠다는 계산이었다. 지금의 생산 수준으로도 쿠웨이트 석유는 111년을 견딜 수 있다.
  
  그 기간에 쿠웨이트 정부는 '석유 없이도 번영이 가능한 상업 도시국가를 만들어 놓겠다'는 것이다. 쿠웨이트 국영 석유회사(KPC)의 원유 판매 담당 상무 압둘라·H·알·루미 씨는 우리 앞에서 '석유가 떨어진 쿠웨이트의 미래상은 상업 및 금융 센터가 될 것이다'고 단언했다. 우리가 만난 쿠웨이트의 엘리트 계층인사들은 쿠웨이트의 한계 상황과 국가 목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고 석유 없이도 번영할 수 있다는 강력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 며칠 사이 "쿠웨이트 타임" "아랍타임" 등 일간 신문들은 미국 산타 페 회사의 에드 샤논 회장이 쿠웨이트를 방문, 국왕 등 고위 관리들과 회담한 기사를 크게 취급했다.
  
  산타페 회사는 미국 굴지의 석유탐사 전문 회사로서 굴착, 원자력분야 등에도 폭넓게 진출해 있다. 지난해 쿠웨이트의 은행가가 이 회사의 주식을 12억 달러에 사들였다. 얼마 뒤 KPC는 이 은행으로부터 다시 산타페의 주식을 사들였는데 당초 매입 가격의 두 배를 지불했다. 25억 달러를 투자하여 쿠웨이트 국영 석유 회사가 미국 석유 회사의 경영권을 사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미국의 여론은 비판적으로 나왔다. 미국 증권 감독 위원회가 KPC와 은행가의 사전 밀약 여부를 조사하는가 하면 산타페가 미국 정부와 핵탄두 제조관계 계약을 맺고 있는 점을 들어 국가 기밀의 누설 가능성을 걱정하기도 했다.
  
  산타페 경영자들은 쿠웨이트 고위층과의 회담을 끝낸 뒤 산타페는 미국 법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산타페 사건은 쿠웨이트가 석유 고갈 뒤의 대비책으로 汎지구적 규모로 벌이고 있는 전략의 한 사례일 뿐이다. KPC는 지난해 캐나다 호주 등 아홉 나라에서 석유 개발 조광권을 사들였는데 여기에 1억 달러를 썼다. KPC의 해외석유개발 담당 상무 압둘·라자크·후세인씨는 '앞으로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해외 석유 개발의 규모에 비하면 작년 것은 땅콩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알·루미 씨에 따르면 KPC는 이탈리아 석유 회사와 합작, 중공의 해저 석유 개발에도 참여할 계획이라고 한다 .KPC는 또 걸프의 유럽 내 기름 판매 조직에 투자할 뜻을 보이고 있다. KPC가 굴착 전문회사 산타페를 매입한 것도 이런 원대한 해외개발 전략의 한 가닥 작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KPC는 이미 그 산하에 석유 개발 및 생산회사(KOC) 정유회사(KNPC) 유조선회사(KOTC)를 두고 있다. KPC는 새로운 메이저, 汎지구적 규모의 일관 조업 체제를 갖춘 다국적 석유 기업이 되려 하고 있다.
  
  세계 두 번째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국가가 700억 달러의 오일 머니의 힘을 빌어 세계 석유 시장으로 진출한다면 불가능이 있을 수 없겠다. 우리가 만난 한 쿠웨이트 시민은 이런 농담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낙타를 탔다. 나는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나의 아들은 자가용 비행기를 탈것이다. 손자는 그러나 다시 자가용차를 타게 되고 증손자는 할 수 없이 또 낙타를 타야 할 것이다."
  
  이런 비관적인 전망은 쿠웨이트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고 이미 증손자가 계속 자가용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뜻도 된다.
출처 : 마당
[ 2003-07-09, 13:3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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