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스톤 파크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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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아이를 요람에 태워 흔들어 주면 울음을 뚝 그치고 스르르 잠에 빠져 버린다. 일정한 리듬으로 흔들거리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모양이다. 나이 만45세인데도 철이 덜 들어서인지 나는 움직이는 것 속에 있을 때 오히려 긴장이 풀려지고 신바람이 난다. 자동차를 타고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을 때가 나는 가장 기분이 좋다. 목적지까지 좀 천천히 달려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혼자서 공상을 해도 좋고 옆자리에 마음 맞는 사람이 있어 이런저런 한담을 할 수 있으면 더 좋다. 어디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공간과 시간 속을 질주하고 있다는 실감이 나를 짜릿하게, 때로는 들뜨게 만드는 것이다.
  
  주위에서는 나를 가리켜 '역마살'이 있다고도 한다. 직업이 기자이니까 여기저기 싸돌아다녀야 먹고 살 수 있다. 한 20년간 그렇게 하다가 보니까 역마살이 나의 제2의 천성이 된 기분이다. 어디를 놀러 갈 때도 나는 시간계획을 빡빡하게 잡는다. 최단시간 내에 최다의 명승지를 구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버리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미국에서도 그랬다. 미 국무성 초청으로 40일간 미국을 여행했는데 10여개 주에 스물 몇 개의 도시를 섭렵했다. 나이아가라 폭포, 그랜드 캐니언, 옐로스톤 파크, 요세미티, 캘리포니아 서해안인 빅 서 등 미국을 대표하는 4대 경관을 다 구경하였다. 나는 미국사람을 만날 때마다 확인해 보았는데, 이 4대 경관을 다 보았다는 사람을 아직 만난 적이 없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교포를 위한 한국어 방송국 '라디오 코리아'를 설립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가수 이장희 씨는 나보다도 훨씬 더 극성인 여행가이다. 이장희 씨와 그의 친구 두 사람,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캠핑카를 몰고 북쪽으로 약 1천 5백 킬로미터 떨어진 옐로스톤 파크를 향?출발한 것은 지난해 9월 하순이었다. 이장희씨와 그의 친구 둘이서 번갈아 운전을 맡았다. 나는 운전석 옆자리에서 도로 지도책을 펴놓고 여행에 따른 이런저런 정보를 브리핑해주는 역할이었다. 폭스바겐사에서 만든 이 캠핑카에는 주방시설과 4인용 2층 침상까지 마련돼 있었다. 운전대를 넘겨준 사람은 침대로도 사용하는 뒷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어쓰고 잠을 자곤 하였다.
  
  우리 일행은 네바다 남부 사막을 가로 질러 한 다섯시간만에 라스베가스에 도착,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아리조나→유타주로 접어들었다. 사막과 황무지를 달리는데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밤이 되니 여기저기서 번개가 치고 바람이 떨어지는데 꼭 포격전이 오가는 전선 한가운데를 달리는 것 같았다. 암흑을 가르며 하늘에다가 노란 선을 쭈빗쭈빗 그리는 번갯불은 우리 캠핑카에겐 길을 밝히는 조명탄이기도 하였다. 직선으로 쭉 뻗은 국도에는 앞 뒤 수십 킬로미터에 자동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가끔 바다속의 고도와 같은 작은 마을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져 갔다.
  
  운전의 명수이기도 한 이장희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일종의 야간비행을 즐겼다. 고향이야기, 여자이야기, 정치이야기, 노래이야기 등등 번갯불 피워놓고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다. 유타주의 솔트 레이크 시티를 약 1백킬로미터 앞둔 작은 마을에서 우리는 모텔에 들었다. 그때가 밤 12시쯤, 캠핑카를 마당에 세워놓고 차속에서 하얀 밥과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를 만들어 먹었다. 누가 한국사람 아니라고 할까봐?!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또 줄기차게 달려 오전 9시쯤, 라스베가스를 떠난 이후 최대의 도시인 솔트 레이크 시티에 도착하였다. 힐튼호텔 카페에서 우아한 아침을 먹고 몰몬교 총본산교회를 구경한 뒤 다시 출발했다. 유타주-아이다호-와이오밍주로 시속 1백 20-30킬로미터로 북상을 하여 우리는 마침내 북상하던 저기압대를 따라내 청명한 하늘아래로 빠져나왔다. 옐로스톤 파크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쯤이었다. 강가 숲속에 차를 세우고 저녁을 해먹는데 송아지만한 산양떼가 강물을 따라 첨벙첨벙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옐로스톤 파크는 미국의 국립공원 제 1호이다. 미국에 도착하니 '옐로스톤 파크를 맨 나중에 구경하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옐로스톤 파크를 먼저 보면 나이아가라 폭포나 그랜드 캐니언이 시시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말이 공원이지 그 면적이 경상남도보다 더 넓은 옐로스톤 파크는 미국 자연미의 종합판이다. 나이아가라만큼 크지는 않지만 엄청난 폭포가 있고, 그랜드 캐니언만큼 크지는 않지만 더 정교한 계곡이 있으며, 해발 3천미터를 웃도는 산장에 드넓은 호수가 있고, 여기 저기서 온천수가 솟아나고 화산 분화구 비슷한 곳 여기 저기서 김이 무럭무럭 피어나는 게 꼭 외계에 온 것 같은 기분을 자아낸다. 몇 년전에 큰불이 나 숲의 45퍼센트를 태웠다. 숯덩어리가 된 새까만 숲이 수십킬로미터를 뻗어 있어 장관의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장난기와 호기심과 모험심이 남다른 이장희 씨는 옐로스톤 파크에 온 것이 두번째라고 했다. 그는 아주 으시대면서 별들만 반짝이는 캄캄한 밤중에 우리 일행을 모처로 안내하였다. 타올을 하나씩 들고 냇가의 샛길을 따라 걸어서 도착한 곳은 노천온천이었다. 우리는 어둠에 감사하면서 옷을 홀랑 벗고, 섭씨 40도는 될 것 같은 냇물로 들어갔다. 찬물과 온천물이 뒤섞여 이쪽으로 옮기면 온탕, 저기로 움직이면 냉탕이었다. 우리 네 사람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주먹만한 별들이 툭치면 와르르 떨어질 것처럼 박혀있었다. 우리는 입을 벌렸다. 그리고 고향을 생각하며 불렀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1990년 5월 아시아나>
출처 : 아시
[ 2003-07-09, 13: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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